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쓸 메모리(Muscle Memory) 3
지은이 : 홍현웅
머슬 메모리 (Muscle Memory) -3
펜홀더 라켓을 손에 맞추다.
지금 탁구장에 가면 주문한 라켓이 도착해 있을까? 평소보다 일찍 탁구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거금을 투자했다. 나무와 러버값이 한 달 기름값을 훌쩍 넘었다. 아깝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이 최근 10년 동안 내가 나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다. 마지막 유치원을 다니는 큰 아들 녀석 심정이 조금 이해갈만 하다.
탁구장에 들어서자마자 관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관장님은 기다렸다는 듯 나무와 러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브레이드는 '주익'에서 나온건데 쓸만 할꺼야. 러버는 '오메가3'로 했어."
'관장님 저는 나비 문신이 보이는 버터플라이 밖에 몰라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 관장님과 친해지지 않은 관계로 내숭을 떨었다.
"네. 고맙습니다."
"오돈아! 이거 풀 좀 발라줘라."
관장님이 연습중인 회원 한분을 향해 소리쳤다.
회원 가입한지 3일 째.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관장님과 아줌마 몇 분이 전부였다. 처음 보는 그분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본드가 담겨져 있는 것 같은 깡통의 뚜껑을 열었다. 이게 풀인가보다. 난 풀이라고 하면 종이 붙일 때 만 쓰는 줄 알았다. 왠지 '풀' 보다는 '본드'가 더 접착력이 강하게 느껴진다. '본드'와 '풀'의 차이는 뭘까? 순간적이지만 강아지 풀 뜯어 먹는 생각을 잠시 했다.
"와. 라켓 좋네요. 난 언제 이런 거 장만해보나. 맨날 애들이 쓰다 버린 러버만 붙이고 말야..."
오돈이 형님 풀칠 솜씨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하다. 입에서는 말이 나왔고 손에 들린 투껑붙이 붓이 라켓 표면의 결을 따라 아래위로 움직였다. 라켓에 불을 다 칠해하고 러버도 칠을 시작했다. 다 칠하셨는지 입으로 바람을 일으켜 후~~ 불어주시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친절도 하시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돈이 형 아들 3형제가 다 탁구선수였다.
"이거 바로 붙이면 안돼요. 한 5분쯤 기다렸다. 상태봐서 붙이자구요."
"네."
나는 왜 그래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쨌든 다음 부터는 내가 직접 해야 하니까 유심히 그 과정을 지켜봤다. 5분이 좀 더 지난 후 나무와 러버는 한몸이 되었다. 오돈이 형은 팔뚝으로 러버를 지그시 돌려가며 눌러주었다. 그리고 라켓을 뒤집어 두꺼운 전화번호부에 올려놓고 칼로 러버를 도려냈다. 나무에 러버를 붙이는 것이 끝난 것이다. 칼질은 중간에 쉬지 않고 단방에 끝났다. 끝내준다.
"다 붙였냐. 그럼 나무를 손에 맞게 깎아야지."
관장님은 칼과 사포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여기서 하면 먼지 나니까 밖에 나가서 하고, 한꺼번에 손에 맞추려고 하지말고 조금씩 깎아야 된다. 안 그러면 나중에 헐거워져. 남으면 깎고 갈아낼 수 있지만 헐거워 모자르면 꽝된다. 한 보름 여유를 두고 조금씩 손에 맞춰봐. 아. 그리고 그 손잡이 뒤쪽에 있는 그 얇은 코르크 있지 그건 그냥 다 깎아버려 알았지."
난 그날 탁구는 치는 시간보다 나무를 칼로 도려내고 사포로 문지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관장님 말씀대로 몇일 동안 계속 쳐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사포로 갈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