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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제1강 - 3 (2010. 03. 01)
世主妙嚴品 第一之一
二.莊嚴 - 2.菩提樹의 莊嚴
3. 宮殿의 莊嚴(궁전)
4. 師子座의 莊嚴(사자좌)
三. 世尊의 不可思議한 德
1. 德의 根本(덕 근본)
2. 三業徧滿(삼업변만)
(1) 意業(의업)
(2) 身業(신업)
(3) 語業(어업)
(4) 譬喩(비유)
3. 威勢(위세)
4. 福德(복덕)
5. 受生(수생)
부처님께서 태자의 몸으로 출가하셔가지고, 6년 고행 끝에 보리수 밑에서 비로소 正覺(정각)을 이루셔서 불교라고 하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불교세계의 일원으로써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연원을 화엄경을 통해서 짚어보는 그러한 시간이고, 그 부처님께서 터득하신 깨달음의 내용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이것은 참, 우리들 중생으로서는 그저 영원한 과제이고, 세세생생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깨달음의 세계를 낱낱이 잘 그려놓은 이런 소중한 경전이 있어서 그나마 조금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이렇게 문틈으로나마 엿볼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깨달음의 시각으로 묘사해본 이 세상, 땅에 대한 장엄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2, 菩提樹의 莊嚴(보리수의 장엄)
其菩提樹(기보리수)가 高顯殊特(고현수특)하야
金剛爲身(금강위신)하며 瑠璃爲幹(유리위간)하며
衆雜妙寶(중잡묘보)로 以爲枝條(이위지조)하며
寶葉扶疏(보엽부소)하야 垂陰如雲(수음여운)하며
寶華雜色(보화잡색)으로 分枝布影(분지포영)하며
復以摩尼(부이마니)로 而爲其果(이위기과)하야
含暉發焰(함휘발염)하야 與華間列(여화간열)하며
其樹周圓(기수주원)에 咸放光明(함방광명)하며
於光明中(어광명중)에 雨摩尼寶(우마니보)하며
摩尼寶內(마니보내)에 有諸菩薩(유제보살)호대
其衆如雲(기중여운)하야 俱時出現(구시출현)하며
又以如來威神力故(우이여래위신력고)로 其菩提樹(기보리수)가
恒出妙音(항출묘음)하야 說種種法(설종종법)호대
無有盡極(무유진극)하니라
其菩提樹(기보리수)가 高顯殊特(고현수특)하야,
가보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잎도 아주 기름지고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주 殊特하지요. 특수하지요. 높고 아주 뛰어나다. 그런데
金剛爲身(금강위신), 다이아몬드로 몸뚱이가 되었더라.
이렇게 묘사 했어요. 다이아몬드로 金剛爲身이다. 그리고
瑠璃爲幹(유리위간)이다. 유리도 지금은 흔하니까 그렇지만, 인조유리든 자연유리든 간에 유리도 아주 보물중의 보물이지요. 그런 유리로써 줄기가 되었고, 큰 보리수나무 몸뚱이는 다이아몬드로 되었고, 그 중에서 낱낱 중간줄기는 유리로 되었고,
衆雜妙寶(중잡묘보)로써, 거기에 여러 가지 妙寶. 아름다운 보배로써
以爲枝條(이위지조). 가지가 되었다. 큰 가지 枝자ㆍ작은 가지 條.
큰 가지 작은 가지를 이루고 있더라. 그 다음에 몸뚱이 굵은 가지, 그 다음에 큰 가지ㆍ작은 가지 그 다음에 당연히 잎이 나오겠지요.
寶葉扶疏(보엽부소)하야, 보배로 된 나뭇잎이,
扶疏라고 하는 것은 아주 무성하고 또, 무성하면서도 서로서로 도우고ㆍ소통하고ㆍ뚫리고ㆍ각자, 말하자면 잎 하나하나가 하늘거리고 있는 모습을 扶疏라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해서 垂陰如雲(수음여운)이라. 그늘을 드리운 것이 구름을 드리운 것 같더라.
구름 하면 우리가 얼른 상상이 안 가는데, 인도에서 소위 그 雨期(우기)에 들어섰을 때 저~~ 평원에서부터 구름이 몰려오면요?
이 구름은 이쪽에선 우리나라 같은 데선 정말 상상도 못할 그런 두껍고 무거운 구름입니다. 보리수나무 잎의 그늘이, 마치 우기에 구름이 몰려오듯이 그렇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더라. 그런 말입니다. 그리고
寶華雜色(보화잡색)으로써, 보배꽃 여러 가지 색깔로써
分枝布影(분지포영)하며, 가지를 나누고 또 그림자를 드리우고
復以摩尼(부이마니)로써, 다시 마니로써
而爲其果(이위기과)하야, 그 열매가 되어있고,
含暉發焰(함휘발염)이라. 그 열매는 아주 빛을 머금고 있어요. 그래서 그 머금고 있는 빛에서 그 빛이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겁니다. 참 이런 것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여기에 근접해서 이해할 수 있을 런지...
與華間列(여화간열)이여, 그 과일하고 열매하고 꽃하고 사이사이에,
與華間列이라고 하는 것은 꽃과 그 열매가 사이사이에 배열이 잘 되어있는 그런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단순하게 앞에서 땅 이야기나 보리수 이야기나 앞으로 나올 사자좌나 궁전이야기나 이 모두가, 단순하게 보리수나 궁전이나 사자좌를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그 한 구절, 한 구절이 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법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일일이 구절, 구절마다 다 맞추어서 말씀 드리기로 하면 정말 이것은 끝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은 생략하고요. 일단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이 너무나도 깊고 높고 풍부하기 때문에, 그 풍부한 깨달음의 내용을 보리수에 빗대어가지고 보리수를 묘사하면서, 거기에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보리수뿐만이 아니라 궁전도 마찬가지입니다.
其樹周圓(기수주원)에, 그 나무 둘레에
咸放光明(함방광명)하고, 또 빛이 척~~~ 이렇게 비치는 겁니다.
於光明中(어광명중)에, 그 광명가운데서는
雨摩尼寶(우마니보)하며, 마니 보배가 그냥 비 내리듯이 쏟아지고 있어요. 그 광명에서 그냥 쏟아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비 내리듯이 쏟아지는 摩尼寶內(마니보내)에, 마니 보배 안에는
有諸菩薩(유제보살)호대, 여러 보살들이 그 보배 안에 있는 겁니다.
其衆如雲(기중여운)하야, 그런데 그 대중들은 구름처럼 많아요.
보살이 꽉~~ 찼어요. 광명 속에 보살이 구름처럼 꽉 찼다.
俱時出現(구시출현)이라.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 줄 맞추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출현한다.
이런 것들도 부처님의 마음속에 있는 깨달음의 덕을 이렇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이러한 것은 비단 석가모니부처님 한 분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사실은 이러한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
그 기회를 얻지 못해가지고 표현이 안 된 것이지요.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깊이 인식하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독송하고 하~~~ 깊이 읊조리면서, 이것이 우리 마음의 풍요로움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우리가 다 갖추고 있는데 이것이 기회를 얻지 못해서 표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이해해야 됩니다.
又以如來威神力故(우이여래위신력고)로, 또 부처님의 威神力 때문에,
其菩提樹(기보리수)가, 그 보리수가 恒出妙音(항출묘음)이여, 나무가 가만히 있겠어요? 으레 바람이 불 것이고 바람이 불면 항상 아름다운 소리를 내요. 그런데 그 아름다운 소리가 뭐라고요?
說種種法(설종종법)호대 無有盡極(무유진극)이라. 가지가지 진리의 가르침. 법을 설하는데 끝도 없이 끝도 없이 끊임없이 그 법을 설해주더라.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보리수의 장엄에 대한 묘사를 참 아주 멋지게 했지요?
소동파도 상총선사한테 “왜 사람이 설하는 법만 자꾸 와서 들으려고 하느냐? 無情說法(무정설법) 소리를 좀 들을 줄 알아라.” 그러니까 이 천하의 소동파가 無情說法이라는 소리를 처음 들었어요. 그래서 그것이 머리에 딱~~ 화두로 잡고 있어서 길을 가나오나 항상 그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돌아오는 길에 큰 폭포가 떨어지는 개울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개울물 소리를 못 들었어요. 그런데 눈을 드러서 그 폭포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까 소리가 그 때부터 들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읊은 그 유명한 시가 있지요.
溪聲便是廣長舌(계성변시광장설)
山色豈非淸淨身(산색기비청정신)가? 저 시냇물소리 폭포수 소리가 어찌 부처님의 무진장의 설법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 폭포를 토해내는 저 청산은 저절로 비로자나부처님이지. 절로 비로자나부처님이고, 비로자나부처님이니까 그 폭포를 통해서 무진 설법을 토해내는 것이다.
夜來八萬四千偈(야래팔만사천게)하니
他日如何擧似人(타일여하거사인)가? 하루 종일 폭포수가 떨어지면서 굉음을 내는데, 하루 동안 설한 것이 八萬四千게송입니다. 그 도리를 他日에 누구에게 이해시킬 것인가? 누구에게 이 이치를 이야기해줄 수 있겠는가 하는 그런 소동파의 오도송. 아주 멋진 게송이 생각이 나지요.
여기도 보십시오. 그 보리수가 항상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데,
說種種法(설종종법)이라. 가지가지 법을 설해서 끝없이, 끝없이 소리를 내더라 하는 그런 菩提樹의 莊嚴입니다. 언제 부다가야 부처님이 깨달으신 금강보좌, 옆에 있는 보리수. 보리수에 가서 이러한 種種法. 미묘설법을 우리가 들어야할 줄 압니다. 그 다음에
3, 宮殿의 莊嚴(궁전 장엄)
如來所處宮殿樓閣(여래소처궁전누각)이 廣博嚴麗(광박엄려)
하야 充遍十方(충변시방)이어든 衆色摩尼之所集成(중색마니지
소집성)이라 種種寶華(종종보화)로 以爲莊嚴(이위장엄)하며
諸莊嚴具(제장엄구)가 流光如雲(류광여운)하야
從宮殿間(종궁전간)으로 箤影成幢(취영성당)하며
無邊菩薩(무변보살)과 道場衆會(도량중회)가
咸集其所(함집기소)하야 以能出現諸佛光明(이능출현제불광명)
하며 不思議音摩尼寶王(부사의음마니보왕)으로
而爲其網(이위기망)하며 如來自在神通之力(여래자재신통지력)
으로 所有境界(소유경계)가 皆從中出(개종중출)하며
一切衆生(일체중생)의 居處屋宅(거처옥택)이
皆於此中(개어차중)에 現其影像(현기영상)하며
又以諸佛神力所加(우이제불신력소가)로 一念之間(일념지간)에
悉包法界(실포법계)하니라
如來所處宮殿樓閣(여래소처궁전누각)이, 사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내 눈으로 보면, 저의 중생의 안목으로 보면 궁전도 없고, 누각도 없고 그저... 풀 깔고 앉았는데 풀도 이미 말라서 비틀어졌고, 그저 딱딱한 그 바위. 아마 되게 불편했을 겁니다. 그런 상황인데 깨닫고 나니까 어떻게요?
그대로가, 그대로가 궁전누각입니다. 그런데 廣博嚴麗(광박엄려)라. 그랬어요. 좁은 것이 아니라 아주 넓고, 넓고 아주 아름답게 화려하게 장엄이 잘 되었더라. 또 充遍十方(충변시방)이여, 온 시방에 꽉 찼어요.
그러니까 세상 전체가 바로 내가 사는 궁전이요, 내가 사는 누각이더라.
어디 따로 내 집이고ㆍ따로 내 절이고ㆍ내 방이고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나와 세상은 한 몸입니다. 나와 세상은 한 몸입니다.
天地는 與我一體(천지여아일체)입니다. 하늘과 땅은 나로 더불어 한 몸입니다. 깨달음의 안목에서 보면 그냥 순식간에 그렇게 되니까요.
充遍十方. 그랬습니다. 그리고
衆色摩尼之所集成(중색마니지소집성)이라.
그 궁전누각은 온갖 아름다운 마니보배로써 만들어져 있더라.
種種寶華(종종보화)로써 以爲莊嚴(이위장엄)이여. 거기다가 온갖 아름다운 보배 꽃으로 잘 장엄을 했으며,
諸莊嚴具(제장엄구)가, 여러 가지 그 가운데 또 莊嚴具들이
流光如雲(유광여운)이라. 빛을 발하고 있는데 구름처럼 그냥 빛을 쏟아내고 있더라. 從宮殿間(종궁전간)으로, 궁전 사이로부터
箤影成幢(취영성당)이라. 그림자를 모아가지고 깃대를 이루었다.
이것이 요즘 3D 기술이라든지 홀로그램 기술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바로 이러한 내용입니다. 그림자를 모아가지고, 그 궁전 사이에서 나오는 그림자를 모아가지고 하나의 깃대를 맸어요.
제가 홀로그램이라는 것을 처음 봤을 때 분명히 내가 걸어가고 있고,
제가 손 움직이고 하는 것을 바로 눈앞에 보여주는 겁니다.
제가 손으로 이렇게 만지는데 꼭 사실같이 보이는데 만져지지가 않는 겁니다. 텅 빈 공간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이대로 입니다.
箤影成幢입니다. 그림자를 모아가지고 깃대를 이루고 있어요.
어떤 한 공간에 사실처럼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겁니다. 요즘 기술이 여기에 거의 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또 뭐라고요?
無邊菩薩(무변보살)과 道場衆會(도량중회)가, 하~~ 끝없는 보살들과 도량 도량에 모인 온갖 대중들의 그 법회가 咸集其所(함집기소)라.
바로 그 幢, 깃발. 그림자를 모아서 깃대가 되어있는데, 그 깃대에, 전부 그 속에, 법회가 거기서 이루어지고, 끝없는 보살들이 그 속에 노닐더라 이 겁니다. 앞으로 事事無碍(사사무애)니 하는 그런 말이 많이 나오겠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도 화엄경의 교리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事事無碍의 도리다.” 이것을 은연중에 여기서 표현하고 있지요. “사물과 사물이 걸림 없는 도리.”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以能出現諸佛光明(이능출현제불광명)과, 능히 諸佛의 光明과 不思議音(부사의음)을 출현시킨다. 불가사의한 소리를 거기서 낸다.
摩尼寶王(마니보왕)으로, 마니보배로써
而爲其網(이위기망)이라. 그물을 만들어가지고, 으레 그물이 많이 따릅니다. 그리고 옛날에 아름다운 궁전이라든지 또 아주 호화롭게 장식한 그런 집에는 보면, 예를 들어서 옥이나 아주 귀중한 광석 같은 것으로 그물을 짜가지고, 으레 그물을 드리워가지고 장엄을 했듯이, 특히 화엄경에는 그 때의 사람들이 선호했던 아주 호화롭고 아름답게 꾸몄던 그러한 그 당시의 용어ㆍ도구ㆍ재료 이런 것들을 가지고 경전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니보배로써, 마니보배 중에서도 王자. 이런 것은 가장 으뜸이 되고, 최고로 가는, 이런 뜻으로 王자를 뒤에다 붙입니다. 또 바다 海(해)자를 붙이면 많다는 뜻이고요.
而爲其網하며, 그물을 내며
如來의 自在(여래자재신통지력)으로, 신통의 힘으로써
所有境界(소유경계)가, 있는 바의 경계가
皆從中出(개종중출)이라. 그 그물 속에서 막 쏟아지고 있는 겁니다.
一切衆生(일체중생)의 居處屋宅(거처옥택)이, 일체중생들의 거처. 거처하거 있는 바 그 집들이 皆於此中(개어차중)에 現其影像(현기영상)하며,
그 그물에서 전부 影像으로써, 영상처럼 나타내는 겁니다. 전부 영상이지요 뭐. 우리는 영상하고 실재하고 또 따로 보지요. 영상은 영상이고 실재하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데 좀 더 깨어있는 눈으로 보면 영상과 실재가 둘이 아닙니다. 실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이 사물들도 그대로 영상으로 보는 겁니다. 그대로 영상으로... 영상이지 이렇게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기도 합니다.
又以諸佛神力所加(우이제불신력소가)로, 부처님의 신력이 기피한 바로써 一念之間(일념지간)에 悉包法界(실포법계)하니라, 그 그물이 한 순간에, 한 순간에 온 법계를 다 뒤덮었다. 그런데 중생들이 사는 곳도 그 영상에 다 나타나고, 온갖 것이 그 중에 다 나타나는 그런 모습을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宮殿의 莊嚴(궁전의 장엄)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도 역시 은근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깨달음의 내용에는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덕이 그 마음속에 포함되어있고, 이것은 정말 정직하게 말하면 사람 사람에게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덕이 다 내포되어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기회를 만나지 못해서 밖으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어느 땐가 기회가 되면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해 있는 그런 풍요로움과 그 덕이 다 이와 같이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표현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師子座의 莊嚴(사자좌 장엄) 그랬습니다.
이 師子座라고 하는 것도 언제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현실적으로 따지면 그렇습니다. 뭐 7일간 거기 앉아 있을 때도 기껏 그 옆에 있는 풀 뜯어가지고 깔고 앉았어요. 그런데 언제 師子座가 어디 있고 그렇습니까?
그렇지만, 깨달음의 시각으로 볼 때, 우리가 처해있는 그 자리가 비록 딱딱한 돌 위이고 척박한 자갈모래 위라 하더라도 그 하나하나는 정말 이렇게 소중하게 보인다. 이렇게 소중한 것이다. 다이아몬드라서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모래나 자갈 그대로가 사실은 다이아몬드처럼 소중한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와 같다는 그런 안목입니다.
이것이 우리 눈에는 그렇게 안 비치지만, 인생의 가치를 정말 제대로 아는 사람의 눈에는, 이 세상에 널려있는 그 모든 것의 하나하나가 그렇게 값지고 소중한 것으로 비쳐지는 것이지요.
4, 師子座의 莊嚴(사자좌 장엄)
其師子座(기사자좌)가 高廣妙好(고광묘호)어든
摩尼爲臺(마니위대)하며 蓮華爲網(연화위망)하며
淸淨妙寶(청정묘보)로 以爲其輪(이위기윤)하며
衆色雜華(중색잡화)로 而作瓔珞(이작영락)하며
堂榭樓閣(당사누각)과 階砌戶牖(계체호유)의
凡諸物像(범제물상)이 備體莊嚴(비체장엄)하며
寶樹枝果(보수지과)가 周廻間列(주회간열)하며
摩尼光雲(마니광운)이 互相照耀(호상조요)하며
十方諸佛(시방제불)이 化現珠玉(화현주옥)에
一切菩薩(일체보살)의 髻中妙寶(계중묘보)가
悉放光明(실방광명)하야 而來瑩燭(이래영촉)하며
復以諸佛威神所持(부이제불위신소지)로
演說如來廣大境界(연설여래광대경계)하시니
妙音(묘음)이 遐暢(하창)하야 無處不及(무처불급)이러라
其師子座(기사자좌)가, 그 사자좌가 高廣妙好(고광묘호)라.
높고 넓고 아주 아름답게, 妙好라. 아름답게 꾸며졌다.
摩尼爲臺(마니위대)하며, 마니로 받침대가 되었어요. 마니구슬로 받침대가 되었고 蓮華爲網(연화위망)하며, 연화로써 그물이 되었어요.
淸淨妙寶(청정묘보)로써, 아주 훌륭한 아름다운 보배로써,
以爲其輪(이위기윤)이라. 돌아가면서 그 둘레를 만들었고,
衆色雜華(중색잡화)로써, 여러 가지 색깔. 한 색이면, 단 색이면 아주 재미없지요? 衆色이라고 하는 것은 늘 온갖 색깔, 여러 가지 꽃으로써
而作瓔珞(이작영락)이라. 꽃 타래를 만들었더라. 그리고
堂榭樓閣(당사누각)과, 堂榭는 정자입니다. 사당집 사 자인데요.
정자 같은 누각과 階砌戶牖(계체호유). 섬돌이라든지 창문이라든지 이런 것들의 凡諸物像(범제물상)이 備體莊嚴(비체장엄)하며, 통째로 다 장엄이 되었더라. 모든 물상이, 備體라고 하는 것은 통째로 온통 그대로 장엄이 되었으며 寶樹枝果(보수지과)가, 보배나무의 가지와 열매들이
周廻間列(주회간열)하며, 두루두루 돌아가면서 사이사이에 그 가지마다 열매 있고, 열매마다 가지가 있고, 이렇게 사이사이에 정말 조화롭게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摩尼光雲(마니광운)이, 마니로 된 그 빛이
互相照耀(호상조요)하며, 서로서로 비추고 비치며
十方諸佛(시방제불)이 化現珠玉(화현주옥)에, 나타내는 바 그 주옥에
一切菩薩(일체보살)의 髻中妙寶(계중묘보)가, 그 일체 모든 부처님이 나타내는 그런 구슬에 또 보살들이 髻中에서
妙寶가 悉放光明(실방광명)이여. 다 광명을 놓고 있어요.
而來瑩燭(이래영촉)하며, 전부 광명을 놓는데, 환~~ 하게 촛불로 비치는 것과 같이 그렇게 비춘다.
復以諸佛威神所持(부이제불위신소지)로, 다시 또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을 가진 바로써 演說如來廣大境界(연설여래광대경계)하시니,
여래의 광대한 경계를 연설하시니, 妙音(묘음)이 遐暢(하창)하야, 아름다운 소리가 멀리까지, 마이크를 안 써도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고,
無處不及(무처불급)이라. 어느 곳에든지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더라. 우리는 아무리 좋은 마이크를 써도 기껏해야 100m 200m밖에 안 들리지요.
그런데 부처님의 음성은 그저, 그런 기구를 안 써도 멀리까지 다 들린다. 이것도 말하자면 존재의 어떤 일체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니까요. 멀고 가까운 것이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師子座의 莊嚴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 또한 부처님의 내재 되어있는 그 덕을 깨닫고 보니까 이것이 전부 밖으로 표현이 다 되는 것이지요.
표현이 다 되고 우리는 단, 소유하고 있으면서 아직 표현이 될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하는 그런 뜻으로, 늘 우리에게 연관시켜서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書自書我自我(서자서아자아). 책은 책이고, 나는 나다. 이렇게 떨어져서 생각하면 그것은 안 된다는 것이지요.
조금 턱걸이 하듯이라도 어떻게 하더라도 아등바등 이 경전에 있는 가르침이 바로 나의 삶이고, 나의 현실로 이렇게 가까이 접근 되도록 하는 그런 해석과 그런 이해가 꼭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
一 始成正覺(시성정각). 二 莊嚴(장엄).
三 世尊의 不可思議한 德(세존 불가사의 덕).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앞에 莊嚴으로써 不可思議한 世尊의 德을 상징적으로 그림으로 척~~ 그려놨어요. 그려놓고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德의 根本(덕의 근본)이라 그랬어요. 부처님의 세계. 뭐 불교의 세계라고 해도 좋고, 부처님의 세계라고 해도 좋고요. 또 우리가 아무리 경전을 통해서 부처님의 세계를 다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부처님도 아직도 설하지 못한 것. 표현하지 못한 것이 많을 것이고, 정말 우리가 마음에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다 표현합니까?
표현 안 되잖아요. 사실 우리 마음의 그 어떤 감정도 좋고, 느낀 바도 좋고, 그것을 제대로 표현 못합니다. 하물며 부처님이 정말 우리 인간의 마음을 끝까지 깨달으신, 저~~ 밑바닥까지 철저히 깨달아서 밝혀낸 그 분의 어떤 그 세계를 어떻게 다 표현하겠습니까? 표현이 안 되는 것이지요. 할 수 있는데 까지 한다고 그래도 가장 잘한 것이 화엄경입니다. 깨달음의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화엄경이지요. 德의 根本했어요. 德의 根本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물론 뿌리에 있지요. 다 있지요. 그러나 우리에게 이해시키는 데는 깨달음에 근거한다. 하는 것입니다. 德의 根本은 깨달음이다 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그것은...
三 世尊의 不可思議한 德(세존 불가사의 덕)
1, 德의 根本(덕 근본)
爾時(이시)에 世尊(세존)이 處于此座(처우차좌)하사
於一切法(어일체법)에 成最正覺(성최정각)하시니
爾時에 世尊이 處于此座하사 於一切法에 成最正覺하시니,
그 때에 세존이 이 자리에 딱~ 앉아가지고, 이 자리가 뭡니까?
바로 보리수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그 자리.
正覺하신 그 자리에서 一切法에 있어서, 모든 존재에 있어서, 一切法할 때 이 法은요? 말하자면 모든 존재ㆍ사물ㆍ모든 사건ㆍ해가 뜨고 지고 봄 이오고 여름이오고 하는 이런 것이라든지, 꽃이 피고 시들고 하는 일체 그런 유정무정의 모든 존재와 그 존재가 변멸해가고 있는 그런 현상들까지 다 포함해서 一切法할 때의 法입니다. 물론 좁은 뜻으로서는 가르침을 가지고 法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모든 존재에 있어서 成最正覺이라.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뤘다.
저 앞에서는 뭐라고요? 始成正覺(시성정각). 했는데 그 始成正覺을 여기서 한 번 더 표현하지요. 最正覺이라. 그랬어요. 그냥 正覺이 아니고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렇게 한 번 더 수식하면서 正覺을 힘주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하는 그 정각의 내용을 쭉~~~ 말 할 수 있는데 까지 언급 하려고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그 사람 마음은 어떠냐? 그래
三業徧滿(삼업변만)이라고 제목을 그렇게 붙였는데요. 신ㆍ구ㆍ의 3업이 두루두루 가득하다. 이렇게 해서 처음에 意業이 나오지요.
(1) 意業(의업)
智入三世(지입삼세)하야 悉皆平等(실개평등)이다 그렇게 했어요.
이런 구절에 대해서, 옛날 주석가들은 상당히 길게 설명합니다.
상당히 길게 설명해요. 그것 다 소개할 수는 없고, 일단 본 경전에서 표현하고 있는 그 글자의 뜻을 정확하게 우리가 이해하고, 또 그 이면에 상징하고 있는 그 어떤 상징성을 그 다음으로 이해해가는 그런 공부 방법이 필요합니다. 智入三世라. 깨달았다고 했을 때, 그 깨달음을 다른 표현으로 하면 지혜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지혜에요. 우리는 깨닫지 못했으니 지혜가 없고, 지혜가 없다는 것은 곧 깨닫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다른 표현으로 지혜다. 그런데 그 지혜는 3세에까지 뻗혔다. 과거 현재 미래에 다 뻗혔는데 현재만 잘 아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도 잘 알아요. 미래도 잘 알아요. 그래서 悉皆平等이야. 똑 같이 잘 안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는 이제 자꾸 붙겠지요?
부처님의 가장 바른 깨달음의 지혜는 과거 현재 미래에 어디 한 구석도 부족하거나 막힘이 없이 평등하게 환하게 꿰뚫고 있다. 그 다음에 身業(신업)입니다.
(2) 身業(신업)
其身(기신)이 充滿一切世間(충만일체세간)하시며
그 몸은 一切世間에 充滿하시다.
그 몸이 뭡니까? 몸뚱이가 아닙니다. 물론 몸뚱이를 다 포함해서 법신입니다. 우리 주련에 뭐라고요?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변시방중) 三世如來一體同(삼세여래일체동)
이런 주련 우리 많이 보지 않습니까?
佛身普遍十方中이야. 부처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ㆍ진리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ㆍ법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온 시방에 꽉차있다. 온 시방에 꽉차있다. 우리 어릴 때 들은 내용인데, 아주 큰스님이 기차간에서 목사하고 말싸움이 붙어가지고 하나님은 무슨 “無所不在(무소부재)하시다.” 그러니까 짓궂게 “아 그럼 화장실 똥에도 하나님이 계시겠네.” 그러니까 하나님을 어디 거기다가 비교 하느냐고 이렇게 하니까 “아, 부처님은 바로 똥이 바로 부처님인데.” 이렇게 해서 깨우쳐줬다 하는 그런 이야기도 우리 어릴 때 들은 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佛身. 또는 法身(법신)ㆍ존재 그 자체ㆍ모든 존재는 그대로 바른 이치가 있습니다. 진리가 있는 겁니다. 참되고 바른 이치가 있어요.
그것을 그대로 불신이라고 하고 법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佛身普遍十方中이지요. 시방 세계에 가득 차있고,
充滿一切世間(충만일체세간)이라. 일체세간에 충만해있다. 일체세간에 충만해 있으면 화장실 똥통 속엔들 비어있을 까닭이 없는 것이지요.
바로 그 자체지요. 똥은 똥의 입장에서 보면 똥 같이 소중한 것이 없는 겁니다. 아까 제가 여러 가지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세상의 주인ㆍ세간의 주인. 뭐가 주인이냐? 개개가 다 주인입니다. 개개가 다 가장 소중해요. 개개가 다 그 입장에서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이 여기의 其身(기신)이 充滿一切世間(충만일체세간)이라. 고 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 다음에 語業(어업)이지요.
(3) 語業(어업)
其音(기음)이 普順十方國土(보순시방국토)하사
우리는 지금 이런 말하면요? 이 자리에 있는 분만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우리말은 한국 사람만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깨달음의 입장에서 나오는 그 진리의 소리는 시방국토에 널리 다 順(순)하고 있어요.
따르고 있어요. 전부... 무슨 곤충 소리도 다 따르고, 동물소리에도 다 따르고, 금속이나 저 광물소리에도 다 따르고, 일체 다 따른다. 바로 그 자체다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아주 옛날 주석가들은 아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意業과 身業과 語業이지요. 이것을 비유로 한꺼번에 신ㆍ구ㆍ의 3업. 부처님의 3업에 대해서 비유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4) 譬喩(비유)
譬如虛空(비여허공)이 具含衆像(구함중상)호대
於諸境界(어제경계)에 無所分別(무소분별)하고
又如虛空(우여허공)이 普徧一切(보변일체)호대
於諸國土(어제국토)에 平等隨入(평등수입)하시니라
譬如虛空(비여허공)이 具含衆像(구함중상)호대,
허공이 온갖 모습들을 다 포함하고 있어요. 그렇지요.
우리도 이 허공 속에 있고ㆍ마이크도 허공 속에 있고ㆍ책도 허공 속에 있고ㆍ책상도 허공 속에 있고, 이것이 具含衆像입니다. 온갖 형상들을 전부 포함하고 있으되,
於諸境界(어제경계)에 無所分別(무소분별)이라.
모든 경계에, 여기 책하고 책상만 필요하지 다른 것은 꽃은 필요 없다.
이렇게 분별하지 않습니다. 분별하는 바가 없어요. 허공은 그런 것 없어요.
똥을 갖다놔도 똥이 잘 그 자리에 존재합니다. 아주 아름다운 꽃을 갖다놔도 꽃이 잘 존재하고요. 무슨 흙을 갖다놔도 흙은 다 이 허공 속에는 그대로 잘 존재합니다. 이 비유를 우리가 잘 이해해야 부처님의 3업의 그 됨됨이를, 다시 말해서 석가모니부처님을 자꾸 상상하면 이것이 이해가 잘 안 되는데, 바로 그 진리 자체ㆍ법신 그 자체. 그것을 이해하려고 해야 되는 것이지요. 분별하는 바가 없어요. 모든 경계에 無所分別입니다. 분별한다고 하는 것은 가려내고 차별하는 것입니다.
가려내거나 차별하는 바가 없고, 또 비유를 들자면
又如虛空(우여허공)이, 또 허공이
普遍一切(보변일체)호대, 일체에 두루두루 가득하되
於諸國土(어제국토)에, 모든 국토에 平等隨入(평등수입)하시니라.
허공 없는 나라 없지요. 무슨 동양ㆍ서양 .저기 북극ㆍ남극 할 것 없이 어디에도 공간 없는데 없고, 허공 없는데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국토에 평등하게 따라 들어가 있다. 허공은 그렇습니다. 그와 같이 진리의 몸은, 또 진리를 깨달으신 그 당체는 모든 존재와, 모든 존재와 어떤 사건과도 함께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존재 그 자체다.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자꾸 공부하면 그럼 그대로 다 옳은 것이고, 그대로다 좋은 것이고, 그래서 다시 더 이상 바로잡을 것도 없고, 고칠 것도 없겠구나. 그것이 맞는 말입니다. 화엄경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은 완전개방입니다. 완전자유고 완전해탈이고 완전개방입니다. 어떤 조건도 없어요. 이렇게, 이렇게 했을 때 여기에 따라야 된다. 그것 없어요. 완전개방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각각등보체 좋아하는 것도 이 화엄경의 어떤 성질하고도 좀 닮았어요. 어떻게 보면...
중국 사람들은 능엄경하고 원각경을 좋아해요. 뭔 데가 컴컴하고 가려지고 음험한 데가 있는 겁니다. 거기는 비밀이 많거든요. 일본 사람들은요?
종합적입니다. 그래 법화경을 좋아하는 겁니다. 진리를 종합적으로 총정리 하듯이 되었거든요. 화엄경은 진리의 순수성을, 진리 그 자체의 순수성을 아주 남김없이 표현한 것입니다. 순수성을...
진리는 또 순수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종합적이기도 해요.
그래서 법화경은 종합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단체가 잘 되잖아요. 단체가 잘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체가 안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 한 사람이 일본 사람 세 사람 이기지만, 일본 사람 세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 한 이겼다. 왜냐? 개인으로 따지면, 상대하면 못 이겨요. 누구도 못 이겨요. 1:1로 하면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뭉쳤다 하면 깨지니까요. 두 사람만 뭉쳐도 깨지고, 세 사람 뭉쳐도 더 깨지거든요. 그러니까 어디 나라에서도 그렇다 잖아요. 한국 가게가 하나 들어오면 ‘아이고 죽었다.’ 이러는 것이고, 거기에 한국 가게가 하나 더 들어오면 ‘아이고 살았다.’ 이런다잖아요. 그 다음에 한국 가게가 세 개 늘어나지요? 외국에서 어떤 거리에... 이것은 ‘눈 감고 있어도 장사 된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한국 사람의 어떤 특수성이, 성격의 특수성이 그런 것이 있는데, 이 화엄경의 성격하고 상당히 닮았습니다. 그래서 화엄경을 좋아했어요.
신라 때 화엄경이 들어오면서부터 ‘아, 우리민족의 정서에는 이거구나.’ 하고 딱 좋아요. 지금까지 끊임없이 화엄경ㆍ화엄경하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 성질도 우리가 좀 연관시켜서 생각하면 화엄경공부가 훨씬 생명력을 갖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다음에
威勢(위세)라고 했는데, 위세신 복덕신 이런 표현도합니다. 부처님의 위세신은 어떤 것인가?
3, 威勢(위세)
身恒遍坐一切道場(신항변좌일체도량)하사 菩薩衆中(보살중중)
에 威光赫奕(위광혁혁)이 如日輪出(여일윤출)하야
照明世界(조명세계)하시니라
身恒遍坐一切道場(신항변좌일체도량)하사,
몸은 항상 一切道場에 두루두루 다 앉아있다. 그럼 여기도 앉아있고, 보리수에도 앉아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다 앉아 계셔요.
菩薩衆中(보살중중)에, 보살이 대중 가운데서 威光이 赫奕(위광혁혁)해. 그 威光이 아주 빛나고 빛나요. 그렇지요. 아무리 훌륭한 보살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부처님이 한 분 턱~ 앉아 있다면, 마치 저 많고 많은 별 가운데 환하게 밝은 보름달과 같지요. 이것이 부처님의 덕을 표현한 내용입니다. 威光赫奕이라.
如日輪出(여일윤출)에 照明世界(조명세계)하시니라
마치 태양이 턱~~ 솟아오르면 세계를 환~ 하게 밝게 비추는 것과 같다.
여기 如日輪出에 했으니까요. 화엄경은 깨닫고 나서, 바로 깨달은 내용을 설한 것이라서 깨달음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이다.
그래서 先照高山(선조고산)이다. 태양이 뜰 때 먼저 높은 산을, 가장 높은 봉우리를 먼저 비추는 것과 같이, 그렇게 가장 높은 경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해서 先照高山. 그러지요. 법화경은 마지막에 설하신 것이니까 後照高山(후조고산)이다. 마지막에 설하신 것이니까, 해가 질 때에 가장 높은 봉우리를 비추고 넘어가듯이 그래서 後照高山이다. 이런 표현도 씁니다. 이 대목에 옛날 주석가들이 그런 표현도 썼었어요. 그 다음에 복덕신... 부처님을 복덕신의 입장에서...
4, 福德(복덕)
三世所行衆福大海(삼세소행중복대해)가
悉已淸淨(실이청정)하시며
과거ㆍ현재ㆍ미래 三世에 행하신바 온갖 福의 大海가 悉已淸淨하시며, 우리는 하루 공부하고 한 달 계속 놀고, 하루 한 시간 공부하고 나머지 23시간 그저 놀고 그러는데, 부처님은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三世所行衆福大海 그랬어요. 여러 가지 복의 큰 바다. 복이 워낙 많아가지고, 큰 바다와 같이 넘실댄다. 과거ㆍ현재ㆍ미래 다 닦았으니까요.
衆福大海가 悉已淸淨이라. 모두모두 뛰어나다. 淸淨이라는 것은 뭐 그냥 단순히 청소해서 깨끗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주 훌륭하다ㆍ뛰어하다ㆍ멋지다ㆍ근사하다. 이런 뜻이 많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또
受生(수생). 생을 받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5, 受生(수생)
而恒示生諸佛國土(이항시생제불국토)하시며
而恒示生. 생을 보인다 그랬어요. 諸佛國土에 태어나는 것을 보인다. 일부러 태어나서 보여주는 겁니다. 우리는 뭐라고요? 業生(업생)입니다 業生. 業에 끌려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願生(원생)이 있습니다.
願力(원력)에 의해서 태어나기도 하고요.
또 緣生(연생)도 있습니다. 인연에 따라서 태어나기도 하고요.
그런 여러 가지가 있는데, 부처님의 입장이 되면 示生입니다. 생을 보여요. 내가 일부러 가서 出現(출현)하는 겁니다 出現. 내가 능동적으로 가서 出現하는 것이지, 끌려가서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얻어갑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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譬如虛空에 具含衆象 - 허공이 온갖 모습과 형상들을 다포함하고있다. 나무관세음보살----
아름다운 화엄경을 만나인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연설여래광대경계 묘음하창 무처불급 성최정각 복덕대해 실이청정 업생 원생 시생
항상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읍니다
고맙습니다 ._()()()_
(**)아름다운 화엄세계에 태어났으니 아름답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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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이 실로 무엇인가? 하고 오래동안 헤매이다가 如來所處宮殿樓閣(여래소처궁전누각)을 발견했습니다..
<이미 나와 세상은 한 몸입니다...天地는 與我一體(천지여아일체)입니다.
하늘과 땅은 나로 더불어 한 몸입니다.
깨달음의 안목에서 보면 그냥 순식간에 그렇게 되니까요. >
석대원성님.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보살님의 공덕이 아니었더라면
이좋은 큰스님의 법문을 제가 어찌 찾았겠습니까.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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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의 댓글을 이제야 봅니다. 죄송합니다. 11년 보다는 빠르죠? ㅎㅎㅎ
좋은 걸 좋은 것으로 보시는 안목에 박수를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나무불나무법나무승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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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주변에 광명이 비치고 광명가운데 마니 보배가 비오듯 내리고 마니보배안에는 모든 보살들이 구름처럼 가득차서 동시에 나타난다
또 보리수는 항상 묘한 소리를 내어서 여러가지 법을 설한다
부처님 지혜는 삼세에 뻗어 있고 모두가 평등하다
몸(법신)은 일체 세간에 충만하다
부처님의 음성은 시방 국토의 중생을 다 따른다,그 자체다,알아 듣게 한다(順)
부처님은 제불국토에 항상 생을 나타내 보인다 示生
11/27=\\\=
업생-()()()_
_()()()_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대방광불화엄경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
_()()()_
箤影成幢(취(졸?)영성당)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여기서는 "취"라고 읽습니다.
한자에는 두 가지로 읽는 것이 있다는 걸 잘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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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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而恒示生諸佛國土(이항시생제불국토) 부처님께서는 출현하여 보이심이다....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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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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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