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황산 09:00 구화산(중국불교의 4대명산)으로 가기위해 버스로 이동
청양 12:30 황산-태평호-청양 시외버스(35元 편도요금 )
시간 관계상 구화산을 가지 못하고 청양에서 다시 14:00 황산시(屯溪)로 돌아와 시내에서 쇼핑
20:00 황산 국제 Y.H 숙박 6박(숙박료 40元)
여행을 다녀 올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금년에 해외를 두 번 다녀와서
아주 건강하고 즐겁게 보냈는데 지난 2005.8월 티벳 초모랑마 B.C(5200m) 트레킹
을 한후 카투만두를 거쳐 상해에서 황산을 트레킹 하려고 계획하였으나 비자 관계로 트레킹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행사에서 마련해주어 세번째는 선박편으로 중국의 명산 태산과 황산을 가게 되어 가슴이 설레 이고 신바람이 난다. 유람선으로 여행을 다녀오도록 협조하여 주신 여행사 관계자 및 가족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화창한 날씨에 인천 국제 제2여객터미널에 나오니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교생들, 무역을 하는 여객,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간단하게 출국 수속을 마치고 여객선에 올랐으나 운무관계로 3시간 늦게 20:00시에 400여명을 탑승하고 인천항을 출발하였다.
인천항에서 청도로 출발하는 위동페리 호화유람선(3만톤급)에 오르니 넓은 휴식 공간, 대형식당, 사우나실등 다양한 선내시설과, 특히 특급 호텔수준인 일등객실(4인실)에는 세면기, TV등이 있고 아주 크고 여유롭고 편안하여, 선박여행이 이렇게 편안하고 기분 좋은 여행인지 이
제야 알게 되었다. 비자도 선상비자를 받게 되어 비용도 절감되고 여러 면에서 편리하였다.
선실에서는 문막에 사는 도자기와 훈련견에 조예가 깊은 조용진 사장님과 준비한 안주와 술잔을 나누며 환담을 하고 가니 더욱 즐거운 여행이다.
충분한 숙면을 하고 나니 다음날 아침에 중국 청도에 도착했다.
우리는 청도에는 열차표 예약 관계로 미리 숙소를 정하지 않고 오게 되니 좀 불안하였다.
황산, 항주, 상해는 인터넷으로 Y.H로 예약을 하였으나 첫 도착지인 청도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민박집이 20여 군데 있다는 정보는 알게 되어 현지에서 숙소를 정하기로 하였다.
청도 여객터미널 상가에 들어가 우리가 알고 있는 민박집에 전화를 하려고 하니 조선족 한분이 그 민박집은 자기 친구 집인데 최근에 휴업중이라고 하여 잠시 걱정을 하였으나 터미널에 무역업을 하는 “서울 민박집” 사장을 소개 받아 쉽게 숙소가 해결되어 여장을 풀고, 청도 한중 무역회사의 현욱 경리가 상해-청도 항공권을 예약해주고 다음날 태산으로 가는 열차표를 예약하기 위해 함께 청도역에 가서 열차표를 예약해주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현욱 경리와 함께 잔교 앞에 큰 식당“中國風 大酒店”에서 탕수육등 몇 가지 요리를 식혀놓고 청도 맥주를 마시고 청도에서 식도락을 즐겼다.
칭다오(靑島)는 중국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산동성 교동반도 남서쪽에 튀어나온 도시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예로부터 “공자 맹자의 고향” “예의 나라”로 불려 왔으며 유교 문화의 창시자인 공자님의 생애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청도는 천연항구로 우리나라 서해와 가까우며 1899년 자유항으로 선포, 붉은 지붕, 푸른 숲, 검푸른 바다, 맑은 하늘, 아름다운 해변과 중국 전통적인 건축물, 현대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며, 현재는 연해의 주요 경제 중심지 이기도하다. 중식을 마치고 청도 제6해수욕장을 지나가는데 모래사장에서는 한가로이 노인들이 둥글게 서서 공놀이를 하고 있고, 청춘남녀가 산책하는 평화로운 해변 가에는 유람선을 타라고, 한편에서는 기념사진을 찍으라고 호객행위를 여러 군데에서 하고 있었다. 해변가를 지나 잔교로 걸어가니 관광객과 행상이 뒤섞여 혼잡하였다.
잔교(棧橋)는 청도의 상징으로 1891년 독일군과 일본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군용시설, 해군 전함을 정박시키기 위한 용도로 건설 되었는데 현재는 항구의 기능을 잃고 해변공원으로 관광객이 많이 오는 청도의 유명한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잔교에서 저 멀리 보이는 소라처럼 생긴 작은섬 소청도는 등대가 보이고 아름답게 보인다. 이 곳에서 시내를 바라보면 호주 시드니항 오페라하우스로 착각할 정도로 빌딩 숲도 아름답다.
잔교를 나와서 쌍둥이 첨탑이 있는 천주교회를 찾아가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우리일행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갈 때 까지 건강하게 보람 있는 여행이 되도록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고 피로가 풀린다.
교회를 나와서 택시로 소어산공원(小魚山公園)을 올라가니 유럽풍의 건물이 늘어서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기며, 해수욕장과 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와 너무 아름다웠다..청도 구시가지 중심, 해발 60m의 위치한 이 공원은 주변에 빨간 지붕의 독일 풍 건물이 즐비하고 산 정상에는 높이 18m의 3층8각 탑이 있다.
청도-태산으로 이동(공조 쾌속)
태산으로 떠나는 열차를 타고 우리좌석에 가니 어느 노인이 우리 좌석에 앉아 있어 우리차표를 보여주고 좌석번호를 확인하니 다른 칸 좌석이었다. 자기좌석도 못 찾는 승객도 여러 명
있었고 선반 위에 잔뜩 올려놓은 짐을 옮기기도 한다.
우리 룸은 6명이 앉는 좌석으로 중국 젊은 청년 두 명이 있어 궁금한 것을 알기위해, 필자는
간단한 중국어로 인사를 하고“니 하우. 런쓰닌 헌 까우싱”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워 씽 피아오” 저는 박 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모른 단어는 종이에 한자로 써서 대화를 나누며 가져온 과자와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가니 6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금방 태산에 도착했다. 청도에서 일하는 젊은 청년은 휴가를 받아 부인을 만나러가고, 또 한 젊은이는 우리와 같이 태산에서 내린다고 한다.
태산역에 도착하여 역 근처에서 점심을 한 후 10월 29일 황산으로 떠나는 야간침대열차를 예약하러 태산역에 가서 열차표를 사려 하니 무조건“메이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입석을 사가지고 나와서 여행사에가 좌석표로 바꾸려 하였으나 표를 살수 없으니 메모를 “ 나는 한국인 인데 여행 중이니 좌석을 부탁 한다.” 라고 써주고 호텔을 안내하여 주었다.
이 곳 천외촌에는 깨끗한 숙소가 계속 신축중이며 우리가 들어간 호텔도 깨끗하였고 하루에
400元을 달라고 하여 3인실을 200元으로 숙박료를 깍어서 들어가니 시설은 별로였다.
다음날 아침 호텔을 나와 천외촌으로 오르는 대로 옆에 만두집에서 모락모락 만두 찌는
냄새가 코를 찔러 만두집으로 들어가 만두로 아침식사를 한 후에 천외촌을 걸어서 갔다
대리석으로 만든 천외촌 둥근 광장에는 미니버스가 대기하고 있는데 승객이 버스 좌석을
꽉 채워야 출발 했다. 태산으로 오르는 흑용담 저수지에서는 일찍부터 중년 남성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고 일부 관광객은 걸어서 산행을 즐기고 있었다. 측백나무로 뒤 덥힌 울창한 숲을 지나 꼬불꼬불 가파른 능선을 미니버스가 해발 800m인 중천문까지 잠시 올라왔다.
여기서 남천문 2.7km, 천외촌 14.4km 이다. 중천문에 오르니 날씨가 갑자기 추워서 동계 등산복으로 무장을 하고 상가 여럿이 있는 곳을 지나는데 밀가루 반죽을 해서 나무처럼 세우고 밀가루반죽을 깎어서 뜨거운 국물에 넣어 삶는 모습이 너무나 먹음직스러워 음식점안으로 들어가 국수를 먹었는데 맛은 없었다.
2) 중국의 명산 태산(泰山, 1545m) 트레킹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 우리에게 친숙한 이 시조의 무대 즉 태산은 1545m로 그리 높다고 할 수 없는 산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많은 시와 전설 등에 나타나고 있는 중국인의 정서 속에 남아 있는 명산으로 중국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중국 민족정신의 상징인 타이산은 산동성 중부, 태안시에 위치한 면적 426평방km인 중국 5대 명산 가운데 으뜸으로 “천하제일 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태산이 유명한 것은 예로부터 황제가 이 땅에 태평성대가 실현되었다는 것을 하늘에 아뢰는 봉선(奉禪) 이라는 예식을 태산에서 했고 또한 백성은 죽으면 영혼이 이 산으로 돌아온다고 믿었었으며 이산을 오름으로써 수명이 10년 더 연장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태산은 산세가 험하고 기암절벽이 많아 태산을 걸어서 올라가려면 7000여개의 돌계단을 밟아야 오를 수 있고 산기슭에서 정상까지는 걸어서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중천문은 태산 등반의 중간지점으로 이천문(二天門) 이라고도부른다. 중천문에서 남대문까지는 3.5km이고 걸어서 2시간30분 걸린다.
우리 팀은 돌계단을 걷지 않게 하기위해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 게이블카로 올라가기로 했다. 케이블카로 한 10분 오르니 남천문에 올라왔고 웨관펑(月觀峰)이 나왔다.
남천문은“삼천문” “천문관” 이라고도 하는데 해발 1460m이고 월나라 중통 5년 대묘의 주지
장지순이 세웠다고 한다. 문은 달림집 식으로 세워졌는데 돌로 무지개 모양으로 지어졌다. 남천문은 비룡암과 상봉령을 통하는 입구이며 상봉 옥황정으로 오르는 대문이기도 하다 왼쪽에는 케이블카 승강장, 서쪽은 월관봉이고 동쪽은 옛스러운 상가들이 있는 천가라는 동네가 있다. 대관봉 서쪽에서 북쪽으로 굽어들어 청제궁을 지나면 바로 태산의 최고봉인 1545m 옥황정 이다. 이곳에는 옥황사원, 옥황대패동상이 있으며 20여점의 고대 건축물과 문화재가 있다.
옥황정은 “태평정” “천주봉” 이라고도 부른다. 봉우리의 앞쪽에 옥황묘가 있고 본채에 옥황상제의 신상을 모셨으며 뜰 안에 극정석이 있고 지금은 바자로 둘레로 쌓아 놓았으며 표기된 태산의 높이 1545m이다. 고대제왕들은 태산에서 제를 많이 지냈는데 바로 이 옥황정에 단을 짓고 하늘을 향하여 평안을 빌었다고 전한다.
태산을 트레킹하면서 돌계단, 절, 상가, 수많은 비석, 묘당등 문화재가 있어 신성한 산이 망가져 버렸다. 이 아름다운 태산의 정상을 인간들이 사당, 부대시설을 지어 망가트려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를 보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
당초 계획은 태산 옥황정에서 하루 숙박한 후 태산 일출을 보려고 하였으나 태산의 정상의 모습이 너무 실망스러워 하산하였다.
3) 황산(黃山, 1846m) 서해대협곡(西海大峽谷) 트레킹
첫째날
황산대문(07:30)-운곡사(08:00)-백아령(12:00, 케이블카 10분)
-북해빈관(13:40)-서해빈관(중식후, 15:00)-광명정(16:10)
-서해빈관(17:00)-배운정(17:20, 일몰감상)(산행시간: 4시간)
.
황산은 남부 안후이성(安鰴省) 동쪽에 위치한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가운데 하나이다.
남북 40km, 동서 30km 면적 2,154 평방km 로 우리나라 설악산에 3배로서 백운경구, 북해경구, 옥병경구, 운곡경구, 온천경구로 나누어져 있다.
황산의 아름다움에 대하여는 수많은 시인들이 찬미 했는데 명나라때 지리학자며 여행가였던
서하객(徐霞客)은 중국의 산하를 두루 여행한 후 노래한 “五嶽歸來 不看山, 黃山歸本 不看岳”
“황산에 오르고 보니 천하에 산이 없더라 ”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해발 1864m의 연화봉을 비롯하여 무수한 암봉과 암릉,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노송, 운해 등이 펼쳐 놓은 절경이다.
우리나라의 금강산, 설악산과 같은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흡사하지만 기암 봉 들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의 위치가 뛰어나고 대암봉이나 암릉의 숫자가 더 많으며 대암봉이 72개나 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상상할 수 있다.
어제 까지 비가오고 일기가 불순하였으나 오늘은 안개가 짓게 깔린 새벽 06:30분, 황산Y.H에
준비된 미니버스를 타고 안개 낀 고갯길을 힘들게 오르락내리락하며 달려 1시간 만에 황산
대문까지 편안히 왔다. 황산 터미널 매표소에서 운곡사(云谷寺)로 가는 미니버스표를 10元 주고 구입, 굽이굽이 2차선 콘크리트도로를 15분 달려 원곡사 케이블카 승강장에는 08:00도착
했다. 황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크게 두 방면이 있는데 첫 번째는 운곡사(云谷寺)에서 시작하여 백아령(白鵝嶺)으로 오르는 동쪽길과 두 번째는 자광각(慈光閣)에서 시작하여 옥병루(玉屛樓)로 오르는 서쪽길이 있는데, 우리는 오늘 코스는 운곡사-백아령-북해빈관-서해빈관-배운정에서 일몰을 감상하고 정상의 서해빈관에서 숙박하기로 정하였다.
우리는 무릅 건강을 생각하여 계단 길을 오르지 않고 조금 기다려 케이블카를 타려고 매표소에서 황산 입장료를 200元(28,000원), 케이블카 편도요금 65元을 주고 어쩔 수 없이 비싸지만 구입하여 들어가니 케이블카를 타려는 관광객의 기다리는 줄이 장사진 이었다.
운곡사 케이블카 정류장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중국인 초등학교 여선생님과 우연히 알게 되어 중국어를 배우며 지루함을 달래며 무려 3시간50분을 기다려 케이블카를 10분 탑승하고 백아령에는 12:00에 올라갔다.
890m인 백아령에 올라오니 무척 추웠다. 북해빈관으로 가는 길목에는 시신봉(始信峰)이 있
었으나 그대로 지나치며 황산의 아름다운 기암괴석과 암봉들 위에 멋진 소나무를 보면서 가파른 절벽을 깎아서 만든 가파른 돌계단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북해빈관에는 12;30분에 도착 잠시 휴식을 했다. 북해빈관은 황산 정상에 위치한 호텔로는 최고급호텔로 객실이 185개나 되고 귀빈실을 비롯하여 도미토리까지 여러 종류의 다양한 객실이 있어 예산(50-3800元)에 맞추어 선택하면 연회실과 대식당도 있으며, 일출일몰을 이곳에서 숙박하고 보면 아주 좋다. 한 20분 걸어가 예약한 숙소 서해빈관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와, 계단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 광명정(光明頂, 1840m)에 올라갔다.
광명정은 완만한 부처님의 두상 같으며 황산에 제 2고봉으로 봉우리는 높고도 평탄하기에 때문에 일출을 보고 운해를 감상하기에 좋은 장소의 하나이다. 저 멀리 보이는 천도봉은 험준한 바위가 높이 솟아 있어 장엄한 분위기가 나고 또한 그 이외에 기석들은 선녀, 백조, 새들의 형상으로 각자의 독특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고, 탁 트인 시야 넓은 정상에는 화창한 날씨에 황산의 아름다움 절경에 매료되어 기념촬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계단 길을 내려가는데 굵은 대나무를 반으로 쪼갠 멜대를 어깨에 메고 배낭이나 물건 등 짐을 날라주거나 가마를 만들어 두 사람이 앞과 뒤에 서서 관광객을 태우고 지나가는 짐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광명정에서 다시 서해빈관을 거쳐 일몰을 보기위해 바쁘게 배운정(排云亭)에 가 일출감상을
하고 작품사진을 찍기 좋은 장소를 택하여 석양에 떨어지는 해를 촬영하기위해 기암들이 늘어선 서해협곡의 아름다운 석양에 모습에 기쁨이 넘쳐흐른다,
배운정에서 맞이하는 황금노을빛의 기암봉 사이로 불그스레한 태양이 사라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이곳에는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설치해 논 난간 체인에는 수많은 자물쇠가 달려 있는데 이는 사랑하는 연인이 이곳에 자물쇠를 채우고 하나씩 열쇄를 황산의 절벽 아래로 던지는 풍습에 의해서 나타난 것인데 던졌던 열쇄를 주서 와서 자물쇠를 열기 전까지는 두 사람의 사랑이 영원하다는 아름다운 사연이 담겨 있다고 전한다.
황산은 예로부터 구름바다를 이루는 운해가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워낙 날씨가 구름 한점 없이 쾌청한 날씨인 지라 암봉에 걸친 운해를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다음날 아침 어둠 컴컴한 새벽 05:00시 서해빈관을 나와서 일출보기 좋은 청량대(淸凉臺) 능선에 오르니 일출을 보려는 수많은 관광객이 줄을 이어 청량대에는 들어설 틈이 없어 다시 사자봉 방향으로 올라갔다. 일출보기 좋은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다리는데 손과 발이 시렵고 추웠다. 두터운 방한복을 입고 온 단체객들이 많았다. 청량대는 사자봉(獅子峰, 1690m)의 중턱에 있으며 표고 1645m이다. 황산 제일의 일출 보는 명소이다. 황산에는 그 형상에 얽힌 전설을 묘사한 바위, 다섯 노인이 천도봉에 오르다(五老上天都), 수호지에 나오는 무송이 호랑이를 때려잡다(武松打虎), 원숭이가 운해를 보다 등이 많다. 그중.
후자관해(帿子觀海)는 북해의 평정산에 희귀한 바위가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원숭이가 태평현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전설에 의하면 북해산 아래에 있는 태평현의 황원외(黃員外)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미모가 아름답고 마음씨 착한 외동딸 수고(銖姑)가 있었다. 수고는 어릴 적부터 수놓는 재주가 뛰어나 온 마을에 그 녀의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빼어난 황산을 수놓기 위하여 한걸음에 산으로 달려가 운해와 기암괴석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수놓았다. 그런데 평정산에서 돌 신선이 된 원숭이 소석원(小石猿)을 놀라게 하였다. 바람에 사랑거리는 꽃처럼 뛰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수고에게 반한 원숭이는 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며 멋진 총각으로 변신하였다. 인간의 탈을 쓴 원숭이 소석원은 수고 낭자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서로 사랑을 키웠다. 그러나 수고가 산을 떠나자 소석원은 뼈에 사무치는 상사병에 걸려 매일 그녀를 향한 그리움으로 세월을 보냈다. 하염없이 태평만 바라보다가 끝내 소석원은 태평현으로 내려가 수고의 아버지를 찾아 자신이 큰 벼슬집의 아들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수고의 아버지 황원외는 총각이 첫눈에 맘에 들어 , 수고도 소석원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고 결혼을 시켜 주었다.
그런데 결혼식 날 소석원이 기분이 너무 좋아 술을 많이 마시자 엉덩이 부분에 감췄던 꼬리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보고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라고 욕하며 그를 마구 때렸다. 본색이 들어난 원숭이는 뛰쳐나와 단숨에 산으로 올라가서 바위에 앉아 긴 시름에 빠졌다.
비가오고 눈이 오고 사계절이 바뀌어도 원숭이는 움쩍도 하지 않고 돌이 되어 흐린 날은 운해를 바라보고, 맑은 날은 태평을 바라봤다“고 전한다
후자관해“ 원숭이 운해를 보다”라는 제목이 붙은 기암봉 꼭대기, 사자봉에도 수많은 관광객이 해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쪽 저편 산능 사이로 붉은 태양이 고개를 내민다. 순식간에 하늘 전체가 붉으스레하게 올라오니 그 곳에 모인 등산객은 환호를 하며 박수로 화답을 한다. 정말 장관 이었다.
일출을 본 후 서해빈관을 지나 배운정까지 와서 아침으로 비상식인 빵과 과일 등, 어제 나뭇잎에 싼 찰밥을 10元 주고 3개를 사서 비상식으로 먹는데 아주 맛이 있었다.
아침에 서해에서 바라보는 협곡은 장엄하고 남자다운 기상이 넘쳐흐르고 때로는 여자의 섬세함을 보여주며 기기묘묘한 자태는 자연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날카로운 침봉능선이 한껏 멋을 자랑한다. 계곡으로부터 치솟아 오른 침봉, 조심조심 가파른길을 십 여분 내려가 인공의 긴 바위굴이 시작되는 지점, 왼쪽에는 평평한 공간의 전망대가 있다. 양쪽 가파른 절벽사이에는 보선교(步仙橋)라는 짧은 콘크리트 다리가 설치되어 있었고 전망대에는 먼저 온 중국 등산객들이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었다.
화강암과 어우러진 푸르른 낙낙장송, 우뚝 솟은 돌기둥 틈새를 뚫고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아 있는 수백 년 자란 소나무의 자태,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사를 자아낸다. 딱딱한 바위를 뚫고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소나무! 대개 800m이상의 높은 산에 서식, 바윗틈 만 있으면 자신의 뿌리를 깊숙이 박고 새로운 희망을 키워낸다.
사시사철 비바람, 눈보라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굳세게 견디는 소나무!
소나무는 우리에게 삶의 용기와 여유를 주며 생명은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고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황산의 절경은 아무리 기암봉이 많다고 해도 특히 노송이 없었다면 특히 이와같이 묘한 형상의 황산송이 없었다면 절경은 없었을 것이다. 오르막길은 너무나 힘든 고행길이다. 우리는 돌기둥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아찔한 절벽을 감아 돌아 계단 길을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다. 돌계단에서 바라보는 천길만길 단하봉, 단아절벽을 가로질러만든 계단 길, 대암봉 절벽의 중간을 가로지른 긴 허공다리를 수없이 지나간다.
자연의 신비스러운 모습, 계곡부터 치솟아 오른 날카로운 침봉들 높은 기상을 뽐내고 있는 다양하게 펼쳐지는 자연풍광에 탄성이 절로 나게 할 만큼 빼어난 장관이다.
황산 트레킹의 최고의 비경은 서해대협곡인데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고 일반 관광객이
이 코스를 트레킹 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 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 중턱을 가로질러 설치한 계단 길, 이 공사는 1979년 76세의 나이에 배운정에 올랐던 등소평이 서해대협곡을 굽어보고 감탄하여, 개발을 지시 그 후 12년간 루트를 설계한 후 9년간에 걸친 공사 끝에 2001년 완공하여 이 아름다운 서해협곡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신설공사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보수공사도 여러 군데에서 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앞서간 젊은 중국여성 사진작가는 이 험한 길을 혼자서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는다. 보기가 좋았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바위벽에 절묘하게 만들어진 등산로 계단 길, 협곡의 등산로 변에는 곳곳에 바위틈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을 모아두어 크고 작은 방화수용 수조가 마련되어 잇고 그 수조에는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옥수가 넘쳐흐른다.
힘들게 천해빈관을 지나 옥병루 북쪽에 있는 연못에 피어난 한 송이 연꽃처럼 아름답고 황산의 최고봉인 연화봉에는 13:40분에 도착하니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등산로 여러 곳이 지체 되기도 한다. 잠시 간식을 먹은 후 옥병참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케이블카로 자광각에는 14:35분에 와서 황산 온천장에서 온천욕을 하고 둔계(황산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