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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 | 도 착 | 출 발 | 소요시간 | 휴 식 | 비고 |
영암부락재 | 14:30 | 14:40 | 산행준비 |
| 2차선포장도로. |
520봉 | 15:02 | 15:02 | 22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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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바위재 | 15:21 | 15:21 | 19분 |
| 묘지많음. |
묘1기 | 15:33 | 15:33 | 12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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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봉(삼각점) | 15:35 | 15:35 | 2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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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봉 | 15:58 | 16:05 | 23분 | 7분 | 넓은공터. |
이정표 | 16:13 | 16:13 | 8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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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봉(3봉) | 16:28 | 16:28 | 15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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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 16:37 | 16:37 | 9분 |
| ↖4봉,국사봉.↗오봉. |
4봉 | 16:40 | 16:40 | 3분 |
| ↖국사봉.→5봉. |
안부삼거리(이정표) | 16:45 | 16:45 | 5분 |
| ↑오봉.→소모마을2.0k |
오봉산정상 | 16:55 | 17:10 | 10분 | 15분 | 국사봉과 옥정호전망됨. |
749번지방도 | 17:29 | 17:29 | 19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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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번지방도 | 17:37 | 17:37 | 8분 |
| 기도원,선교원안내판. |
능선갈림길 | 17:55 | 17:55 | 18분 |
| 왼쪽으로진행 |
안부사거리 | 18:01 | 18:01 | 6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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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점(293,5봉) | 18:05 | 18:05 | 4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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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점봉 | 18:15 | 18:22 | 10분 | 7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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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묘지 | 18:31 | 18:31 | 9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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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번지방도 | 18:36 | 18:36 | 5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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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삼거리(초당골) | 18:41 |
| 5분 |
| 식당.슈퍼있음. |
전동성당.
전동성당 역사.
원래 전동성당이 위치한 자리는 풍남문의 밖으로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을 비롯하여 그의 외종형 권상연과
유항검 등 호남 지역의 많은 천주교 신자가 참수당한 순교한 자리였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천주교 신앙이 허용되면서
개항지가 아니었던 전주시에도 선교사가 들어왔으며, 1891년에는 전주성당 (현재의 전동성당) 주임인 보두네 신부가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민가를 사들여 임시 본당으로 삼았다.본당이 처음 생겼을 때에 전주읍성 주변에 신자는 거의 없
었고, 주로 산골인 대성리 등에 신자가 밀집해 있었으나,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는 등 여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신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따라서 기존의 성당보다 더 큰 성당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후 1908년 명동성당의
내부를 건축한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성당이 착공되었다. 성당은 1914년에 비로소 외관 공사가 끝났으며, 이후로도 계속
공사가 진행되어 1931년에 완공되었고, 그 해 6월 18일에 대구대목구의 드망즈 교구장을 주례로 하여 축성식을 가졌다.
1937년에는 대구대목구에서 전주지목구가 분리되면서 주교좌 성당으로 지정되었으며, 첫 교구장인 김양홍 신부가 착좌
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주교좌 성당으로의 역할을 하다가 1957년 중앙성당으로 주교좌가 옮겨감으로써 다시 평범한
성당으로 돌아왔으나, 이후로도 계속 전주 지역의 로마 가톨릭의 성지 중 하나로써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981년
전동성당 건축.
전동성당은 호남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며, 중앙의 종탑과 양쪽 계단에는 비잔틴 양식
의 뾰족 돔을 올렸으며, 성당 내부의 석조 기둥에도 비잔틴 양식이 녹아 있다.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성당은 화강암을 주춧돌로 하여,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성당을 착공한
1908년에는 대한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일본 제국의 통감부가 전주읍성을 헐었기 때문에, 성당의 주춧돌은 전주
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 돌을 이용하였다.또한 성당을 구성하는 벽돌의 일부 또한 전주읍성의 성벽에서 나온 흙을 이용
하여 중국인 인부 100여 명이 직접 구워 사용하였다. 나머지 석재와 목재들은 각각 익산시 황등면의 채석장과 승암산의
목재를 사용하였다. 190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931년에 최종 완공되었다.함께 있는 사제관은 지방문화재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다.
호남제일문(풍남문).
전동버스정류장(남부시장) 주변에는 전동성당.풍남문.경기전등이 있다.
풍남문 [豊南門] : 전주부성(全州府城) 4대문 가운데 남문.
보물 제308호. 일반적인 성문과 마찬가지로 성벽의 일부를 형성하는 석축기대(石築基臺) 중앙에 홍예문이 있고 그 위에
중층문루(重層門樓)가 있다. 1층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2층은 앞면 3칸, 옆면 1칸이다. 1734년(영조 10) 성의 시설이
낡아서 수축할 때의 공사 내역을 기록한 조현명(趙顯命)의〈명견루기 明見樓記>에 의하면, 이 성문은 조선 초기에 도관
찰사 최유경(崔有慶)이 축성했다고 한다. 처음 성(城)을 수축할 때 남문 위에는 명견루(明見樓)라는 3층 문루가 있었는데
1767년 3월 화재로 소실되자 그해 9월부터 관찰사 홍낙인(洪樂仁)이 재건을 시작했다. 이때 현재의 모습처럼 2층 문루가
되었으며 풍남문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성벽과 나머지 성문은 자취를 감추고 이 문만 남게 되었다. 1980년
중수공사 때 풍남문 양쪽에 있었다는 포루(砲樓)와 종각(鐘閣)을 옹성(甕城)과 함께 복원했다. 문루의 1층에 앞뒤로 4개씩
세워진 높은 기둥은 2층의 변주(邊柱)가 되었는데 이러한 기둥 배치는 우리나라 문루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영암부락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며....
365봉(삼각점).
오봉산 1봉과 2봉.
2봉 오르며 뒤돌아 본 520봉.
이정표.
마루금 아래 계곡과 마을.
오봉산정상 전 전망암에서 바라본 국사봉.
오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옥정호.
진행하게 될 마루금 모습.
오봉산에서 옥정호를 배경삼아.
골짜기를 돌고 도는 749지방도.
작년에 떨어진 낙옆은 양탄자를 깔아 놓은듯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749번 지방도를 건너 좌측으로 진행합니다.
옥정호와 운암교.
새로 공사중인 운암대교.
운암삼거리 어부집(마루금은 왼쪽으로 가다 언덕으로 올라 묘지옆으로 해서 소나무숲으로 이어짐).
◈교통
영암부락재 : 전주역앞 길건너에서 119번 버스 승차아여 전동버스정류장 하차 운암교행975번 버스로 갈아타고
영암부락에서 하차. 영암부락에서 고개까지 걸어가면 약40분정도 소요되니 지나가는 차에 hitchi
hiking 하여야 함.
운암삼거리 : 전동버스정류장에서 운암교행 975번 버스이용 운암삼거리하차.
◈숙박
전주시내 여관이나 사우나 이용. 운암삼거리 주변 모텔있음.
◈식수
운암삼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