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평화의 집’이 드디어 문을 열었어
강제숙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싶고, 최소한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을 뿐입니다.”
지난 3월 1일, 미군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지 65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원폭2세환우를 위해 만든 첫 쉼터인 ‘합천 평화의 집’이 문을 열었어. 그날 나는 ‘한국원폭2세환우회’ 초대회장이었던 돌아가신 김형률님이 남긴 이 말씀이 많이 생갔났어.
자료관과 쉼터를 지으려고 몇 년 전부터 말 씨앗을 뿌리고 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준비위원회를 꾸리려고 애를 썼어. 지난해 가을에 부산 문수사 혜진스님이 처음으로 기금을 모아주셨고, 그 다음으로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기금을 마련해 주신 거지. 민간구호단체인 위드아시아 대표 지원스님(문수사 주지)과 혜진스님(제주 마라도 기원정사 주지)이 그 기금을 바탕으로 소박하게나마 쉼터를 먼저 꾸려 보자며 도움을 주셔서 합천 평화의 집을 열 수 있게 된 거야. 원폭2세환우 첫 쉼터를 왜 합천에 세웠냐고? 일제 강점기때 강제 징용 따위로 히로시마에 건너간 많은 합천 사람들이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피폭을 당했어. 우리나라 원폭피해자 가운데 60퍼센트가 합천 사람이라서 합천을 ‘한국의 히로시마’라 부르기도 해. 지금 합천은 원폭2세환우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이야. 피폭당한 사람이 낳은 아들, 딸들인 원폭피해자2세는 지금 우리나라에만 1만명이 넘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만든 ‘한국원폭피해자 실태조사(1991년)’에 따르면 부모님한테 피폭 후유증을 물려받아 고통받는 원폭2세환우가 약 2,300여명에 달한대.
원폭피해자1세는 피폭자건강수첩이 있으면 모자라게나마 인도주의에 바탕을 둔 원호수당 33,800엔을 달마다 일본한테 받을 수 있고 진료비도 지원돼. 또 합천에 있는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원폭1세 어르신들을 받아들여 복지시설 몫을 하고 있지만 들어오려고 기다리는 분들이 더 많은 형편이지. 2세들은 한일정부가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고 복지시설도 없기에 더 힘들어. 아픈 원폭2세환우들은 거의 30대나 40대에 돌아가시기 때문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특별법안이 통과되기만 기다릴 수는 없어. 쉼터는 물론이고 치료와 요양을 할 수 있는 전문시설이 절실해.
돌아가신 김형률님은 어머니가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하셨어. 김형률님은 선천성면역글로불린결핍증이라는 병을 얻고 폐 기능을 70퍼센트나 잃었어.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다가 2005년 5월 29일 서른넷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 원폭피해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원폭2세환우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글을 많이 남겼어. 김형률님이 쓴 글을 잠시 소개할게.
‘저처럼 평생을 병마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자식된 도리, 형제된 도리, 인간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친생자 포기 각서를 써서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끊는 마음 아픈 사연도 있습니다.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마음 한편으로 죄 아닌 죄의식을 가지며 평생을 숨죽이며 살아가셔야 합니다. 이것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는,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행복권마저 박탈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럼으로써 가족 사이에 의사소통마저 단절되어 정상적인 가정을 유지할 수 없으며 평생 세상을 원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사람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원폭2세환우들은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누구하나 책임져 주지 않고 평생 동안 고통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명백한 인권유린이며 한국정부와 일본정부, 그리고 미국정부 모두 이 인권유린에 대한 법적인,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형률님은 2002년 여름에 강제동원 관련 특별법안 제정을 요구하는 운동을 하면서 처음 만났어. 2004년에 다시 만나 소외된 원폭피해자 대책 마련 특별법안제정운동을 함께 할 때는 부산에 계시는 혜진스님께 김형률님을 소개했어. 그때부터 두분 인연이 시작되었지. 그런 인연이 씨앗이 되어 혜진스님은 김형률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도와주셔서 합천에 쉼터를 꾸리게 되었으니 기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짠하지. 김형률님이 이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지난해 5월부터 합천에 쉼터와 자료관을 지을 터를 알아보다가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혜진스님 덕에 먼저 쉼터부터 시작하게 된 거야. 혜진스님과 함께 합천 시내에서 쉼터가 들어갈 작은 공간을 얻은 뒤에 2월 28일 합천에 가서 개원식을 함께 준비했어. 드디어 3월 1일, 비가 오는 가운데도 2세환우분들과 1세 어르신들, 합천군에서 안팎으로 힘써준 여러분들, 시민단체까지 100명이 넘게 찾아오셔서 뜻깊은 개원식을 가졌어. 같은 전쟁피해자로서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인 이용수할머니도 오셔서 축하해주셨지. 3월 1일이어서 그랬는지 언론사에서도 취재를 많이 와서 생각했던 것보다 합천 사람들이 쉼터를 더 많이 알게 되었어. 시작이 좋아 다행이야.
작은 곳에서 수수하게나마 출발은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원폭2세환우들이 더 나은 복지를 누리며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바탕 틀을 만들어야 해. 개원식이 끝나고 한달쯤 합천에 더 남아서 그 틀을 짜는데 온 힘을 쏟고 있어. 앞으로는 돌아가신 원폭2세환우를 추모하는 비를 세우려고 해. 또 원폭2세환우치료·요양 전문시설을 세우려고 ‘땅 한평 사기 운동’도 시작했지. 1계좌에 5만원인데, 환우분들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그 뜻에 함께 하고 있어. 동무야, 너도 힘을 보태면 어떨까?
일주일동안 쉼터를 지키고 있으니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어. 어느 원폭피해자 1세 어르신은 쉼터 앞을 지나가시다 뭐 필요한 것 없냐고 묻고 된장과 고추장을 가져오시고, 당신 자녀들을 생각해서 1계좌 5만원을 선뜻 내주셨어. 2세 환우분들도 내 일이라 생각하며 쉼터에 필용한 물품들을 가져오셔. 2세 환우분들이 편히 쉬는 공간이 되고 사무실로도 쓸 수 있도록 하려면 많은 물품들이 필요한 게지. 난로, 냉장고, 컴퓨터, 전화기 같은 살림살이는 후원자들이 가져다 주셔서 어느 만큼 갖추어졌지만 여기저기서 얻거나 헌 것을 다시 써도 여러 사람이 쓰는 살림이기에 필요한 물건들이 계속 생겨나네. 전화와 인터넷을 연결한 뒤, 바로 일을 하려면 프린터기가 필요하다고 며칠 노래를 불렀더니 일본 나가사키에서 한달 동안 자원활동을 오신 기무라선생님이 사주셨어. 모두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지.
합천 시내에 사는 2세환우 한 분이 쉼터에 찾아오셔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며 쉼터에 대한 소감 한마디 남기셨어. “쉼터가 참 아늑하고 편안해요. 이런 쉼터가 생겨 너무 좋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복지회관에서 지내시지만, 우리 2세환우들은 어디 갈 곳이 없었어요. 정말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혜진스님이 큰 쌀 단지를 만들어서 누구든 쌀을 넣거나 가져갈 수 있게 했어. 뜻있는 쌀이라 이분에게 조금 나눠 드렸더니 다음날 맛있는 김밥을 만들어 오셨지. 이제 막 문을 연 쉼터, 이렇게 마음을 모으고 조금씩 나누다 보면 또 길이 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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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부모와 어른을 위한 책인 [개똥이네 집](보리출판사) 2010년 4월호 ‘평화가 뭐예요?’에 연재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