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세계를 향한 우리들의 표상이다'
청룡이 보덕산을 서에서 동으로 휘감아 품고 있는 여의주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잡은 대한검도회 중앙 연수원. 이곳에 들어서면 맨 먼저 방문객의 발길을 세우는 의미심장한 글귀가 화강암에 단정하게 새겨져 있다.
2001년 6월 충북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에 처음 자리잡은 중앙 연수원의 왼편에는 무학당(武學堂)이 있다. 300여 평의 한옥 지붕의 형태를 한 무학당은 현대식 건물로서 가로 세로 각각 11m의 정방형 시합장 3개나 나오고도 남을 만한 단풍나무 마루 바닥의 수련장이다. 오른편으로는 남녀 약 130여명이 숙식을 할 수 있는 기숙사와 사무실이 있는 적벽돌의 단아한 건물이 있다.
▲ 대한검도회 중앙연수원 무학당 전경
<ⓒ2003 대한검도회>
지난 9월 21일(일) 오전 10시,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모여든 남녀 검도사범들이 진지하게 승단 심사에 임하고 있다.
노련한 동작으로 '본국검법'의 '표두압정세'를 하고 있는 희끗희끗한 50대 중반의 신사, 가정 주부처럼 보이는 30대 여자 사범의 날카로운 기합, 표범과 같이 날렵한 20대 청년의 머리치고 나가는 모습에서 힘찬 기상이 느껴진다. 이들은 지금까지 쌓아온 검력을 평가받기 위해 혼신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20여명의 사범들 중 눈에 띠는 벽안의 서양인이 있다. 발렌티 피에트로(Valenti Pietro·50세) 사범은 검도 5단으로 현재 이탈리아 재무부 보안 경호 총책임자이다. 발렌티 피에트로 사범이 검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 봄. 수원대 무역학과 이종원(54세· 검도 8단) 교수가 로마 대학교 경제학과 박사 과정에 유학하고 있을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 20여명에게 검도를 가르쳤다. 이들 제자 중 한명이 발렌티 피에트로 사범인데 그는 이탈리아 검도 선수권 개인전 10회 우승의 경력을 지닌 상당한 검력의 소유자이다.
스승인 이종원 교수는 '발렌티 피에트로 사범은 순발력과 기회 포착 능력이 아주 뛰어나고 무엇보다도 동양의 무도 정신과 특히 한국의 문화, 사람들을 아주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다. 발렌티 피에트로 사범은 근무 시간 후 스포츠 센터에서 약 20여명의 수련생에게 검도를 지도하고 있다.
'스승의 나라에서 6단을 받고 싶어 왔어요'
발렌티 피에트로 사범은 6단 승단 심사를 받기 위해 스승이 계신 한국에 온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일본인이 지도하는 곳에서 6단 심사를 받을 수 있지만 먼 길을 마다하고 스승의 나라에 온 것이다. 서양 문화 중심지에 살고 있는 그는 수직 관계의 독특한 동양 무도인 검도를 통해 폭 넓고 깊은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다. 검도가 이질적인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상호존중하고 이해하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실기 심사에 열중하고 있는 발렌티 피에트로
<ⓒ2003 월간검도>
▲ 심사 후 스승과 제자의 만남. 가운데 도복을 입은 사람이 발렌티 피에트로 사범이고 오른쪽이 스승인 이종원 교수
<ⓒ2003 월간검도>
불고기와 김치를 좋아하는 발렌티 피에트로 사범을 통해 지난 20여년간 이탈리아를 찾은 한국 검도인은 자그만치 200여명. 또한 발렌티 피에트로 사범을 통해 이탈리아에 자랑스런 우리의 전통 문화 유산인 '본국검법'과 '조선세법'이 전파되고 있다.
6단 심사는 매우 까다롭다. 심사위원은 8단 7명으로 구성되며 5명 이상으로부터 각 과목 6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심사 과목은 호구를 착용하고 연격과 기본 동작, 시합 연습 등의 실기와 검도의 본과 본국검법, 그리고 이론 시험을 본다. 먼저 실기 시험에 합격해야 검법과 이론 시험을 볼 수가 있다. 발렌티 피에트로 사범은 실기와 검법을 합격하고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이론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여 당당히 6단에 승단했다.
한때는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 제국'의 땅에 동방의 작은 나라 '꼬레아(COREA)'의 검도가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로마 제국'의 땅에 검도만 전파되는 게 아니다. 한국의 김치, 불고기, 한국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과 사람들 그리고 한국의 이미지도 함께 전파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