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
AM 07:10 청량리 출발
서울에서 정선까지 5시간이나 달려야 한다니, 오랜만에 여유로운 여행이 되겠다. 덜컹덜컹 달리는 기차 안에서 깜빡깜빡 졸다가 창밖 풍경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정선으로 가는 길은 수채화처럼 예쁘다고 꽤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먹다 자다 도착한 곳은 증산역. 안타깝게도 서울에서 정선으로 바로 이어지는 기차편은 없다. 증산에서 정선까지 운행하는 통근열차를 타면 된다. 기관차 1량과 객차 2량의 이 꼬마기차는 하루에 두 번 운행되며 요금은 1천4백원.
가는 날이 장날
PM 00:07 정선역 도착
눈치없이 주룩주룩. 정선 5일장은 4월부터 11월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일과 7일에는 어김없이 열린다. 천만다행이다. 역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니 규모가 조금 작을 뿐 상인들이 북적대는 시장통이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오징어를 굽는 듯 노릇노릇한 냄새! 연탄불에 구운 노가리 하나씩 입에 물려주는 인심 좋은 아주머니, 좁은 시장통을 따라 늘어선 달래, 냉이, 씀바귀, 황기, 곰취 같은 무공해 봄나물과 메밀묵 등 특산품, 장터에서 직접 제작 판매하는 생활용품까지 사고파는 재래 장터의 정겨움이 가득하다.
1만원의 행복
PM 01:00 정선 5일장 보기
오늘의 장보기 콘셉트는? 1만원으로 1박 2일 야식 준비하기. 시장 골목골목마다 숨어 있는 ‘메밀전병’을 발견했다. 정선은 메밀이 유명한지라 메밀로 부침개도 해 먹고 김치를 넣어 전병으로 먹곤 한다. 얇게 부친 전병에 김치를 넣고 둘둘 말아 간장에 찍어 먹는 음식. 출출한 배를 달래고 발걸음을 옮겼다.
1 해삼, 멍게, 명태 등 싱싱한 생선들이 줄 서 있다. 그중에서도 높이 쌓아놓은 홍합이 눈에 들어왔다. 말 잘해서 3천원어치를 1천원에 샀다. 밤에 술안주로 냄비에 삶아 뜨거운 국물이랑 먹을 생각이다. 따로 조리할 필요 없이 간단하게 끓여 먹으면 되니 여행 먹을거리로 좋을 듯.
2 간간이 보이는 뻥튀기 아저씨. 구수한 냄새를 지나칠 수 없어 가격을 물었더니 수북한 한 바가지에 1천원이란다.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 아저씨를 졸라 2천원어치 같은 1천원어치를 샀는데 너무 맛있어서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다. 오후에 출출할 때 먹으려고 산 건데….
3 뒤돌아서니 도토리묵과 메밀묵이 보인다. 정선 특산물인 메밀묵 역시 저녁 안줏거리. 쓱쓱 썰어서 신 김치를 올려 먹으면 훌륭한 웰빙 안주 완성.
4 나물과 감자 전분 등 엄마들이 좋아할 장보기 메뉴들을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까만 봉지가 3천원이란다. 정선의 특산물인 정선약과. 맛탕과 비슷한 생김새에 달달한 게 입맛을 돋워 자꾸만 손이 갔다. 이렇게 푸짐한 정선의 맛을 1천원짜리 열 장에 맛보다니. 아, 행복하다.
그 유명한 먹자골목
PM 03:00 간식 타임
사실 정선 5일장에 오고 싶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식객> 19권에 소개된 ''올챙이국수''의 투박하지만 정감 어린 손맛을 보고 싶어서다. 먹자골목에 들어가 옥수수로 만든 올챙이묵(올챙이국수라고도한다)을 시켰다. 쫀쫀한 면발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PM 04:10 정선 창극 구경
정선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4시 40분부터 5시 20분까지 정선문화 예술회관 공연장(군청 옆 문화예술회관 3층)에서 정선아리랑 창극이 공연된다. 주말 장에는 공연하지 않는다고 하니 참고하자.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등 격동의 세월을 보낸 우리 민족이 ‘아리랑’을 통해 한과 상처를 달래가는 과정을 정선 아라리 가락으로 풀어낸 작품. ‘정선아리랑’이 더 구성지게 들리는 것 같다. 정선에 와서 문화 생활까지 즐기다니, 마음에 든다.
군침 도는 곤드레나물밥
PM 07:00 동박골
정선군청에서 직접 추천해준 ‘동박골’은 10년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모습이 술 취한 사람과 비슷하다고 해서 곤드레라 불리게 된 재미있는 이름의 나물로 만든 곤드레나물밥은 정선 향토 음식. 곤드레를 넣어 지은 밥에 들기름을 살짝 둘러 양념간장에 쓱쓱 비벼 먹으면 된다. 취향에 따라 고추장이나 막장에 비벼도 OK. 쌉싸래한 맛이 입맛을 돋우며, 깔끔한 뒷맛이 좋다. 곤드레나물밥 5천원.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8시
위치 정선군청 맞은편 도보로 2분
문의 033-563-2211
기차 타고 꿈나라로
PM 10:00 기차펜션
레일 위에 정차한 빨간색 기차. 기존 정선선 구절리역에 기관차 1량과 폐객차 4량을 개조해 10개의 객실로 꾸민 이색 펜션이다. 1월에 기차펜션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정선 여행을 계획했는데 예약이 꽉 차서 아쉽게 포기했던 기억. 이번에는 여행 스케줄을 짜기도 전에 기차펜션부터 예약했다. 33평형 넓은 객실에 송천 강변 쪽으로 테라스가 나 있다. 에디터, 구절리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캔과 함께 기분을 냈다. 참 아름다운 밤이다!
가격 22평형 7만원, 33평형 10만원
문의 033-563-8787
‘여치의 꿈’에서 브런치
AM 09:00 모닝 커피
일어나보니 하늘이 참 푸르다.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여치 암수 한 마리가 어우러진 독특한 카페를 찾았다. 무궁화호 객차를 개조해 만든 카페 ‘여치의 꿈’은 암놈(1층)은 스파게티 전문점, 수놈(2층)은 카페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하게 커피 한 잔으로 구절리에서의 아침을 맞았다. 기왕이면 카운터 방향의 테이블에 앉아야 아름다운 경치가 보이니 참고하자.
철도 위를 달리다
AM 11:00 레일바이크 탑승
장이 서지 않는 날에도 정선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레일바이크 때문이다. 아우라지에서 구절리까지 달리던 폐철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새로운 레포츠 장소로 변신시킨 것. 이 레일바이크를 이용하려면 출발 3일 전 예약은 필수다. 열심히 다리를 굴리다 보면 시속 20km까지도 달릴 수 있어 시원한 봄바람을 느낄 수 있다. 아우리지역에 도착하기 2km 전 아리랑고개(터널)를 지날 무렵부터 조금 지치지만 터널 안에서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정선아리랑’ 가락이 힘을 복돋워준다.
가격 2인승 1만8천원, 4인승 2만6천원
문의 033-563-8787
후루룩, 콧등치기
PM 00:30 청원식당
바이크를 타느라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레일바이크 하차장에 있는 식당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쫄깃쫄깃 탄력 있는 면을 후루룩 빨아 마실 때 면발이 콧등을 세게 친다고 해서 ‘콧등치기’라는 이름이 붙은 국수. 된장을 풀고 멸치를 넣은 국물이 처음에는 약간 텁텁한 듯 구수한 맛이 시원하다. 여름에 차갑게 먹어도 별미인 정선의 맛. 정말 콧등을 치도록 후루룩 먹으니 더 맛있었다는 에디터의 소감. 콧등치기국수 5천원.
영업시간 오전 8시~오후 8시
위치 레일바이크 하차장 근처
문의 033-562-4262
정선의 추억을 고이 접어
PM 02:00 정선 풍경열차
레일바이크 탑승자에 한해 무료로 탈 수 있는 풍경열차. 쉴 새 없이 폐달을 밟느라 스쳐 지나간 정선의 멋드러진 자연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나른한 오후, 따뜻한 햇살에서 느껴지는 봄 내음을 맡으며 정선에서의 1박 2일을 아쉽게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