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10월 밀러 선교사의
한국인 대리인이었던 김흥경에 의해 매입이 시작된 청주 탑동 스테이션 부지는 그 후 15차례에 걸쳐 확산되었다. 그곳은 청주읍성에서 약 1/3마일 떨어진 우암산 자락 남쪽 언덕으로
도성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근처의 풍광이 수려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쾌적한 환경을 위하여 한국인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읍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구릉지를 넓게 확보하고자
했는데 청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05년 청주로 이주한 밀러는 잠시 초가집을 거쳐 그 해 여름 선교 구내에
두 채의 기와집을 지어 자신의 임시거처로 삼았다. 서양식 주택을 건축하기 위한 예비 행동이었다. 지방에 내려온 선교사들의 주거 방식은 우선 전래 한옥을 매입 개조해서 살다가 그 후 한양절충(韓洋折衷)의 건물을 짓게 되는데, 청주 스테이션 역시 그러한 전형을 보인다.

선교사기념비
그리고 밀러가 시카고의 포사이드의 기부금으로 1906년 여름 완공한 건물이 바로 ‘포사이드기념관’(제4호 양관, 충북유형문화재 133-4호)이다. 청주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주택으로 짐작되는 이 건물은, 일신여고(충북 청주시 상당구, 탑동 185-1번지) 본관을 지나 학교 중앙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적갈색 벽돌과 한식기와를 사용한 전형적인 한양절충식의 반지하 단층으로 청주읍성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포사이드기념관의 완공이 임박했던 1906년 여름 청주의 큰 물난리로 인해 언덕 위의 선교 구내로 대피한 수재민 200여 명에게 숙식을 제공한 선교사들의 구호활동은 그 후 청주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포사이드 기념관
포사이드기념관 앞에는 모두 3개의 묘비와 1개의 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는 묘지 동산이 있다. 그 작은 동산의 맨 왼쪽에 있는 묘비가 바로 청주 선교의 개척자 밀러의 것이고, 그 다음에는 퍼디선교사의 무덤이 있다. 1923년 청주에 부임한 퍼디는 보은, 옥천, 영동 등 충북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26년 황간에서 전염병에 걸려 순직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29세였다. 세 번째의 작은 묘비는 1918년부터 1937년까지 20년 간 충북 선교에 헌신한 솔타우, 선교사의 아들 데오도라의 것이다. 그 아이는 1922년 두살이 나이로 청주에서 사망했다. 본래 이 무덤들은 금천동 앞산에 있었으나 1984년 충북노회가 한국 기독교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맨 오른쪽의 ‘민노아 부례선 선교사 기념비’는 그 때 함께 세운 것이다.

던컨기념관
1908년 미국의 북장로회 선교본부는 청주 스테이션에 병원과 두 개의 주택을 더 짓도록 하였다. 계속 선교사들이 늘어나는데다가 의료선교사 퍼비안스의 진료활동을 위한 병원시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11년에 ‘던컨기념관’(제6호 양관/소민병원, 충북유형문화재 133-6호)과 '로위기념관’(제5호 양관/노두의기념관, 충북유형문화재 133-5호) 그리고 '밀러기념관'(제3호 양관/민노아기념관, 충북유형문화재 133-3호)이 새로 지어졌다. 일신여고 본관 뒤편에 있는 던컨기념관은 1908년 던컨 부인이 보낸 기부금으로 1911년 세워진, 한식기와 지붕에 지하1층, 지상2층 붉은 벽돌의 병원 건물이었다. 일신여고 정문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로위기념관은 1910년 캔자스주 매클렁의 지원으로 건축된 성경학원 건물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선교사들의 주택으로 사용되었다. 이 집에서 가장 오래 산 산사람은 1929년부터 1959년까지 활동한 로위선교사였다. 그와 동시에 건축된 밀러기념관은 포사이드기념관 뒤에 자리하고 있는데, 화강석 석재의 기초부에, 적갈색 조적조의 벽체부, 한식 기와를 얹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이라는 점에서 로위기념관과 유사하다. 다만 밀러기념관은 들보가 7개인데 비해 로위기념관은 5개이다.

민노아기념관
청주 스테이션 자리에 남아 있는 나머지 두 채의 건물은 1930년대에 지어진 솔타우기념관’(제1호 양관/소열도선교사기념관, 충북유형문화재 133-1호)과 ‘퍼디기념관’(제2호 양관/부례선목사기념성경학교. 충북유형문화재 133-2호)이다. 일신여고를 벗어나 뒤편 주택가에 자리한 솔타우기념관은 193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보이는데, 한식기와를 사용했지만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전형적인 미국식 주택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역시 이 집에서 오래 거주하며 활동한 이는 솔타우선교사였다. 또 일신여고 뒤쪽 길건너에 있는 퍼디기념관은 영동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장티프로 순직한 선교사 퍼디를 기리기 위하여 미국의 가족들과 지인들 또 미국 전역의 주일학생들이 보낸 성금으로 1932년 지은, 지하 1층, 지상 3층의 함석지붕 성경학원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