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용 식탁>(윤고은)
다이제스트: 고은아 |
혼자 음식점에 온 사람에게 몇 분이냐고 묻는 주인은 둔하다. 그러나 그곳이 고깃집이라면 꼭 그렇게만 볼 수도 없다. 그것도 오후 7시에 혼자 온 여자라면.
여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밥상은 권투가 벌어지는 링과 같다. 여자는 그 위에 홀로 서서 날아오는 시선을 맞는다. 여자가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은 꿋꿋이 먹는 일뿐이다.
꼭 고기를 먹어야 했을까. 어떤 사람은 그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자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연히 발견한 전단지가 아니었다면, 고깃집이 예습과 복습의 장소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3개월에 20만원. 혼자 먹는 법을 알려주는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에 등록하기 전에 상담실장이란 사람이 간단히 살피면서 내가 바로 수업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늠했다.
“흐음, 괜찮아요. 수업은 단계별 수업이에요. 먼저 필기시험이 있고, 스무 시간의 기능시험이 있는데, 이 기능시험이 5단계로 또 나뉘고요, 열 시간의 실전 테스트까지 성공하면 수료증이 발급됩니다. 보통 수강생의 15퍼센트 정도가 한 번에 수료하죠. 그리고 85퍼센트의 불합격자 중에서 절반 이상이 다시 등록합니다. 여기 한 줄 각오 좀 써주세요. ‘혼자 먹는 식사는-’”
혼자 먹는 식사는 지겹다.
혼자 먹는 식사는 정말 지겨운 일이었다. 아니, 두렵기까지 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 먹는 식사가 아니라, 혼자 음식점에 가서 사 먹는 식사였다. 일요일 저녁부터 나는 극심한 월요병을 앓곤 했는데, 그것은 다가올 한 주간의 점심시간 때문이었다.
그러나 학원 수업 시간을 점심시간으로 옮긴 후에는 그런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수업 교재가 음식인 만큼, 점심시간에 학원 수업을 듣는 것은 일석이조였다. 월, 수, 금, 오후 12시 10분. 수강생들은 식탁 앞에 앉아서 젓가락을 들고 수업을 들었다.
1단계 : 커피숍, 빵집, 패스트푸드점, 분식집, 동네 중국집, 푸드코트, 학원가 음식점들, 구내식당
2단계 : 이탈리안 레스토랑, 큰 중국집, 한정식집, 패밀리레스토랑
3단계 : 결혼식, 돌잔치
4단계 : 고깃집, 횟집
5단계 : 돌발상황
나는 금세 2단계로 뛰어올랐다. 2단계는 시작부터 달랐다.
강사의 말은 요령이라기보다는 공식에 가깝고, 공식이라기보다는 주문에 가까웠다. 이런 요령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것이었다. 시선을 초월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긴 하지만, 당장 힘들다면 일단 시선을 마주치지 말라.
“오늘은 스테이크를 나갈 차례죠. 스테이크에 가장 좋은 도구는 와인입니다. 음악 시간처럼 해볼까요? 4분의 2박자로 먹는 겁니다. ‘강’은 스테이크예요. ‘약’은 와인. ‘강’할 때 스테이크를 한 입 크기로 잘라 먹고, ‘약’할 때 나머지를 먹고, 그렇게 박자대로 하는 겁니다. 강-약. 강-약. 한 마디가 끝나고 나면 시선을 접시에서 떨어뜨리는 겁니다.”
연습은 수업이 없는 요일에 했다. 8분의 6박자를 연습할 차례에, 나는 한정식집을 예약해두었다. 맥박이 메트로놈처럼 뛰었다. 8분의 6박자. 강-약-약-중강-약-약. 강에서 밥, 약에서 반찬, 중강에서 국. 한 마디를 모두 돌고 나면 시선을 한 번 허공에 쏴 주고, 다시. 그렇게 몇 마디를 돌고 나니 악보도, 식사도 끝났다.
벌써 3단계였다. 한 단계씩 올라갈수록 강사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3단계에서 배운 기술을 직접 연습해볼 기회는 그 주 주말에 왔다. 예식장에 들어선 나는 부조금을 내고 신부 측에 인사를 한 후 식당으로 갔다. 혼자 먹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혼자 먹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육지가 있으면 섬도 있는 것처럼, 무리가 있으면 개인도 있는 것이다. 강사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결혼식에 짝이 필요한 사람은 신랑과 신부, 그들뿐이라고.
어릴 때는 홀수가 싫었다. 무리를 굳이 둘씩 나누는 상황이 종종 일어났기 때문이다. 정원이 48명인 반에서 나는 마음이 편안했고, 47명인 반에서 마음이 불안했다.
12시가 되자마자 사무실 사람들은 재빨리 일어나 회식 장소로 향했다. 사무실의 정기적인 회식이었다.
식탁 위는 풍성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이 식탁 위의 메뉴는 오가는 수많은 시선과 말들의 교류였다. 말의 홍수 속에서 나를 구원해준 것은 박자였다. 강-약-약. 강-약-약.
다음 날 점심에도 나는 무리 속에 섞였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밥 먹으러 가자고 말했던 것이다.
점심 메뉴는 찌개백반이었다. 강-약-중강-약. 4분의 4박자. 밥-계란말이-국물-김, 밥-제육볶음-…….
“자기는 예능프로 잘 안 보나 봐.”
손을 헛디뎠다. 이게 질문인가 아니면 독백인가. 고장 난 메트로놈처럼 박자가 엉망이었다. 심장이 쿵쿵쿵 뛰면서 이상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점심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 생겨난 후, 나는 더 지쳐가고 있었다. 나 혼자만의 식사가 얼마나 편안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용수철을 반대로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더 강하게 튀어 오르는 것처럼, 그렇게 다시 무리 밖으로 나왔다.
산악인에게 에베레스트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고기집이 있다, 고 강사는 말했다. 우리는 각종 요령들을 배우며 2주 동안 5회 이상 고기집을 방문하고, 거기서 혼자 먹은 영수증을 학원 측에 제출해야 했다.
에베레스트는 에베레스트였다. 삼겹살 2인분을 시키려고 했지만 입이 다른 말을 했다.
긴 생머리의 여자 한 명이 고깃집으로 들어왔다. 여자는 고깃집 정중앙에 자리를 잡고, 삼겹살 1인분도 돼요? 묻고 있다. 여자는 마치 앞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여자는 달인이었다.
“여기, 삼겹살 2인분 주세요.”
그 말은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30분 뒤, 나는 달인 앞에 앉아있었다. 달인은 내 잔에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아, 28기? 그럼 내가 10기 가까이 선배네.”
달인의 잔이 내 잔에 와서 부딪쳤다. 마치 추돌 사고처럼, 처음처럼이 참이슬후레쉬를 들이받았다. 무언가가 쿵, 하고 울렸다. 쿵, 하고 체기가 싹 내려갔다. 쿵, 하고 세상이 달라졌다.
달인과 건배를 한 이후로 성적은 날로 좋아졌다. 이제 어느 음식점에서나 다가올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해 영상 교육도 받고, 역할극도 하면서 유연한 대처법을 배워나갔다. 그렇게 5단계가 지나갔다. 그러나 강사는 말했다. 현실은 언제나 5단계 이상이라고. 강사의 목소리는 처음에 비해 거의 한 옥타브쯤 높아져 있었다.
“이제 실전 테스트입니다. 이 음식점들 중에 열 곳을 선택해서 방문하고 싶은 날짜와 시간을 적어 내세요. 그 날짜에 그 곳에 가셔서 밥을 드시면 됩니다. 열 곳 중에 진짜 시험장은 단 한 곳입니다.”
“CCTV로 본 상황이어서 한계가 있긴 하지만, 평소 식사 태도와 비교해도 한참 모자라는 수준이에요.”
강사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강사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불합격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85퍼센트 절반 이상이 등록한다고 했죠? 여기 비어있는 칸에 한마디 적어주시죠.”
혼자 먹는 식사는-
비어있는 칸이 꼭 텅 빈 음식점처럼 보였다. 나는 펜을 들고 천천히 빈칸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먹는 식사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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