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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휴가를 받았다고 한다. 8월 15일부터 19일까지 공휴일포함 5일간이다. 여름의 끝자락은 아니지만 성수기와 비수기의 경계시점에 휴가기간이 걸쳐 있다. 갑작스런 휴가일정에 곤혹해 하고 있을때쯤 남편이 근무하는 서경정보신문에 난 여행가이드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여름끝자락에 떠나는 제주여행” ‘그래! 제주도로 가는거야’ 마음먹고 남편을 설득시키기 시작했다.
평소 여행을 즐기는 남편은 가족은 안중에도 없는지 일본큐슈를 혼자 배낭여행가겠다는 둥, 비행기값이 많이 올랐는데 애써모은 마일리지를 사용해야겠다는 둥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제주여행을 제안한 나에게 남편은 2년전에 두 번씩이나 구석구석을 훑었는데 아직도 더 보고 싶은게 남았냐면서 ‘핀잔’을 준다. 하긴 2006년 여름휴가로 한번, 또 한달뒤 남편의 출장에 동행하여 한번, 전가족이 제주여행을 두 번이나 다녀왔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제주는 다녀올수록 향수병이 생기는 신비로운 섬이었다. 어쨌던 남편을 잘 구슬린 후 쇳뿔도 단김에 빼라고 선박회사와 렌트회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우리가족의 제주여행은 그렇게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제주도까지는 고흥에서 출발하는 남해고속을 이용키로 하였다. 하지만 성수기의 끝연휴라 8월 15일에 출발하는 배편은 이미 만석이었다. 차라리 준비할 시간도 갖고 잘되었다 생각하며 16일 출발하는 배편을 예약했다. 성수기 운임 어른 22,000원, 어린이 11,000원. 총 66,000원에 제주행 예약이 끝났다. 물론 돌아오는 배편예약도 동시에 해 두었다. 이젠 렌트카예약이 남았다. 2년전에 이용했던 제주아산렌트카에 1일당 47,000원에 뉴이에프소나타 가스차량을 3일간 예약하였다. 그런데 우리가족은 캠핑이 처음이다. 또한 아무런 장비도 없다. 남편이 열심히 인터넷을 서핑하며 연신 주문을 눌러댄다. 아마 호텔숙박비보다 많은 금액이 나왔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들뜬 남편은 장비는 휴가이후에도 남는 것이라며 오히려 나를 이해시키려 한다.
첫째날
새벽 5시 50분에 집에서 나섰다. 네비게이션이 녹동항까지 2시간 40분이 걸린다고 안내하고 있다. ‘1박 2일’의 이수근보다 운전을 좋아하는 남편을 토닥여주고 아이들과 함께 모자란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2시간을 달렸을까 도착했다고 일어나라는 남편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녹동항이 눈앞에 보인다. 시골항이라 생각하였는데 생각보다 큰 항구인 것 같았다. 선박출발시간이 9시 10분이라 약 1시간쯤 시간이 남았지만 티케팅을 마치고 바로 배에 올랐다. 3등실은 넓은 강당을 연상케 한다. 이미 배에 오른 사람들이 ‘영역’을 알리기라고 하는 듯이 다리를 뻗고 ‘대’자로 누워 있었다. 우리도 한 구석에 짐을 풀고 자리를 잡았다. 수 많은 여행객으로 시끄러운 실내가 배가 출항하자 다소 평온을 찾는 듯 보였다. 연인들은 갑판으로, 젊은 사람들은 고스톱으로, 나이드신분들은 탁자가 놓여진 방에서 술로, 각자 4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위성이 연결된 TV로 올림픽하이라이트를 보다가, 챙겨온 간식으로 요기를 하다가, 누웠다가, 앉았다가 그렇게 4시간이 지나 제주항에 도착을 하였다.
(남해고속 3등실 모습)
우리가 도착한 제4부두를 나와 렌트카에 짐을 싣고 나니 이제야 휴가를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최종목적지는 서귀포자연휴양림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모두가 추천하는 최고 캠핑지로 알려진 곳이다. 가는 길에는 십여년전 제주도에 갔을때 신기하게 보았던 도깨비도로에서 아이들에게 신비한 현상을 잠시 보여주었다. 일본관광객들도 탁주병을 굴려보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남편이 피로를 호소해 먼저 자연휴양림에 캠프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입장료, 야영료포함 10,000원에 하루 숙박이 해결되었다. 어느 한적한 곳에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밥을 준비하였다. 주변에는 나들이 온 제주도민들이 드물게 눈에 띄였다. 저녁식사를 마치니 어느덧 주위에 어둠이 깔렸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불빛이나 다른 사람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우리가 텐트를 친곳이 야영지가 아니라 산책하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괜찮치만 새벽엔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과 함께 자연휴양림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500M쯤 가니 수많은 가족들이 훤히 불을 밝히며 여름밤의 추억을 쌓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도 당장 철수를 하여 ‘무리’들 곁에서 다시 텐트를 설치하였다. 이럴땐 이번에 구입한 원터치텐트가 너무나 실용적이었다. 자연휴양림의 별은 너무나 밝다. ‘육지’에서 친구가 전화가 왔다. 지금 거기는 비가 온다면서....
(서귀포 자연휴양림에서)
둘째날
어디에서 맞더라도 아침은 신선하다. 더구나 청정 제주의 한라산밑에 위치한 자연휴양림에서 맞는 아침은 상쾌하기가 그지 없다. 간밤에 추워에 잠을 뒤척인 남편이 아침밥을 준비한다. 혹시 한기가 들까봐 누룽지탕을 만든다고 한다. 집에선 전혀 가사일을 거들어주지 않치만 캠핑을 나오니 역시 든든한 가장 역할을 한다. 따끈한 누룽지 한그릇에 허기를 녹이고 2일째 일정에 들어간다 오늘은 2년전여행때 시간관계로 못둘러본 하멜기념관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해수욕을 즐길예정이다. 산방굴사에 잠시들러서 부처께 ‘예’를 갖추었다. 이곳 입장권 하나로 하멜기념관과 용머리해안까지 모두 둘러볼 수 있다. 더욱이 8월 10일부터 ‘제주 대할인이벤트’로 제주도가 운영하는 모든 관광지의 입장권이 50% 할인 적용되었다. 용머리해안은 언제 봐도 절경이다. 아이들에게는 위험할수도 있기에 한명씩 손을 꼭 잡고 다녔다. 16세기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을 기념하는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점심때가 다되었다.
(용머리해안에서....)
오늘 야영지는 돈내코야영장이다. 우선 점심끼니와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물놀이를 위해 인근 화순해수욕장으로 향하였다. 원래는 표선이나 중문같은 이름난 해수욕장을 계획했지만 아기자기하게 노는 재미를 위해 비교적 덜 알려진 화순해수욕장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 결정은 너무나 완벽하였다. 화순해수욕장에는 해변에 아이들을 위한 전용풀과 성인을 위한 전용풀까지 별도로 설치되어 있어 안전하고 재미있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으며 바로 옆 해수욕장에서 해수욕까지 할 수가 있었다. 더욱이 이 모든 시설이 전부 무료라는 것이었다. 물론 주차요금도 무료였다. 아이들과 물놀이에 푹 빠진 남편을 쳐다보니 새삼 이런게 행복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해변에 펼친 텐트안에서 배달시킨 치킨을 먹는 재미는 정말 ‘안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이다. 3시간동안 풀과 해수욕장을 오간 둘째아이가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코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긴 모든 일정을 성인체력에 맞추었으니 아이들에겐 힘이 들만도 하였다. 남편이 근심에 가득찬 얼굴로 지혈을 시도했지만 쉽게 지혈이 되질 않는다. 어렵게 지혈을 한 후 남편이 오늘 야영은 무리라면서 숙박업소에서 휴식을 취하자고 하였다. 모든 짐을 챙긴 후 서귀포 시내로 나왔다. 본의 아니게 둘째날은 중급 호텔에서 시원한 샤워와 에어컨 바람아래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더구나 아이들 건강은 끔찍이 챙기는 남편덕에 서귀포에서 유명한 “새섬갈비”에서 제주흑돼지구이를 덤으로 맛보는 보너스까지 얻으며 말이다.
(화순해수욕장에서...)
셋째날
신선한 아침이라기보다는 개운한 아침이다. 피로가 다 풀리는 느낌으로 여행 3일째를 맞았다. 오늘일정은 중문관광단지를 산책한 후 제주동쪽에 위치한 모구리야영장에서 캠핑을 할 예정이다. 먼저 중문단지에 위치한 소리섬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처음 들어서니 강릉에 위치한 에디슨 박물관이랑 너무나 흡사하여 약간 실망을 하였다. 하지만 체험전시관에서 여러 악기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보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어른 눈높이에 맞추면 아이들이 심심해지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면 어른들이 심심해진다. 이해관계에 놓이면 언제나 어른이 양보해야 하지만...
중문에서 유명한 ‘미향가든’에서 특미 갈치조림으로 점심을 먹었다. 지난번에 새섬갈비에서 남편이 밥을 산 보답에 내가 한턱 쏜 것이었다. 남편이 공기밥 3그릇을 비운다. 저렇게 많이 먹는 남편을 본적이 없다. 정말 이곳 갈치조림의 양념맛 하나는 ‘세계최고’인 것 같았다.
점심식사 후 제주 남부관광코스로 빠져서는 안되는 주상절리대인 지삿개해안을 산책하였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신비한 경관이다. 이번엔 아이들이 심심한 모양이다. 포즈도 잘 취해주질 않는다. 결국 파인애플바를 하나씩 사서 건네니 ‘모범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모구리야영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가 지나서 였다. 한라산 아래로 펼쳐지는 야영장이 위치한 “오름”의 경관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수십만원짜리 펜션에서도 연출되지 않는 광경을 입장료 총 3,200원에 우리 텐트가 연출하고 있었다. 제주에서의 마지막밤이라 오는길에 삼겹살을 사와 늦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제주도산 한라산 소주와 곁들이는 제주 삼겹살의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모구리 야영장에서.....)
넷째날
간밤에는 더위에 잠을 뒤척인 것 같았다. 더위에 처음엔 낭만적이었던 풀벌레소리조차 점점 단잠을 훼방놓는 ‘소음’으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남편이 아침밥을 준비하는 사이 아이들과 야영장을 산책했다. 참 아름다운 곳이다. 간밤엔 초저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캠프를 설치하였다. 아침을 먹고 마지막 제주일정인 우도로 향하기 위해 성산항으로 출발하였다. 우도는 십년전 결혼을 앞두고 예비 시부모님과 함께 제주여행시 둘러보고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10년만에 얼마나 변했을지 기대하며 도항선에 올랐다. 우도 도착후 다른 관광객들은 순환관광버스에 올랐는데 우리는 천원짜리 마을버스를 타고 우도투어를 시작하였다.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는 마을버스안 우도 원주민들속에서 남편은 단연 최고의 인기였다. 손님이 내릴때, 탈때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차장’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남편이 버스기사에게 혹시 직장을 그만두고 우도에 오면 차장을 시켜달라고 조르며 한바탕 웃을때쯤 버스가 우도전망대밑 주차장에 도착을 하였다. 한시간뒤에 다시 이곳을 지난다는 친절한 버스기사의 안내를 받으며 우린 전망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10여분을 오르니 10년전 보았던 전망대 초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또다시 빼어난 경관에 넋을 잃고 시원한 바닷바람에 몸을 의지하며 가슴으로 온갖 바다내음을 받아내어 보았다. 아이들은 초지에서 말과 함께 사진도 찍고 뛰어다니며 신이 나 있다. 한쪽 구석에는 얼마전 다녀간 TV프로그램 “1박 2일”팀의 깃발이 꼽혀 있다. 다시 우도전망대를 내려와야 했다. 제주항으로 가기전에 아이들이 꼭보고 싶다는 도깨비공원에 들러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마을버스로, 또 도항선을 타고 성산항으로, 그리고 렌트카를 타고 도깨비랜드로 향하였다. 도깨비랜드는 2년전 코끼리랜드를 관람하고 제주공항으로 향하던중 우연히 스쳐지났던 곳으로 이번 여행중 큰 딸아이가 기억을 해내곤 꼭 가길 원했던 곳이다. 공원안에는 온갖 소재로 만든 ‘별의별’ 도깨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간쯤 관람했을때 연출된 도깨비가 갑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둘째 딸아이가 놀라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겐 재미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관람과 체험으로 1시간을 도깨비랜드에서 머문 후 제주항으로 출발하였다. 녹동항으로 가는 선박의 출항시간은 5시 10분. 배에 오르니 올때보다 1/3밖에 안되는 여행객들로 보아 이제 제주도가 비수기로 접어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TV속에는 여자핸드볼팀이 중국과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승객들은 TV앞에 앉아 박수를 쳐가며 ‘대한민국’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는 집을 향해 가고 있었고 3박 4일간의 여름휴가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끝나가고 있었다.
(우도로 향햐는 성산항에서....)
-여니미니엄마-
첫댓글 하아...사모님께서 적으셨네요...
이글 보니 저도 혼자떠나는 제주여행을 한번 기획해봐야 겠군요...
아...생각난김에 올해 함 저질러 봐야 겠네요...
때되면 자문좀...ㅋ~
왠일!?? 상호씨 토요가족여행 다니시더니 여행에 맛 들린거에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