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훈의 봄은 오는 봄인가 가는 봄인가
그이를 두고 모두가 뜻을 잇겠다고 했다. MB를 심판하고 민주사회 건설하며 통일조국 이룩하여…. 그러나, 농업농민문제가 해결되는 날은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날이며, 비정규직과 실업문제 또한 전사회적 변혁 없이 되지 않는다며, 논둑 멀리 울산과 용산, 대추리와 임진강의 총구 앞에서 전선운동에 손익분기점이란 없다 외치던 이는 꽃나무와 강아지와 병아리만 바라보다 그것들의 봄 앞에서 세월을 끊고 말았다. 지난 겨울의 모진 추위 끝에 온 봄이었기에 영원히 멈추게된 화창한 이 오월의 종점으로 그이는 마침내 행복해진 것일까. 그래서 우리들도 그이의 채찍이 사라진 이 봄을 문득 사랑하여 뜻을 잇겠다 마음 놓고 자만의 눈물을 늘어놓게 된 것일까.
우리 현대사의 가장 첨예한 시기, 연대의 눈동자를 처음으로 열며 땅 없고 집 없는 자랑을 아이처럼 졸라대던 이가 집을 짓고 화초를 가꾸고 있었으니, 그이는 이미 그때 국토의 끝 먼 남도에서 우리와 목숨을 달리했다 해야 한다. 더구나, 죽음 같은 몸을 끌고 나와 해남과 화순 위에 세워졌을 때 그이의 옛 목소리는 우리의 변명이 되었고, 아스팔트 농사꾼을 아스팔트에 묻음으로써 그이와의 결별은 정당화된다. 그이를 향한 추억에 우리는 자못 떳떳했으며, 그이 없는 자리에 잠시 그려진 향수는 누군가의 특권이 되어 쌓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그이는 적어도 세상을 향한 두 가지의 빛을 안고 있었다. 언제라도 다정하며 어디서나 유쾌하던 직진의 용사. 그러나 이것은 그이만의 독특한 품성을 넘어 우리 모두가 반드시 갖춰야 할 시대의 덕성이다. 변혁과 혁명이라는 것이 별스런 것이던가. 계급과 계층 따라 서로 다른 시야를 가진 사회에서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의 한 눈을 찾아내어, 이로써 사유의 질서를 조명하며 생활과 행동을 재조직하는 바가 그것이었다. 때문에 그이의 용기 어린 낙천성이야말로 변혁의 주체를 형성함에 있어서 필요충분조건의 절대치이다.
그러기에 더욱 빛나던 것은 그이의 전투력 너머에 있었다. 배 고프면 모였다가 제 배 차면 한 눈 팔고 그때마다 새로이 배 고픈 이들을 찾아내어, 우리는 그것을 연대라 이름 붙여 으스대지 않았던가. 그것이 얼마나 맹탕인가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치권력이 너무도 빤하게 꿰어차고 있다. 때문에 노동법도 농협법도 가차없이 개악시키고 EU FTA 또한 변명의 기척도 없이 비준해버리며, 오월의 핏물을 떠간 노무현조차 그의 배신을 부끄러워할 줄 몰랐다. 이를 향해 그이가 외쳤었다. 우리는 부분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쌀문제도 해고문제도 한 뿌리의 악한 후예들인 것, 내 눈 앞의 작은 이익을 뛰어넘으라, 전선운동에는 손익분기점이 없다.
제 몸에 기름불을 붙이고 사지를 피 속에 담궈온 수십 년의 분투는 제자리만 긁고 있고, 더구나 총선 대선을 향한 연합과 통합 등의 소동이 이익의 양과 그 위치를 다투는 줄다리기로 반복되는 시점에서 그이의 지적이야말로 역사의 정곡이다. 누구와 어떻게 손 잡을 것인가가 관건이 아니다, 그렇게 내미는 나의 손을 잘라 버려라. 그럼으로써 안을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전진하는 희망의, 행복이 마중 나오는 세계이다.
그이의 이 두 면모만으로도 우리는 시대의 머리띠로 그이를 받들어 올렸어야 한다. 제 아파트 값 하나로도 겨레의 장래를 팔아넘기고 유력 정당들의 좌클릭 엄살은 오늘도 온 나라를 흔드는데, 우리의 비루한 골목에는 제2 제3의 노무현이 일제 치하 밀정들처럼 준동하고 있다. 비분 어린 이 지리한 회전목마, 그것은 눈 앞의 내 이익만을 좇는 우리들 마음 속의 MB와 노무현이 돌리는 것 아니던가. 노동자들이 식량주권을 농민들의 자구책이라 한 눈 깔고 보고, 농민들은 노동현장의 이합집산을 배부른 자들의 아귀다툼으로 질시만 하고 있는 한, 목마는 썩은 살로 기워지며 여전히 돌아갈 것이다. 그이는 암흑의 톱니 사이에 일생을 내던지며 외쳤었다.
그러나 부지깽이 헌 빗자루도 다 나와 거들어야 하는 날, 그이는 제법 한가롭게 학교를 만든다며 못질이나 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전쟁이 끝난 마당에 자결로써나마 제 식솔들을 챙겨야 했을 것이고 노무현 또한 제 목숨을 갖다 바치며 무리를 보전코자 했다. 그이는 무엇을 지켜주고자 세상을 돌아앉았던 것일까. 그이는 4월 그날의 아스팔트 위에 18일 동안이나 말없이 앉아 있었다. 축지법으로 달려가 가족의 안부를 물어가며 우리가 무엇을 상대하고 있는가를 낱낱에게 밝혀주었고, 감옥은 나 같은 사람이 들어가는 거야, 활짝 웃던 칠순의 청년은 그 마른 아스팔트 위에서 얼마나 좀이 쑤셨을까. 그럼에도 애정이 폭풍 같고 결의가 번개 같던 그이는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설 힘이 없었을 리도, 세상에 두려운 것 또한 있을 턱이 없던 우리의 용사는 무엇을 기다렸던 것일까. 아니면 그 어떤 무시무시한 것에 가로막혔던 것일까. 4월의 아스팔트 앞에 마지막 나서며 그이가 한 마디를 남겼다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조직 없는 사람이 불쌍하나 그대들은 조직이 있으니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날 해남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행복에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용사는 전선을 떠나 있었고, 그리고 그이의 덕성을 따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이가 계실 때조차 변변한 연대체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 우리들이 그이의 뜻을 잇겠다며 기념사업과 추모운동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도 우리는 4월에 멈춰선 그이의 아스팔트, 그 지점으로 나아가 그이를 다시 만나 보아야 한다.
세대교체를 자청하고 후진양성에 자원했다는 것은 졸장부의 변명이고 한낱의 미명일 따름이다. 칠순의 농민회장과 팔순의 의병대장은 다 스스로 나선 이들이었다. 우리의 정광훈이 그이들보다 뒤에 섰겠는가. 민족의 생사를 가름한 역사의 칼날이 다가오고 있는 날, 그이조차 물러나 있게 만든 것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있을 우리의 말과 행동은 모조리 거짓이다. 더구나 몸으로 행동으로 새긴 그이의 메시지는 우리 현대사 대중운동의 요체이며, 총선 대선정국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그것은 더욱 유일적 금과옥조이다. 산 속에 숨은 이조차 이끌어내야 할 것을 어떤 밀약이 있어 그이를 멀리 두고 말았다면 이것부터 밝혀야 할 것이고, 이런 토대 위에서만이 우리의 장래는 비로소 전망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이의 가련한 봄이 오는 봄이 되기 위해서도.
후진하는 트럭의 열린 적재함 위에서 금남로를 떠난 영원한 청년의 실직을 추상하며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지역연구위원
김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