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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 918-1392)와 화약무기(2)
최무선 - 우리나라 최초, 최고의 ‘국방과학자’
화통도감을 설치한지 불과 6개월만인 1378년 봄, 최무선은 개발한 화약무기를 직접 운용할
소규모 특수부대 ‘화통방사군’(火筒放射軍)을 편성하고 운용했다. 심지어는 함포(艦砲)를 자신이
설계한 전함(戰艦)에 실어 왜구와 벌인 해전에 투입, 지휘관으로 참여해 무려 500여척의
적선을 박살내버리는 ‘진포(鎭浦; 금강어귀, 지금의 군산앞바다)대첩’도 거뒀다.
최무선의 이런 부분이 곧 "치밀한 과학자적 자질"을 설명하는 단서다,
과학적 발명이란 ‘이론과 실험, 검증’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야 가능해진다.
화통도감이 아무리 이론적으로 완벽한 발명품을 만든다 해도, 그 대상이 무기(武器)였던 만큼
"실전에서 얼마만큼 위력과 효과를 거두나" 를 실험하여 검증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14세기 후반
최무선장군은 화통도감이 개발한 화약무기를 실전투입한 뒤
장단점을 검증하고 꾸준한 성능개량작업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기존의 화포보다 폭발내구성이 강한 구리와 주석, 아연 합금의 포신을
독창적으로 주조해냈던 최무선의 기술력은 오로지 이런 '실전검증'에서 비롯됐다.
고려의 화통도감이 발명하고 개발한 무기는 그 우수성이 인정돼 조선에 승계됐고
조선 초기 우리나라는 당대 세계최고수준의 화약무기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최무선은 전술(戰術)에 출중한 무신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배출한 최초이자 최고의 ‘국방과학자’였다.
화통도감의 화약무기 line up
문헌상으로
지금까지 전하는 화통도감 개발 화약무기는 약 20종에 이른다.
이를 기능별로 나눠보면 포(砲) 종류로 대장군(大將軍)·이장군(二將軍)·삼장군(三將軍)·
육화석포(六火石砲)·화포(火砲)·신포(信砲)가 있었고 총통(銃筒)으로는 화통(火筒)이 있었다.
불화살(로켓포함) 종류로는 화전(火箭)·유화(流火)·주화(走火)·촉천화(觸天火) 등이 있었고
총포에 넣는 발사물로 철령전(鐵翎箭)·피령전(皮翎箭)·철탄자(鐵彈子)·천산오룡전(穿山五龍箭)이,
그밖에 던져서 터뜨리는 '항아리폭탄' 질려포(蒺藜砲)가 있었다.
화통도감 화약무기들을
용도별로 나눌 때는 ▲ 불화살(火箭) ▲ 화살로켓(走火) ▲ 화통(火筒=총통; 개인화기)
▲ 화포(육상 및 해상전투용) ▲ 기타 화약무기, 발사물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분류기준에 따라 고려 말 화약무기들을 살펴본다.
* <일러두기>
화통도감이 관장하여 생산한 화포종류는 매우 다양했지만 그 모양이나 성능을
정확히 묘사한 사료(史料)는 전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최무선이 개발한 화포는
불과 십여년 뒤에 개국한 조선이 무기원형그대로를 승계했다.
뿐 만 아니라, 최무선의 아들-손자가 선대의 업적을 대대로 전승해 조선초기의
화약무기 체계 계보를 이어나갔다. 그 조선초기 화약무기들은 성종임금 5년(成宗, 재위1469-1494)인
1475년 왕명으로 신숙주 등에게 저술케 한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의 ‘병기도설’(兵器圖說)편에
설계그림과 설명이 수록돼 오늘까지 전한다. 따라서 조선의 병기도설에 기록된 각종 화약무기는
사실 ‘최무선의 발명품’이라 해도 그리 틀리는 말이 아니다. 본문내용에서도 그 점을 감안했다.
■ 화전(火箭)
말 그대로 ‘불 화살’이다. 정확한 모양새나 제작년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화약의 추진력을 이용해 발사한 것이 아니라, 화약의 발화성(發火性)을 이용해
적진을 방화(放火)한 무기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불이 붙은 채'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라,
화약부분에 감아놓은 도화선에만 불을 붙여 발사했으므로 적진에 화살이
박힌 뒤에야 화염이 발생하는 '불 화살'이었다. 화살은 활 시위를 당겨
발사할 수도, 혹은 화포에 꽂아서 발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 화통도감 ‘화전’의 추정 얼개도. 화살촉 바로아랫부분에
점화용 화약이 부착돼있다. 인마살상은 물론 목조건물 등에
화살이 꽂히면 순식간에 화염에 쌓이게 된다.
그밖에 '화전'의 일종으로 유화(流火)·촉천화(觸天火)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된다.
유화와 촉천화는 "유성(流星)처럼 혹은 하늘에 불을 붙인듯" 불꽃이 날았다는 뜻이므로,
화전과는 달리 "불을 미리 화약에 붙여 발사한" 불화살일 것으로 추정된다.
■ 주화(走火)
화살 몸통에 매단 화약통 추진력으로 발사되는 화살이다.
화살에다 자그만 밀폐형 화약통을 부착하고, 뒤편 구멍의 꽂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이는 곧 오늘날의 로켓이 발사되는 원리와 같다.
최무선의 주화는 조선 세종임금 30년(1448)에 발명된 세계최초의 로켓화살 ‘신기전’(神機箭)의
오리지널 모델이랄 수 있는데, 신기전보다 무려 15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 화통도감 ‘주화’를 추정, 복원한 실물사진.
고려는 화약제조법을 비록
중국에 비해 수백년이나 늦게 터득했지만, 로켓화살 부분에서는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 털어 최초로 발명한 선진국이었다. 중국이 세계 최초의 로켓이라 주장하는
기록이 하나있는데, 1232년 금(金)나라에서 만들었다는 ‘비화창’(飛火槍; 불붙어 나르는 창)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비화창은 실물설계도면도 없고 위력의 과장이 심하여 신빙성이 약하다.
더군다나 중국정사(中國正史)가 아닌 변방 금나라의 기록이어서 중국이외의
나라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처지다.
최무선의 주화가 그대로 계승된 조선초 신기전(神機箭)의 경우,
1975년 항공우주연구원의 채연석박사에 의해 '국조오례서례'에 기록된 설계도가 발견됐고
이 설계도면은 곧 1983년 헝가리에서 개최된 제34차 세계우주항공학회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로켓 설계도" 로 공인받았다.
고려의 로켓화살에 뒤이어
출현한 동종 화약무기로는 ▴ 1621년 중국의 화전(火箭) ▴ 1760년 인도의 ‘ARI 화살로켓’
▴ 1805년 영국의 ‘6파운드 로켓화살’ 이 있다. 로켓의 위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세졌지만,
오리지널은 고려 주화다.
■ 화통(火筒)
여러 정황으로 미루러 고려의 화통은 곧 개인용 화기인 총통(銃筒)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 최무선이 제작했을지 모를 ‘화통’(火筒)으로 추정되는 고총통(古銃筒)
두 자루가 경희대박물관에 보관, 전시 중이다. (유물번호; 경희대 800025-000)
▲ 경희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古) 소총통(小銃筒).
볼록한 부분의 내부가 약실(약통부)이며, 그곳에 뚫린 자그만
구멍에다 도화선을 꽂고 불을 붙여 화약을 폭발시킨다.
약통부에서 긴 총신 쪽이 실탄(화살)이 발사되는 취부(嘴部),
뒷쪽의 잛은 부분은 나무막대 끼워넣어 손잡이 역할을
하게하는 모병부(冒柄部)다.
경희대의 고소총통(古小銃筒)은 구리합금 청동주물로 만들어졌고,
크기는 310, 440mm다. 전체 외형은 14세기 중국에서 사용됐던 '마디있는 총통'과 흡사하다.
그러나 내부구조는 세계최초 소형총통 유물로 인정되고있는 스웨덴의 ‘로셀트(Loshult)소총통’ 과
흡사한데, 총구입구 안지름(內徑)이 속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지다가 약실부에서 다시 넓어진다.
이런 구조는 조선중기 이후에 나타난 '동일한 안지름' 총통에 비하면 구형(舊形)에 속한다.
로셀트 총통은 14세기 초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경희대 소총통의 컬러 사진. 구리합금 주물 제품이어서 푸른색 녹이 쓸어있다.
총통 한 가운데 쯤 반지를 낀 것처럼 약간 두꺼운 띠(마디)는 총통내부에서 화약이 폭발할 때
내구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조선중기 이후 우리 총포에는 이런 '마디'가 많다.
▲ 총통의 외관 및 내부구조. 그림은 조선중기 승자총통의 예. 경희대 소총통과의
차이점은, 총구내부(약실포함) 지름(內經)이 동일해졌고 총신(부리) 외부에 '마디'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 두 가지만으로 총통성능은 많이 향상됐다.
경희대소총통은
약실과 총신 안지름이 화약폭발 압력을 제대로 유지 못하는 '원시형태' 구조를 띄어
최소한 조선 중기(세종)이 만들어졌거나 고려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외형적으로도 추정되는 제작연대와 거의 동시대(1350-1370)인 중국제 총통과
비슷하나 크기(길이)에서 70mm이상 작기 때문에(소총통에서 이만한 차이면 확연하게 구분된다)
경희대 소통통은 당시 한국군의 실정에 맞춘, 우리만의 고유모델일 확률이 높다.
어쩌면 이 소총통은 최무선의 화통도감이 만들어
왜구퇴치에 위력을 떨친 그 '화통'(火筒)일지도 모른다.
* <알아두기> '화통'(총통)은 이런 무기!
유래와 발사원리
총통(銃筒)은 “철통(파이프) 총”이란 뜻이다. 쇠로 만든 통이 발사관(發射管)역할을 하는
화약점화 총포여서 ‘유통식화포’(有筒式火砲)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이름이 붙은 까닭은,
화약발명 초창기 무기들이 화살 등에다 화약을 매달고 불을 붙여 날렸던 ‘무통식’(無筒式)
발사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무통식 발사 화살은 제멋대로 날아다녀서
명중률과 위력이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었다.
유통식 총통은 14세기초 유럽과 중국 등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는 14세기말 고려 최무선의 화통도감이 다양한 종류를 생산해냈다.
총통은 쇠통몸체(筒身) 내부 뒤편의 막힌 공간에 약실을 두고 거기에 화약을 담았다.
약실화약에 불을 댕기려면 포신 바깥까지 구멍(線穴)을 뚫고, 거기에 심지를 꽂아(혹은 직접 불이 닿게)
사람 손으로 불을 붙여야 했다. 이런 방식을 ‘지화식’(指火式) 점화라 부른다.
분류와 발사물
‘총통’이란 명칭이 정확하게 어떤 종류의 화약무기를 지칭하는지 정의(定義)하기란 쉽지 않다.
유통식 화포라면 크던 작던 일단은 ‘총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통의 크기가 피리만한
초소형에서부터, 소달구지로 겨우 끌 수 있을 만큼 대형총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개발되면서,
명칭을 정리하는 문제가 생겨났다. 실례로 조선의 ‘천자총통’ 등은
대포수준의 크기와 화력이지만 ‘총통’으로 불린다.
오늘날 고식화포(古式火砲)를 종류별로 구분하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 권총이나 소총처럼 개인이 소지하여 발사충격을 흡수 할 수 있는 화기는 '총통'
▴ 야포나 대포, 함포수준의 총통은 '화포'
▴ 포신입구가 넓은 박격포스타일 화포는 '완구'(碗口)라 부른다.
고려 말 최무선의 발명품 ‘화통’(火筒)은 개인화기 ‘총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총통이나 화포가 쏘아올린 발사물(총탄이나 포탄)은 시대별로 변화가 있었지만,
대개는 총통 발사물로 자그만 화살(矢箭)을 장전해 발사했다. 조선중기이후에는
일부 총통을 제외하고 철환(鐵丸, 쇠구슬)장전이 일반화됐다.
고려 화포는 주로 화살을 발사했던 것으로 여겨지며, 조선 태종임금 이후
돌을 발사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대형 화포는 대부분 돌이나 쇠뭉치를 발사,
파괴력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화포는 총통에 비해 '부리'(탄환을 장전하는 곳) 공간이 넓어 다양한 발사물을 장전할 수가 있었다.
돌이나 쇠, 납 등 단단하고 무거운 물체는 모두 가능했다. 실제로 자갈돌이나 쇳조각, 마름(표창),
화살, 단석(團石; 포구경에 맞게 둥글게 깍은 돌), 철환(鐵丸; 포구경에 맞게 깎은 쇠구슬),
로켓처럼 생긴 대형화살탄 등을 장전했다.
규정발사물이 고갈됐을 경우,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발사가능한 물체는 모두 장전했다고 한다.
총통 발사 순서
1. 나무꼬챙이나 헝겊 등으로 총통 속을 청소하고
2. 점화선(도화선)을 총통의 약통과 연결된 구멍(線穴)에 끼운다.
3. 총통 부리를 통해 약통속에다 화약가루를 넣어 채운다.
4. 나무꼬챙이를 부리로 집어넣어 화약을 다지고
5. 다져진 화약위는 종이를 넣고 잘 덮는다.(밀폐효과)
6. 종이 위에 화살(矢箭)을 끼우고
7. 점화선에 불을 붙이고
8. 오른쪽 겨드랑이 사이에 총통자루(冒柄)를 꽉 끼고
9. 두 손으로 잡고 조준하여 발사.
* 총통과 화승총의 차이!
총통은 화승총의 '전단계 개인화기'다.
화약폭발력으로 탄환(화살)을 발사했다는 점에서는 화승총과 원리가 같다.
그러나 화승총은 사격수(射擊手)로만 부대를 편성하고 운영한 것에 비해,
초기 총통은 기마병이나 보병의 주력무기였던 칼이나 활을
보완하는 '보조화기'에 불과했다.
화승총은 또 총신을 감싸는 총목(銃木) 개머리판을 어깨에 밀착하여 발사했기 때문에
발사충격을 사격수의 상체 전부위가 흡수했고, 가늠자를 눈 가까이 대고
조준사격을 할 수 있는 근대식 총기구조를 띄었다.
그러나 총통은 총신 뒷부분 모병(冒柄) 주둥이에 꽂은 나무막대기를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목표물을 향해 '어림짐작'으로 발사했기 때문에
효율적인 면에서 화승총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얼마 전 국방부소속 한
군사관련 연구소에서 총통발사를 실험한 결과, 사격수가 몸을 뒤뚱거릴 만큼
엄청난 반동을 느꼈다는 평가가 나온 적 있다.
▲ 소총통의 모병부에다 나무막대를 끼우고, 도화선 심지에 불을 붙인 모습.
외형은 취부(嘴部; 총부리), 약통(藥筒; 약실)부, 모병(冒柄; 나무손잡이)로 구분된다.
소총통을 발사하는 방법은, 나무막대 끝부분을 오른쪽 겨드랑이에 꽉 끼어
뒷 부분을 확실히 고정시킨 뒤 왼손이나 오른손으로 총신에 가까운 쪽의 막대를
꽉 움켜쥐어 다시한번 고정시킨다. 총신 내부 약실에서 화약이 폭발하는 순간 엄청난
열기가 발생하므로, 총신을 맨손으로 잡으면 화상을 입는다. 그렇게 소총통을 단단히
고정시킨뒤, 나머지 한 손으로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총구를 목표물 쪽으로 조준한다.
* 이 '복원그림'은 한국역사연구소 역사복원일러스트연구소의 작품입니다.
또 화승총은 방아쇠를 당겨 사격수가 원하는 순간에 실탄발사를 할 수 있으나,
총통은 약실 구멍에 꽂은 도화선 불꽃이 닿는 순간에 폭발하는 전근대적
'임의발사' 형식이다. 화승총은 사격수가 발사하지만, 총통은 도화선이
발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역사상 첫 개인 화약무기였다는 점에서
세계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무기가 바로 총통이었다.
총통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지속적인 개량작업을 통해
개인화기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현대의
M-16이나 AK-47 같은 뛰어난 돌격소총이 등장할 수 있었다.
<나머지 고려화기는 ‘우리나라 화약무기 - 고려(3)편’에 계속>
* 본문내용의 무단전재 및 복사를 엄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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