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말씀배경
[디모데전서 2:5]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바울이 선교사역을 하고 예루살렘으로 왔을 때에 동족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여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잡혀가게 됩니다 (행 24~28장)
그가 로마 감옥에서 풀려난 후 마케도니아에 있을 때에 (1:3)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목회 서신을 보냅니다. 이것이 바로 디모데전. 후서입니다 (목회서신).
당시 에베소 교회의 영적 환경은 이단들인 유대 율법주의자들과 영지주의자들이 전하는 다른 복음으로 교회를 영적으로 혼란스럽게 한 것 같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의 준수가 구원의 조건인 것처럼 행위 구원을 강조했습니다. 또 그들은 유대인이란 민족적 특권의식에 강하게 잡혀 있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적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영혼 만을 중시하고 육체를 경시하는 사람들로 ① 극단주의적인 금욕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금욕주의) ② 정 반대로 육체적인 쾌락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도덕폐기론), 영혼의 구원은 소수의 사람에게 허락된 “비밀스러운 지식” (신적계시와 현몽에 의한 초자연적인 지식-그노시스)을 가진 자가 구원을 받는데 이를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도 단지 사람처럼 보여진 것에 불과하다는 가현설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바울이 전한 복음을 따르지 않고 다른 교훈 (1:3), 다른 복음 (갈 1:6-9)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 영향을 받아 구약의 인물을 기초하여 신화적 역사를 꾸며 내기도 했습니다. (1:4, 4:7). 자기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이런 신화적 인물들의 후손이니까 구원을 받는다는 우월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외경으로 창세기의 주석과 같은 “소창세기”라고 불리는 “유대인의 쥬빌리서”를 보면 이런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모습을 보고 이렇게 진단합니다. 이것은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것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다 (1:4), 헛된 말이다 (1:6), 이것은 복음이 아니고 다른 교훈이다 (1:33, 6:3), 이를 통하여 율법의 선생이 되고자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1:7), 그것은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이다 (4:1),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에 불과하다 (4:7),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이 아니다(6: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장, 2장 말씀의 흐름으로 볼 때에 이런 다른 교훈, 다른 복음이 후메내오, 알렉산더와 같은 일부 사람들이 믿음과 착한 양심을 버리고 파선한 것으로 보입니다 (1:19-20)
이런 영적 환경 속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2:4)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2:1-2)
그리고 복음의 핵심인, 누가 구원를 주는가를 오늘 말씀인 2:5-6절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해석을 덧붙인다면,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게 아니고, 유대인이라는 혈통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오직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이 구원을 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방법이 한 분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2:5)
2.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 한 분만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 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필요하고, 친구가 필요하고, 회사에서는 직원이 필요하고, 가르치는 선생이 필요하는 등 많은 종류의 좋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구원에 있어서는 성인이라고 해도, 영웅과 같은 좋은 조상들이 있다 해도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화에서 나오는 다양한 신들처럼 세상에는 많은 신들과 주로 불리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입니다.
고린도전서 8:5-6절을 보면 이런 사실을 정확하게 말씀으로 우리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전 8: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이 말씀을 당시 영적 분위기를 고려하여 다시 정리해 보면, 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같이 세상에는 많은 신과 주들이 있지만 그들이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 아버지와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우리들 존재의 뿌리가 하나님이며,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들이 존재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도 한 분 하나님과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창조자도 구원자가 아닙니다. 신화의 신들과 같은 신적 존재와 같은 조상을 두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며, 복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주의자들에게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그냥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는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오직 한 분 하나님과 한 분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간들은 다른 것들을 구원자라고 섬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① 우리와 같은 죄인들인 사람을 구원자라고 섬깁니다.
석가모니, 공자, 무함마드, 우리나라에서는 이만희, 문선명 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구원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을 막고 있는 방해자입니다. 그들로 인하여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믿지 못하게 합니다.
부정하게 합니다.
그들이 구원을 줄 수 있습니까? 성경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② 우상과 같은 무슨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구원자라고 섬깁니다.
바알과 아세라처럼 말입니다. 우상을 섬기면 100% 악한 영들이 역사합니다.
무당의 영이 역사하고 더러운 잡신들이 역사하여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보지도 믿지도 교회 가지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③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돈, 명예, 권력이 우상이 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돈은 가장 강력한 우상입니다. 돈이 사람들의 주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하나님께로 나아오지 못합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까지 하셨는데, 그 또 하나의 주인이 바로 돈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분명한 것은 돈이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돈으로 천국을 못 가기 때문입니다.
돈은 오히려 구원을 방해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마 19:24).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사람이나 우상이나 돈이나 이런 것들은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 4절을 보에 분명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르게 해석하면, 하나님은 구원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이며, 진리 곧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주셨는 그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체험적 앎입니다. 진리는 말씀이며, 말씀은 곧 예수님입니다.
그러면서 5절에, 하나님은 한 분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다. 그 중보자가 누구냐 하면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한 분 중보자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선민 이스라엘과 같이 어느 민족을 지정하는 것이거나 선행의 양에 따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의 방법이 유대 율법주의자들, 영지주의자 너희들이 말하는 그런 방법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 오신 예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적인 죽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6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율법으로 구원을 받고자 하면 수많은 율법 조항을 다 지켜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할례는 대표적인 율법 조항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할례를 해야 구원을 받는다면 율법 전체를 다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그 한 가지 계명,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율법 하나도 지키지 못한 인생이 어떻게 그 많은 율법을 다 지키며 살아갑니까? 십계명도 다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확실히 선언하는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하고 있고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5:12]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남자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의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롬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그래서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 분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예수님을 제외하고 그 어떤 것들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있어서 구원으로 이끌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4: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있어서는 오직 예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지금이나 바울의 시대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가져다 줄 뭔가를 지금도 찾고 있는데 사탄에게 미혹되어 예수님 아닌 다른 것을 구원자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역사입니다.
오늘 에베소 교인만 보더라도, 나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신화에 나오는 것과 같은 조상을 두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 2: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그들은 할례를 행해야 하고 다른 기타의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고 행위 구원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대인이라도 아무리 할례를 행하여도 그것 만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며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당연히 신화에 나오는 그 어떤 신들에 의해서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복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대부분 행위 구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뭔가를 하거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법에 종으로 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외형적으로는 선함이 될 수도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성경은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하여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신 둘째 아담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 선행은 구원을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열매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이 선한 열매는 억지로 율법적으로 맺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자연스럽게 열리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반대로 선한 열매를 맺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여 가시나무에 사과 열매를 맺기를 바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불가능합니다. 이것처럼 그런 행위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가시나무와 같은 자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본성을 거슬러 좋은 사과나무와 같은 자가 되어야 사과 열매가 맺는 것입니다.
[로마서 11:24]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행위 구원을 위하여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사망의 법에 꽁꽁 묶여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믿는 자에게 부어지는 성령으로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에서 말씀하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인 것입니다.
이 성령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에베소 교회는 그래서 처음 사랑을 잃어가는 교회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계시록 2: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사랑보다도 율법이 강했으니까요.
에베소교회 교인들은 그들에게 예수님만 있으면 구원을 얻는데, 자꾸 복음을 변질시켜 율법을 지켜야 하느니, 특별한 영적 지식을 가져야 하느니, 영만 구원을 받으면 된다고 하여 육체를 쾌락에 빠지게 하는 등 헛된 말을 하고 다른 복음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닙니다.
구원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오직 한 분 예수님만 있으면 됩니다. 다른 것 필요 없습니다. 돈도 필요 없습니다. 성경은 값 없이 생명수를 사서 먹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계 21:6, 22:17)
예수님을 잉태한 복이 있는 마리아도 필요 없습니다. 그녀는 단지 성령으로 잉태된 성자 예수님을 열 달간 배 속에서 키우신 복된 분인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조금의 조력자도 될 수 없습니다.
그도 구원을 받아야 하는 죄인인 것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장로교 교리대로라면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나 자신의 공로가 0.00001%도 없이 100%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다른 것들이 어떻게 우리들의 구원에 관여합니까?
돈도 구원을 할 수 없고, 가까이 있는 믿음 좋은 가족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중보 기도로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예수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이며 성령님의 역사로 그 복음에 반응한 자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단순합니다.
구원은 개인적입니다. 각자에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도 각자가 해야 합니다. 따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스가랴 12: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맺는 말>
오늘 말씀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에베소 교회의 일부 사람들이 바울이 개척할 당시의 순수한 복음을 잃어버리고 이상한 다른 복음을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단 사상들이 침투해 있습니다. 잘못된 교리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것들 다 무시하고 오직 하나님도 한 분이시오, 중보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인 것을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다른 구원의 매개체를 끼워 넣으면 안됩니다.
한 분만 잘 만나면 구원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 한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 한 분이 필요합니다.
이 예수님 만이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인 우리들을 구원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으로 우리들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