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위한 '삼계탕 한 그릇'
# 외할머니, 수탉의 반란을 응징하다
해마다 초복날은 삼계탕으로 신고식을 치른다. 보양식을 먹으면서 몸과 마음의 기운을 북돋우는 것이다. 이마에 땀까지 송글송글 맺혀가며 맛나게 삼계탕을 먹고 난후 닭죽으로 마무리를 하면 행복한 포만감이 밀려온다. 삼계탕을 먹고 나면 희한하게도 원기충전한 기분이 든다. 나에게 삼계탕은 단순한 보양식이 아닌 소울푸드(soul food)이기 때문이리라.
삼계탕은 유년시절의 아픈 기억과 함께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다. 어릴 적 유난히 몸이 허약했던 외손녀를 위한 외할머니의 처방은 닭죽이었다. 밤 세워 앓고 난 후 입안이 까슬까슬하고 쓴맛이 돌아 도무지 밥 한 숟가락 입에 넣지 못할 지경에도 닭죽은 내 입맛과 기운을 돌려놓곤 했다. 외할머니의 닭죽은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처럼 치유음식이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시절,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자란 나는 아침마다 닭장에서 암탉이 낳은 계란을 찾아 바구니에 담아 부엌으로 달려가는 일이 생활의 낙이었다. 그러나 나의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는 훼방꾼이 있었으니 바로 수탉이다. 수탉의 눈에는 내가 계란을 훔쳐가는 꼬마도둑으로 보였던지 닭장 부근을 지나기라도 하면 위풍당당하게 붉은 볏과 꼬리 깃털을 세우고 눈 까지 부릅뜨며 달려 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닭들이 모이를 쪼아 먹으며 노닐고 있는 마당을 지나가는 데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호시탐탐 나를 노리던 수탉이 이때다 싶었는지 푸드득 날아올라 내 눈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방어를 하거나 도망칠 틈도 없이 수탉의 일격에 당하고 말았다. 그 때가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린 마음에 너무 놀라 울면서 외할머니에게 달려갔더니 눈을 다치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라며 이마에 난 상처에다 빨간약(머큐로크롬mercurochrome)을 발라 주었다. 그때는 빨간약이 거의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던 시절이다.
결국 수탉의 반란(?)은 참혹하게 끝이 났다. 어디 선가 몽둥이를 들고 나타난 외할머니의 추격에 붙잡힌 수탉은 닭백숙이 되어 그날 저녁 밥상에 올랐다. 수탉의 반란 덕분에 닭백숙과 닭죽을 먹게 된 동생들은 닭에게 혼쭐난 나를 놀려가며 연신 '맛있다'를 외쳐댔다.
그 후로도 초등학교시절 내내 앞마당에선 닭들이 노닐고 가족들을 위한 보양식으로 닭백숙과 닭죽이 밥상에 오르곤 했다.
# 우리집 대표 보양식 '한방 삼계탕'
어려서 부터 외할머니의 정(情)이 담긴 삼계탕에 입맛이 길들여진 탓인지 여름철이면 가족 건강을 위한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끓인다. 몸에 좋다는 한약재까지 준비해서 정성껏 삼계탕을 끓여봐도 어릴 적 먹던 그 맛보다는 못하다. 좁은 닭장에서 사료와 각종 항생제까지 먹여가며 단기간에 사육한 닭과 토종닭의 맛이 다른 것은 당연지사! 우리나라 토종닭은 개량종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과 콜레스테롤 함량은 낮다. 또 개량종 닭들은 보통 양계장에서 가두어 기르지만 토종닭은 뜰에 풀어 놓고 기르기 때문에 운동량이 많아 살이 검붉고 단단하며 콜라겐 함량도 높아 고소하고 쫄깃한 맛이 살아있다.
중복 날에도 순수 토종닭은 아니지만 조금 비싼 시골닭(자란 곳만 시골이지 양계장에서 사육된 닭일지도 모를 일이다)을 사다 삼계탕을 끓였다.
먼저 인삼, 황기, 은행, 가시오가피, 당귀, 대추, 감초, 구기자 등을 찬물에 씻은 다음 커다란 냄비에 물을 붓고 한약재를 넣어 30~40분 정도 푹 끓인다. 삼계탕용 한방재료는 시장이나 할인마트에 가면 아예 한 번 끓일 분량만큼 포장해서 파는데 3천원~5천원 선이다. 요즘에는 삼계탕용 동충하초까지 따로 판다.
준비한 닭을 깨끗하게 손질하고 불린 찹쌀과 마늘을 닭의 뱃속에 채워 넣고 꼬치로 마무리한다. 한약재가 어느 정도 우러난 물에 닭을 넣고 센불에 끓이다가 중불로 40분~1시간 가량 끓인다. 삼계탕을 먹고 남은 국물에 닭의 살만 발라 넣고 닭죽을 끓여도 그 맛이 유별나다.
삼계탕은 인삼이나 한약재를 따로 헝겊에 싸서 넣고 푹 고아 인삼의 성분이 우러나게 하여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국물만을 마시거나, 국물에 양념한 고기를 넣어 먹기도 한다. 이 때 인삼을 닭의 뱃속에 넣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인삼을 찹쌀 등과 함께 섞어서 닭 속에 넣어 끓이면 닭 뼈에 인삼의 영양분이 스며들어 인삼의 영양분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또 한약재를 너무 많이 넣으면 짙은 한약냄새 때문에 삼계탕 고유의 맛이 자칫 퇴색되기 쉬우니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요즘엔 삼계탕을 직접 끓이지 않아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즉석삼계탕도 있다. 9천원~1만원 정도면 한방 삼계탕을 먹을 수 있다. 2만원이 넘는 산삼배양근으로 만든 삼계탕과 1만원 대의 유기농삼계탕까지 등장했다.
어느날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간편성이라는 유혹에 흔들려 즉석삼계탕을 잠시 만지작거려 보았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을 보자 '이 값이면 차라리 유명한 삼계탕집에서 먹는 편이 낫겠네'라는 생각이 들어 생닭과 부재료를 골랐다. 역시 번거롭고 시간은 걸려도 정성껏 삼계탕을 끓이며 콧노래를 부르는 편이 더 행복하다.
# 복날, 21세기 명절되다
뭐니뭐니해도 복날을 대표하는 보양식은 삼계탕이다. 복날이면 여기저기서 삼계탕을 먹으려고 그야말로 아우성이다. 지난 초복날 한 일간지 1면에 유명한 삼계탕집 앞에서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긴 행렬을 찍은 사진이 나와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마치 복날이 명절이라도 되는 듯 휴대폰으로 '삼계탕 먹고 힘내세요' 삼계탕 먹고 건강 챙기세요' 등 안부 메시지가 전달되기도 한다.
실제로 올해 초복 때 영계, 황기 등 삼계탕용 품목의 판매량이 평소보다 3~4배 정도 늘었다고 한다. 삼계탕집만의 특수가 아니라 가정에서도 복날을 즐긴다는 얘기다. 또 한 마트의 경우 지난 초복때 복날 관련 상품 판매량이 평소에 비해 무려 3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원래 복날인 삼복(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있는 속절로 규정하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절기나 명절은 아니지만 근래 들어 복날 풍습을 설이나 한가위 등 명절 때 행해지는 세시풍속처럼 확산되어 지고 있는 분위기다. 단오날, 정월대보름, 동짓날조차 바쁜 현대인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대신 복날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닭업체들은 복날 특수를 누려서 좋고 삼계탕을 먹은 사람들은 몸과 마음까지도 건강해져서 좋으니 삼계탕은 대한민국 대표 보양식이라 할만하다.
삼계탕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끄는 한국 음식중 하나이다. 맛도 맛이려니와 한국의 인삼이 세계 최고라고 알려져서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모양이다. 일본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유명한 삼계탕집이 있는가 하면 영화감독 장예모는 삼계탕을 '진생 치킨 수프'라 부르며 한국에 올 때마다 찾는단다.
일찍이 삼계탕도 '한류음식'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려왔던 셈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도 요리와 여자이야기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에서 이렇게 극찬하고 있다.
"젓가락을 갖다 대면 껍질이 벗겨지고, 살이 뼈에서 떨어져 나와, 쫀득쫀득하고 하얀 덩어리로 변한 찹쌀과 함께 수프 속에 녹아든다. 봄에 녹아 내리는 빙산처럼. "
'녹아 내림이 그냥 그대로 행복으로 변해버리는 추상물'이라는 무라카미 류의 극찬처럼 역시 삼계탕은 맛과 영양면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울만하다.
무더위로 인해 불쾌지수가 최고로 올라가고 있는 요즘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처럼 뜨거운 삼계탕으로 더위를 다스려 보는 건 어떨까?
# Tips!! 어디서 맛 볼까?
<여기가 삼계탕 잘 하는 집>
혹시 '복허리에 복달임을 한다' 라는 말을 들어 본적 있는가. 아마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게다. 간단히 주석을 달아보면 '복허리'는 초복에서 말복까지 동안을 말한다. '복달임'은 고기 같은 음식을 먹고 복더위를 물리치려는 것을 말한다
복날 절식이자 여름철 별미로는 역시 삼계탕이 으뜸이다. 몸에 좋다는 한약재까지 들어간 삼계탕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약식동의(藥食同意)의 개념이 짙게 배어있는 음식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찜닭, 닭계장, 닭한마리, 닭튀김, 양념치킨, 치킨 샐러드… 색다른 맛으로 입맛을 유혹하는 닭요리가 많지만 그래도 삼계탕의 깊고 순수한 맛이 최고다. 뽀얀 삼계탕 국물과 야들야들 한 살이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 그 맛, 삼계탕의 묘미는 바로 이 영계의 속살에 있는 것 같다.
복날에 삼계탕을 찾는 이들을 위해 추천하고 싶은 맛집들이 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 조금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맛집으로 유명한 곳은 다 이유가 있다. 서울의 내로라 하는 삼계탕 집으로는 효자동의 토속촌과 시청 부근의 '고려 삼계탕'이 유명하다.
원래 유명한 집이지만 대통령의 단골집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은 '토속촌'(02-737-7444)은 걸쭉한 국물이 특징이다. 닭요리의 대중화에 앞장선 '명동영양센터' 삼계탕이 맑은 국물에 깔끔한 뒷맛을 낸다면 토속촌 삼계탕은 묵직한 맛을 낸다. 육수맛의 비결은 잘 모르겠지만 고소한 맛이 어찌나 강한지 곡물 가루나 견과류를 넣은 듯 하다. 산뜻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 집의 걸쭉한 국물이 다소 텁텁하다는 평이다.
49일 키운 산란용 수탉인 '웅치'를 쓴다는 서울 서소문 '고려 삼계탕'(02-737-1888)은 닭고기가 퍽퍽하지 않고 단단하고 쫄깃하다.
이밖에 '혜천' '백제삼계탕' '풍기삼계탕집' '서울삼계탕' 등도 추천할 만하다.
서울 이태원에 있는 전복으로 유명한 '혜천'(02-790-2464)은 전복을 껍데기째 닭과 함께 끓인 '해천탕'이 별미다. 전복과 닭육수가 섞여 맑으면서도 감칠맛이 있다.
또한 외국 관광객이 또 손님의 절반을 넘을 만큼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백제삼계탕(02-776-3267)은 기름기가 없이 담백한 육수 맛이 좋다. 이 집 겉절이와 찰밥을 따로 사가는 일본인도 많다.
영주시내 경찰서 인근의 풍기삼계탕집(054-631-4900)은 현지인들 도 추천하는 삼계탕 원조집. 주인 이영자씨가 시어머니로부터 대 물림해 운영하고 있는데 3년된 수삼과 그날그날 잡은 닭을 가마 솥에 넣고 푹 끓여내 국물이 진하고 구수하다.
부산 남포동 음식 골목에서 대를 이어 삼계탕을 끓여온 '서울삼계탕'(051-245-3696)은 40년 넘은 관록에서 우러나오는 국물이 진하다.
출처 : CJ패밀리 클럽 <조이2푸드 이진랑의 음식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