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 최은경
제대로 아는 것
수업은 힘들어
매일 하는 일이 수업이다. 수업이 나의 삶이다. 하지만 너무 힘들다. 6교시 마치고 수업 일기를 썼다. 이번 주는 6.15 남북공동수업을 하는데 가닥을 못 잡고 있다.
한 시간 이벤트로 지나가기에는 정말 소중한 공부인데……. 왜 이런 공부를 해야 하나? 내가 가르치고 싶은 평화란 무엇인가?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수업이 될 수 있나?
평화를 생각할수록 내 마음엔 갈등이 쌓이고 혼란스러웠다. 평화를 방해하는 것이 갈등이라면 이 갈등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길이 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화를 방해하는 갈등, 전쟁, 차별, 폭력 같은 것들이 우리 아이들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친구나 가족끼리 갈등, 자연과 인간의 갈등, 나라와 나라 사이의 갈등 등 여러 가지 중에 5학년 아이들에게 꼭 맞는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조금씩 생각을 열어가는 공부
우선, 사회과 촌락과 도시 문제를 공부하며 정리하는 시간에 『두 섬 이야기』(요르크 뮐러 그림 / 요르크 슈타이너 글 / 비룡소 / 2003)를 읽어주었다.
큰 섬 왕이 금으로 자신의 동상과 궁궐을 세우기 위해 작은 섬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릴 때, 작은 섬 사람들은 품삯으로 빼앗긴 흙을 되돌려 받아왔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자기 땅을 발견한 큰 섬 사람들은 배를 타고 작은 섬으로 갔다. 작은 섬 사람들은 도망 온 큰 섬 사람들이 뭍에 올라오도록 도와 자기네 집으로 데려갔다. 또 이들은 힘을 합쳐 부서진 바위 부스러기를 치우고, 밭을 갈고, 밭에 물을 댈 수로를 닦고 집을 지었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제 모습을 갖게 된 두 섬 그림은 보는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그림책을 읽고 나서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나도 두 섬의 모습에 취해 있었다.
“아, 평화롭다.”
예진이가 감탄을 했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도덕 시간에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며 『사라, 버스를 타다』(존 워드 그림 / 윌리엄 밀러 글 / 사계절 / 2004)를 읽었다. 먼저 표지를 보여주었다.
“누굴까?”
“사라예요.”
“제목하고 이야기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배우는 도덕 공부랑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생각해 보세요.”
“사라가 흑인이니까 흑인하고 상관이 있어요?”
성민이가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요. 흑인과 상관이 있어요.”
“버스에서 일어난 일인가요?”
“예. 버스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존중하는 것하고 관계가 있어요?”
경은이의 재치 있는 말에 아이들 모두 박수를 쳤다.
“그래요. 존중하는 것과 반대되는 이야기가 벌어진답니다. 자 그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아침마다 사라는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탔습니다. 언제나 백인들과는 구분되어 뒷자리에 앉았지요.
여기까지 읽었는데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정말이에요?”
“진짜 그랬어요?”
아이들에게 1950년대 미국 남부의 ‘짐 크로우’라고 불리는 흑인 차별법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특히 미국 남부의 거의 모든 주에서 공공건물부터 화장실, 음식점, 병원, 도서관, 심지어 교회에 이르기까지 흑인은 백인과 다른 출입구를 사용하거나 들어갈 수 없었다고 말하자 아이들은 무척 놀랐다.
계속 책을 읽었다.
사라가 앞자리가 궁금해서 운전사 옆에 가서 앉았더니 운전사가 뒤로 가지 않으면 내리라고 했다.
“내가 만약 사라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저는 무서워서 그냥 뒤로 갈 거예요.”
“아니요, 저는 그냥 앉아 있겠다고 말할 거예요.”
“그럼 사라는 어떻게 했을까 말해 보세요.”
“사라 표정을 보니 당당해요. 아마 뒤로 가지 않았을 거 같아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갔다.
운전사는 경찰관을 불렀고 경찰관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렴. 법에는 말이다, 너희 같은 사람들은 버스 뒷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나와 있단다. 그래서 말인데, 법을 어기고 싶지 않다면 네 자리로 돌아가거라.”
이 장면에서 아이들은 한숨을 쉬었다.
“사라 엄마나 흑인 어른들도 버스 안의 차별을 그대로 두고 보았는데 사라는 참 대단해요.”
“경찰관이 와서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백인이잖아요. 경찰관도 운전기사도 모두.”
여자 아이 몇몇이 안타까워했다.
그 뒤 사라를 안고 경찰서로 가는 그림과 엄마가 와서 당당하게 사라를 데리고 가는 장면, 이 일을 알게 된 사람들이 모두 사라를 따라 버스를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끝내 법을 바꾸어 모든 이들은 평등하게 버스를 타게 되었다는 것이 이야기의 마지막이었다.
“정말 있었던 일이에요?”
“맞아요. 실제 있었던 일인데 그 주인공은 로사 팍스라는 분이에요. 이때부터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이 일어났고 유명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 운동을 이끌게 되었어요. 일 년 동안 계속 되었고 결국 버스에서 흑인 차별이 폐지되었답니다.”
“저 루터 킹 목사 알아요. 흑인이죠. 형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승범이가 아주 큰소리로 말했다.
책을 읽고 나서 ‘작은 잘못이라도 용기 있게 말 한 적이 있었는지? 그 때 기분은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학교에 있는 느티나무 배움터에서 담배 피는 언니 오빠들에게 용기를 내서 말했어요. 담배 피우지 말라고. 그랬더니 욕을 하면서 갔어요. 그 일을 일기장에 썼는데 그 친구가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어요. 속으로 되게 무서웠대요. (경은이)
․ 제가 엄마 몰래 피시방에 갔어요. 늦게 집에 오니까 엄마가 어디 갔다 왔냐? 고 계속 물어요.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어요. 엄마가 다음부터 말하고 가라고 했어요. 저는 엄청 혼날 줄 알았는데……. 솔직하게 말하는 게 용기라고 생각해요. (상명이)
․ 아빠가 담배를 계속 피워요. 나가서 피우지도 않고 거실에서 피우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빠 이제 담배 끊어요. 했더니 아빠가 알았어. 노력할게. 이랬어요. 아빠가 무서운데 가슴이 조마조마 했어요. (진희)
․ 친구가 자꾸 괴롭혀요. 남자친군데 힘세다고 제 거 막 가져가요. 그래서 왜 괴롭혀 하고 소리를 쳤어요.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안 괴롭혔어요. 남자애들 싫어요. (한아)
다음으로는 우리 주위에 벌어지는 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만 바라는 남녀차별, 공부 잘하는 아이만 좋아하는 공부차별, 짐승들 함부로 죽이는 차별, 장애인을 무시하는 차별…….
그 중에서도 재구의 이야기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 집에 샤시를 다시 했어요. 그런데 주인은 우리나라 사람이고 필리핀 사람이 일하러 같이 왔어요. 그런데 주인이 이 새끼 저 새끼 하면서 막 부려먹었어요. 공사 다 마치고 가는데 외국인이 무거운 짐 다 들고 가고 그랬어요.”
“그때 재구는 어떤 생각이 들었어?”
“부끄러웠어요.”
“왜?”
“우리나라 사람이 힘 약한 사람을 때리고 차별하니까요.”
“맞아요. 큰 섬 사람들이 작은 섬 사람들 데려다 노예로 부리는 거나 똑같아요.”
아이들은 차별이 무엇인지 그것이 왜 부끄러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느낌 나누기를 했다.
․ 똑같은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그냥 그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다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된 것을 고치고 싶은 마을을 가지면 차별하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까지 용기를 얻게 되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이경은)
․ 나와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는 것은 나쁘다. (소라)
․ 나도 남녀 차별이나 장애인 차별 같은 것을 보게 되면 용기 있게 하지 말라고 해야겠다. (일훈)
․ 나라면 사라처럼 그런 호기심도 용기도 없었을 텐데. 사라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법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건데 사라가 아이라서 두려워하지 않았나? 나도 사라처럼 용기가 많았으면 좋겠다. (호진)
제대로 아는 것
이렇게 써 보니 내가 무얼 가르쳤는지 아이들은 또 어떻게 배웠는지 알게 되었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수업을 해가야 하는지 길이 보인다. 삶 속에서 가장 절실한 것을 찾아 글로 쓰고 그것을 자기 말과 생각으로 다듬어 설득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공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아는 것에서 평화가 시작된다는 것도 덤으로 알게 된 날이다. ♧
- 2006. 06. 12. 월요일. 화창한 날씨. 늦은 4시~5시 30분까지
최은경 : 군포 산본으로 이사해서 곡란초등학교에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났다. 처음은 누구나 힘들지만 아이들의 상냥함에 기대어 이야기와 그림책과 노래로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려는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