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의 어의를 사전에서는 「일본 독특의 무도의 하나, 상대의 공격력에 반항하지 않으며 그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던져 쓰러트리고 또는 눌러서 혹은 급소치기 등의 공격방어의 기술을 행하며 동시에 신체의 단련과 전신 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술, 그 기원은 대단히 오래 되나 류파의 발생은 전국시대이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가노지고로(嘉納治五郞) 등에 의해 제유파(緖流派)를 모아 오늘의 유도가 성립되었다」라고 설명라고 있다. 무술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유술로부터 탄생한 일본 강도관유도의 믁징이 단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 일본 문화재의 하나인 유도, 세계의 격기스포오츠로서의 유도를 보다 더 탐구하여 그 특성을 밝혀 보기로 하자.
일본 문화재로서의 유도의 특징
가. 도로서의 자각
「도」란 일반적으로 사람으로써 행하여야할 도리로 해결된다. 노자에 의하면 도는 모든 것을 이루게 하는 원리이며, 도는 만물의 근원이기 때문에 논리상 모든 것에 선행한다. 도야 말로 절대자이며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이다.
도는 무위와 자연을 속성으로 하는 궁극적 존재이며 대자연이 나타나는 상(相), 바로 그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도란 자연과의 관계에서 혹은 그 자용(自用)에 의해서 자기 스스로의 인간됨을 자각하고 자연에 돌아감과 동시에 실천을 이루게 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행위는 인간이 이상으로 하는 목표를 향하여 깨달음을 획득해 가면서 노력하는 과정일 것이다.
노자의 도의 이념을 동양 문화가 자연과 인간과의 일체를 전제로 하여 인간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도에 있어서 동양식의 깨달음도 자연과 인간과의 일체를 자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자각을 무도의 실제(實際)나 일상생활에 구현하는 공부나 단련에 겹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 있어 무도는 도덕적이며 종교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유술가도 천지자연의 이법을 인간이 도라 하고 동양적인 절대의 경지를 지향하였다. 이것은 우주만물의 본체가 무이며 무가 천지의 본성이라고 하는 노자의 도이다. 무위자연이 도와 통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삼략(三略)」에 있는 「유(柔) 능히 강(剛)을 제(制)하며 약(弱) 능히 강(强)을 제압한다. 유는 덕(德)이요 강은 적(賊)이다. 약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강은 사람이 공격을 받는다.」의 절대의 유이다. 유화하여 사람과 다투지 않으며 사람에 적이 없다면 강적도 그 덕에 복종한다는 의미이다.
「유의 도에 관하여, 제교철차(諸橋轍次) : 월간지 「유도」로부터」
고 가노 사범은 언젠가 유도의 원리를 설명하여 다른 사람의 힘과 다투지 않고 자연의 힘에 순응하여 결국은 타의 힘을 선용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아마도 이것은 유의 도의 극의(極意)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노자가 언제나 유를 존중하고 다투지 않음의 덕을 높여 그것과 「다투지 않고 이것으로 천하는 좋아지며 이것으로 다투지 않게된다.」즉, 이쪽이 저쪽과 대항하지 않고 경주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하여 천하의 어떤 것도 다투는 강한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가르침과 꼭 일치한다고 생각된다.
유도의 실습에 있어서 위에서 말한 다투지 않는 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가에 관해서는 유도계의 인물들이 더 잘 알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유의 도는 또한 우리 인간처세면에 있어서 준수(遵守)해야 할 일면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유의 도를 주로 하는 유도 문화의 현장이 오늘의 대세(代勢)에도 변함없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옛날 후한의 선무황제는 「내가 천하를 다스림에는 유도(柔道)를 가지고 행하려 한다」고 하였다. 이 유도는 물론 오늘날 강도관에서 실시되고 있는 유도와는 같지 않다. 온화하며 사양할 줄 아는 태도를 가르치고는 있으나 강도관의 유도문화의 정신은 어떤 점에서는 이것과 공통하는 성질이 있다고도 할 만하다. 유도로 천하를 다스리려고 한 것은 이것 또한 강도관원들이 마음에 간직해야할 중요한 점이라고 본다.
비후화남(肥後和男) 교수는 「야와라」라고 제(題)하고 유의 원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야와라" 비후화남(肥後和男). 월간 「유도」에서」
「나는 중학생 때에 조금 유도복을 입어보고 그후는 조금도 공부하지 않았으므로 유도에 대해서는 결국 문외한이지만, 유 능히 강을 제압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선행한 고인은 몇분인가 상상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가노선생 - 나에게 있어서도 선생님이다. - 은 이 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유도라 하는 것을 성립시켰다. 그것은 극히 위대한 포부였다고 생각된다. 정력선용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관구유삼(關口柔三)이나 삼포양심(三浦楊心) 등 고인들의 정신의 근대적인 표현이었다고 생각된다. 일체의 뾰족한 것을 제거하고 어떤 것이든지 가서 행하고, 언제까지나 스스로를 살려 나가는 곳에 이 도의 도다운 까닭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유술(야와라)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한 무예가 아니라 인생의 보다 깊은 생활 원리로도 된다. 가노 선생은 이것을 깊이 깨닫고 여기에 도란 글자를 붙은 것이다. 정신운동은 오늘날은 하지 않으나 선생이 지향였던 것은 무언가 그런 것 같았다. 그것을 매일의 격렬한 단련을 통하여 나타나는 철학에 까지도 그 경지를 높였던 것 같다.
최근 유도가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 같다. 근대화라고 하는 것이 그 목표라고는 하나 나는 그것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유의 원리에 관해서 보다 깊은 반성속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싶다. 그것에 의해 이 도가 모든 일본인에게 오늘의 도로 될 가능성이 있음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자아 다시 야와라에 대해서 얘기하자. 유술은 동양적인 도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유능제강의 유의 정신에 기초한 맨손의 무술이다. 그 중핵에는 자의로서의 유연, 유순, 화(和)에 입각한 것이 있다. 11세기 후반의 작품이라고 하는 「금석물어(今昔物語)」에 「야와라」의 문자가 사용되어 있는데, 한자로는 화(和), 화술(和術), 유(柔), 유술(柔術)로 쓰고 야와라라고 읽고 있다. 이 야와라는 특히 이법(理法)에 대한 순(順)임을 커다란 특색으로 하고 있다. 즉 유강일체, 유강겸비, 외유내강 등의 말로 표현된다. 또 천인합일, 물심일여, 부동지, 무아, 무심 등의 말로 동양적인 도의 경지를 표현하였다. 이 경지를 기술에서 일상생활에서 개발하여 쌓아 막히지 않는 수행이 유술가에 있어서 행하여졌다고 말해 좋을 것이다.
유술가는 동양적인 절대의 경지를 목표로 하여 실천적인 수련에 모든 것을 걸었다. 기술을 수련하는 것이 인간을 닦는 것이 되며 기술보다는 도에 나아가고 도에 도달하여 기술도 정말 技가 된다고 하였다. 상대의 생명을 제압하는 기술을 배우면서 자연과 인간과의 근본에 있어서의 융합조화, 환언하면 도로서의 자각으로부터 나아가 인간완성을 희구하였다. 하나의 기술에 전 인격을 걸고 하나의 시합에 전 생명을 거는 격렬한 수련 가운데에서 도를 구하였다. 상념을 익히고 단련하여 수행에 모든 것을 바쳤다. 공부와 단련이 중시되어 개성적 특수적 직관적인 도의 깨달음을 위해 격렬하게 전진하였던 것이다. 유술은 「기술을 통하여 도를 실현한다」는 사람 만듦의 요도(要道)이며 이 인식은 근대유도에 받아들여지고 계승되어온 특색이 있다.
「또 하나의 무도 전대수덕(田代秀德) 「무도학 연구」」
장래의 무도를 생각할 경우, 무도란 것이 무엇인가를 스포오츠와 비교하여 생각해 본다.
1. 무도도 스포오츠도 승패를 다투는 인간의 기술로서 발달하였다. 양자의 차이는 각각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수행과 연습이란 개념에 잘나타나고 있다. 수행은 도장에서 행하나 연습은 운동장 경기장에서 한다. 무도는 승부를 통하여 인간도를 실천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에 노력하며 이 노력을 수업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정한 기예를 통하여 인간도를 밟게 한다고 하는 일본의 전통적 무도의 이념이다. 수행은 해당 인간의 자기부정을 지향한다. 스포오츠는 일정의 기술에 의한 승부를 통하여 생을 즐기며 심신의 건강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활동이며, 이 때문에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기술에 관한 숙련도를 될 수 있는대로 증강되도록 노력한다. 스포오츠에서는 해당 인간의 자기긍정을 기본으로 한다.
2. 장래의 무도의 이념 평화적인 세계에 있어 장래의 무도는 그 본래의 본질에 따라 무도를 활인검으로 하는 것, 무도를 일상생활화 하는 것에 힘을 기울일 것이다. 살인도, 활인검이라 하는데 활인검이란 「사람을 살리는 검」이며, 또 「살아있는 사람의 검」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사람의 검」은 아집을 털끝 만큼도 갖지 않고 짤라버린 검이다. 의인(毅人)을 「의(毅)>아집(我執)」하지 않으면 안된다(무슨 뜻인지 모르겠음: 옮긴이). 산다는 것은 진의를 행하는 것에 있으며 사생일여, 몸을 버리는 체험, 즉 극한체험의 기회를 주는 것이 무도이다. 이래서 무기(武技)를 통하여, 상대에 의해 살아난다. 그리하여 서로 살리고 살아나게 한다. 기술이란 모든 것을 던져버릴 적에 더 할 것이 없게 된다. 그것이 무사(無私)의 기술이다. 무도의 일상생활이란 무도정신의 그것을 의미한다. 무도정신이란 정말로 모든 것을 버렸을 때에 기합(氣合)이다. 순간(瞬間)의 즉 석화(石火)의 기(機)에 있어서의 극한적 충실의 마음이다. 무도정신의 일상화는 산강철주(山岡鐵舟) 거사(居士)가 임제록(臨濟錄) 제창을 구했을 때, 무의 연습을 하였다는 사실에서 그 좋은 예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무도에는 스포오츠대(代)와 동시에 사생의 문제와 관계하는 순수 무도라고도 할 다른 또 하나의 무도가 있다. 전문가는 이 순수 무도의 연구를 높여 무도정신을 높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것을 근원으로 하여 대중의 무도가 발전한다.
나. 수행적 수련에 의한 심신연마
무도는 승부도이기도 하다. 그 승부도에 투철하여 승부를 초월하는 곳에 도가 있다. 무도의 극의를 다 통한 사람들의 지고의 경지야말로 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이상의 경지를 표현함에 자타공영, 천인합일, 물심일여, 유강일체, 부동지, 무아무심 등의 추상적인 말들이 사용된다.
유술은 17세기에 들어와 많은 유파를 발생시키고 서로 전하여 내려오면서 세분화되었다. 무사는 기본적인 7가지 기법(技法)(병학(兵學), 사술(射術), 마술(馬術), 도술(刀術), 검술(劍術), 유술(柔術), 포술(砲術))의 하나로써 유술을 다른 여러 가지 무술과 합해 연습하였다. 무사는 전 생활을 들어 기술의 연마에 노력하여 승부에 생명을 걸었다. 그러나 태평시대가 계속되어 기술을 다투는 승부의 형식에도 안전이 확보되자 생사와 직접 대결하는 기회는 적어져, 소위 심본기말(心本技末)의 사상이 행하여지게 되었다. 기술을 수단으로 하여 도를 구하는 수행 태도로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도에 도달하기까지의 긴 과정은 승부의 세계에 정진 각고하는 길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소위 동양정신에 의한 수행이라고 하는 실천적인 수련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수행이란 승이나 도사가 절대의 깨달음의 경지를 지향하여 행하는 고행을 말한다. 마음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이원론적 사상을 기초로 하여 신불(神佛)에 봉사하기 위해서 육체적 욕망과 물질적 생활을 억제하는 수행이라고 말해진다. 유술 수행의 기반에는 이 동양적인 수행의 정신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수행의 정신에 의한 유술의 수련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기술을 본도(本道)로 하는 수행에 전 생명을 걸고 생사일여의 도를 구하여 연구와 단련 가운데에서 한발씩 한발씩 향상을 거두었던 것이다.
1) 수행적 수련
동양적인 수행의 정신은 현실의 유도 가운데에 흐르고 있다. 예를 들면, 종교 혹은 예도(藝道)에 있어서 행하여지고 있는 극한수행의 전통을 이어받아, 근대 유도의 모한연습(冒寒練習), 모서연습(冒暑練習)을 용행(勇行)하고 있다. 모한연습(冒寒練習)의 의미를 사전에서 보면 「극한(極寒)중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연습하는 것. 검, 창술, 유도의 무술 또는 노래, 창(唱)의 연습에서 행하는데 참기 어려운 것을 견디어내는 단련이다. 여름 한철의 극서(極暑)중에 하는 모서연습(冒暑練習)과 같다.」라고 되어 있다. 유도계에서 「전통의 수행법」의 하나로 된 모한(冒寒)연습이 실시된 것은 1884년 강도관에서였다. 모서(冒暑) 연습은 조금 늦어 1897년 시행되었다.
「가노 사범의 모한(冒寒) 연습의 뜻」(월간 「國士」(1889년: 명치 32년))
무릇 사람이 세상에 나와 일을 함에 있어 자신이나 자기 집을 위해 혹은 다른 사람, 국가를 위하거나를 막론하고 심신의 노고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서에 굴하지 않고 참으며 힘든 일에 참는 힘을 기르는 것은 성공에 필요한 조건이다. 또 곤란에 직면하였으면서도 주저함이 없이 용기를 내어 곤란과 싸워 이기는 방법을 강구하여 진격하여 멈추지 않음을 성공에 필요한 기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힘과 기상을 갖기를 원한다면 평소부터 거기에 필요한 단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차가운 바람이 불러치는 문 밖에 서있거나, 염천에 내려 쪼이는 도로를 걷는 것을 습관으로 함은 단독으로 연습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도의 수행과 같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그런 습관을 기르는 것이 보다 적당한 방법이다. 고통, 노고에 굴하지 않는 힘 같은 것도, 원기를 고무하고 어려운 일을 이룩하려고 하는 기상도 「모한연습」에 의해 자연히 길러진다. 그러나 모한연습이라 하여 다만 사람을 던지고, 잡는 기술만의 연습이라고만 생각지 말 것이다. 모한연습은 정신단련, 신체단련에 가장 적당한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날에 사회에 서서 제반사업을 성취할 힘을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얻자 하고 마음 먹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유도계에서 모한(冒寒)연습, 모서연습은 각 학교 등에 있어 특별 수련으로 행해지고 있어 유도의 한 특징이 되어 있다. 엄동혹서의 일정 기간을 잡아 교육적으로 기획 운영하여 자주적으로 참가하는 학생들이 스스로 어려움을 겪어 강도의 심신단련에 정열을 쏟고 있다.
2) 무심(武心)의 연마
무도(武道)는 기술적으로 승부도(勝負道)이며 격렬한 공방의 응수이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연구와 단련 가운데에 엄격한 자기의 형성이 있다. 인간형성과 직결되는 가르침과 무술을 배우고 익히는 수련이 서로 맞아 무심(武心)이 길러진다. 가르침은 일본민족성에 뿌리 박은 무사들이 실천의 현장에서 무술을 통하여 만들어낸 것들이다.
정도를 밟아 승리를 얻기 위한 「심(心)」은 물론 도장에 있어서의 수행이나 일상의 생활에 미치는 가르침을 말한다. 무술과 가르침이 일체가 되어 연마되지 않으면 안될 무심(武心)은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필요한 것이다. 17세기, 18세기에 크게 발전한 무도(武道)의 가르침은 윤리적 종교적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으나 봉건성을 탈피한 민주적 정신에 통하는 가르침도 있다. 오늘날의 경기장에서 근대화된 유도의 기술을 다툴 때 무심(武心)은 새로운 생명으로 표현되고 살아서 유도를 특징 짓는 가치라고 생각된다.
ㄱ) 부동심(不動心) : 무사에 있어서 무술은 생사의 도이었다. 따라서 삶과 죽음이 얽혀 있는 실전장에 임하여 반드시 이기기 위해서는 죽음의 공포에 동요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였다. 여기에 부동심의 수행이 있다. 승부를 초월한 절대 부동의 마음을 현재의 경기 유도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또 일상생활에 전이(轉移)시키게 되는 그런 의미에서도 이것은 중요하다.
무예의 수행에는 기술을 통하여 생사를 넘는 정신을 탐구하였다. 또 유교, 불교, 도교 등의 영향을 받았다. 유술도 마찬가지였다.
세끼구찌(關口)파는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설을 말하고 생사의 마음을 가지면 자연히 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적을 제압하기에 앞서 먼저 나를 수련하고 본체에 노력하여 승리를 잊으면 스스로 적이 나에게 승리를 주게 되어 있다고 하였다.
- 「본체에 관하여 (기도류천서주석천의권(起倒流傳書註釋天의 卷)) : 본체란 무엇인가? 심리허령(心裏虛靈)하게 하여 신기부동지(神氣不動智)의 상태를 본체라고 한다. 적에 대하여 혹은 적이 있다고 하는 생각이 일어날 때 동(動:움직임)하는 것이 있어, 동(動)함에 이르면 일신(一身)은 허망하게 된다. 적을 보고도 일심(一心) 부동(不動)하여 허령(虛靈)하면 쉽게 대처하여 본체를 갖추게 되나니 이것을 부동지(不動智)라고 한다. 평생 신기부동(神氣不動)의 공부를 숙득(熟得)함이 중요하다.」
양심류(楊心流)에서는, 유(柔)는 응(應)하고 변하는데 막힘이 없고, 원래 나도 없고 적도 없는 것이니 대기(對機)를 떠나 자재하는 마음을 심체무아(心體無我)라고 이름하고 궁극의 심경을 가르쳤다. 기도류에서는 먼저 정기를 말하고 조용한 상태에서 정기를 얻고 이것을 숙득하여 부동지에 이르며 신기허령의 경지를 지향한다. 천신진양류(天神眞楊流)에서도 최고의 위치로써 부동심과 무아무심을 든다. 이것은 다꾸앙선사의 부동지, 남천화상의 평상심, 도원선사가 설법한 유연심과 다른 것이 없다.
- 부동지(不動智) 다꾸앙선사 (부동지신묘록(不動智神妙錄))
「향하면 좌에 우에, 십방 팔방에 마음을 움직이며, 움직이는 중에도 아무데도 마음을 머물지 않음을 부동지라 하느니라」
무술의 정신적인 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동해사의 다꾸앙 선사는, 부동지신묘록 한권을 검술의 명인 유생단 마수종구(柳生但 馬守宗矩)에 본체(本體), 성경(性鏡)의 두권을 자목전제 준방(茨木專齊 俊房)(기도류(起倒流) 시조)에 주었다. 다꾸앙으로부터 부동지의 가르침을 받은 준방은 선의 심법을 유술에 채택하였던 것이다. 선은 인도에서 일어나 중국에서 불교의 종파로써 성립, 7세기의 중엽 이후에 일본에 전하여졌다고 한다. 15~16세기에는 선종문화를 개화시켜 선의 사상은 무가들 사이에 널리 침투되었다. 즉 선의 「개념적인 사색보다도 오히려 단적인 행동을 무겁게, 생사일여를 믿어 그것의 벗어남에, 호단(?)하고 과감한 활동을 존중하며 질박하고도 고담(枯淡)한 생활에 만족하는, 예절에 맞추어 면밀한 행동을 특히 중시하였다.」 그 생사관, 인생관, 처세관이 무사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기도류의 자목전제(茨木專齊)와 다꾸앙 선사와의 관계를 기도류비서주해(起倒流秘書註解) 자서(自序)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가광공(家光公)의 때, 검술에 유생단 마수(柳生但 馬守), 유술에 있어서는 자목전제(茨木專齊)가 함께 천하의 제 1이라고 말해졌다. 이들이 명인이 된 것을, 예를 들면 하늘을 나르는 새가 왜 공중을 날 수 있을까 하는 이유를 암과 같이 오랫동안 몸을 닦고 수행한 공에 의해 자연히 그와 같은 자재함을 얻으려고 생각하고 이 두사람은 심리미명(心理未明)한 체 동해사의 다꾸앙선사에게 가서 참선하며 이 도리를 밝히려 하였다. 다꾸앙은 제불(諸佛) 부동지(不動智)라는 서물(書物)을 만들어 유생에게 주고 본체(本體), 성경(性鏡)의 두권을 전제(專齊)에 주어 자세하게 그 뜻을 가르쳤다. 이렇게 하여 두사람은 처음으로 무예는 형(形)이 아니라 심리(心理)의 묘용(妙用) 때를 맞추어 변하며 발(發)하는 것임을 깨달아 깊이 다꾸앙 선사에 감사하고 불가의 묘도(妙道)를 높이고 믿게 되었다.
불교로부터 나온 부동심, 부동지, 유연심, 무념무상, 무심, 허심 등의 말은 유술 각파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무예의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시된 심(心)의 수련이 생사에 관련하고 있기 때문에 최종의 단계에서는 종교적 도덕적 극치와 일치한 것이었다.
부동심이라고 한 심경은 유술에 의해 도달되어야할 이상의 경지를 표현한 용어일 것이다. 승부도에 투철하고 승부를 초월한 지고의 경애(境涯)는 유도의 정신에 통한다고 해도 좋다. 이 정신은 무도의 깊은 뜻을 이해한 사람들의 마음에 공통하며 이 경지는 동양의 도이며 서양의 휴머니즘과도 통한다고 할 것이다.
ㄴ) 기(氣) : 유술의 정신 수양은 기를 단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싸움의 기이다. 섭천류파(涉川流派: 시부가와류파)에서 말하는 호연의 기와도 같다. 기로 이기고 기로 제압하는 단계이다. 유술에서는 다른 무술과 같이 승패는 기에 좌우된다고 생각하였다. 즉 육탄으로 서로 치는 격투는 정신과 정신, 기와 기의 싸움이다. 어떤 것이든지 부셔버리고 말겠다는 왕성한 기력의 강약이 이기고 지는 것을 결정하는 큰 요소가 된다. 유술이 이 기의 양성을 제1로 한 것에 무술로써의 특색이 보인다. 시부가와(涉川)가 저술한 「유술대성록(柔術大成錄)」에 있는 「기력질력(氣力質力)」은 유술에서 기를 연마하는 것을 얼마나 중시했던가를 보여주고 있다.
「유술에 기력과 질력의 구별이 있다. 질력은 근골(筋骨)의 강함이니 격(格)에 말하는 힘이니 이것은 끝이 있는 힘으로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니라. 기력은 정신의 강함이니 이것은 끝이 없는 것이므로 양성함에 따라 마음 먹는데 따라 어떻게도 되는 것이다. 우리 유술은 이 기력을 씨앗으로 삼아 이를 기르고 수행하는 일이다.」
섭천류(涉川流)에서는 구체적으로 「승부는 결국 기에 의해 좌우되는 것
이라 하니 맹자의 호연의 기를 기를 것이다.」하고 가르쳤다. 천지간에 유행하는 지대(至大)지강(至剛)의 굴하지 않는 원기라고 할 기이다. 섭천류의 가르침은 유술은 진(眞) 승부임으로 속으로는 넘치는 기백이 없이는 이겨 나갈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런 까닭에 수행의 실체를 겉의 연습과 속의 연습으로 나누어, 기본 연습은 겉의 연습으로 먼저 기를 닦으며 활기(活氣) 활체(活體)가 되는 것을 지향하였던 것이다.
직신류(直信流)에서는 본립전(本立傳)에서 기초적 기능을 가르친 후에 익내전(翌內傳)으로 부동체의 위치에 지달(至達)하여 철석(鐵石)을 부술 것 같은 기상을 연마하여 신체의 활용으로 한다. 더욱 나아가 신묘전(神妙傳), 내내격전(內內格傳)을 거쳐 내내전(內內傳)의 소위 말하는 부동지의 위치에 이르는 수행에 들어간다. 기의 수련은 맹연(猛然)하게 서고 과감하게 싸우며 용분매진(勇奮邁進)하는 기력의 양성에서부터, 순서를 따라 보다 고차(高次)의 기에 들어가고 최후의 도에 도달하는 것이다. 선의 심법을 많이 채택하고 있는 기도류(起倒流)도 마찬가지로 「먼저 정기를 말하고 조용한 상태에서 조용한 기를 얻으며 이것에 숙득(熟得)하여 부동지에 이름」을 가르치고 있다. 기도류는 마음을 닦음을 주로 하고 부동지에 이르는 수행체계를 세우고 본(形)을 떠나 기를 취급하는 것을 본체로 하였다. 이것은 한다는 기로부터 정기를 기르고 정기의 수양으로부터 부동지에 이르는 순서를 체계화한 것이다. 승부의 세계를 쓴 전중수웅(田中秀雄)이 말하는 기의 여러 가지를 참고로 들면 다음과 같다.
기의 여러 가지 : 田中秀雄(전중수웅)
「여기에서 제가 말하는 기란 심과 技(기)의 기조를 이루며 이것들을 발동 촉진하는 원동력이 되는 정신력, 생명력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특히 시합할 때에 큰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이 기박(氣迫)도 단련의 경과에 따라 점점 향상 진보하는 것으로 수련기의 말기에 보면 기박 충일(充溢)의 태(態)를 약진기의 말기에 있어서는 맑게 개인 기를, 대성기에 들어와서는 맑고 더욱 산뜻한 기의 상(相)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 기박의 근원인 최초의 상태에서는 여러 가지 미숙한 기가 있어, 비슷하면서도 같지 않은 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유술의 수행은 안으로 정신을 단련하는 것에 의해 정신을 닦았던 것이다. 실천적인 수행에 의해 심신을 갈고 닦아 기술보다 도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곳에 동양적 특성이 보인다. 여기에서 무사적인 도의, 기풍도 형성되었다고 본다. 그것은 왕성한 기백과 절도 있는 품격, 정의를 존중하며, 예를 지켜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용기, 강의(剛毅), 과단, 침착, 인내, 유화, 우애, 염치 등의 말로 표현되는 덕목들일 것이다.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평화의 사회를 희구하는 마음도 될 것이다.
다. 예의 마음
유도는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나는 것이다. 이 예를 존중하고 예의작법을 중시하는 전통은 옛날부터의 좋은 전통의 하나이다. 사전에서는 예의 설명을 「내 몸을 닦고 사람과 사교하며 세상에 살면서 신을 믿고 리(理)에 맞추어 생을 이루기 위해 지켜야할 의법, 정에 근거하여 경을 주로 하며 지나친 것을 절제하며 모자람을 채우고, 가능한 한에 있어 중정에 합치되도록 함이 그 목적으로 외형을 닦고 내심을 바르게 하는데 그 특색이 있다.」고 하고 있다.
원래 일본에서는 그 본래의 민족성과 습관에 근거한 예가 있으며 성덕태자가 17조의 헌법중에 「화(和)를 귀하다고함」이라한 화도 예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시대가 흘러 무가정권이 성립함과 함께 무가예법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의 정신과 형성은 본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때에 따라 형성 존중에 흘른다든지 혹은 정신 편중에 흐르기도 하였다. 에도 막부는 무가법도를 공포하고 이를 통해 예를 알게 하고 무가예법의 부흥에 노력하였다. 무사의 예절 존중은 「그것이 상하, 장유, 존비의 질서를 규제하는 도덕인 때문에 평시에 있어서는 주종, 상하의 신분계급을 유지하며, 특이 전장에 있어서는 질서의 유지와 함께 명령계통의 유지가 극히 중요하기 때문에」라고 말하여지고 있다. 그러나 에도시대(16~19세기)의 예법도 일반적으로는 드디어 고정화된다. 명치유신에 의해 구미의 바람이 일세를 풍미하고 일본의 문화는 형편없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예에 관해서도 그 정신까지 잃어버린 것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예의 마음과 형식은 특정한 장소에 각각의 의미와 특징을 가지면서 남아있었음을 알겠다. 금촌(今村)교수는 일본 무도와 예의를 중시하고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일본무도의 예의에 관해서 금촌가웅(今村駕雄) (월간 체육과교육(體育科敎育))
「서구 스포오츠에 있어서도 상대편에 예의 바르게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Ground manner의 좋고 나쁨이 관중으로부터 비판받고 있어 예의 바르게 행하는 것이 일본무도 뿐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러나 일본무도의 경우는 물론 선생이나 친구 선배에 대한 경우도 있으나 전술한대로 비가시적인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도장 그 자체의 신성함에 대한 경건한 마음의 표현이며 상대가 있거나 없거나 관계없는 것이다. 더욱이, 그 형식은 무가예법으로써 객관화 되어 있은 점에 구미 스포오츠의 경우와는 크게 틀린 뉘앙스를 갖는다. 이 예의 바름은 다른 면에서는 규범을 정점으로 해서 선배 후배 기술수련의 정도, 기법의 교졸(巧拙), 상하에 의한 계급성과도 관련한다. 도장에서는 영주라도 사범에 대해서는 제자로서의 예를 할 정도로 기술을 중심으로하는 계급성이 확립되어 있었다. 즉 거기에는 교권의 엄연한 확립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경향은 「무사도가 꽃피던 시대」의 일로 봉건시대의 말기로부터 근대에 이르러서는 점점 붕괴되어 왔으나 지금까지도 그 유습은 볼 수가 있다. 여기에서는 그런 일의 좋고 나쁨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유습은 오늘날의 클럽 활동 전반에 전승되어, 근대 민주주의 사상과 융합하였으며 학생 생활의 한가운데에 깊이 뿌리를 뻗고 있다.「
유술에서는 도장을 신성한 인간형성의 장으로써, 도장에서의 예의를 엄격하게 하였다. 도장을 진실하고 진지하게 기술을 닦으며 인간을 만드는 장소로 보고 예로 시작하고 예로 끝나도록 가르쳤던 것이다. 그 전승은 오늘날 강도관 도장에 있어서 수행자 마음가짐이나 강도관유도시합심판규정에서 알아볼 수가 있다. 강도간의 수련자 마음가짐의 예를 들면 도장에서 지켜야할 예의로써
1) 복장을 바로하고 단정한 자세로 서서 인사하고 출입할 것
2) 임원이나 선배에 경의를 표하고 그 지도에 따를 것
3) 연습 및 본(形)을 할 때는 앉아서 예를 하며, 시합할 때는 입례(立禮)를 행함을 본체(本體)라고 한다.
4) 정면을 상좌로 정하고 있으므로 서로 인사를 나눌 때는 상좌에 등을 돌리지 않도록 할 것
5) 시합이나 본(形)을 행할 때는 그 전후에 정면을 향하여 입례를 행한다.
6) 도장에서는 정좌한다. 몸이 불편해서 정좌할 수 없는 사람은 안좌(安坐) 혹은 기립할 것이며 함부로 하지 말 것
7) 도장에서는 벌거벗거나 담배를 피우지 말 것
등을 들고 있다. 유도시합에 있어서의 예법의 근본 뜻은, 서로 상대편을 존중하고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여 거기에 경의를 표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사람과 사람의 교제를 갖추고 사회질서를 지키는 도이며, 따라서 예법은 이 정신을 나타낸 행동양식이다. 정력선용, 자타공영의 도를 배운 유도인은 속으로 예의 정신을 깊이 하고 밖으로는 예법을 바르게 지키는 것을 중시하여 경례 및 배례의 방법을 명시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민주사회이며 도덕의 실태나 풍습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좋은 전통은 남기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나라와 민족이 길러낸 예의 마음은 공경, 친화를 근본으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일상생활에 규범과 질서를 지키게 하는 것이다. 도장에서는 길러진 예의 속 마음이 밖의 행위로써 나타나 밖을 정숙하게 함으로써 속에 예의 마음을 깊게 한다. 겸허한 마음가짐으로써 서로의 상대를 따뜻하게 하는 예의 심은 유도수련자에 있어 필수의 마음가짐인 것이다. 격렬한 격투의 형식을 취하는 유도에서는 잘못하면 조잡하고 난폭한 본능적 행동으로 달려가기 쉽게 하는데 이것을 극복하여 언제나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 예의 마음이다. 예법은 예의 근본인 내적 마음이 나타난 외적 행위이며 교육적으로 정돈된 외적 행위에 의한 내적 마음의 육성이라 할 것이다. 예의 마음을 잃지 않고 기를 단련하고 마음을 닦으면 거기에 유도의 정신도 길러지는 것이다. 이런 경우 상대는 자신의 기술이나 인간을 향상시켜 주는 협력자이며 지도자이기도 하다. 대인투기에 있어 상대에게 가는 예의 마음은 정말로 중요하다 할 것이다. 또 많은 사람이 연습하는 도장에서는 기능면에서 볼 때 1) 자기와 대등한 자와 연습(호각(互角)) 2) 낮은 자와 연습(下手) 3) 높은 자와 연습(上手)의 구별이 있으며 지도하고 지도받는 경우가 나오며 기능, 연령, 성별 등에 의한 장소의 구별도 가능하여 자연히 도장이 인간사회의 축수판 같은 느낌이 들게 된다.
유도에 있어서 예의 마음은, 현재 각국의 유도인들 사이에서도 잘 이해되고 있어 세계유도선수권대회, 각국 도장에서는 이러한 고래의 작법이 그대로 행해지고 있다.
최후로, 가납리정(嘉納履正) 강도관장이 국학원 대학의 「옥차(玉車)」에 쓴 「유도와 예의작법(禮義作法)」을 게제하고 이 항을 끝맺기로 한다.
유도의 예의작법 - 가납리정(嘉納履正)
「유도가 현재 스포츠로써 다른 외국의 스포츠와 함께 마찬가지로 취급되고 있음은 대단히 좋은 일로 언제까지나 무도라고 하는 좁은 범주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오랜 전통이 있는 것은 하루아침에 그 역사적으로 보지(保持)해온 것을 없애지 못함은 당연하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 여러 가지의 개혁이 실시됨은 오히려 전통의 좋은 점을 보지(保持)하는데 필요하다.
무도에 있어서는 예란 것을 중시해 현재 유도에 있어서도 예의를 중요시하고 있으나 이것은 외래 경기에서도 그라운드 매너 혹은 코오트 매너를 말해지는 점과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어 나는 유도가 새로운 시대의 경기로서 어떻게 변모해 간다 해도 예만은 깊이 유의해야 할 것으로 본다.
도장에 있어 정용(正容)이란 것이 강조되어 예로서는 정좌가 기본적인 예로 되어 있다.
최근에는 사회생활의 변화에 따라 옛날 같이 정좌할 것을 지도자도 강조하지 않고 있으나 할 수 있다면 정좌의 관습을 갖출 것으로 시합의 경우 등 마비가 일어나 반드시 오랜 동안 정좌를 바라는 것은 무리이겠으나, 어찌 보면 시합 중에 상의가 벗겨져서 전라로 되어 관중의 웃음을 사는 광경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일면 유도복의 개량이란 것도 생각되어진다. 개량의 시안은 2, 3가지 있으나 일장 일단이 있어 곧 실시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단계에 있다. 그러나 이런 점도 시합자가 마음을 써서 띠를 꼭 멘다든가 마음으로 용의(容儀)를 정돈한다는 자연스런 관습으로 행의(行義)가 좋은 시합자와 그렇지 않은 선수가 자연히 식별된다.
시합 중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는 강제로 해서 되는게 아니지만 기합을 넣는다는 기분에서 쓸데 없는 음성을 내는 것은 품위 있는 시합 태도라고 하기 어렵다. 또 지방으로 내려 가보면 손에 침을 뱉으며 상대와 시합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보게 되는데 이것도 품위라는 점에서 보면 좋은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너무 뻣뻣할 필요는 없지만 시합 개시 및 끝날 때, 침착한 그리고 정연한 진퇴는 유도와 같은 격렬한 경기에서는 더구나 깊은 감명을 받는다. 나는 정좌와 같은 것은 일면 관습이라고도 전술하였는데 초대 가노오 관장은 나중에 상당히 뚱뚱해졌었으므로 가정같은 곳에서는 정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관장은 정좌를 하지 않을 때는 목욕탕 속에서 뿐으로 식사중은 물론 언제나 정좌를 기본으로 기본자세로 하고 있었다. 현재의 젊은이들은 책상다리가 주로 되고 정좌(무릎꿇고 앉음)는 그 다음으로 된 풍습으로 되었다.
정좌라는 것은 하나의 익숙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젊은이들은 양복 생활이 주로 되어 게다를 신는 일은 극히 드물게 되었으나 한 세대 전의 일본인은 비가 오는 날에는 게다를 신고 있었음을 생각해보면 발의 미묘한 움직임 등 현재는 확실히 진보해가고 있으며 유도의 기(技)에 있어서도 발의 미묘한 씀씀이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아 진다. 나와 같은 명치시대에 태어난 사람도 현재는 게다를 신을 기회가 전혀 없으므로 틀림없이 높은 뒷축의 게다를 신고 거리를 걷는 것은 겁이 날 것이다.
일본인의 일상생활이 서구의 사람과 마찬가지로되어 가는 것은 유도의 기술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에 관한 이야기가 옆길로 흘렀는데 오랜 전통의 좋음이란 것에도 때때로 우리들은 반성하여 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1957년(소화 32년) 12월
라. 기술의 이념
1) 유의 술리
유도의 기술은 최소의 힘을 써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을 지도 이념으로 한다. 유능제강의 원리도 기술 상에 있어서는 이 의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큰 힘을 가진 어른이 작은 힘의 어린이를 던질 적에도 무리없이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가장 효과있게 사용하는 것이 바로 유도이다.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격기가 아닌 곳에 유도기술이 세계에 칭찬받는 요인이 있다. 유도 기술에 이 특질을 갖게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먼저 유도복을 착용하고 서로 어울렸을 때 잡은 유도복을 입고 하는 경기가 아니고 씨름이나 레슬링과 같은 나체 형식의 경기였다면 기술 보다도 힘이 승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또 유도에는 씨름에서와 같은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다. 기술의 영역이 같은 동계(同系)의 격기중에서 보다 광범위하며 기술에 대한 요구도가 높은 것 등이 특색으로 될 것이다.
그렇지만 기술은 이론을 실제로 응용하는 수단이다. 그런고로 유도의 기술도 유능제강의 「유의 원리」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말해 좋을 것이다. 리(理)를 나타내는 기술은 가노지고로가 창시한 근대 유도에 실현되어 있다. 가노노 사범은 전래의 이념을 현실의 기술에까지 구체화 하였다. 먼저 기술의 요소인 자세, 잡기, 이동, 몸쓰기, 기울이기, 지읏기, 걸기 등을 분석 종합하여 기술의 정형을 확립하고 응용기술을 계통세워 유도 기술을 유적(柔的)으로 현실화 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유는 무예의 부모」리고 하여 유능제강의 유를 매우 높였던 유술 고류파의 이상이 가노오 사범과 그를 돕는 제자들의 협력에 의해 단순한 이념적인 것에서부터 유의 술리를 꿰뚫는 기술에까지 구체화 한 점은 위대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일관하여 흐르는 유의 술리는 유술에 발달하여 그것이 다시 근대 유도에 살아있게 된 것이다.
2) 심기력(心氣力)의 일치
유술에서는 절대의 유를 기본으로 하고 마음에 강인한 것을 품어 의연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밖의 신체는 유연하며 마음먹는 대로 변화 자재의 작용을 할 수 있게 됨을 이상으로 하였다. 심기력 일치의 마음은 직신류나 기도류에서 말하는 부동지이다. 직신류에서는 내내전이라고 하는 전수가 있으며 거기에서 부동지에 이르게 된다. 「속 그 속의 작용이라 함은 즉, 부동지의 작용이다. 진실로 활은 활 쏘는 보자기에 들어가고 검은 상자속에 들어감으로 해서 이 세상은 평화하다 할 것이다. 다만 마음이 없음을 주로 하고 마음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지하고 한다. 이것이 류의(流儀)의 본체로, 유화인욕의 심체로서 활의 활줄을 퉁기는 것과 같다. 진실로 철석을 쏘아 뚫는 강함을 속에 품고 이것을 보지(保持)할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일이 일어나면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는 것처럼 신속하게 발출되는 것이다.
내내전에서 이제까지 길러온 위대한 힘, 철석을 부술 것 같은 매서운 기상을 속에 감추고 기가 온 몸에 충실하게 되며, 신체 용건할 때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으며 정말 부동지의 극소(極所)에 통달하여 심기체가 일치하여 무심의 상태가 된다. 이 위치에 도달하면 적이 어떤 것을 꾸며댄다 해도 이 마음을 빼앗지 못하게 된다. 도를 추구해서 술(術)에 즐긴다는 경지라 할 것이다.
3) 생명적, 절대적인 기술관
일본의 무기(武技)로부터 발달한 유술에는 생명에도 관계하는 무술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무사가 생사를 걸고 싸운 대인무기(對人武技)의 정신은 유술의 기술을 특색짓고 있다. 전인격 전생명을 걸었던 시기(施技)의 관념은 무술로부터의 발상일 것이다. 기술을 통하여 도를 실현한다는 인간 형성의 요도가 확립되어 있었던 까닭이라고도 할 것이다. 기술의 정신과 방법은 몸버리는 기술에 내 전부를 던져 넣어 싸우는 태도를 중시한다. 유술가가 기술의 이상 실현을 원하여 기술의 절대성을 믿고 한평생 끊임이 없이 기술의 깊은 뜻을 탐구하며 도를 탐구하는 태도는 동양 독특의 전통있는 기술관, 수행태도라 할 것이다.
4) 승부, 수심, 신체단련을 일체화하는 기술
고래의 기술 이념에 따라 수행할 시에 승부와 수심과 신체단련은 일체적으로 도달하여 얻을 수 있다. 유술에 있어 도를 구하는 한, 당연히 신심일여(身心一如)의 생명의 실상에 있어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의 도에 따라서 기술을 연마하고 심학도에 있어서 행한다.
이것의 기술 체계와 연습 방법은 유술을 집대성한 강도간 유도의 체육법 승부법 수심법의 확립에 의해 거의 완성되었다. 기술적으로 요약하면 고류파의 장점을 뽑아 여기에 창의적인 내용을 보태어 자유연습과 본(形)에 의한 연습방법을 대성한 것이다.
마. 본(形)
본에 의한 연습법을 유도 독특의 수련방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무술의 본(形)은 선조의 실전 체험과 창의에 의해 혹은 그 후계자의 공부와 고안에 의해 회득되어진 것이다. 어떤 것을 보아도 탁월한 특색 있는 기술을 계통적으로 조직 구성하고 있다. 유술은 본을 순서에 따라 연마함에 의해 기술에 숙달시키고 그 이치를 체득시키려고 하였다. 본과 거리가 먼 연습, 즉 본의 나머지를 위한 자유연습은 그렇게 많이 실행하지는 않았다. 또 자유연습을 행할 경우도 처음에 본을 행하고 본에 익숙하여지고 그 유의(流儀)를 몸에 베이게 한 뒤에 허가함이 보통이었다. 수(守), 파(破), 리(離)라고 하는 선의 용어는 무도 수행의 순서를 가르치는 말이었다. 수(守)에서는 수련의 어느 정도에 도달하기까지 일정한 유파를 굳게 지켜 결단코 다른 유파를 배워서는 안된다.
다음의 파(破)는 특정의 유파를 배운 뒤에는 하나의 파에 구애됨이 없이 널리 타류를 배우고 많이 스스로의 기를 발전시키려고 하였다. 마지막의 리(離)에서는 널리 다른 유파도 두루 익힌 뒤에는 그 모든 유파를 떠나 독창의 새로운 기술을 세우는 것이 좋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최초의 수의 단계에서는 본에 의한 철저한 모방주의가 지켜졌다. 본의 연습에 필사의 정진을 거듭하면서 상(想)를 닦고 념(念)을 불어넣고 한마음으로 자류(自流)의 정한 본에 완전히 들어가는 수련에 노력하였던 것이다. 수련자는 본이라고 하는 이상의 거울에 비추어 본에 정진하고 이윽고 본으로부터 나와 파에 나아가고 리에 비약하는 것이다.
젊은 노(能) 악사(能樂師)에 - 안배능성(安倍能成)
「노계(能界 : 일본의 가면무계(假面舞界)에는 여러 가지 생각되어져야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노 악사쪽의 마음가짐에 관해서 말씀드리자면, 사회 일반의 민주주의에 따라 가원(家元)의 능도(能度) 야하에 따라 금후의 노(能)의 존속 문제에까지도 영향을 미칠지 모릅니다. 노악은 옛 예술로 그 때문에도 전통이 있습니다. 이 전통이란 것에는 상당히 좋은 것이 있습니다. 전통을 떠나서 노(能)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중에도 본질적인 것과 말초적인 것이 있으며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버리지 않으면 안될 것도 있습니다. 그 점을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악(能樂)의 장래에 관해서는 선인의 심혈이 결정되어 전통이 되었으며 오늘과 같은 훌륭한 형태가 되었습니다. 형태에 들어가서 형태를 깨는 즉 나를 내세우지 않고 그 형태의 본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에 개성 - 은근하면서도 강한 개성이 생깁니다. 노(일본식가면무)도 거기에 옛것을 살리는 도가 있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예의 연습도 단련도 하지 않으며 그저 전통에 반역하는 것은 노가 아닐뿐만 아니라 예도 아닙니다. 예는 없어져 버리는 경우(일본 아악(雅樂)처럼)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없어져야 거기에 새로운 더 좋은 것이 탄생합니다. 여러분들이 「노」를 통하여 진실된 예의 정신을 파악할 결심으로 노예(能藝)에 몰두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에 의해 노는 살아있게 됩니다. 죽어 없어져도 어떤 형태로든 되살아 날 것입니다.
1950(소화(昭和) 25년) 발행의 월간 「유도」지에는 다음의 논설이 있다.
유도와 일본문화, 누정덕태소(?井德太昭)
「일본 중세의 아시카가시대(足利時代: 14~15세기)에 나타나 장군 요시마사(義政)의 비호를 받아 원악(猿樂)을 대성하고 노악 번전(繁展)의 기초를 쌓은 세아미원청(世阿彌元淸)은 많은 예도론을 저술하고 있으나 이중에서도 가장 중핵을 이루고 있는 것이 화전서(花傳書)일 것이다. 이것은 노악 수행의 기준을 표시한 교과서이며 참고서인데 노악에 있어서 가장 간요(肝要)한 조건은 일생을 통하여 연습에 전념하는 것이라 하고 그 방법을 흉내에 있다고 역설하였다. 흉내 즉, 자기가 연기하는 대상으로 되어버리는 것이 중요함과 동시에 선생의 연기 형을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배우고 소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경탄할 수 밖에 없는 피나는 수행과 연습이 요청된다. 그러면서도 세아미(世阿彌)는 예도의 극치는 공부하고 생각함에 의해 스스로 새로운 경지에 개척하는 것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라도 선인들이 모습을 계승하여 연마,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와 같은 노력하고 정진한 위에 처음으로 독창의 꽃을 열리는 것이다. 명인이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늦게 출현하는 것이다. 즉 세아미(世阿彌)에 있어서는 강하게 형(型)을 강요하고 있으나 그 형(型)을 뛰어 넘어 자유롭게 춤추는 단계를 이상으로 하고 있다. 이 점은 우리가 극히 주목하여야 할 점일 것이다.(중략)
이러한 예는 일본 국민이 「형(型)」에 대하여 품고 있는 관념의 전형적인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보이는 공통성은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가. 형(型)은 민족이나 인간집단의 문화 활동의 결과 열매를 맺은 형식이므로 그 후계자는 혼신의 노력을 계속하여 이것을 습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거기에 한정하여 형(型)은 인간을 강하게 한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그 형(型)을 부수고 그것을 극복하여야 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형(型)을 파괴하여 버리는 것 같기도 보이나 오히려 그 노력과 활동에 의해서 다시 새로운 형(型)이 창조되는 것이다. 인간 세상의 문화란 이와 같이 형을 부수고 또 새 형을 만들고 하는 일종의 순환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속도가 너무 늦어도 문화의 발달은 정체하며 퇴폐한다. 그렇다고 너무 빠른 것도 반드시 좋다고 할 수 만은 없다. 봉건시대는 전자의 경우이고 현대는 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랜 옛 형의 타파에 급한 나머지 새로운 형의 건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본(形)은 오래 된것이면서도 새로운 이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유도와 본(形)의 문제로 옮긴다.
가노 사범이 강도관을 창립한 당시, 연습은 자유연습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그 자유연습은 본(形)을 가르치면서 하는 자유연습의 연습과 함께 자연히 본(形)의 의미와 실제가 이해되고 자유연습에 대한 방법상의 원칙, 규범을 제공한다는 목적도 이루게 되었다. 때문에 본(形)을 제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었으나 얼마 못가 입문자의 수가 늘어 이제까지의 지도법으로는 계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여기에 가노 사범은 소위 본(形)의 연습을 따로 실시하여 보완하는 것이 보다 적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새롭게 제정된 것이 오늘날 세계의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것이 강도관의 본(形)이다.
본(形)에는 자유연습의 본(形)으로 문장을 배우는 경우의 문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자유연습의 본(形) 이것은 「메치기본」과 「굳히기본」으로 나뉜다.
무기대련의 본(形)으로 진검승부의 본(形), 유술을 많이 채택한 「극(極)의 본」, 1956년에 제정한 새로운 「강도관호신술」, 여자를 위하여 고안된 「여자호신유도법」도 있다. 유의 이치를 느린 동작으로 표시하는 부드러움(柔)의 본(形), 기도류 유술의 진의를 남긴 고식(古式)의 본(形), 유도의 이상을 체현(體現)하여 예술의 본이라고 불리어지는 「다섯의 본」, 국민체육법으로서의 「정력선용국민체육」등이 있다. 이들 본(形)에는 전통적인 본(形)의 정신이 흐르고 있으며 뛰어난 기술이 취급되어 있다. 미리 순서 방법을 정하고 그 규정에 따라 연습하는 본(形)은 오늘날 세계의 유도인들에 의해 행하여지고 있다. 이리하여 일본 고래의 본(形)이 가진 독자의 가치는 각국의 유도인들에 의해 추구되고 있다.
1953년 경의 구미제국에서는 언제나 강도관 제정의 여러 본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런데 호신법(Self-Defence)만은 각 나라에서 특색있는 본이 제정되어 일반에게 "Jiujitsu"라고 불리워지고 연기되고 있었음이 눈길을 끈다. 강도관에서도 1956년 새롭게 강도관 호신술을 제정한 원인도 된다. 제정 이후 Self-Defence의 본에 있어서도 강도관 호신술이나 극의 본, 여자유도호신법이 다른 본과 함께 각국에서 성행하고 있다.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도 메치기본의 연기가 공개되어 미국에서는 메치기본, 부드러운본 등의 전미여자선수권대회가 개최되어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바. 자유연습
본과 나란히 고래의 수행법에 자유연습법이 있다. 자유연습법이란 서로 예를 잃지 않고 상대에게 보상을 입히지 않는 한 도내에서 아무런 법칙이 없이 마음대로 행하는 연습 방법을 말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던지기와 굳히기를 가지고 자유연습의 기술이라고 한다.
자유연습은 17세기 경에 본 연습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고 19세기 중엽에 이룩된 막부의 강무소(講武所)에서 특히 감행하였다고 한다. 승부의 여지가 남아있는 상태란 「본에서는 보통 이렇게 기술을 걸면 저렇게 막는다든가, 이렇게 밀면 저렇게 물러선다든가하여 미리 그 방법이 정하여져 있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듣지 않을 경우, 여기에 대하여 저항하여 물리치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게 되어 때에 따라서는 기술을 듣게 하기 위해 서로 밀치거나 당기거나 하였는데 이를 승부의 여지가 남아있는 상태라 하였다. 그런 식으로 상대에 잘 듣지 않는 기술은 걸지 않고, 반대의 기술을 건다든가, 이에 대해 상대도 자기가 생각했던 기술이 걸어온다든가 하는 것에서부터 자유연습은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다.
유술에서의 자유연습은
1) 메치기를 주로 하여 이치에 맞추어 하는 것,
2) 던지기를 주로 하면서도 기술보다는 오히려 힘으로 하는 것
3) 오로지 조르고 누르고 꺾고 하는 것
4) 누르기를 주로 하는 것등이 있었다.
가노 사범은 1)의 던지기 3)의 조르기, 꺾기 4) 누르기의 장점을 모아 위험을 제거하고 창의를 보태어 심신자재의 자유연습법을 완성하였다. 자유연습기술에 의한 연습과 시합은 강도관유도의 기술적 정수이며 이것에 의해 유술가의 이상은 실현되었다고 보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급소치기의 자유연습법은 생각되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가노 사범은 급소치기를 포함한 시합이나 자유연습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세(在世) 중에는 실현되지 못했다. 1927년 제자들에게 「급소치기를 포함한 자유연습이나 시합은 여러 가지로 공부도 깊이 연구한다면, 그 방법은 없지는 않겠으나 다만 그것이 던지거나 누르거나 하여 우열을 정하는 것 같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 각국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유도는 대개가 자유연습과 시합이다. 유도가 국제적 스포츠로써 널리 해외에 보급, 발달한 이유의 하나는 자유연습 방법에 의한 뛰어난 연습법이 확립한 것에 있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자유연습은 임기응변의 힘을 기르고 심신을 단련하며, 승부의 기술을 몸에 익히게 하는 뛰어난 방법이다. 유술에서는 반상에 구슬을 굴리는 것처럼 자유자재한 몸쓰기와 진퇴 공방이 될 수 있는 것을 이상으로 하였다. 강도관 유도가 창시되었을 당시의 이상적인 자유연습법은 곧잘 유술가의 이상을 실현하였다고 하여 내외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920년, 1930년으로 시대가 나아감에 따라 창시시대의 정신이 잊혀지고 자유연습의 방법이 붕괴되어 왔다. 이것은 세계적인 경향이었다고 보인다. 자유연습은 위험을 제거하면서 행하면서도 정말의 경우에 즉각 활용할 수 있는 몸쓰기와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었다. 이점을 망각하고 매트 위에서의 이기고 지는 것에만 구애되어 다만 성적만을 다투어 자세를 나쁘게 하고 일거일동을 자중(自重)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자유연습의 현실은 서서히 민첩 자재한 움직임과 기술의 산뜻함을 둔하게 하는 경향으로 되었다. 유술 이래의 이상을 잃지 않고 근대 유도가 품고 있는 자유연습의 신수(神髓)를 한층 더 발휘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가노 사범도 자주 이점을 경계하고 있었다. 「체육의 이상에서 말하면 자연스럽게 서서 더욱 몸에 힘을 넣지 않고 필요에 응하여 목, 사지, 몸통, 어디에라도 민첩하게 또 자유롭게 힘을 넣고 의지의 명령에 따라 조화있는 운동이 즉각 될 수 있도록 마음먹지 않으면 안된다.」 또 무술면에서 말해도, 「상대가 언제 어디를 차오고, 찔러오더라도 몸을 피할 수 있으며 몸을 자유로 움직여 경쾌하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함이 중요하다. 체육으로서 무술로서 유효한 자유연습의 방법은 결국 강도관 창설 당시의 자유연습법에 되돌아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국제적인 관점에 서서 자유연습법을 살펴보기로 한다. 해외 유도계의 중심인 구미 유도계의 메치기 기술은 총괄적으로 말해 움직임이 적고 부드러운 맛이 안난다. 즉 양팔에 힘을 넣어 뻗치는 수가 많고 신체 전체의 유연과 조화에 결여되어 있다. 경묘하게 진퇴 동작을 하며 상대를 교묘하게 기울이고 순간의 호기를 잡아 무리하지 않고 기술을 거는 유도다운 멋진 기술은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고 있다. 강력한 체구, 특히 완력에 중점을 둔 힘으로 던져 버리는 유도 아닌 강도(剛道)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는 1952년 구미 9개 나라를 순회하면서 「움직이는 유도, 부드러운 맛이 있는 유도」를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일본의 젊은 세대의 유도인들에게서 어느 정도 충고로 받아들일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재, 각국 유도 지도자들 사이에는 자유연습의 상태가 생각되어지고 있어 바르고 심신자재의 자유연습의 실현을 지도의식 가운데에 품고 있는 지도자들이 있다고 추찰(推察)된다. 정말 좋은 일이다. 물론 일본 유도계도 이상적인 자유연습을 목표로 하여 끊었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1973년에 일본에 온 소련 팀의 감독도 일본 선수와 같은 진보된 자유연습의 단계에 도달하기에는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2. 투기(격기) 스포츠로서의 특징
광의의 투기(Combative Sports)란 주로 대인이 서로 사지구간(四肢軀幹)을 직접의 용구로서 또는 용구를 가지고 싸우는 기술을 말한다.
종래 격기에 관한 명칭으로는 투기, 무도, 격력(格力), 역기(力技), 체기(體技), 중기(重技)등이 쓰여져 왔다. 이것은 접어두고, 투기란 말이 많이 사용되도록 된 것은 1951년 이후의 일이다. 그 경위를 다음에 요약해 본다.
1945년 11월 일본은 패전하였으며, 학교에 있어서 체련(?練)과 무도(검도, 궁도, 유도)는 그 수업이 중지되고 유도는 학원으로부터 그 모습을 감추었다. 점령치하의 학교 체육에서는 스포츠가 중시되었으나, 운동교재 중의 투기 스포츠는 일본씨름만 남게 되었다. 그 후의 추이는 다음과 같다.
1) 1950년(소화 25년)의 학교체육 지도요강에서는 운동교재가 체조, 유희, 스포츠, 무용을 포괄하며 스포츠는 육상경기, 구기, 수영으로 나뉘었다. 육상경기 중에 일본씨름이 들어 있었다.
2) 1950년(소화 25년)의 학습지도요령에는 중학교에 레스링, 복싱, 씨름이 고등학교에서 레스링, 복싱이 교재에 올라 있다.
3) 1950년(소화 25년) 9월 13일에 학교유도가 부활하였으며 1951년 6월 18일에 문부성으로부터 「학교유도 지도의 안내서」가 발행되었다.
4) 1951년(소화 26년) 7월 25일 학교궁도가 새롭게 발족하여 1952년 2월 10일 「학교궁도의 안내서」가 문부성에 의해 작성되었다.
5) 1952년(소화 27년) 4월 10일에 학교에 있어서 죽력의 경기의 실시가 허가되어 동년 8월 1일에 「학교에서의 죽력 경기의 안내서」가 지도상의 참고로 문부성에서 발행되었다.
6) 1953년 7월 7일 학교에 있어서의 검도가 부활, 7월 20일 문부성은 위원 16명을 위촉하여 「학교 지도의 안내서」를 작성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중등학교 이상의 남자 교재중에 레스링, 복싱, 씨름, 유도, 죽력경기, 검도, 궁도가 채택되어 생도들을 지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의 경과를 보더라도 유도, 검도, 스모 등 일본에서 발생한 종목은 스포츠면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학교체육의 스포츠 교재로써 학원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이들 종목의 체육적 가치 및 교재에 있어서의 위치가 재검토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새로운 성격을 가지고 목표도 크게 넓혀진 전후의 학교 체육에 광의의 육상경기에 포함되어 실시되어온 스모나 외래의 투기종목인 레스링, 복싱에 덧붙여 유도, 검도, 궁도 등의 종목이 부활되었음은 커다란 변화였다. 이러한 시점에서 운동영역으로써 일괄하여 표현할 수 있는 종합명칭이 필요하게 되었다. 유도, 검도, 궁도 등의 종목과 레스링, 복싱 등의 외래 스포츠를 포함한 종합명칭으로서 투기란 용어가 학교체육 교재로써 나타났던 것이다. 1951년 유도가 학원에 부활하였을 때의 투기의 영역을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 유희
- 무용
- 기타
체육운동 - 체조
- 경기 - 육상경기
- 수상경기
- 구기
- 동계경기
- 투기 - 유도
- 씨름
- 궁도
- 죽력경기
- 레스링
- 복싱
-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