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여 당신 종이 (이종철 신부님의 성소) ****
형님이 사제서품 몇 달 앞두고 사고사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 형의 뒤를 이어 “내동생을 주님께 맡겨드리는 애절한 기도, 내가 못하는 성스러운 성직을 동생이 대신하게 해달라는 주님께의 호소, 수 개월전 돌아가신 엄마생각”등의 마음을 담아 이 곡을 작곡합니다. 현재는 수원교구 화성 정남성당에서 사목하고 계십니다.
1972년 여동생(현재 베네딕또회 소속 이분매 베난시아 수녀)의 수녀원 입회 때, 저 못난 동생을 잘 보살펴 달라는 오빠로서의 뜨거운 기도를 담은 노래이다. 그 때 나는 스물일곱의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이었고, 평소에 동생의 수녀원 입회를 극구 반대하고 만류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일 아침 수녀원에 입회하러 가요."하는 청천병력같은 동생의 말을 듣고 더 이상 만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는 오빠로서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저렇게 못생긴 수녀를 누가 따를 것이요, 저렇게 건강이 나쁜 아이가 그 어려운 수도의 길을 어떻게 걸을 수 있을까 싶어 여간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걱정은 곧 기도로 바뀌었다. "주님,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라며 동생 방에 앉아 하염없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신학교에서 쫓겨나 있었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혈압으로 쓰러졌다가 세상을 떠났다. "주님, 한 놈은 신부가 되겠다고 기를 썼으나 쫓겨났고, 한 년은 저렇게 허약하고 못났는데도 수녀가 되겠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 입니까." 어느새 나는 울먹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책상아래 휴지통에 시선이 갔다. 깨알같은 글씨의 종이 쪽지들이 찢겨져 있었다. 곧 불에 태워버릴 일기장이었다. 쪽지 몇개를 꺼내 보았다.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 그날 밤, 나는 즉시 그 쪽지들을 펴 놓고 곡을 만들었고 다음 날 아침 떠나는 동생의 가방에 넣어 주었다. 한달 뒤 수녀원에서 편지가 왔다. "오빠, 오빠가 만들어준 노래를 부르며 울었습니다. 그 다음 날에는 동료 입회자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혔고, 그 다음 주일 날에는 모든 수녀님들이 울먹이며 이 노래를 미사 봉헌 때 불렀습니다." 이 성가기도 덕분인지 동생은 쫓겨나기는 커녕 제일 못난 아이가 우리 형제 중 제일 똑똑이로 변하였고,제일 병약하던 아이가 우리 중 제일 건강하게 살고 있다. "버려진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라는 성서 말씀이 항상 잊혀지지 않는다.
|
첫댓글 올려 주신 글 읽으며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알고 있던 내용도 있었지만 새롭게 다가 오네요. 역시 신앙 체험이 담겨있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마음에 남아 보약이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앞으로 계속 연재해 주시기 바랍니다.아예 별도의 코너를 만들어 드릴까요? 비오형제님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많이 부르던 성가였지만 앞으론 이말씀 상기하며 더 열심히 불러야 되겠네요.
이 곡을 부를 때마다 한켠 가슴속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데 지금 역시 뭉클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마찬가지네요.제가 좋아하는 곡중 하나인데..그곡의 배경을 알고 들으니 더더욱 눈물이 납니다..ㅜㅜ
이렇게 깊은 사연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노래 사연이나 만들어진 배경을 알면 감정이 더 풍부해 지는 거 같아요 정말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