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폭2세환우의 현황
한정순(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8월9일 나가사키 원폭이 투하된 곳에 조부모님, 부모님이 거주하신 피해자분의 자녀들 중 대물림되어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을 2세 환우라 한다. 나도 환자이기 때문에 원폭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핵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는지, 아픔이 대물림되어 아직도 그 전쟁 속에서 빠져나오기는커녕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삶에 혐오감마저 느끼고 있다.
지난 2002년 최초로 원폭2세환우를 밝히게 된 1대 한국원폭2세환우회장 故김형률 님은 선천성면역글로블린이란 희귀병으로 폐가 일반인의 30%밖에 되지 않아, 조금만 피곤하고 바람만 불어도 심한 기침 때문에 여름에도 긴팔 옷차림을 하고 다녀야 했고,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이 순조롭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폐렴으로 수십 차례 입·퇴원을 되풀이하는 생활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질병이 유전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어머님이 원폭 피해자임을 밝히고 분명한 원폭의 방사능으로 인해 유전되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나 혼자가 아닌 또 다른 피해자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에게 환우들이 힘겹게 병마와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환우들에게 ‘선지원 후규명’을 해달라고 외치며 다니다가 병이 악화되어 35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뒤를 이어 2대 정숙희 회장도 대퇴부무혈성괴사증으로 양쪽다리에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불편한 몸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환우들과 한 분이라도 같이 하기 위해 일일이 환우들을 찾아다녔다. 3대째 제가 회장을 맡게 되고 진경숙 사무국장과 하나가 되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프고 힘없는 우리들에겐 너무나 큰 짐이 되어 우리정부나 일본정부에까지 힘이 미치지 못하고, 돌아오는 건 지칠 대로 지친 몸과 한숨뿐이었다.
우리 부모님들은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자가 되어야 했고, 원폭 피해자가 되어야 했고, 재산도 없이 거지가 된 것도 모자라 자녀들에게까지 아픈 고통을 물려주었다. 이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고통을 겪었는데도 인정조차 하지 않으니 말이나 되는가. 부모님은 피폭당시 히로시마에 사셨다. 피폭을 당하시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원폭피해자라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고향인 합천으로 다시 돌아와서 2남 4녀 6남매를 낳으셨다.
나는 6남매 중 5번째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허약해 잘 넘어지곤 했다. 좀 크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내가 열다섯 살 때부터 아픈 통증으로 고통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한참 성장기라 성장과정이려니 했는데 갈수록 심해져 직장생활도 하다말다를 되풀이하다가 결혼을 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더 이상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서 받은 진단은 대퇴부 무혈성괴사증으로 양쪽다리에 인공관절수술을 받게 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30대 초반에 수술을 받았는데 한 번에 수술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인공관절 수명은 10년, 그 뒤 다시 수술을 받아야 했기에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맏언니는 62세인데 평생을 어지럼증으로 고통을 받았고, 둘째언니는 팔 관절수술을 받고 셋째언니는 나와 같은 다리 인공관절수술을 받았고, 오빠는 심근경색 협심증 수술을 받았고, 네자매 모두 홍반이라는 피부병을 앓았고, 6남매 모두 혈압약은 기본으로 필수가 되었다. 3세가 되는 내 아들은 지금 27세로 선천성 뇌성마비인데, 아직도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누워서 생활하고 있다.
충분하진 않지만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이상으로 마치고, 지금 우리 환우들의 실정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원폭2세환우회의 회원은 500여명으로, 선천성 면역글로블린, 대퇴부 무혈성괴사증, 정신분열증, 다운증후군, 갑상선, 피부병, 고혈압, 당뇨병, 근이완증, 간암, 시각장애, 청각장애, 심근경색협심증, 각종 암 등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다. 또한 심한 사람들은 30~40대에 세상을 마감하는 환우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10살 미만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다. 아픈 것조차도 마음 놓고 아프다 말하지 못하고, 죽어가면서도 병원비를 걱정해야 하는 게 현재 원폭2세 환우들의 실정이다.
모든 전쟁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승리한 나라가 있으면 패한 나라도 있겠지만, 전쟁의 끝은 피해자만 남는 것이다. 그보다 더한 건 핵전쟁이다. 우리 의지와는 관계없이 핵의 피해자인 자녀에게는 태어나는 날로부터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핵전쟁의 터널은 끝이 없다. 이렇게 긴 터널에서 허덕이고 있는 우리들의 고통은 원폭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 대한 얘기에 비해 역사적으로 별로 남아 있는 게 없었기에,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고 고스란히 우리들의 몫으로 안고 가야할 숙제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이 안고 가기엔 너무나 짐이 무겁고 죽을 만큼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자기 삶의 얘기라도 전할 수 있지만 정신지체장애, 다운증후군,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를 가지신 분들은 인지능력이 떨어져 보호자 없이는 바깥출입도 불가능하다. 우리들을 위해 격려와 관심을 갖고 지지해주신 분들이 있기에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선지원 후규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호소하고 있다.
다시는 이 세상에 원자폭탄이 없고 전쟁이 없기를 바란다. 더 이상의 아픔은 없어야 한다. 언젠가는 우리정부나 일본정부도 인정해주리라는 믿음 하나로 힘닿는 데까지 활동하고자 한다. 길고 긴 터널에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환우분들을 위해서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분들은 하늘에서, 우리는 땅에서 외치고 또 외쳐, 일본정부와 미국정부가 책임을 가지고 보상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국회도 올해는 꼭 특별법안이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