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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5:23>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1. 말씀배경
신약성서가 헬라어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언어인 것입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를 통하여 세워진 헬라제국은 성경에 나오는 아덴, 고린도, 에베소 등과 같은 도시에 헬레니즘이라고 하는 그리스 문화, 정신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 시대 사람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의 스승이었습니다.
▶▶▶ 문제는 헬라사상이 초대교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 영향으로 기독교 이단들이 출현한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이런 철학적인 이단을 경계하고 순수한 복음을 전하고자 애를 썻씁니다.
그는 아덴에서 헬라철학자들 곧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쟁론하기도 합니다. (행 17:16-18)
[행 17:16-18]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또 바울은 골 2:8절에서,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 헬라철학자 중에서 플라톤의 이원론은 두 개의 극단적인 사상으로 발전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이단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 이원론은 선과 악, 정신과 물질, 육체와 영혼, 하나님과 사탄과 같이 두 개의 큰 흐름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문제는 물질세계는 악하고 더럽고 정신과 영의 세계는 선하다는 주장하에 극단적인 주장이 있는데 바로 바울과 논쟁했던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입니다.
① 스토아 철학자들은 육체는 더럽고 악을 행하는 도구이므로 이것을 이기기 위하여 철저한 금욕주의로 발전했고,
②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은 육체가 원하는 것은 다 해도 영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하여 쾌락주의로 빠진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유대 율법 폐기론자들과 같습니다.
※ 율법 폐기론자는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니 도덕율까지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헬라철학과 기독교 사상을 교묘히 혼합된 영지주의가 발생했고, 육체를 아무렇게나 죄의 도구로 사용하는 니골라당이 나오고, 음녀 이세벨과 같은 자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 두 세계, 두 부류로 분류하는 것까지는 상관없지만 물질도, 육체도 하나님께서 선한 것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세계를 만드시고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4, 10,12 등).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으로 만드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년왕국이 끝나고 다가오는 새 하늘과 새 땅도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완전히 달라진 갱신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것, 그 안에 하나님의 속성이 담겨있는 것들을 불살라 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말씀을 가지고 설명을 해야하므로 여기서는 말씀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육체를 포함하여 많은 물질세계가 죄의 도구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 만약, 인간의 육체도 악하고 또 죽으면 없어 사라지고 마는 것이라면 성경은 결코 죽음 이후의 육체 부활을 말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령한 몸을 입는 부활은 육체가 원래 선한 창조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 주님 부활도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믿음도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들은 주님 다시 오실 때에는 반드시 신령한 몸을 입고 영생을 할 것입니다.
신령한 몸은 분명히 지금과 같이 몸(헬, 소마)인데, 시공간을 초월한 신령한 몸인 것입니다. 다시 죽지 않는 몸인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부활을 위해서라도 육체도, 몸도 주님 오실 때까지 거룩한 모습으로 잘 관리해야 합니다.
▶▶▶ 구원을 받은 자나 그렇지 못한 자 모두 인간의 육체가 죽는 것은 분명히 아담과 하와로부터 지은 죄의 유전적인 결과입니다. 그 후손들이 받는 보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4:7절을 보면, 마치 모순처럼 보이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4: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분명히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어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한다고 하셨는데, 모순되는 것처럼 벌을 면제하지 않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죽을 죄인데 어느 정도의 벌, 보응은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도 그 죄로 인하여 지옥은 보내지 않겠지만 그 보응은 받아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와 같습니다. 자식이 아비에게 죽을 죄를 지었다고 본다면, 아비가 죽이지는 않고 용서는 하되, 매는 드는 것과 같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지만 매만 든다는 것입니다.
▶ 인간의 육체가 짓는 죄가 얼마나 큽니까? 천번을 죽고, 영원히 죽어도 죄 값을 다 갚지 못하는데, 예수를 믿으면 육체는 잠시 죽는 보응은 받겠지만 언젠가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시켜 다시 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어떤 형태로든 일정한 보응은 받는 것입니다.
2. 성경은 영혼 뿐만 아니라 육까지 모두 거룩하게 잘 보전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전, 하나님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3:16-17]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그래서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그 사람을 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너희”라는 것은 사람들의 육체를 포함한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영혼 뿐만 아니라 육체도 더렵혀지면 멸해지는 것입니다. 육체는 죄를 지으면서 영적으로 더럽게 사는데 그 영혼은 깨끗하다의 개념은 없습니다.
▶ 육체는 그 영혼의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그릇에 담긴 내용물이 더러우면 그 그릇도 더럽고,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으로 거룩하다고 하는 성전이 더렵혀지니 결국 그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BC 586년 솔로몬 성전 파괴, AD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가 그 예입니다.
우리들 마음의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멸망인 것입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 영광이 떠나면 보호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렵혀지면 멸해지는 것입니다.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 그래서 고전 3:17절에서,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행위는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특히 우상숭배는 눈에 보이는 성전이나 마음의 성전을 더럽히는 가장 큰 죄입니다. 그리고 음행은 자기 몸에 짓는 죄이므로 마음의 성전에 직접 죄를 짓는 행위이므로 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 성전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좋지 않는 것들을 보면, 실제 성전도 더럽히고 자기 마음의 성전을 더럽히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출애굽 시대의 성막이나 솔로몬 성전, 그리고 눈에 보이는 성전도 거룩함을 위하여 아무나 출입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전과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출입할 수 있는 자가 정해져 있습니다.
성소까지는 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고,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갑니다.
레위자손인 고핫, 므라리, 게르손 자손들도 성전에서 아무 일이나 하지 못합니다. 허락된 정해진 업무가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거룩을 위함입니다.
성막의 뜰을 세마포로 둘러친 것도 거룩한 장소의 구별입니다. 그 안에 뜰과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것입니다.
▶▶▶ 우리가 성령이 거하는 전, 하나님의 전이라고 했으니, 우리라고 하는 영, 혼, 육은 성막으로 본다면 지성소, 성소, 뜰에 비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영은 하나님의 영적 교제가 있는 지성소, 혼은 기도하고 말씀을 먹는 성소, 짐승이 죽어지는 뜰은 육체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 뜰에서 짐승이 잡혀 죽어 제물이 되는 것처럼 우리들의 육체를 마치 죽은 자 같이 죄에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지고, 그리고 성소로 나아가 향단에서 기도하고, 떡상에서 말씀 먹고, 촛대의 성령의 조명하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여오는 영적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자신을 드리는 뜰입니다. 그리고 뜰은 성소에 들어가기 직전에 더러워진 손발을 씻는 물두멍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뜰도, 오늘 말씀과 같이 육체도 죄를 짓는 장소, 도구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뜰에 해당하는 육체를 경홀히 여기시면 안됩니다.
아무렇게나 취급하면 안됩니다. 죄의 도구로 사용하시면 성전 뜰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막의 뜰도 이방인이나 짐승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고, 정결한 제물과, 제사를 목적으로 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 제사를 드리러 오는 일반 백성만이 출입할 수 있습니다. (레 1:2-6, 11-12, 12:6, 민 8:9-26) 육체의부활
이것을 어기면 죽임을 당합니다.
▶ 우리나라 사자성어에 “신체발부 수지부모” (身體髮膚 受之父母)라고 하여 부모에게 물려 받은 몸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작품이므로 더더욱 귀히여겨야 합니다.
영혼을 포함하여 육까지 거룩하게 관리하고 매우 귀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신령한 몸을 입어 천국에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살하거나 신체를 고의로 훼손하면 안됩니다. 의미 없는 고행을 하면 안됩니다.
▶ 그래서 우리들이 영, 혼, 육을 잘 보전해야 한다, 흠이 없게 관리해야 한다. 책망할 것이 없게하라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육체가 빠져있지 않습니다. 육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님 재림 하실 때에 온 영과 혼과 몸이 흠없게 보전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전한 거룩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고전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 말씀에서도 주님 오실 때에 “책망 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시를 원하고 있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아넹클레토스)는 책망할 것이 없는, 비난할 점이 없는 결백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영혼육이 모두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바울이 디모데에게도 쓴 편지에도 “흠도 없고 책망할 것도 없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전해준 명령을 지킴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인데, 그 내용이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명령입니다.
”흠도 없고“(헬, 아스필로스)은 바른성경, 개역한글은 ”점“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작은 점까지도 없는 모습입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아네필레프토스)는 앞서 고전 1:8절에서 말씀하신 것과는 단어가 다르지만 ”공격할 틈이 없는, 비난할 여지가 없는, 체포하지 못하는“ 뜻입니다.
두 단어 모두는 참으로 순결한 모습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바울는 빌립보서에서는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라고 했습니다.
▶ “성도”라는 단어는 영,혼,육이 거룩한 자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전 1:2)
영혼만 거룩한 성도는 없습니다. 육은 죄 가운데 사는데 교회 온다고 그를 거룩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 주님 이 땅에 오시면 죽어 무덤에 있던 자들도 신령한 몸을 입고 일어날 것입니다. 육이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되지 않는 이유가 너무 분명하지 않습니까?
영혼육이 신령하게 되어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을 거쳐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서 살 것입니다.
실제 우리들은 언젠가는 천년왕국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할 것입니다.
주님 오시기 전에 우리들은 미리 변화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을 맛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새롭게 되고, 육체가 새롭게 되면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영혼육이 온전히 보전된 상태인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선한 분량까지 자라는 단계인 것입니다(엡 4:13).
그리스도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는 단계인 것입니다 (벧전 2:9).
많은 사람들이 이런 높은 고지에 가지도 전에 중도에 멈추고 맙니다.
실제 영적 고지를 점령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요, 육체가 많은 부분 죄의 도구, 불의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3. 그러면 영, 혼, 육을 어떻게 온전하게 유지할가요?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를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예수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하는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은 있을 것입니다(딤전 4:8). 이 세상의 도덕적 가르침도 약간의 유익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땅의 차원 수준입니다.
영이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단절된 교제가 시작되어 그 영이 살아나 구원을 받고, 혼적인 지정의가 모두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마음은 지각, 감정, 의지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혼적으로는 마음을 지키고 마음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달려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육체는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죄를 짓는데서 돌아서고 자신의 육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고자 애를 쓰는 것입니다 .
[로마서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한마디로 영혼육의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영혼육이 하나님을 향해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 육신이 약하여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어나 다시 회개하면 되는 것입니다.
실수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육이 주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특별히 내 마음을 지키고 가장 쉽게 죄의 도구가 되는 육체를 죄에게 내주지 말고 주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사탄의 종노릇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영혼육의 구원을 이루기를 원하시는데,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믿는다고 하면서 죄를 끊지 못하고 몸을 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영혼만 구원을 받는 것은 없습니다.
육이 죄의 종노릇하면 그의 영혼도 불구덩이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과 혼과 육이 함께 갑니다. 하나입니다.
▶ BC 167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상을 세우고 제사를 강요하고, 돼지 고기를 먹게하고, 사내 아이들의 할례를 금하고 안식일을 준수하지 못하게 하자 대사제 요하난의 아들 맛다디아와 그의 아들들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켜 시리아군에 대항합니다, 이를 마카비 혁명이라 합니다. 마침내 시리아군을 이기고 BC 164년에 성전에 있는 제우스상을 파괴하고 성전을 정화하고, 성소에 있는 촛대에 불을 밝히게 되는데, 하루분량의 기름으로 8일 동안 촛대에 불이 꺼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불의 축제 하누카의 절기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신약성서에는 수전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요 10:22).
이와 같이 성전이 더렵혀 지면 영적 마카비 혁명을 일으켜 성전을 다시 정화를 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들 안에 마음의 우상이 있었다면 그 우상을 제거하고 다시 진리의 촛불, 성령의 불을 밝혀야 합니다.
영적 수전절을 맞이해야 합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몰아내야 합니다.
우상이 그 속에 있으면 성전이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상의 신전이 되는 것입니다 (행 19:35).
그러면 반드시 멸해지는 것입니다.
▶ 종말에는 또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 적그리스도가 멸망의 가증한 것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끝입니다.
[마태복음 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맺는 말>
오늘 말씀을 읽지 않았지만 우리들의 영혼육을 보전하는 또 다른 방법은 5:16-22절까지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성령을 소명하지 말고,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억은 어떤 모양이라고 버리라
영, 혼,육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한 방법들인 것입니다.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부르시고,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고,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성화단계를 거쳐 마침내 영화로운 단계까지 가기를 원하십니다.
[로마서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온 영과 혼과 육이 보전되어 마침내 영화단계까지 가는 것이 자신의 의지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예수가 필요합니다.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갈 5:24)
이 말씀이 우리에게 큰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신실함으로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온 영과 혼과 육이 온전하게 보전되게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답이고 예수 안에 있으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혼육이 흠없게 보전되는 성도가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