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동사회에 대한 문학적 접근 - 박완서 작품론 『도시의 흉년』
- 이명재
박완서의 장편소설 『도시의 흉년』은 구한말의 개화기 무렵부터 이 작품이 발표되던 70년대 후반 당시까지에 걸친 우리 사회의 변천상을 신구세대 3대의 가족사 소설적인 형식으로 리얼하게 조명해낸 역작의 하나이다. 1975년말부터 79년 여름까지 본지에 연재되어 모두 2책 분량에 18장으로 간행된 이 소설은 어쩌면 총체적이며 입체적일만치 여러 영역에 자장(磁場)을 미치고 있다.
이 작품은 서울의 신흥 중산층 자녀로 자라난 쌍둥이 남매가 세속적인 삶에 질긴 뿌리를 내리고 행세하는 부모와 갈등을 빚는 한편으로 할머니의 고루한 관습에 대립된 삶을 영위하는 서사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일제말에 시집가서 아이를 못낳았다고 구박받던 며느리가 해방 후 서울로 올라와 고생하다 6·25전란때 양색시 장사로써 돈을 벌고 동대문 시장에서 부자로 행세하는 사회 현실과 이에 대응하는 상대들과의 종횡으로 얽힌 관계는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며느리의 득세로 인해 전통적인 고부의 권위가 뒤바뀌고 남편과 아내의 위치 또한 전도된 상태에서 낡은 가치관에 도전하는 자녀들과의 긴장은 계속된다. 더욱이 할머니로부터 쌍둥이 남매는 상피붙게 마련이어서 집안을 망하게 한다는 의식은 화자(나)에게 숙명적인 끄나풀처럼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작용하고 있다. 거기에 3대에 걸친 가족관계와 시대상을 씨줄로 하고 시장과 학교, 군대, 구치소 및 이웃들에 날줄로 연결된 사건들은 장편소설이란 상품의 중량감을 더한다.
그런 점에서 『도시의 흉년』은 사회와 인생에 그만큼 너른 안목을 지닌 작가가 여성 특유의 빼어난 필치로써 흥미롭게 현대 한국 사회의 실상과 문제점을 파헤치고 생생하게 묘파한 문제작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여러모로 복합성을 띠고 있는 이 작품의 특성이나 가치를 다음 몇가지 요소로 간추려 볼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다양하고 급속하게 변모하고 있는 기성사회에 대한 치열한 문학의 대응노력에서 연유한 비판이며 올바른 참여 의식에서 비롯된 박완서 문학의 중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신구 세대의 갈등과 사회 대응
역시 핵심 모티프를 형성하는 예의 이란성(二卵性) 쌍둥이 남매로 인한 위기 의식은 이 소설의 가족사적인 사슬의 끈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란히 껴안고 있다가 태어난 화자(수연)와 그녀 오빠인 수빈의 할아버지 대에서 이어져 나왔음을 알게 된다. 즉, 수연의 할아버지가 남매 쌍둥이로 태어나서 서로 떨어져서 남남으로 살았는데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여름철에 멱감던 개울에서 상피붙은 사실이다. 이런 일로 인한 죄책감으로 후에 물속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머지 할머니 혼자 외아들을 키워왔음을 수연이가 그녀 대고모 할머니 입을 통해 듣게 된 것이다.
문제는 수연이 남매가 멘델의 유전법칙의 소산이란 것보다는 할머니가 손녀인 수연이를 집안 망칠 '조년이 애물'이라며 저주하면서 수빈이만 부적을 달아보내고 무당 굿까지 동원하며 애지중지하는 데 대한 선입견과 적대의식이다. 할머니의 성화 때문에 어릴 적부터 수연 혼자서 이모집에서 크다가 뒤늦게 부모가 사는 집으로 들어왔지만 남존여비 사상을 뛰어넘은 할머니의 구박과 천대는 수연의 참을 수 없는 대상이 되고 남는다. 그리하여 신세대인 수연에게 구세대인 할머니는 극복되야 할 상극양상을 이루게 되지만 서로가 그렇게 악의에 찬 감정없이 맹목적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수연과 수빈이 함께 타도대상으로 삼을만큼 혐오하고 대적할 상대는 중간세대인 그들 부모인 것이다. 사실 모친은 너무 극성적일 만큼 자녀를 세칭 일류 학교로 진학시키기 위해 가정교사와 과외에 돈도 많이 투자한다. 그리고 특히 수빈에게는 좋은 음식을 먹이고 자랑스럽게 키우기 위해 과잉보호를 일삼아 왔다. 더구나 무능한 부친은 남 몰래 첩을 두고 어머니한테 빌붙어 사는 것이다. 그래서 김복실여사의 극성스런 보살핌은 결국 수빈이 진정 사랑하는 순정이와의 혼인을 배경없고 가난한 집 딸이라는 이유로 가로막아 극한 상태에 처한다. 수연이 오빠의 귀대 전날 실의에 빠져 인사불성인 수빈을 위로하고 토해낸 오물을 닦고 매무새를 돕는 과정에서 드디어 두 남매가 상피 붙었다고 밤중에 온 식구들이 보는 가운데 무참히 태질 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는 신구세대 사이의 갈등양상은 남존여비나 상피붙는다는 고정관념 따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식이란 무조건 부모 위주로 전당 잡혀야 한다는 통례를 벗어나야 한다는 의식 등에 주안점을 둘 수 있다. 작중의 주인물인 화자(나 ― 池秀然)를 통해서 두어번쯤 대화 아니면 자의식적인 투로 언급한 바 있다. 그것은 '암, 내가 그 자식을 어떻게 기른 자식이라구.'라는 부모 위주의 기대에 따라 순종시켜야 한다는 강요로서 우리는 이런 태도를 반성해야 마땅한 것이다. 이런 타당성은 '자식들에게 있어서 부모들이란 얼마나 숙명적인 악몽일까? '하는 구절들에서처럼 어른들에 시달리는 아이들 세대의 숨막힐 외침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구세대의 극성과 지나친 간섭에는 이제 거의 성인으로 자란 자녀들에게 가출이나 출분의 충동과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본다. 수빈이 순정이와의 만남을 어머니로부터 무참히 방해당했을 때 만취한 상태로 차고에 내려가서 운전대에 앉아 「내가 이놈의 집구석에서 못 도망칠 줄 알구...... 」하는 장면을 만난다. 또한 소설의 본문 중에 쓰인 '수연이 꿈꾼 자유는 결코 가출이 아니라 탈피였다'는 대목에서도 돈암동 부모 집에서 느끼는 이 목마른 심경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삼대에 걸친 가족사 소설로서 신구세대의 갈등관계를 참고로 30년대에 염상섭이 발표한 『삼대』와 대비하면 몇가지 상이한 면이 드러난다.『삼대』에서는 중간세대 격인 개화세대(조상훈)보다는 구세대(조의관)와 신세대(조덕기)에 서사의 중심이 주어진 채 다분히 삼인칭 전지적 시점으로써 긍정적인 신세대가 화해적 자세이다. 이에 비해 『도시의 흉년』은 대체적인 언급으로 처리한 구세대 대신 중간세대와 특히 비판적인 신세대에 중심을 두어 그 갈등관계를 일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 부정적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삼대』가 모두 남성을 중심 삼은 데 비하여 『도시의 흉년』에서는 거의 여성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들이 두드러진다.
속물주의 세태의 고발
여러모로 신구 세대의 갈등상을 첨예하게 내비치고 있는 『도시의 흉년』에서는 예의 영악스런 화자(수연)같은 신세대 층을 통해서 곧바로 당시의 산업사회에 만연된 중산층의 속물주의적 삶의 군상들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 궁핍했던 해방기를 넘고 전란에 시달렸던 50년대의 혼란기를 거치고 다시 60년대의 경제개발 고비를 지낸 한국 사회의 병폐를 지탄하고 있다. 그것은 일부 중산층과 특권층에 물신주의(物神主義)풍조와 비리 행각을 비판의 대상으로 떠오른 사정을 지칭한다. 더구나 월남 파병과 중동진출 및 국산품의 해외수출 등으로 소비가 미덕인 양 산업화를 통해서 도약단계에 접어든 70년대 사회는 애정 모럴의 실종이 무질서를 방불케 하던 것이었다. 도무지 걷잡기 힘들 지경으로 퍼져 있던 속물취향족속들은 국가사회와 겨레장래에 아랑곳없이 자기만의 탐욕에 잠길 뿐이었다.
이미 양색시 포주로 돈을 벌어 동대문 광장시장에 20여년 본거지를 둔 김복실 여사와 그 주변 아낙네들 행태는 좋은 보기로 제시된다. 이를테면, 자녀들은 오직 경기로 진학시켜 명문대 출신에다 판검사나 의사로 키우려 가정교사와 과외공부 시키기를 비롯해서 학교를 향한 치맛바람, 수빈이의 좋은 군 근무지 부탁 따위 뿐만이 아니다. 큰 딸 수희를 고시합격한 과부아들 서재호한테 시집 보내고 축제 때 임신한 수연에게 낙태 겸 인공의 순결 시술을 해 준 정도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무능한 아버지(지대풍)는 첩에다 숨긴 아들(수남)까지 둔 처지에 구색 뿐인 남편으로서 사장행세를 하고 산다. 이런 남편 눈치는 모른 채 김복실 여사 역시바로 수남이 외삼촌격인 최기사와 심심찮은 정사를 즐기고 지냄을 리얼하게 묘파해서 고발한다.
또한 화자는 엄마 자신도 예전에 낙산 꼭대기의 오막살이에서 살던 적을 잊고 정릉 산동네로 순정이 부모까지 찾아가서 자기 아들과의 혼사는 어림도 없다며 협박과 함께 돈으로 무마하려는 부모의 행각을 지탄한다. 특히 수연은 거짓과 돈과 상류사회에의 신분지향이 오직 자식들 위해서라는 말을 내세우는 엄마의 견고한 금니에 진저리지며 고발하고 있음을 본다.
「(전략) 돈이 많지도 않은데 많은 척 하려고 그러는 거라구. (중략) 너희들 기죽지 말고 행세하고, 시집 장가 잘 가라고 그러는 거야.」
「(전략) 엄마가 다 생각이 있어 선생님하고 미리 그리고 소파수술하고 숫처녀 수술하고 같이 했단 말이다(중략) 히힝, 아무튼 사람은 오래 살고 볼거더라. 좀 좋으냐. 요새 세상 돈 갖고 안되는 게 뭐 있어야지. 참 좋은 세상이야 요새 세상.」
이런 속물주의 군상에 대한 세태 고발은 수연의 부모가 아닌 그녀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계속하고 있음을 본다. 수빈의 군입대 후에 배치될 근무처를 두고 하는 동대문시장의 주단 포목점 아주머니의 한마디도 인상적이다. 「(전략) 군대야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거 아뉴. 성님들이야 그래도 양심이 있으니까 .... (후략)」. 또한 크리스마스 이브의 파트너 게임에 초대된 경화네 점보맨션 아파트 장면에서는 참석한 일행의 말을 빌려 일부 특권층의 삶 태도를 풍자한다. ― 「그래 그래, 이 집은 우리 집처럼 더러운 부잔가 보다.」「우리 아버진 느네 아버지보다 더 더러운 부자다.」이어서 바로 그 집에서 열린 경화의 약혼식장에 마련된 초호화판 교자상 심부름을 하는 수정이의 혹사와 오만한 신부 태도를 보고는 화자 자신도 짙게 분노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다만 나 자신의 고유한 삶을 속(俗)하게 하지는 않으리라. 마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나 불행이라는 것과 대천지원수라도 된 것처럼 나는 그렇게 앙심을 먹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시대 인식과 항거 양상
위에서 살펴본 『도시의 흉년』에서는 또하나 작품 전체에 드리운 일종의 지배세력에 대한 강렬한 저항의식를 내쳐 버릴 수 없다. 그것은 적어도 이 작품이 발표되던 당시의 유신 체제를 감안하면 적잖이 용기있는 글쓰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흔히 그 무렵의 문인들은 으레 행간을 통해 암시나 은유로 작가의 뜻이나 저항감을 내비치는 정도가 예사인데 이 소설에서는 당시 금기사항에 준하는 병역비리 언급은 물론이요 직간접적으로 지배세력에 대한 항거의 목소리를 죽이지 않고 있음이 돋보인다. 한때 사회에 문제되었던 군 병영내의 사신 검열 횡포도 수빈이와 수정이 편지 항목에서 밝힌데 이어 매부인 서재호 검사가 손써서 처남을 의가사 제대시켰다는 이야기도 손쉽지 않은 내용인 것이다.
더구나 유신독재의 위세가 서릿발치게 드세던 무렵의 크리스마스 이브 모임에서 금지곡만 신나게 불렀다는 대목은 흥미를 끌어 효과를 더한다. 이런 문제는 작품의 분위기나 내용에다 음성적인 검열당국의 위험수위를 헤아리며 조율하는 작가의 역량과 더불어 의연한 선비의 자세에 직결되는 사안이다. 이런 사정을 새삼스럽게 강조해서 언급하는 것은 이 소설에서 문제적 인물로 기능하는 운동권 학생이 여느 작품들보다도 비중있게 다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작품 전반부에서 수연의 개인적인 가정에 가득한 허위, 부정으로 인한 가족훼손문제를 다룬데 비해 후반에서는 보다 국가, 사회적인 민주회복과 빈부의 안배 문제등에 접근하고 있다.
K대학 가면극회 회장으로서 데모 주동자로 앞장선 채 깃발을 흔들어 수배를 받던 청년은 문제적 인물로 자리잡고 있다. 탈을 쓰고 굿판을 휘잡거나 데모대 위에 높이 솟아 깃발처럼 자유자재로 나부끼다가 마침내 최루탄 연막 속으로 추락하던 구주현이 그 장본인이다. 그런 구주현을 사귀면서 수연은 그를 자기 집에 데려다 재워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수연이 초대장을 받고 찾아간 서울 근교의 선바위골 탈춤 현장에서 풍자적인 말뚜기 춤을 추다가 검거되어 1년 6개월 복역을 언도받게 된다. 이 사이 집을 나와 구주현이 경영하던 빈민촌의 야학에서 여러 운동권 학생들과 만나면서 교편을 잡던 수연은 그와 더욱 가까와진다. 그러다가 결국 그녀 스스로 자주 면회를 가고 솜옷 등을 차입하는 행동은 수연과 주현 서로가 사랑하며 지배 세력의 횡포에 함께 항거함을 이른다.
결국 수연은 그가 출옥 한 뒤 구주현 부친이 별세할 때까지 언젠가 귀향할 아들을 위해 마련해 둔 전남의 후미진 농촌집에 찾아가 구주현과 만나서 안정을 취하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제목처럼 『도시의 흉년』에서 늘 방황하며 줄곧 기성세대들과 대립 갈등해오던 지수연과 구주현은 드디어 귀향하듯 시골 농촌에서 대우(對偶) 관계를 이룬 채 갈등 대상들과 화해를 모색하기에 이른 것이다.
서울행 열차를 타러 역으로 오가는 길에서 나눈 두 사람의 대화는 인상적이다. 시골에 남아있겠다는 구주현과 떠나려다가 함께 되돌아오는 지수연의 말이 시사하는 바가 짙게 남는다.
「내가 온몸으로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가락을 여기 이 고장 사람들의 농삿일 속에서 만난 것처럼 느꼈다면 환상이 지나칠까? 아냐, 분명해. 비로소 난 제곬을 찾은거야. 내 생애에서 이렇게 내가 자유롭고 자연스러워보긴 처음이거든.」
「차라리 내가 버리는게 나아. 내가 악착같이 움켜쥐고 미워하던 걸 한번 버려볼까봐. 버리고 나야 화해도 가능할 것 같아.」
요컨대, 작가 박완서는 거의 5년간에 걸쳐 발표했던 이 장편에서 구한말로부터 70년대 당시까지에 걸친 한국사회의 변천과정을 문학적인 구도로 진지하게 묘파해냈다. 신구 세대 3대를 종횡으로 연결시킨 작가는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의 기량과 함께 투철한 사회인식의 주제적인 무게를 더해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