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압록강의 노을 중국과 우리 사이의 '국경' 압록강에 붉게 노을이 물들었다. 압록강철교 위 하늘도 붉고 그 아래 물도 붉다. 철교 위에 아치가 보이는 부분까지가 중국이고, 그 오른쪽에 아치 없이 교각만 있는 부분은 북한이다. |
ⓒ 정만진 |
| |
고원(高遠) 시인은 <지중해를 건너며>라는 시에서 노을을 보며 격정에 사로잡힌다. '수평선에 불이 붙었다!'
나는 지금 압록강 부서진 철교 앞에 서서 눈부신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진정 천지사방에 불이 붙어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이 시릴 만큼 푸르르던 하늘도, 관광객으로 가득찬 유람선을 북한땅 지척까지 실어나르던 강물도 지금은 한결같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마치 전쟁 중에 폭격을 맞아 장엄하게 선혈을 흘리던 바로 그때처럼 압록강 단교도 황혼에 휩싸여 녹아내리고 있다. 가로로 길게 이어진 붉은 노을의 기운에 겨운 탓인지, 압록 푸른 강물조차도 어느샌가 홍염(紅焰)처럼 붉어져 서해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아, 여기가 바로 우리의 국경이구나! 단교 앞에 선 채 나는 솟아오르는 처연한 감회에 짓눌린다. 백령도와 연평도, 강원도 고성 김일성 별장, 경기도 연천 마전리의 열쇠전망대, 김포 애기봉 등지에서 생생하게 북녘을 바라보며 느꼈던 애절함과는 또 다른 안타까움에 남몰래 몸을 떤다. 고원 시인은 지중해를 '지나며' '수평선'에 불이 붙었다고 노래했지만, 나는 바다도 아닌 강에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면서도 그 강물을 지나지는 못하는 채 그저 마음으로만 황혼을 맞이하고 있을 뿐인 까닭이다. 시인은 바다 한복판에서도 불타오르는 노을을 만끽하고 있지만, 손만 내밀면 건너편 버드나무 잎사귀까지도 그대로 잡을 수 있는 좁은 강폭을 두고도 나는 저 황홀한 일몰 아래로 들어가지 못한다.
|
▲ 압록강 일출 해가 뜨는 방향, 강 너머가 바로 신의주이다. 북한 쪽에서 떠오른 해가 압록강을 환하게 비춘 다음, 다시 중국땅 단동시 위를 붉게 비추고 있다. 이 무렵이면 중국쪽 강변에는 물새들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이 줄을 지어 늘어선다. 압록강 이름 자체가 '오리머리처럼 푸르다'는 뜻이니 본디 이곳에는 새들이 많이 날아다녔던 듯하다. |
ⓒ 정만진 |
| |
여기가 바로 국경이구나.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분단의 철조망으로 삼엄한 휴전선 일대도 아니건만, 단숨에 가로지를 수 있는 저 얼마 아니되는 강물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절망하는구나. 광개토대왕과 양만춘 장군의 호기로운 위풍당당 앞에서는 언제나 우리땅일 것만 같던 만주벌판을 모두 잃고 지금은 그저 외국인 관광객이 되어버린 채, 나는 중국의 도시 단동(丹東)에서 민족의 강 압록강을 바라만 보고 있구나. 끊어진 압록강 철교처럼 우리도 그렇게 갈라져 있구나.
압록강 철교가 보인다. 노을에 젖어있던 단교(斷橋)가 금세 캄캄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단교는 끊어진 제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조명은 단교 위에서도 중국쪽과 북한쪽을 적나라하게 구분해주고 있다. 야간 조명을 보노라면 중국 쪽은 하늘 가득 아치형 장식이 빛나고 있지만, 북한 쪽에는 그런 화려한 야경이 전혀 없다. 북한 쪽은 조명을 밝히지 않은 것일까. 아니다. 다리 자체가 끊어져 오로지 교각만 남아 있으니 장식 자체가 있을 리 없으므로 으레 조명은 넣을 수 없고, 자연스레 압록강의 야경은 좌우가 극명하게 나뉜 반쪽짜리 아름다움이 되었다.
위화도 방면에서 보면 반대이겠지만 서해 입구인 단동 시가지에서 바라보면, 중국 영토인 철교의 왼쪽 절반은 휘황찬란한 불빛 조명 아래에서 눈이 부시지만, 북한 영역인 오른쪽 절반은 캄캄한 어둠속에 갇혀 있다. 전쟁 때 폭격을 받아 끊긴 이후 다시 재건하지 않았으니 교각만 남았고, 그 결과 야간 조명을 설치할 이유도 방법도 없는 것이다. 저 기이한 국경의 모습을 이곳까지 와서 깊은 밤에 두 눈 똑똑히 확인하는 이 슬픔을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어릴 때 구슬치기를 하던 중 가장 아끼던 구슬이 돌에 받혀 문득 깨어지고 마는 순간을 목격하는 그 심정이라고나 할까.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마음은 저절로 암흑 속으로 가라앉고 말아, 단동과 신의주 사이에 펼쳐져 있는 야경의 장관도 더 이상 반갑기는커녕 도리어 안타깝고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
▲ 압록철교 야경 단동시에서 바라보는 압록철교의 야경 |
ⓒ 정만진 |
| |
압록강 단교 야경을 멀찍이서 바라보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한다. "단교 끝까지 갔다가 올 수도 있대요." 대한민국에서 온 관광객인지, 아니면 중국땅에 거주하는 조선족인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멀리 사라져가는 저들이 고맙다. 단교 끝까지 갈 수 있다면 압록강의 중간까지 가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찌 그 말을 듣고도 아니 가보고 발길을 돌릴 수 있으랴. 나는 사진기를 꼭 챙겨들고 단교 쪽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속도를 낼 수는 없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라, 중공군이 전쟁 때 펼쳤다는 바로 그 전술이 생각날 지경이다. 어디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을까. '앞으로 남북통일이 되면 더 이상 압록강이 대단한 관광지가 될 수는 없으리라.' 엉뚱한 생각을 하는 새 금방 단교 아래에 닿았다. 그러나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허탈감에 사로잡힌다. "매표소 직원이 퇴근을 해버려 단교 위로 올라갈 수가 없대요." 조금전 나에게 멋진 정보를 귀흘려 주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단교에 올라가려면 입장권을 사야 하는데, 직원이 공무원이라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집으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배달겨레의 일원인 내가 우리 민족의 땅을, 직접 밟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눈으로 잠깐 보기만 하겠다는데, 그것도 중국 공무원에게 돈을 내고서야 가능하고, 그나마 그가 퇴근하고 난 뒤면 결코 볼 수가 없다니 어찌 세상에 이런 주객전도가 있단 말인가. 민족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하고 노래했지만, 나는 그로부터 80년도 더 지난 지금 삼천리 금수강산으로 이어지는 압록강 철교 아래에서 '빼앗긴 다리에 인적도 끊겼구나' 하고 한탄을 사로잡히니, 정말이지 이처럼 한스러운 일이 어디 또 있으랴.
단동과 신의주 사이에는 두 개의 철교가 있다. 하나는 1911년에 가설되었지만 전쟁 때 파괴되는 단교이고, 다른 하나는 1943년에 놓인 압록강철교이다. 전쟁 전에는 두 개의 철교가 압록강을 가로질러 한반도와 중국 동북 지방을 연결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단동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이 하류 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되돌아 올라와 단교 아래를 거치고, 다시 압록강철교 교각 사이를 지나 위화도 방면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출발 지점으로 복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 한족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상징하는 단교 아래를 지나면서 가슴 저 깊은 한켠을 서늘하게 관통하며 아픔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비록 유람선이 섬을 한 바퀴 휘감아돌지는 않지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지나간 역사를 반추하게 해주는 위화도 또한 반드시 한번은 눈에 담고 싶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
▲ 압록강단교 1943년에 놓인 압록강철교 아래로 1911년 놓였지만 전쟁 때 폭격을 맞아 부서진 채 (북한쪽에는) 교각만 남아 있는 단교가 보인다. 유람선은 이 두 다리 아래를 왕복으로 지나다닌다. 위화도는 이 두 다리보다 상류쪽(사진으로는 왼쪽)에 있다. |
ⓒ 정만진 |
| |
1388년(우왕 14) 5월 요동정벌 때 이성계는 이곳 위화도에서 회군을 단행함으로써 조선을 여는 역사적 계기를 이룩한다. 위화도는 충적토로 이루어진 까닭에는 토질이 비옥하여 옥수수·조·콩·수수 등의 산출량이 많다고 하지만, 중국땅인 단동의 대단한 고층빌딩들과 견주어볼 때 2층짜리 건축물조차 하나 없이 그저 밭농사를 짓기 위해 지어놓은 듯한 몇 채의 회색빛 가옥만 보인다. 위화도를 응시하며 나는 오로지 이성계의 회군만 생각할 뿐이다.
그때 이성계가 군사를 몰고 공격을 감행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부터 요동정벌론에 반대한 이성계는 위화도에 이르러 진군을 멈춘 다음, ①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으며, ②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부적당하고, ③요동을 공격하는 틈을 타서 남쪽에서 왜구가 침벌할 염려가 있으며, ④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로 쓸 수 없고, ⑤병사들도 전염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며 요동정벌은 불가능하다는 상소를 써서 우왕에게 보내지만, 평양에 있던 최영과 우왕이 그를 허락하지 않자, 5월 20일 회군을 결행하여 군대를 국내로 돌이킨다. 그리하여 최영은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하고, 우왕도 강화도로 쫓겨난다.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이성계는 권력을 한손에 잡게 되고, 조선 창업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국경은 현재 어디까지일까. 광개토대왕이 스스로 국경이라 여겼을 저 광활한 만주벌판 너머까지일까. 아니면 도리어 축소되거나 소멸되어 대동강 혹은 한강, 그것도 아니면 중국과 일본의 국경이 대한해협인 것을 망연자실한 채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을까. 하지만 그런 상상은 다 부질없는 짓이다. 올해로 간도를 내준 지 100년이 된다지만, 힘이 없으니 실토를 되찾지도 못하고, 내놓으라고 공공연히 말하지도 못하는 이 처량한 처지가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
▲ 위화도 압록강단교 아래에서 바라보는 위화도 풍경. 오른쪽이 북한이고 왼쪽이 중국이다. 위화도는 충적토로 만들어진 섬답게 납작하고 넓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회군하여 권력을 잡는다. |
ⓒ 정만진 |
| |
유람선을 타고 있으니 내 몸은 저절로 압록강 강물 위를 흐르듯 배회한다. 이 배는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아무도 그것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유람을 하면서 자신이 가는 곳을 알지 못하니 이 또한 기이한 일이 아니랴. 그것도 군인들이 지키는 국경 지대에서 이처럼 무심하게 몸을 내맡길 수도 있다는 말인가. 이미 이곳은 누구도 그러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관광 지대란 말인가. 자유롭게 오갈 수 없어 그 앞에 서면 누구나 분단의 현실을 처절하게 체감할 수밖에 없는 휴전선 일대에서도 우리는 누구나 몸이 서늘하도록 긴장감을 느끼는데, 지금은 노골적으로 국경을 넘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니 이 무슨 뜻밖의 일인가.
그래서 그런지, 물 너머로 지척에 앉아 있는 북한 사람들도 더러는 손을 흔들지만,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본다. 날마다 보는 관광객이라 하나도 신기할 것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선박 수리장 안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리저리 오가고 있다. 압록강에 배를 띄우고 자신들을 구경하는 관광객들이 언제 하루이틀의 일인가. 사람들이 몰려와 들여다본다고 해서 동물원 우리 속의 사자나 토끼가 낮잠을 포기하지는 않듯이, 저들에게도 지금과 같은 눈총들은 그저 일상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건물 상단에는 내걸려 있는 정치 구호들의 붉은 글자들도 너무나 선명하다. 자신들이 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압록 강물 위의 관광객들에게 보라는 것인지 언뜻 판단이 서지 않을 만큼 구호들은 완연하게 붉다. 색깔이 붉어서 이리도 잘 보이는 것일까. 순간, 유람선이 압록강 중간 지점을 훨씬 지나 북한 수역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강물 중간이 국경선 아니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관광객들 중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오로지 신나는 표정, 붉게 상기된 마음을 감추지 못한 뜨거운 얼굴빛들뿐이다. 사람들의 얼굴빛은 우연찮게도 강물의 색깔과 절묘한 대조를 보여준다. 강물빛이 오리[鴨]머리처럼 푸르다[綠] 하여 압록강이라 부르게 되었다지만, 가뭄이 심한 탓인지 물빛은 누르탱탱하여 마치 굶은 사람의 안색처럼 초라할 뿐이다.
|
▲ 압록대교 위 푸른하늘 다리 왼쪽은 중국이고, 오른쪽은 북한이다. 다리 왼쪽 중국은 고층 빌딩들이 어지럽게 발달해 있고, 오른쪽 북한은 나무만 무성하다. 국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안타까운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하늘은 너무나 푸르르다. "하늘도 무심하지." |
ⓒ 정만진 |
| |
그런 생각은 위화도 아래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단교 아래를 지날 때에도 변함없이 일어난다. 저 멀리 바다에 인접해 보이는 풍경 역시 마찬가지 빛깔이기 때문이다. 강의 오른쪽 중국 방향 땅에는 고층빌딩이 난무하고 있건만, 북한 방향인 왼쪽 강언덕 위로는 온통 나무와 풀들만 무성할 뿐이다. 그 대비를 보며 나는 문득 가난하게 살아가는 북녘동포들의 실상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휴전선이 아니라 국경에 서서 나는 우리 민족의 고단한 삶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어디선가부터 아이들의 청아한 노랫소리가 강물 위를 타고 물수제비처럼 퐁퐁 날아와 귓속을 파고들어오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