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6:12-15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주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대로 일러주실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도 알려주실 것이다. 또 그분은 나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여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다 나의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내게 들은 것을 너희에게 알려주시리라고 내가 말했던 것이다."
진리로 인도하는 성령
나는 스스로를 진리를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옳은 것'은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진리를 찾고 싶은 마음에 나름대로의 공부를 하고 탐구를 해 보기도 합니다.
많은 성현들은 나름대로 진리를 선포하였고 그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 성현들의 이야기와 삶을 보면서 따라 배우려고 합니다. 요즈음 내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은 성 프란시스와 노자입니다. 그런데 성 프란시스에 관한 전기를 읽고 노자의 도덕경을 읽어도 내 머리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고, 또 이해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성현의 삶이 내 삶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들의 삶의 방식을 전적으로 동의하고 나도 이들처럼 살아 보아야지 하고 결심을 한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떤 때에는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게 되기도 합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방법으로는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감성을 이용하여 진리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닌 듯 합니다. 진리를 깨우치는 길은 이성과 감성을 포함하는 인간의 오관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것들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나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셔야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성령은 어떻게 언제 오시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진리에 의한 생활을 하고픈 마음에서 성서를 읽습니다. 성서를 읽다 보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대강 알기는 알겠는데 받아들일 수 없거나 받아들이기 싫은 말씀들이 나타나고는 합니다. 사실 성서의 말씀을 안다는 것은 말씀을 듣는 것을 의미합니다. 듣는다는 것은 따른다는 것이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나는 많은 말씀을 읽지만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에는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 그 성서구절을 읽고 또 읽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도를 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넘어서는 생각지도 않던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때에는 기도하는 중에 "아하!"하는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그렇게도 어렵게만 느껴지고 믿고 따를 수 없었던 말씀이 나의 깊은 곳에 자리잡으며 내 안에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작은 깨달음이지요. 성령께서 진리에 목마른 나에게 오신 것입니다.
나는 믿습니다. 이런 작은 깨달음들이 모여서 언젠가는 성령께서 나에게 오시는 날 큰 깨달음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작은 깨달음들은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진리를 찾도록 촉구하며 나를 진리로 인도합니다.
묵상 : 성경을 읽고 마음에 닿는 구절을 외우고, 마음에 깊이 새겨질 때까지 되뇌이며 진리의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간구합시다.
글쓴이: 서운영 성공회 영성센터 2002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