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서두와 결미 / 許世旭
동양의 선인들은 문학을 유기시하고 생명시했다. 시의 구성을 기·승·전·결이나 수(首)·함(領)·경(頸)·미(尾) 등 4연으로 보는 것은 바로 시를 인체의 구조에 대비시킨 것이다. 수필을 구성함에 있어서도 크게 서두·본문·결미 등 삼단법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대저 수필이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무형식·무기교·무한 소재의 창작일지라도 인체가 모든 것을 갖춘 소우주인 것처럼 수필 또한 예술품으로서 구성과 품격을 지녀야 한다. 무릇 사물에 출입·선후·시종의 분별이 있듯 수필에도 서두와 결미를 둘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서두는 시차적인 기점만이 아니라 수필의 무드를 일으키는 일이며, 결미 또한 한갓 마무리가 아니라 수필을 완성하는 표현 수단인 것이다.
서두와 결미를 두고 음악 연주·영화 상영·화초 재배·집짓기·육상 달리기·그림 치기 등과 비교할 수 있다. 특히 심포니의 1악장과 최종 악장·영화의 개막과 라스트 신, 꽃 심기와 꽃 피우기·건축에서 정초와 상량, 육상에서 출발과 골인·회화에서 화룡(畵龍)과 점정 등은 서두와 결미의 실제를 설명하기에 좋은 예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구성에 있어 잔잔한 서두에 웅장한 종막을 금과옥조로 삼아서는 안 된다.
서두와 결미는 상대적으로 중요하다. 서두에서 흥미 유발에 실패하면 제 아무리 본문·결미에 황금을 갊아도 무용한 흙에 지나지 않고, 기발하면서도 정서적인 서두로 흥미 유발에 성공했을지라도 후반이 무력하거나 오리무중이면 모두들 실망시키고 만다. 三단 구성도 마찬가지다.
작위적으로 논문의 서론·본론·결론에 대입시켜서는 안 된다. 수필이 정서의 미학으로 상징·압축·비약·여운 등의 예술적인 방법을 충분 혹은 부분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에 말이다. 서두·결미의 유형이나 기법은 다양하다. 필자는 그 분석 정리보다 좋은 수필로 지향할 수 있는 진취적 풍격을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요약해 보았다.
서 두
1. 일명경인(一鳴驚人)형
제목이 담고 있는 주제의 흐름을 간명한 문장으로 압축하여 ‘한 마디 말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방법이다. 기발한 언어나 사건, 짜릿한 감탄 등으로 관심을 환기하고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첫 쪽 첫 줄부터 독자를 오싹하게 만든다. 그러나 과도한 긴장은 독자를 쉬이 피로케 한다.
민태원 <청춘예찬>에서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로, 윤형두가 <연처럼>에서 ‘줄 끊어진 연이 되고 싶다.’로 시작한 것 등이 그렇다.
2. 개문견산(開門見山)형
사건이나 무드의 클라이맥스를 동태적인 묘사로 맨 앞에 끌어내어서 ‘문 열자 성큼 산을 만나’는 효과의 방법이다. 단도직입적이지만 분방하고 거침없는 문세를 유창하게 보임으로써 서예에서 일필휘지의 느낌이다. 힘도 있고 흥미도 넘치건만 첫 신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신선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이상이 <권태>에서 ‘어서 차라리 어둬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로, 피천득이 <오월>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로 머리를 튼 것 등이 그렇다.
3. 춘교답청(春郊踏靑)형
춘·하·추·동이나 기·승·전·결처럼 서사와 서정을 ‘어느 날 해동이 된 봄날 푸른 물 위를 걷듯’ 아주 가뿐하게 천천히 차근하게 전개하는 방법이다. 결코 긴장하거나 덤비지 않고 유달리 튀려고 애쓰지 않는다. 가장 안전하면서도 질박한 길이다.
이어령의 <잃어버린 물건들>에서 ‘거리를 지나가다 이따금 이삿짐을 나르는 광경을 보면 슬픈 생각이 든다.’로, 피천득이 <인연>에서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같은 것이다.
4. 예시예립(預示預立)형
한 편의 수필, 그 서정과 사건의 발생과 발전 그리고 완성을 ‘미리 보이고 미리 세우는’ 방법이다. 암시나 은유를 선행함으로써 상상을 유발하거나 결정적인 정의를 내리고 연역적인 논리를 말뚝으로 박는다. 맨 앞에 강렬한 계시를 풀기 위해선 친절하고 충분한 서술이 따라야 한다.
이양하가 <나무>에서 ‘나무는 덕을 지녔다.’로, 김남조가 <그 수평선을>에서 ‘오늘 보고 싶은 건 하늘까지 맞닿은 수평선이다.’라 서두를 연 것 같은 것이다.
5. 신우초제(新雨初霽)형
긴 허두는 말고 짧고 신선한 말로 수채화처럼 시작한 서두는 ‘새 비가 개인’ 하늘처럼 청랑하다. 난해커나 추상적인 데가 없다. 중심사상을 넌지시 드러내면서 말수는 적다. 그리고 구체적이다. 결코 거창하거나 장황하지 않다. 말끔한 청잣빛 붓꽃 같은 글이다.
이희승이 <청추수제, 창공>에서 ‘옥에도 티가 있다는데 가을 하늘에는 얼 하나 없구나!’로, 이태준이 <벽>에서 ‘뉘 집에 가든지 좋은 벽면을 가진 방처럼 탐나는 것은 없다.’로 서두를 여는 것 등이다.
결 미
1. 평사낙안平(沙落雁)형
한 편의 수필이 끝까지 읽혔다면 최소한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끝까지 읽어도 아무 감동이 없다면 모두가 허탈해진다. 그걸 막기 위해서도 결미의 책임은 크다. 여기서 ‘기러기가 하늘을 날다가 평편한 모래톱에 살짝 내려앉듯’ 마무리 짓는다면 평년작 이상이다. 울렁임은 없어도 잔잔한 울림이 있다. 무리한 구성 없이 차분한 서정대로의 깔끔한 터치이다.
이양하가 <나무>에서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진달래가 될까, 소나무가 될까는 가리지 않으련다.’나 법정이 <무소유>에서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등과 같다.
2. 산중회음(山中回音)형
잔잔한 서정과 절실한 서사로 수필을 구성하되 독자에게 많은 사유 공간을 만드는 여운 조성법이다. 수필은 손에서 놓았는데 감동은 ‘산중의 메아리’처럼 가슴에 울린다. 그러나 정을 절제하고 주제는 감추어야 한다. 그래서 상품이다.
윤오영이 <달밤>에서 ‘살펴가우……. 얼마쯤 내려오다 돌아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나 피천득이 <인연>에서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같은 것이다.
3. 촌철살인(寸鐵殺人)형
정도의 차는 있지만 ‘평사형’과 ‘산중형’이 유약(柔弱)한 여운임에 반해 ‘한 치의 쇠붙이로 살인하듯’ 짤막한 경구로 마음을 찌르는 강강(剛强)한 방법이 있다. 정연한 서사와 논리를 끌어오다가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마지막 펀치를 날린 것이다. 어느 정도의 교훈성이나 설명이 불가피하다.
이희승의 <딸깍발이>에서 ‘첫째, 그 의기를 배울 것이요, 둘째, 그 강직을 배우자. ……’나 박완서의 <죽은 새를 위하여>에서 ‘인간이 개똥철학이라고 비웃건 말건’ 등 같은 것이다.
4. 유암화명(柳暗花明)형
‘우거진 버들로 그늘이 어둡다가 활짝 핀 꽃으로 밝은’ 춘경처럼 암울하고 부정적인 전반을 밝고 긍정적인 결미로 반전하는 방법이다. 감정을 절제하고 현학적인 논리를 지양하면서 문장의 흐름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김후란의 <귀한 만남>에서 ‘해질 무렵 하나 둘 불이 켜지는 가로등처럼 우리의 인생길을 서로가 밝혀주는 불빛이 되자.’나 이해인의 <신발을 신는 것은>에서 “‘날마다 새롭게 감사하며 사세요’, ‘더 기쁘게 걸어가세요’라고” 등이다.
5. 앙천문지(仰天問之)형
대체로 사유적이거나 비평적인 글에서 독자의 공명을 불러일으키고 ‘하늘을 우러러 묻듯’ 자문(自問) 혹은 반문하는 방법이다. 잘못 하면 종결에 너무 야심을 부리는 것으로 보인다. 가볍게 지나가듯 반문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시절의 탓일까? 깊어가는 가을이 이 벌거숭이의 뜰이 한층 산 보람을 느끼게 하는 탓일까?’나 박이문의 <여행>에서 ‘곧 죽음으로의 떠남은 어떤 것일까?’ 등이 그렇다.
풍격으로 가린 서두와 결미, 각각 5항을 필자 자의로 예거했다. 결코 규정된 것이 아니다. 5항 이상일 수도 이하일 수도 있다. 결국 수필의 형식은 없을지라도 풍격은 있다. 그것도 규정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