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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정보
파평윤씨(대종회)
 
 
 
카페 게시글
5세 문숙공 문숙공 휘 관 심묘사적(文肅公 諱 瓘 尋墓事蹟)
파평윤씨 추천 0 조회 179 09.11.12 18:21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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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11.12 23:35

    첫댓글 (당시 어려운 결정을 한 청송심씨의 고 심명구대종회장님은 이장 결정 후 이장 작업을 보지 못하고 별세함) 이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고 심명구님의 명복을 빕니다...

  • 09.11.13 13:39

    감사함니다 여러 어르신 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후손에 한사람으로써 여러 종친께 머리숙여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저는 33세손 구용 이라함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 부탁 드립니다~~~~

  • 09.11.13 21:55

    참으로 긴~세월이었습니다. 문숙공 묘터는 명당자리거든요. 왜인지 알지요? 행길건너 앞산에 뵈이는 노적봉 3개나 있어~요~~! 노적봉은 쌀을 쌓아논 형태로써 곧 富를 일컫는거든요. 그래서 우리 윤문은 아직까지 크게 배를 골지않고 조상의 덕으로 지금까지 자존심으로 물마시고 이쑤시게로 품위를 지키는 절개로 버티워 졌기때문에 파평윤씨는 뼈대가 있다? 다시말해서 자존심으로 비굴하지 않으려는 애씀이 있어 타 문중(성씨가 다름)이 부러워하고있습니다 그려. 특히 뼈대가 있는 타 문중이 파평 윤씨 女식을 데려 갈때 하늘에 감사한다 하지않습니까? 그러니 청송심씨 심온은 세력이 당당할때 얼마나 문숙공 묘터가 부러웠겠습니까?

  • 09.11.13 22:22

    공간이 부족해서 못다한 이야기 마져할께여~ 정정공(15世 尹 璠(윤번)의 여식 <수양대군을 세조로 왕위을 이어받게 한 정희왕후입니다>3대를 왕위를 수렴청청하여 정치를하셨던 분은 한국사에는 볼수가 없지요. 거기다가 5대후손 之任(지임)여식인 문정왕후가 또 왕비로 간택이 되었는데 앞서 가길 좋아했던 윤지임님의 5째아들 윤원형과 정난정의 객기로 그때부터 파평윤씨는 벼슬도 하지말고 납작 엎드려 지내며 목숨이라도 버텨 후손을 관리하라는 윤지임의 유언으로 비석에 비문마져 쓰지 못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다행이 저희가문인 윤지임님의 3째 아들인 원필님의 3째아들(천안공파 尹繪) 윤회님의 증손자(다음으로)

  • 09.11.13 22:28

    인천 남동구 도림동 (묘역)24세 윤 상전님 의 고증손인 東奎(동규)의 아들 光魯(광노)의 혼인으로 문숙공의 묘역을 되찾게된 동기 였음을 윤문의 후손들은 기뻐해야 할것 같습니다. 역사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습니다. ^*^ 너무 많은 토를 달아 미안합니다.

  • 작성자 09.11.19 16:45

    큰별님, 은행나무님 안녕하세요..... 우리의 것을 지키고 발전시키고 또 후손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이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항상 즐겁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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