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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혁주의 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한아름
관상기도의 신학적 문제점과 목회적 대안 | ||||
합동측 96회 총회 ‘관상기도 운동’ 연구논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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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639
교회와신앙 |
< 미주 > 1) Frederik Willaim Dank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a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3ed edit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454. 2) 여기서 지식은 자연적 지식과 초자연적 자식으로 나뉜다. 감각적이고 가지적인 지식은 완전한 순결에 도달하지 못한 인간들에게는 상상과 함께 엮여 있는데, 그 실체에 대한 지식은 오직 천상적 존재들이 소유 한다. 이런 지식들은 이성적이고 사색적 탐구(speculative investigation)를 통하여 얻어지는데, 이것이 철학자나 예언자를 비롯한 인간이 획득할 수 있는 최고의 지식(the highest knowledge)이다. 그러나 직관은 그것들에 비할 수 없이 가장 고상한 지식(the noblest knowledge)인데, 이는 인간의 영혼 안에서 그 지식 자체를 제시하며, 또 다른 발생이나 부패에 종속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George N. Atiyeh, “Al~Sijistani, Abu Sulayman Muhammad”, Routledge Encyclopedia of Philosophy, ed. by Edward Craig, vol.8 (London: Rouledge, 2005), 775. 3) Ray Yungen, A Time of Departing,『 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김성웅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18. 4) 관상기도를 받아들이는 모든 교회가 관상을 중시하지만, 관상과 기도 중 어느 것을 얼마만큼 강조하는지는 교회마다 지도자마다 다르다. 종 교다원주의를 넘어서서 이교적인 관상까지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관상을 단지 기도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비교적 덜 불건전한 경우도 있어 천차만별이다. 5) Ray Yungen, A Time of Departing,『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김성웅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63~67. 6) Claus Riesenhuber, Chuusei Shisou Shi (Tokyo: Heibonsha Limited, 2003), 이용주 역, 『중세사상사』(파주: 열린책들, 2007), 47. 7) Erwin Preuschen,“Origen,”The New Schaff-Herzog Encyclopedia of Religious Knowledge, ed. by Samuel Macauley Jackson (Grand Rapids; Baker Bookhouse, 1977), 271. 8) Erwin Preuschen, “Origen,”The New Schaff-Herzog Encyclopedia of Religious Knowledge, ed. by Samuel Macauley Jackson (Grand Rapids; Baker Bookhouse, 1977), 272. 9) 범신론(pantheism)이라는 말은 ‘모든’(all)을 뜻하는 헬라어 판과 ‘신’을 뜻하는 테오스의 결합어이다. 이는 일신론(monotheism), 다신론(polytheism,), 이신론(deism), 내재신론(panentheism)과는 대조되는 말로서,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는 하나님이 내재한다는 의미이다. 어원적으로는 우주와 신은 동일하다는 뜻이고, 신학적으로는 신의 초월성은 부인하고 내재성은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고대 헬라 철학자들로부터 스토아학파, 신플라톤주의, 유대까발리즘, 이슬람의 수피즘, 동방 신비주의 등을 거쳐“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 있다”(Quid quid est, in Deo est)는 스피노자의 가교적 표현으로 부각된 범신론은 하나님의 존재는 자연 세계의 역사적 사건들 안에서 실현된다는 이론에까지 이것이 옹호된다. Matthias Wolfes, “Pantheism”in Religion Past & Present: Encyclopedia of Theology and Religion vol. 9, ed. by Hans Dieter Betz, Don S. Browning, Bernd Janowski, Eberhard J ngel (Leiden: Brill, 2011). 484; Keith E. Yandell, “Pantheism”, Routledge encyclopedia of Philosophy vol. 7, ed. by Edward Craig (New York: Routledge, 2005), 202 10)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세계종교사입문』, (서울; 청년사, 2003), 498. 11) Robert S. Ellwood, Mysticism and Religion,『 신비주의와 종교』, 서창원 역 (서울: 이화여대출판부, 1994), 84. 12) John W. Cooper, Panentheism~The other God of the Philosophers: from Plato to the present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6), 64. 13) William C. Davis, “Why Open Theism is Flourishing Now”in Beyond the Bounds: Open Theism and the Undermining of Biblical Christianity, ed. by John Piper, Justin Taylor, Paul Kjoss Helseth (Wheaton: Crossway Books, 2003), 113~145; John W. Cooper, Panentheism-The other God of the Philosophers: from Plato to the present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6), 16~17. 14) John W. Cooper, Panentheism~The other God of the Philosophers: from Plato to the present (Grand Rapids: Baker 105 Academic, 2006), 148~149, 166~172, 301~302. 15) 조진모,“ 리차드 포스터와 레노바레 운동의 정체성 이해”『, 신학정론』, 제 29권 1호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11), 160~161. 16) David F. Wells, Losing Our Virtue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8), 96~97. 이러한 이유로“참된 자아를 찾으려는 신경증적인 추구와 그러한 추구로부터 이끌어 낸 사치스러운 결론들이 최근 우리 사회에 있게 되었다.”Robert N. Bellah, Habits of the Heart: Individualism and Commitment in American Life(Californi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6), 55. 17) David F. Wells, Losing Our Virtue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8), 191~194. 18) David F. Wells, Losing Our Virtue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8), 193~194. 19) 미국 인본주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H. Maslow, 1908~1970)는 Motivation and Personality(1954)와 Toward a Psychology of Being(1962)에서 각 개인에게는 충족되어야만 하는 5가지 욕구단계가 있음을 논하였다. 이 욕구 위계는 가장 기초적인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로부터 시작하여 안전에 대한 욕구(safety needs),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love and belongingness needs), 자아 존중의 욕구(esteem needs), 자아실현의 욕구(self~actualization)까지 펼쳐지는데 상위의 욕구는 하위의 욕구들이 채워질 때에만 동기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매슬로우는 욕구의 최상위 단계인 자아실현을 성취한 자들을 참으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최고의 심리적 욕구들을 충족한 자들이고, 자신의 자아의 구성요소들을 온전히 통합한 자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Abraham H. Maslow. (2011). In Encyclopædia Britannica. Retrieved from http://www.britannica.com/ EBchecked/topic/367986/Abraham~H~Maslow. 20) “현대가 요구하는 영성은 초월적 실재를 자연이나 일상적 사물로부터 단절하는 영성보다는 연계하는 영성이다. 현대적 영성은 변화하는 세계 밖에서 세계를 움직이고 조정하는 초자연적 신보다는 세계 안에서 내재하며 세계와 함께 움직이는 역동적 힘으로서의 신, 변화 저편에 있는 부동의 실재보다는 사물들과 함께 변하되 사물의 변화에 방향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실재를 지향하는 영성이어야 한다.” 길희성, “ 동서양의 영성 전통과 현대 영성의 과제” 『, 서강인문논총』, vol.21 (서강대인문과학연구소, 2007), 289; 이러한 사상이 뉴에이지 사상에 잘 나타나 있다. “뉴에이지 사상의 인간관은‘인간은 곧 신’ 이라는 인간신(人間神)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란 잠자고 있는 신이며, 인간의 문제란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한 무지라고 본다. 인신화(人神化)를 추구한다. …인간이란 곧 만물이며 진리는 인간 속에 내재 한다고 본다.” 김영한, “ 뉴 에이지 사상에 대한 비판적 고찰” 『, 조직신학연구』vol.11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2008), 154~55. 21) 물론 관상기도의 실천을 받아들이는 모든 목회자와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사상적 배경에 심취하거나 동의하면서 관상기도를 실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관상기도의 실천은 틀림없이 기독교 사상과 이교적 신비사상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다. 22) Brennan Manning, The Signature of Jesus (Colorado Springs: Multnomah, 1996), 211. Thomas Merton, The Asian Journal(New York: New Directions, 1973), 308. William H. Shannon, Something of a Rebel: Thomas Merton ~ His Life and Works,『 토마스머튼: 생애와작품』, 오방식역(서울: 은성출판사, 2005), 158에서 재인용. 23)“ This forgetfulness, of our oneness with God, is not just a personal experience, it is the corporate experience of humanity. Indeed, this is one way to understanding original sin. We are in God, but we don’t seem to know it. We are in paradise, but we don’t realize it.”William Shannon, Seeds of Peace: Contemplation and Non~violence (New York: Crossroad Classic, 1996), 66. 24) Teresa of Avila, Interior Castle, trans. by E. Allison Peers, (New York: Image Books, 1989), 214. 김요섭, “그리스도와의 연합: 칼빈과 테레사의 기독교 영성에 대한 이해 비교 연구”,『 성경과 신학』제 58권 (한국복음주의신학회, 2011), 163에서 재인용. 25) William H. Shannon, Something of a Rebel: Thomas Merton ~ His Life and Works,『 토마스머튼: 생애와작품』, 오방식역(서울: 은성출판사, 2005), 146~158. 107 26) William H. Shannon, Silence on fire : prayer of awareness, 『깨달음의 기도』, 최대형 역 (서울: 은성출판사: 2002), 196. 27) Thomas Keating, Open Mind, Open Heart (New York: Continuum Publishing Company, 1992), 127~128. 28) Teillard de Chardin, Science and Christ, trans. by Rene Hague (New York; Harper and Row, 1968), 54 ; 조용석,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우주적 그리스도론 연구”(서울: 연세대학교 대학원, 2000, 신학과 석사학위논문), p. 38에서 재인용. 29) “…한 사람의 진정한 자아를 이루게 하는 것은 관상 안에서만 가능하게 된다. 관상 안에서 거짓 자아는 물러나고 진정한 자아가 깨어난다.” William H. Shannon, Something of a Rebel: Thomas Merton ~ His Life and Works, 『 토마스 머튼: 생애와 작품』, 오방식 역 (서울: 은성출판사, 2005), 157. 30) “가톨릭 수도승인 토머스 키팅은 관상기도와 침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관상기도는 생각을 비우는 것이라기보다는 생각으로부터의 이탈이라 하겠다. 관상기도는 머리와 가슴과 몸과 감정을 여는 훈련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존재가 말과 생각과 감정을 초월하시는 궁극적인 신비이신 하나님께 이르는 것이다’ …외부적인 고요함 은 성경적으로 볼 때 하자가 없다. 그러나 마음의 내적 평정을 추구하며 의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내면적 침묵’을 얻기 위해 마음속으로부터 자신의 생각들과 잡념들을 제거한다. 이런 상태에 이르기 위해 최면적이고 반복되는 행위를 한다.”Roser Oakland, Faith Undone: The Emerging Church~~ a New Reformation or an End~Time Deception? 『이머징교회와 신비주의』, 황스데반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120~121. 31)“ 인류의구성원이된다는것은영광스러운운명이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이 정말로 누구인지 알 수만 있다면 … 내가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사람 때문에 서로 쓰러지기도 하고 숭상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 중심에는 죄와 환상이 닿을 수 없는 ‘아무 것도 없는’지점이 있다. …이 작은 지점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순수한 영광의 하나님(신)의 지점이다. 이 지점은 모든 사람 안에 있다.” Thomas Merton, Conjectures of a Guilty Bystander (Garden City, NY: Doubleday Publishers, 1989), 157~158; Roser Oakland, Faith Undone: The Emerging Church~~ a 108 New Reformation or an End~Time Deception?, 『이머징교회와 신비주의』황스데반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120~121, 125~126에서 재인용. 32)“God and our true self are not separate. Though we are not God, God and our true Self are the same thing.”Thomas Keating, Open Mind, Open Heart (New York: Continuum Publishing Company, 1992), 127. 33) Thomas Merton, The Inner Experience,『 토마스 머튼의 묵상의 능력』, 윤종석 역 (서울: 두란노, 2003), 246. 34) Francis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1, trans. by George Musgrave Giger (Phillipsburg: P&R Publishing Company, 1994), 465. 35) 17세기 제네바의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 프란시스 튜레틴(Franscis Turretin)은 인간이 가진 하나님의 형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인간이 소유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본질의 분유가 아니라는 것과 신인동형론자들이 주장하듯이 하나님을 닮은 어떤 몸의 외양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를 통해 인간에게 부여된 은사들 안에 있는 것인데, 이 자질들 때문에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본질과 완전성과 권위의 정도에 있어서 다른 가시적 피조물들보다 더욱 근접하게 하나님을 닮은 위치에 서 있다. 이런 전제를 기초로 하나님의 형상은 특별히 세 가지와 관계를 한다. (1) 첫째,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 영혼의 실체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형상은-심지어 타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영적이며 불멸하고 부패하지 않는다. (2) 둘째, 하나님의 형상은 창조 시 아담에게 수여된 완전성(integrity), 올곧음, 은사라고 불리는 원의(original righteousness)에 있다. 이것은 영혼의 완전함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며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되고, 특별히 은혜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정신의 조명과 의지의 거룩함-을 말할 수 있게 한다. (3) 셋째, 하나님의 형상은 창조세계에 대한 인간의 통치권과 실재하는 실체 전체의 불멸성에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Francis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1, trans. by 109 George Musgrave Giger (Phillipsburg; P&R Publishing Company, 1994), 465~470, 611~613. 36) 그래서 인간은 자기 사유의 중심이 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회개와 그렇게 할 수 있는 근거로서의 중생의 필요성은 거부되거나 무시된다. 37) Scott R. Wright, “Regeneration and Redemptive History,” (Philadelphia: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Ph. D. Dissertation, 1999), 17~18. 38)“ …the only aim of which is to form in us anew the image of God, which was sullied, and all but effaced by the transgression of Adam.”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vol. 1,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1981 reprint), 515. 39) Gilles Quispel,“ Gnosticism”, New Catholic Encyclopedia, 2nd ed. by Lindsay Jones (Farmington Hills: Thomson Gale, 2002), 3507~3515. 40) 서요한, 『초대교회사』, (서울: 그리심, 2003), 311~314. 41) 이러한 복음과 구원 개념은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할 존재로 보지 않고 자신의 행복과 자아실현을 위해 신을 구할 수 있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기독교가 아닌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로 이어진다. 이러한 구원에 대해서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은 조엘 오스틴(Joel Osteen)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예수는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 인생에게 되어 주었으면 하는 그런 존재가 된다. 나의 가장 큰 문제가 외로움이면 믿을 만한 친구 예수가 복음이다. 가장 큰 문제가 불안이면, 예수는 우리를 안정시켜 준다. …구원은 이 세상에 임하고 있는 심판으로부터 하나님의 구출을 받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최고 인생을 지금 살기 위한 자기개선의 문제다.”Michael Horton, Christless Christianity: The Alternative Gospel of the American Church,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김성웅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8), 103~104. 42) Roser Oakland, Faith Undone: The Emerging Church-a New Reformation or an End-Time Deception?,『 이머징교회와 신비주의』, 황스데반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124~125. 110 43) Roser Oakland, Faith Undone: The Emerging Church- a New Reformation or an End~Time Deception?,『이머징교회와 신비주의』, 황스데반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146~147. 44) 갈 2:11~21. 45) 오웬은 신자 안에 잔존하는 죄의 문제를 전제함으로써 죄 죽임이라는 신자들의 필연적인 의무를 설명한다. “내재하는 죄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언제나 신자와 함께 한다. 따라서 신자는 언제나 죄를 죽여야 한다. …그러므로 감히 우리는 ‘이미 얻었다고도 온전히 이루었다고도’(빌 3:12) 말해서는 안 된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져 가야하며’(고후 4:16), 새 사람이 쇄신되어 감에 따라 옛 사람은 파괴되고 후패해진다.”(Indwelling sin always abides whilst we are in this world; therefore it is always to be mortified. … We dare not speak as “though we had already attained, or were already perfect,”Phil. iii.12. Our “inward man is to be renewed day by day”whist here we live, 2 Cor. iv.16; and according to the renovations of the new are the breaches and decays of the old). John Owen, “The Mortification of sin in Believers”in The Works of John Owen vol. 6,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4), 1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이러한 문제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Q 78: Whence ariseth the imperfection of sanctification in believers? A: The imperfection of sanctification in believers ariseth from the remnants of sin abiding in every part of them, and the perpetual lustings of the flesh against the spirit; whereby they are often foiled with temptations, and fall into many sins, are hindered in all their spiritual services, and their best works are imperfect and defiled in the sight of God.”Joel R. Beeke & Sinclair B. Ferguson, Reformed Confessions: Harmonized with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Reformed Doctrinal Works, (Grand Rapids: Baker Books, 2000), 115. 46)“ In one word, then, by repentance I understand regeneration, the only aim of which is to form in us anew the image of God, which was sullied, and all but effaced by the 111 transgression of Adam.”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vol. 1,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1981 reprint), 515;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인간으로 하여금 온 마음과 온 뜻을 다 기울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들어 주는데 그것은 순전함(integrit´e)과 온전함(rondeur)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Que Iob ayant ceste integrit´e et rondeur, a vescu aussi droitement, c’est dire, qu’il a convers ´e avec ses prochains sans aucune nuisance, sans cercher son profit particulier, mais qui’l a gard´e equit´e avec tout le monde.”Ioannis Calvinus, Sermons sur le livre de Job in Io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 XXXIII: Ioannis Calvini Opera Exegetica et Homiletica, (Brunsvigae : Apud C. A. Schwetschke et Filium, 1887), 29. 47) 중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단독사역을 거부한 항론파들에 대항하여 도르트 신조가 다루는 중생의 범위는 현저하게 엄격해졌다. 항론파(Remonstrnats)는 정통주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되 성령의 저항할 수 없는 사역을 부인함으로써 개혁파 중생 교리의 새로운 의미를 제시하고자 했기에 정통주의자들은 내적, 외적 부르심과 중생을 구분함 으로써 중생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중생은 이제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장 깊숙한 곳을 관통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시고 유효한 역사를 의미하게 되었다.” Scott R. Wright, “Regeneration and Redemptive History,”(Philadelphia: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Ph. D. Dissertation, 1999), 59. 48) 김남준,『 구원과하나님의계획』,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259. 49) “…sanctification is involved in justification, so far as the latter is the real and essential beginning of sanctification. Nevertheless sanctification is to be distinguished as well from justification as from vocation; for vocation is the beginning of regeneration, whereas sanctification is the continuation of it to gradual completion; and justification is an act of God resulting outwith man, by which God assigns to him an alien righteousness; whereas sanctification is an activity of God in man’s inward part. The former rests directly upon the sacrificial death and merit of Christ, the latter on the contrary is an effect which the death and life of Christ produce indirectly in the person called, The former is a oncefor-all act of God imparted in the same way; the latter is a gradual process variously completed according to the varying measure of the Spirit which the individual receives. In the former man’s relation to the grace that sanctifies him is purely passive; in the latter he cooperates with it.”Heinrich Heppe, Reformed Dogmatics (Eugene: WIPF & STOCK, 2007), 565~566. 50)“ Therefore, to that union of the head and members, the residence of Christ in our hearts, in fine, the mystical union, we assign the highest rank, ... but as we have put him on, and been ingrafted into his body, he deigns to make us righteousness with him.”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vol. II, trans. by Henry Beveridge,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1), 46 . 51) 김남준,『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307~324. 52) 클레르보의 베르나르(St. Bernard of Clairvaux, 1090~1153)는 프랑스의 신비주의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시토파의 베네딕트회에 들어가서 수도원을 창설하고 시토 교단을 개혁하였으며, 제2차 십자군을 제창하였다. 스콜라적 문화에 반대하여 성서나 교부의 권위와 기도를 강조함으로써 수도원적 문화를 대표한, 중세 말기 신비주의의 선구자였다. 그러나 베르나르가 말하는 신과의 합일은 신플라톤주의적 신비사상과는 달리, 의식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신과의 무차별적인 존재론적 융합이 아니다. 자유의지의 본래 작용인 서로에 대한 합일은 실체적이며, 본질적으로 구별된 사람들을 공통의 행복을 통해 결합시킨다고 강조한다. “하나님과 인간, 그 한쪽이 다른한 쪽 안에 머문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체적으로 혼동되는 것이 아니라 의지에 있어서 서로 동의하는 자들을 상호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 일치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의지의 교류이며, 사랑에 있어서의 합의이다.”『( 아가서 강화』, 71:10) 인격적 존재들 사이의 상호 인식과 사랑을 단계적으로 밟아 나아가는 베르나르의 신비 신학은 대학을 중심으로 전개된 스콜라 학문 안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인식론에 의해 밀려나게 되었지만, 후기중세부터 근세 전반기에 걸치는 신비사상과 민중의 종교성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Claus Riesenhuber, 『중세사상사』, 이용주 역 (파주: 열린책들, 2007), 154~164. 53)“ In speaking of union with God(Christ), both Bernard and Calvin emphatically reject any notion of a union of essences. The union between God and believer is rather a “spiritual” union....Both see this union as taking place in or through the Holy Spirit. In no sense would either Bernard or Calvin conceive of union as a “union of equals.”Dennis E. Tamburello, Union with Christ; John Calvin and the Mysticism of St. Bernard, (Loui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4), 105. 54) Dennis E. Tamburello, Union with Christ; John Calvin and the Mysticism of St. Bernard, (Loui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4), 107. 55)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영적 생명의 원리가 심겨졌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연합을 얼마나 풍성하게 누리면서 살아가는가는 우리의 성화의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실제적인 연합이라고 부릅니다.”김남준,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319. 56) Randall C. Gleason, John Calvin and John Owen on Mortification: A Comparative Study in Reformed Spirituality, (New York: Peter Lang, 1995), 59. 57)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완전하고도 영원하며 유일한 방편이 된다. 반면 믿음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들이는 유일한 길이고 그분이 이루신 공로에 참여하게 하는 원인일 뿐이지 공로적인 의미에서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속죄는 본질적으로 네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죄인인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희생(sacrifice)과 죄를 덮어주사 우리를 정결한 사람으로 받아주시고 용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푸시는 유화(propitiation), 범죄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화목(reconciliation), 그리스도의 생명의 속전으로 우리를 다시 사신 구속(redemption)이그것이다. 김남준,『 구원과하나님의계획』,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140, 148~157, 199. 58) 조진모, “리차드 포스터와 레노바레 운동의 정체성 이해” 『신학정론』제29권 1호,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2011), 186~188; 신자가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주는 유익에 대하여 존 오웬은 묵상의 대상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위격의 신비 안에서 다루고 있는데, 그 항목들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의 가장 형언할 수 없는 효과이신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해, 하나님의 모든 모사의 토대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지의 가장 탁월한 대표자이신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해, 거룩한 진리의 가장 탁월한 보고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해 등이다. 관상기도를 내세우는 신비주의자들이 설령 그리스도 그분 자신을 묵상의 대상으로 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존 오웬이 선포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탁월하심을 묵상의 대상으로 두는 것과 비교될 수 없다. 후자는 그리스도와 자아를 동일시하는 전자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묵상을 통해 오히려 인간과 그분과의 엄청난 격차를 인식하고 자아를 그분께 복종시킴으로 하나님과의 참된 연합과 교통을 추구하는 경건의 열매를 가져오는 것이다. 다음을 참조할 것. John Owen, Meditations and Discourses on the Glory of Christ, in The Works of John Owen, ed. by William H. Goold,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65). 59) “How does God unify it? By partially immersing himself in things, by making himself an‘ element’, and then, from this base found interiorly at the heart of matter, by taking on the leadership and head of what we now call evolution. Because Christ, who is the principle of universal vitality, has sprung up as man among us, he has put himself in the position of, and forever has been, actively curving beneath him, purifying, directing, and superanimating the general rise of consciousnesses into which he has inserted himself. By a perennial act of communion and sublimation, he is aggregating the entire psyche of the Earth to himself.”, Pierre Teilhard de Chardin, The Human Phenomenon (East Sussex: Sussex Academic Press, 2003), 211. 60) Norman Russell, The Doctrine of Deification in the Greek Patristic Tradi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p. 1; 이신화의교리는구원의완성개념과일맥상통한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협력의 정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인간 존재의 신화로 간주된다.”(Thus salvation is conceived as the culmination of synergy between divine and human, that is, the deification of human beings by divine grace). Emil Bartos, Deification in Eastern Orthodox Theology: An Eval!!uation and Critique of the Theology of Dumitru Staniloae (Devon: Paternoster Press, 1999), 253; 신화(神化)의 단계는 플라톤의 관상적 이상의 개념에서 영향을 받게 되어 보통 세 단계로 기술된다. “첫 번째 단계로 정화, 조명 그리고 연합, 두 번째 단계로 일치 그리고 세 번째 단계로 신화에 있는 구원이 그것이다”(salvation which consists in purification(katharsis), illumination(ellampsis), and union(theoria) as the first step, in unification(henosis), as the second step, and in divinization(theosis) as the third step). Petro B. T. Bilaniuk, Studies in Eastern Christianity, vol.3, (Munich: Ukrainian Free University, 1983), 54. 61) 그리스도의 다시 머리 되심(Recapitulatio Christi)의 교리는 교부 이레네우스(Irenaeus)가 그의 책 『이단 반박론』에서 저스틴 마터(Justin Matyr)의 다음의 글을 인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언급한다. “이 세상을 만드시고 우리를 조성하신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독생자가 우리에게 오셨고 그분 자신 안에서 그분 자신의 창조사역의 머리가 되심으로 만물을 포함하시고 다스리시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그분을 향한 나의 믿음이 견고하고 성부를 향한 나의 사랑이 요동치 않는다.” Irenaeus, Adverusus haereses, 4.6.2; 이레네우스의 다시 머리 되심의 교리는 기독론 중심의 신학을 이루고 있는데 기본이 되는 세 가지 개념은 회복(restoration), 창조의 성취(achievement of creation), 그리고 신화(deification, theosis)이다. 그의 유명한 다음 언급은 신화의 개념을 말해준다. “우리로 그분 자신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가 되셨다.(Factus est quod sumus nos, uti nos perficeret quod et ipse).”Irenaeus, Adverusus haereses, 서문; 이레네우스는 인간 구원의 마지막 성취 상태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기술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가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성취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닮는 것이므로 하나님처럼 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이레네우스 신화(神化)의 교리에 있어서 핵심적인 두 가지 사상은 첫째, 우리 자신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고 둘째, 우리가 하나님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에 의해 우리가 살리심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Kim Dai Sil, “Iranaeus of Lyons and Teilhard de Chardin: a comparative study of‘ Recapitulation and Omega’,”Journal of Ecumenical Studies 13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1976), 86. 62) Kim Dai Sil, “Iranaeus of Lyons and Teilhard de Chardin: a comparative study of‘ Recapitulation and Omega’,”Journal of Ecumenical Studies 13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1976), 86. 63) “…the end of the gospel is, to render us eventually conformable to God, and, if we may so speak, to deify us. But the word nature is not here essence but quality. The Manicheans formerly dreamt that we are a part of God, and that after having run the race of life we shall at length revert to our original. There are also at this day fanatics who imagine that we thus pass over into the nature of God, so that his swallows up our nature....But we, disregarding empty speculations, ought to be satisfied with this one thing, ~ that the image of God in holiness and righteousness is restored to us for this end, that we may at length be partakers of eternal life and glory as far as it will be necessary for our complete felicity.”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Catholic Epistles in Calvin’s Commentaries vol. 22, trans. and ed. John Owen (Grand Rapids: Baker Books, 1979), 371. 64) 단일실체론을 표방하는 스피노자의 일원론적 형이상학은 그가 정의 내린 실체 개념의 전개를 살펴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실체란 그것 자체 안에 있는 것이며 그 자체를 통해서 생각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말하자면 그것의 개념은 다른 사물의 개념을 요청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에 의해 파악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 하나님 이외에 어떠한 실체도 존재할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 … 실체는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산출될 수 없다.” John W. Cooper, Panentheism~The other God of the Philosophers: from Plato to the present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6), 68~69; 스피노자는 하나님 외의 개별자들은 비실재도 아니고 개별적 실체도 아닌 단일하고도 무한한 실체의 변형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정신적 속성과 물질적 속성을 신적 실체가 지닌 무한한 속성들 가운데 두 가지의 유한한 외양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세계는 신의 존재의 질화(質化)이며, 따라서 모든 존재는 신의 실체가 다른 장르로 존재하는 것인 셈이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의 형상들은 동일한 신의 실체의 확장으로서 동등성을 가지며, 이로써 창조세계는 곧 신의 실체이며 신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Gilles Deleuze『스피노자의 표현의 문제』, 이진경, 권순모 역, (고양: 인간사랑, 2004), 97~99; B. Spinoza『에티카』(서울; 서광사, 2007 개정판), 강영계 역, 374~375. 65)“ Christianity’s greatest sin is to think that other religions are not saved. The New Ages movement can get flaky but is potentially very godly and its virtues are absolutely enormous.”M. Scott Peck, Further Along the Road Less Traveled (New Yorkl:Simon&Schuster Audioworks, 1992). 66) M. Scott Peck, A World Waiting to be Born (New York: Bantam Books, 1993), 88. 67) Matthew Fox, The Coming of the Cosmic Christ(San Francisco: Harper & Row, 1988), 154, 232. Ray Yungen, A Time of Departing,『 신비주의와손잡은기독교』, 김성웅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89, 90에서 재인용. 68) Thomas Merton, Spiritual Direction & Meditation『영적지도와 묵상』, 김규돈 역 (서울: 성바오로출판사, 1998), 82. 69) 내재신론을 의미하는 ‘판엔데이즘’(panentheism)은 ‘모든’(all)을 뜻하는 헬라어 판과 ‘안’(in)을 뜻하는 엔은 ‘신’을 뜻하는 데오스의 결합어이다. 이 말은 독일 신학자 카를 클라우제(Karl Krause)가 최초로 사용하였으며 이후 과정철학자 찰스 하트숀(Charles Hartshorne)이 대중화시켰다. 종교철학적 의미에서, 이 용어는 초월성(transcendentia)과 내재성(immanentia) 개념을 모두 혼합한 신(神) 개념 형성을 위한 최근 종교철학 안에서의 노력들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근본적으로 내재신론이란, 세계는 신 안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세계보다는 더 크다는 뜻이다. 내재신론자들이 보는 자연관은 전통적 자연주의나 전통적 유신론과는 몇 가지 점에서 구별된다. (1) 세계 내에서의 작용들은 신과 유한한 작인(作人)들 모두에게서 기인된다는 철저하게 사변적 입장을 취한다. 신(神)과 유한한 작인들을 서로 구별은 하되 신학에 기초한 실체라는 존재론적 구별은 부인한다. 그 대신에 신과 세계는 부분과 전체로서, 전체를 구성하는 유한한 구성 요소들과 무한으로서, 우연한 존재와 필연적인 존재로서, 도덕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와 완전한 존재로서 구별된다. (2) 신의 도덕적 완전성은 불완전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라는 고전적 유신론의 개념은 거부한다. 오히려 신의 도덕적 완전성은 신적 사랑의 완전성의 근거로서 이해된다. (3) 이러한 사상을 토대로, 신(神)은 유한한 작인들을 통해, 유한한 작인들 안에서만 행동한다. 이런 자기 제한성은 필연적으로 신적 행동에 있어서 자기 결정성의 개념을 제거한다. 대부분의 내재신론자들의 사상에 있어서는 신적작정(divine decree), 예정(predestination)과 같은 개혁신학에 있어서 고전적 개념들은 설 곳이 없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오히려 그 자리에 신적인“이끎”과“설득”이라는 개념을 놓는다. (4) 그들이 말하는 신적 행동은 제약을 두지 않으며 (open~ended), 세계와 인간에 대하여 참여적이라 할 수 있다. 내재 신론은 신(神)과 세계는 존재론적으로 불가분의 결합(結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신론적 개념과 다르고, 신에 속하는 인격적 자기 인식을 통해 신과 세계를 구별(區別)한다는 점에서는 범신론(汎神걩) 과도 구별된다. 20세기에는 과정 철학, 내지는 과정 신학(process theology)과 깊은 연관이 있다. 내재신론은“하나님은 지성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고전적 유신론의 주장과“하나님과 우주는 긴밀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범신론의 주장 사이에서 중간 근거를 추구한다. 내재신론자들에게 있어서 신은 우주를 포함하는 인격이거나 우주라는 육신을 가진 영혼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의 인격들보다 더 크시지만 같은 인격이다. 시간이 흐름 에 따라 늙어가고, 물질적인 부분들이 변함에 따라 변화하는 유한한 물질적 대상 안에 한정되신다는 말이다. 다음을 참조할 것. Philip Clayton & Matthias Wolfes, “Panentheism”, Religion Past & Present: Encyclopedia of Theology and Religion vol. 9, ed. by Hans Dieter Betz, Don S. Browning, Bernd Janowski, Eberhard J ngel, (Leiden: Brill, 2011). 481~482; Brian Leftow, “God, Concepts of”, Routledge encyclopedia of Philosophy vol. 4, ed. by Edward Craig (New York: Routledge, 2005), 100~101. 70) 칼빈은 오시안더(Osiander)의 범신론적·본질적 의를 오류로서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는 본질의 혼합을 곁들여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우리 안으로 주입시키심으로써~ 우리를 그 자신의 일부로 만드신다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자라나고 또한 그가 우리의 머리가 되고 우리는 그의 지체가 된다는 사실에 대해 오시안더는 그리스도의 본질이 우리의 것과 혼합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의 아무런 중요성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vol. II, trans. by Henry Beveridge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1), 41. 71) Francis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1, trans. by George (Phillipsburg; P&R Publishing Company, 1994), 197. 72) Francis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1, trans. by George (Phillipsburg; P&R Publishing Company, 1994), 198. 73)“ But the Orthodox believe and confess the immensity and omnipresence of God, not only as to virtue and operation, but principally as to essence. Still they think the mode of it should neither be curiously inquired into, nor be rashly defined. This only is to be held as certain~ that it those not consist either in the multiplication of the divine essence(which is one numerically and individually); or in the extension and diffusion of any incorporeal mass(since he is uncreated spirit); or in physical contact (which belongs only to bodies); but in the simple and to us incomprehensible infinity of the divine essence, which is so intimately present with all things that it is both everywhere in the world and yet is not included in the world.”Turretin, Francis.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1, trans. by George (Phillipsburg; P&R Publishing Company, 1994), 198. 74)“ But place is either circumscriptive or definitive. Now God is not in a circumscriptive place, like corporeal things contained by their corporeal place which is divisible into its own sizeable parts also divisible; nor in a definitive place, as are intelligent forms, i.e. angels and human souls, because although the place of intelligent forms is not corporeal or circumscribed as regards us, it is yet defined in itself, so that one intelligent form cannot define(limit) two places at the same time, i.e. operate in two places at the same time.” Amandus Polanus, Syntagma Theologiae Christianae (Hanoviae, 1624.) II.12., Heinrich Heppe, Reformed Dogmatics (Eugene, Wipf & Stock, 2007), 66에서 재인용. 75)“ Intelligimus autem hoc loco, non Spiritum dantem; sed spiritum datum, nisi malis datum, cum relatione ad dantem: h. e. illum spiritum, quem Spiritus S. per regenerationem confert cujus praesentia perinde animam vivificat spiritualiter; ac spiritus admalis praesentia corpus vivificat naturaliter. Ezch. xxxvii. 5, Act. xx. 10.”Petrus van Mastricht, Theoretico~Practicae Theologia, qua, per capita theologica, pars dogmatica, elenchtica et practica, perpetua successione conjugantux. (Amsterdam; 1682~1687). 661. 76) 중생과 함께 신자에게 분여하신 영은 그것을 주신 성령과 특별한 교통적 관계를 가지는 영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에 대한 종교개혁자들과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의 커다란 담론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문제를 상세하게 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본 논문의 목적과 의도 밖에 있는 것이다. 다만 마틴 부처를 비롯한 이후의 종교개혁자들과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거의 일치한 견해를 갖는다는 점만 언급하겠다. 77) “Hinc Spiritus vivificare dicitur Joh. vi, 63., appellatur Rom. viii. 2. quod praisentia spiritus hujus, dati in anima, vitam spiritualem constituat, & perinde ad spiritualia pronum & idoneum faciat, ac spiritus naturai, ad naturalia.” Petrus van Mastricht, Theoretico~Practicae Theologia, qua, per capita theologica, pars dogmatica, elenchtica et practica, perpetua successione conjugantux. (Amsterdam; 1682~1687). 661. 78) 김남준『, 개혁주의중생론연구: J. Calvin과Petrus van Mastricht 를 중심으로』, (안양: 열린교회출판부, 2009), 55~56. 79) 이은선, “세속화 시대의 기독교 영성: 관상기도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중심으로”,『 성경과 신학』, 제 49권 (한국복음주의신학회, 2009), 97~98;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 히스베르투스 퓌치우스 (Gisbertus. Voetius, 1589~1676)는 성도의 경건 모임의 바른 활용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면서 이 점을 분명히 한다. 공적인 교회 집회와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는 경건 모임 사이의 보완적인 협력 관계를 역설하지만 교회에서 행해지는 공식 집회를 등한시하면서 경건 소그룹에만 참여하는 일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과 특별히 사교 집단들에 의해서 비밀리에 행해지는 회집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교회 속의 작은 교회’의 속성을 망각한 회집들은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경건생활과는 관계가 없다. G. Voetius, Von Eintzeler Versammlung der Christen (Hannau, 1678), 14, 26, 28, 32, 37, 주도홍, “네덜란드‘나데레 레포르마치’의 영성 연구: 히스베르트 푸치우스를 중심으로”, 『백석신학저널』제 1호 (백석기독학회, 2002, 봄), 314에서 재인용. 80) “기독교가 역사적 종교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기독교는 단지 윤리적 이상들만을 가르치거나 역사를 도외시 하는 신비적 체험에 몰입하지도 않는다. 기독교는 과거에 발생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하며, 미래에 발생할 사건들을 기대하고 지향한다. 도덕, 혹은 신비종교에 반하여 이는 역사적 종교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역 속에서 문제의 해결점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구원의 역사, 그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 위에 기초하고 있다. …비록 교회 역사의 초기에 있어서는 소위 시간을 초월한다는 로고스(logos)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교부들은 역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기독교 신앙이 그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속의 행위에 깊이 뿌리박고 있음을 알았다. 이들은 하나님이 과거에 하신 사역을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깊숙이 탐구하였으며, 하나님의 약속들의 완성을 향한 미래를 지향하였다.” Robert D. Knudsen, History: The Encounter of Christianity with secular science,『 개혁주의역사 관』,서영일 역 (서울: CLC, 1986), 63~67. 81) 현대의 기독교가 보여주고 있는 현상 중 하나가‘개인화’이다. 이것은 개인의 체험만을 중시하고 교회의 제도는 무시하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60년대에 나온 종교의 사사화 또는 ‘보이지 않는 종교’라는 개념에서 개인주의적 영성운동은 아직 그 대상이 아니었다. 초점은 종교의 공식적인 유형과 개인적인 종교성 사이의 문제에 있었다. …거룩한 세계가 우선적으로 사적 영역에 근거하고, 공식적 유형이 없기 때문에 그 선택은 소비자 선호에 토대하고 있어 개인적인 종교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전명수, “개인주의적 영성운동과 세속화 논쟁”,『 담론 201』, vol.13, no.3. (한국사회역사학회, 2010), 59. 종교적이면서도비교회적인동향에대해서위거찬.『 기독교와 포스트모더니즘』(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1), 53~55를 참고할 것. 82)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제21장3항,”김혜성, 남정숙공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6), 128 83)“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17과 기도”중에서, J. G. Vos, G. I. Williamson, The Westminster Larger Catechism: A Commentary,『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강해』류근상, 신호섭 공역, (서울: 크리스찬출판사, 2007, 649. 84) Ray Yungen, A Time of Departing,『 신비주의와손잡은기독교』, 김성웅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120. 85) 이들은 성경을 통해 침묵을 살펴 볼 수 있다고 하며 침묵을 관상의 첫 단계라고 말한다. Max Picard, Die Welt des Schweigens,『 침묵의 세계』, 최승자 역, (서울: 까치, 1999), 21~22, 86) 이것은 1989년 10월 15일 로마에서 신앙교리성 총회(Congregatio pro Doctrina Fidei) 때“그리스도 명상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Epostula ad Totius Catholicae Ecclesiae Episcopos de Quibusdam Rationibus Christanae Meditations)”이라는 이름으로 작성된 것인데 장관 요셉 라칭거 추기경과 차관 알베르토 보보네 대주교의 이름으로 작성되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승인을 받은 문서이다. 한국에서는 다음의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정진석 발행, 최영철 역『, 그리스도교 명상』,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9). 87) “our Lord Jesus Christ not only instructed his disciples to pray by the use of words, but did so himself, and that constantly, so far as we know, Matthew 26:39,42; yea, when he was most intense and engaged in this duty, instead of this pretended still prayer of contemplation, he prayed “with a strong outcry,....”, John Owen, On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n Prayer in The Works of John Owen, vol. 4, ed. by William H. Goold,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67), 330. 88) 칼빈, 『기독교강요』, 3권 제20장 3항 (서울: 기독교문사, 2007), 175~178. 89) “…this duty is that acting of the mind and soul wherein, from an acknowledgment of the sovereign being, selfsufficiency, rule, and dominion of God, with his infinite goodness, wisdom, power, righteousness, and omniscience and omnipresence, with a sense of their own universal dependence on him, his will and pleasure, as to their beings, lives, happiness, and all their concernments, they address their desires with faith and trust unto him, according as their state and condition doth require, or ascribe praise and glory unto him for what he is in himself and what he is to them. This is the general notion of prayer, which the reason of mankind centers in; neither can any man conceive of it under any other notion whatever.”John Owen, On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n Prayer in The Works of John Owen, vol. 4, ed. by William H. Goold,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67), 335. 90) “Prayer, in the Scripture representation of it, is the soul’s access and approach unto God by Jesus Christ, through the aids of his Holy Spirit, to make known its requests unto him, with supplication and thanksgiving. And that whereon it is recommended unto us are its external adjuncts, and its internal grace and efficacy. Of the first sort, earnestness, fervency, import!unity, constancy, and perseverance, are the principal. No man can attend unto these, or any of them, in a way of duty, but in the exercise of his mind and understanding. Without this, whatever looks like any of them is brutish fury or obstinacy.”John Owen, On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n Prayer in The Works of John Owen, vol. 4, ed. by William H. Goold,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67), 336. 91)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이란 성령의 도움으로 이성적 기능에 의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알고, 이해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조명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식의 빛(light)은 인간의 개념과 이해력에 무엇인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계시를 미리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인간의 개념과 이해력에 무엇인가 더해지는 것이고, 신자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계시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런 것들이 더해지게 됩니다.”성령의 조명을 통한 말씀에 대한 지성적 깨달음은 중생 이후에도 계속된다. 신자의 마음을 조명하시는 분은 성령이시지만 그것을 통하여 참된 자기 깨어짐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책임도 뒤따른다. 첫째는 조명을 통해 주어진 지식을 굳게 파지(把持)하는 것이고, 둘째는 조명을 통해 주어진 지식을 토대로 이성적으로 더 많이 추론하는 것이다. 김남준, 『자기깨어짐』,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6), 120, 142. 92) “플라톤은 참된 인간의 주체, 즉 영혼은 만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절대 선을 영구적으로 소유하지 못하여 쉼 없이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간주한다. 영구적으로 절대 선을 소유하는 것은 관상(theoria)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관상은 사랑과 지식의 상승적 정화(katharsis)의 열매이며 또한 영혼 안에 있는 신적 요소인 이성(nous)이 그 고귀한 원천에 동화될 때 목표에 이른다. 이 요소들-관상, 관상이 사랑과 지식에 대해 유지하는 관계, 이성, 그리고 이성의 원천이며 플라톤이 일자(the One), 선(the Good), 그리고 미(the Beautiful)라고 언급했던 절대자-각각에 대한 보다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관상이란, 이성이 현상 세계, 유한한 세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절대자와 임재와의 직관적인 접촉을 통해서 두 영역을 하나로 묶는 방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Bernard McGinn, The Foundation of Mysticism: Origins to the Fifth Century『서방 기독교 신비주의의 역사』, 방성규, 엄성옥 공역 (서울: 은성, 2000), 58; John Owen, On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n Prayer in The Works of John Owen, vol. 4, ed. by William H. Goold,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67), 329; 플로티누스의 원전은 다음을 참조할 것. Plotinus, Ennead VI. 6~9 in Loeb Classical Library, vol. 468,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8), 341~342. 93) “The spiritual intense fixation of the mind, by contemplation on God in Christ, until the soul be as it were swallowed up in admiration and delight, and being brought unto an utter loss, through the infiniteness of those excellencies which it doth admire and adore, it returns again into its own abasements, out of a sense of its infinite distance from what it would absolutely and eternally embrace, and, withal, the inexpressible rest and satisfaction which the will and affections receive in their approaches unto the eternal Fountain of goodness, are things to be aimed at in prayer, and which, through the riches of divine condescension, are frequently enjoyed. The soul is hereby raised and ravished, not into ecstasies or unaccountable raptures, not acted into motions above the power of its own understanding and will; but in all the faculties and affections of it, through the effectual workings of the Spirit of grace and the lively impressions of divine love, with intimations of the relations and kindness of God, is filled with rest, in ‘joy unspeakable and full of glory’.”John Owen, On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n Prayer in The Works of John Owen, vol. 4, ed. by William H. Goold,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67), pp. 329~330. 94) Leon J. Wood, The Prophets of Israel,『 이스라엘의 선지자』, 김동진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1), 133~139. 95) Edward J. Young, My Servants the Prophets,『 선지자연구』, 정충하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1), 148~180. 96) Edward J. Young, My Servants the Prophets,『선지자 연구』, 정충하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1), 209~221. 97) “로마교회에 반대하여,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성화의 주된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이 단언되어야만 한다. 진리 그 자체는 분명 신자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적절한 효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성령에 의해 사용될 때에 이는 성화의 수단이 된다. 성경은 거룩한 실천과 행위들에 대한 모든 객관적인 조건들을 제공한다. 성경은 동기와 이유들을 제시함으로써 영적인 행동들을 장려하고, 금지와 권면과 모본들을 보여줌으로써 영적인 삶을 지도한다.”(In opposition to the Church of Rome it should be maintained that the principal means used by the Holy Spirit is the Word of God. The truth in itself certainly has no adequate efficiency to sanctify the believer, yet it is naturally adapted to be the means of sanctification as employed by the Holy Spirit. Scripture presents all the objective conditions for holy exercises and acts. It serves to excite spiritual activity by presenting motives and inducements, and gives direction to it by prohibitions, exhortations, and examples).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96), 535. 화란 신학자 프란시스 튜레틴(Francis Turretin)은 특별히 중생에 있어서 성령과 말씀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유효적부르심에 있어서 성령은 말씀 없이 역사하지는 않지만 말씀을 통하여(through) 간접적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 안에서 말씀과 함께(with) 직접적으로 역사하신다. …우리의 회심에 있어서 말씀은 필연적으로 성령과 함께 동시적으로 역사되어야 함이 분명하다.” Francis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2 (Phillipsburg: Presbyterian &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94), 526 98) 토마스 머튼은 관상적 체험의 일치가 타종교와의 대화의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이은선,“ 세속화 시대의 기독교 영성”,『 성경과 신학』49권(한국복음주의신학회, 2009), 84,85. 선체험을 통해서 영성이해에 도움을 받았다는 토마스 머튼의 견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하라. Thomas Merton, Zen and the Birds of Appetite(New York: New Directions Publishing, 1968) 99)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인하여 다원주의로의 선교적 회귀를 하게 되었다.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한 제21차 보편 공의회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목적을‘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라고 보았다. ‘현재화’, ‘현대화’, ‘금일화’, ‘개방’, ‘시대적응’, ‘쇄신’등을 뜻하는 이 말은 신앙의 원천을 되돌아 보고 나서 현대 세계의 변화된 상황 안에서 신앙의 원천을 다시 표현하자는 것이다. 즉 초대교회의 삶과 성경의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원에까지 되돌아가는 한편 앞을 내다보고‘시대의 징표’를 읽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와 비전을 이끌어내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김진하, “우주적 그리스도론에 관한 고찰;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신학 사상을 중심으로”(서울: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1, 석사학위 논문), 124. 100) “신종교다원주의가 교회 속으로 파고들면서, 선교에 앞장섰던 서구 사회에서는 식민주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일어납니다. 즉 과거에 복음을 전한다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하고 살상을 일삼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자성과 함께 선교를 문화적인 제국주의로 보는 견해가 대두되었고, 이에 다른 종교를 포용하자는 종교를 포용하자는 종교 다원주의가 대중적 공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자성의 분위기가 종교 다원주의에 힘을 실어주게 되었습니다.” 박순용, 『기독교 세상의 함정에 빠지다』,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344~345. 101) 관상기도를 수도원에서 끌어내어 현대의 대중사이에 유행하게 만든 인물은 토마스 머튼이다. 성공회 사제였던 그는 수피~이슬람 신비주의자들에게 깊이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이러한 평화주의에 심취하여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하였고 베트남의 고승인 틱낫한(Thich Naht Hahn) 등과 교류하면서 종교다원주의와 평화주의를 모색하였다. 그가 관상하는 대상이 자아였다는 것은 다음의 언급에서도 명백하다. “우리 중심에는 죄와 환영이 만질 수 없는 무가 놓여 있다. 이 지점에 순수한 진리가 있다…이 작은 점,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신의 순전한 영광이다. 이 점은 모든 사람 안에 있다.” “( At this center of our being is a point of nothingness which is untouched by sin and by illusions, a point of pure truth...This little point...is the pure glory of God in us. It is in everybody.”) Thomas Merton, Conjectures of Guilty Bystander, (NY: Doubleday Publishers, 1989), 157~158, Ray Yungen, A Time of Departing,『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김성웅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92~96에서 재인용. 102) Joseph M. Kramp, “The Suicide of The Thomas Merton: Moral Narcissism, Contemplative Prayer, and the Religion of Humor,”Pastoral Psychol (2007) 55:619~635. 103) 존 오웬은 하나님과의 교통에 관한 그의 저작에서 모든 참된 지혜와 지식을 세 가지 항목으로 요약한다. 첫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고 둘째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고 셋째는 하나님과 교통 가운데 행하는 지혜라고 하였다. 이 세 번째 항목을 오웬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음을 참조할 것. John Owen, On Communion with God, in The Works of John Owen, ed. by William H. Goold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66), 106~111. 104) Franscis Shaeffer, The Complete Works of Franscis A. Shaeffer; A Christian World View, vol.1, A Christian World View of Philosophy and Culture (Illinois; Crossway Books, 1982), 228~229. 105) Stanley J. Grenz, A Primier on Postmodernism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6), 44~46. 106)“ To some degree theology is shaped by its age; theology also helps shape an age. Therefore, an evangelical theologian who wishes to know his theology in depth must study the correlations of theology and cultural history. … Art is one of the clues to the mentality of an epoch. … The evangelical concern with art and literature does have its function in helping the evangelical to understand his culture and therefore to communicate more effectively with it. … The evangelical theologian should know the philosophies of his times. … he can understand the theological options only if he has some understanding of the philosophical options of the times.”Bernard Ramm. The Evangelical Heritage: A study in historical theology (Grand Rapids: Baker Books, 2000), 156~1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