| 증가선대부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부군묘 표음기 |
| 贈嘉善大夫 兵曹參判 兼 同知義禁府事 府君墓 表陰記 |
공의 휘는 언(焉)이요. 본은 풍천인으로서 현조의 휘는 준(俊)이고, 벼슬은 호부상서(지금의 재무부 장관)이다. 고조에 휘는 정(貞)이요 벼슬은 통의대부 검교군기감이고 증조의 휘는 서린(瑞麟)이고 벼슬은 정순대부판사제사사이며 조의 휘는 천계(天桂)요. 벼슬은 승사랑으로 용구(지금의 용인) 현령을 거쳐 증 통훈 대부사복사사이다. 고(考)의 휘는 흥길(興吉)이며 증 통정대부 이조참의로 봉익대부판도판서(奉翊大夫版圖判書) 민서명(閔瑞明)의 딸과 결혼하였다.
공(公-언(焉))은 홍무 경신(1380년)에 출생하였으며 부인은 김해 김씨이니 증조의 휘는 만성이고 벼슬은 중현대부사온서령(中顯大夫司醞署令)이며 조에 휘는 용지이고 벼슬은 봉선대부 사재사령이며 고(考)의 휘는 양귀(良貴)이고 벼슬은 봉상대부 군기소윤으로 정순대부반전의사사 심문연(沈文演)의 딸과 결혼하였으며 부인 역시 홍무 경신(1380년)생 이다. 공은 평소 성품이 인자하고 공검하며 부모에 효도하고 친구 집안에는 돈목(敦睦)할 뿐 아니라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물질을 가지고 다툰 일이 없으며 욕심을 부리지 아니하였다 .67세의 정통 병인(1466년)에 집에서 병으로 돌아가신 돌아갔는데 창원군 동면 불천리 토성산남로교 장사하였다. 부인도 천품(天稟)이 온해하고 기국(器局)과 도량(度量)이 넓었으며 안방 법칙에는 예의가 있었으며 집안을 다스리며 법도가 있었고 가난한 사람을 구휼(救恤)할 때는 재산이 있고 없는 것을 가리지 않았다.
나이 80세로 천순 3년 을묘(乙卯)(1459년)에 돌아가시고 3남 3녀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장사랑 백동(伯仝)이니 사직 감극중에 딸에게 장가들어 1남 1녀를 두어 아들은 효직이고 딸은 전력 조무진(趙茂珍)에게 시집갔다.
2남은 가선대부(嘉善大夫) 전예조참판(前禮曹參判) 숙동(叔仝)이니 생원 김묵(金黙)에 딸에게 장가들어 2남 2녀를 두었는데 1남은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균이니 상호군 정효충의 딸에게 장가들어 2남 1녀은 낳았는데 다 어리고 2남은 생원(生員) 분(昐)인데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 신선경의 딸에게 장가들어 1남 1녀를 낳았는데 모두 어리고 장녀(長女)는 제릉직(齊陵直) 양정(梁貞)에게 시집가고 2녀는 승정원(承政院) 주서(注書) 김제신(金悌臣)에게 시집갔다. 3남은 수의교위(修義校尉) 계동(季仝)이니 사직현면(司直玄冕)의 딸에게 장가들어 3녀을 낳았는데 1녀은 교준(敎遵) 홍여명(洪汝明)에게 시집가서 3남 2녀를 아 일람은 치(治)이고 2남은 순(淳)이니 김극징(金克澄)의 딸에게 장가들어 1남을 낳았는데 어리고 3남 한(漢)과 2녀는 모두 어리다. 2녀는 부장(部將) 박수(朴燧)에게 시집가서 1남 2녀를 낳았는데 모두 어리고 3녀는 무과(武科) 사정(司正) 석효동(石孝仝)에게 시집가서 3남 1녀를 낳았는데 어리다.
황명(皇明) 천순(天順) 사년(四年) 1460년 11월 남(男) 숙동(叔仝) 근찬서(謹撰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