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와인의 역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제국이 현재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포함되어 있는 슬로만지역으로 팽창하며
로마인들의 주아이템이었던 와인을 이곳으로 전파하게 된다..
추후 1세기 라인강(독일)과 두나이강(헝가리) 사이 지역에 로마부대들이 주둔하며 병사들에게 공급하기위해 포도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로써 이 지역에 와인 역사의 씨앗이 뿌려지게 된다..
위의 두 강 사이의 지역외에도 로마병사들이 주둔해 있었다.. 이 소부대들의 식량 공급을 위해 수송선이 만들어졌고 동시에 이수송선을 통해 통유럽쪽으로 활발한 무역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무역의 중요한 아이템으로써 와인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체코에 본격적으로 와인농사가 시작이 된 것은 9~10세기 사이이다.. 그당시에는 체코의 초기국가였던 대모라비아 공국이 있었고,
대모라비아 공국의 공 '보지보이(Borivoj)'는 875년 후계자인 자신의 아들의 생일에 모라비아 주민들로부터 와인을 선물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현재 연대기에서 우리는 읽을 수 있다..
또한 보지보이공의 부인 '루드밀라'는 프라하의 북쪽에 위치한 미엘르닉라는 지역에 자신의 포도원을 건설한다..
** 현재도 '루드밀라'라는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그 이후로 와인농장들은 산업의 체계를 이루기 시작했고 주14세기까지 빠른 속도로 팽창을 한다..
1335년에는 모라비아 지역을 다스리던 '얀 인드지흐'공에 의해 와인법이 만들어지는데 이법의 주 골자는 과수원의 넓이와 와인생산량을 국가에 신고를 하는 것이다.. (** 이 법안은 현재에도 계속 유효하다.)
체코와인 산업의 최고 전성기는 14세기 까렐4세의 집권기때이다..
그는 프랑스의 부르고뉴지역에서 새 품종을 들여와서 체코의 와인산업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다..
더불어 1358년에는 "와인관리청"(주:저자번역)이 설립이 되며 여러법령이 새롭게 재정비 되었다..
이법령들을 통해 12년동안 포도농장 주인들에게 세금공제 혜택을 주어졌으며 그외 여러 사회적인 보호를 받았다..
황제 까렐4세 이후의 체코와인산업.....
까렐4세의 사망이후 체코는 약 150여년간은 잦은 전투와 국가의 정치적 대립으로 힘든시기를 보내게된다..
그 유명한 "진리를 사랑하라. 진리는 승리한다.." 를 외치던 유럽의 첫번째 종교개혁가 얀후스가 독일에서 화형을 당해죽자 그를 옹호하던 이른바 "후스파"들이 카톨릭 십자군에 대항해 약 100년이 넘게 전쟁을 치렀다..
이런 체코의 현실은 와인산업에 영향을 주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런상항은 15세기 말까지 계속 되었고 15세기말 "후스파의왕"이라 칭해지는 포뎨브라디의 이지 왕이 체코왕제에 등극을 하면서 사회가 점차 다시 안정되어 가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부터 체코의 와인산업은 다시 전성시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16세기에는 서유럽으로부터 건너온 아나밥티스트등의 영향으로 체코의 와인산업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이들은 새로운 종자와 재배법, 와인셀라 건설법등을 체코에 전파하였고 그당시 약 23,500헥타의 와인농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생산량이 국내시장의 수요보다 넘쳐서 국외로 수출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으며 17, 18세기동안 진행되었던 많은 유럽의 크고작은 전투때문에 와인사업은 다시 쇄퇴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거기에 19세기에는 전 유럽의 포도농장에 큰 해충의 피해로 와인생산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체코의 경우 19세기 30년대만 해도 15,000헥타의 와인농장이 있었지만 50년대에는 2,000헥타 밖에 남지 않았다..
체코와인산업의 현재 모습은 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부터라고 볼 수 있다..
체계적인 국가개입으로 인해 1960년대에는 다시 15,000헥타까지 농장을 확대시켰으며, 그 이후 꾸준한 기술개발로 인해 1980년대에는 1헥타당 7,000kg의 포도를 수확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