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회 성당
한국 전통 건축양식
성공회 강화 성 베드로와 바울로 성당
2009.
◀ 성당 벽에 새겨진 한자들
복음선포계중민영생지방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백성을 깨우치고 영생을 얻게 하는 길이라),
신화주류유서물동포지락
(하나님의 가르침이 두루 흐르는 것은 만물과 동포의 즐거움이라),
삼위일체천주만유지진원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는 만유의 근본이 되시도다),
선인선의율조증재대권형
(인을 선포하고 의를 선포하니 이에 구원을 밝히시어 큰 저울이 되셨도다),
무시무종선작형은진주재
(시작도 없고 끝도 없었지만 먼저 형상과 소리를 지으시니 참 주재시라)
1900년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회 성당으로 정면4칸 측면 10칸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우 아름답고 한국적인 양식이라 그 당시 토착화 하기위한 성공회의 노력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1900년 트롤로프(趙瑪可) 주교가 설계, 감독하여 건축한 것이다.
경복궁 공사에 참여했던 대궐 목수가 시공했고 사용된 목재는 백두산 원시림산 적송, 기와와 석재는 전부 강화도산이며 제대, 세례대, 축대 등 석공사는 중국인 석공이 맡았습니다.
마크 내피어 트롤로프 신부의 주도로 1900년에 완공된 강화성당을 배로 상징했습니다.
이는 극락정토를 타고 갈 때 탄다는 불교의 반야용선(般若龍船)과 같다.
외삼문과 내삼문은 일주문에서 천왕문으로 이어지는 절집 구조와도 같습니다.
또 십자가가 돋을새김 된 범종은 절의 범종과 흡사하고,
본당에 걸린 ‘천주성전’(天主聖殿)이란 편액도 절의 ‘대웅보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당이 세로로 앉혀져 있는 것은 절집의 구조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또 본당의 내부가 천장이 높고 중앙부 양쪽으로 날개가 달린 것은 바실리카 양식으로 이는 로마의 공공건물에서 유래돼 기독교 예배공간의 전형이 된 것입니다.
모든 시설, 의자, 제단, 집기라든가 장식품 등이 고풍스럽고 단아한 멋을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 사방에서 어느 때고 빛이 환하게 들어와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성공회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강화에 오면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입니다.
출처: 성공회 커뮤니티 Holynet
강화도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건물을 한 채 보고왔습니다.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성공회 강화성당이 바로 그것입니다. 영국의 성공회가 우리나라에 선교를 하기 위해서 지은 건물인데, 가보기 전에는 성공회 건물이니까 콘크리트에 뾰족한 첨탑을 머리속에 그리고 간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건물을 보는 순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공회 성당이 우리나라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 자체가 당시 선교사들이 선교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는지 알 것같았습니다.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1890년 영국인 왕란도 신부가 강화읍 갑곶리에서 회당 겸 사택을 매수하고 전도를 하기 시작하면서라고 합니다. 그후 왕란도 신부는 영국으로 돌아가고 1896년에 조마가 신부가 부임하여 강화읍에서 김희준를 전도하면서 성공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성공회는 1897년에 영화원이라는 보육원을 개설하고 서양 의술로 많은 환자를 치료하였으면, 현재의 건물은 1900년에 지어진 것으로 특이하게도 성당을 한옥식 중층 건물로 지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성당 건축에 쓰인 나무들은 백두산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합니다.
성공회 강화성당 외삼문
성공회 강화성당은 강화읍내에서 고려궁지로 가는 길로 우회전하여 조금만 올라오면 김상용순절비각을 보게 됩니다. 비각 골목으로 들어서서 100m 정도 걸어가면 왼쪽으로 높은 계단이 있고 그 계단 위로 사진에 보이는 솟을삼문을 보게됩니다. 이 곳이 바로 성공회 강화성당입니다. 성공회 성당의 정문이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대문의 한 형태인 솟을삼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은 잠겨 있고 건물을 끼고 돌면 성당 중간쯤에 협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성공회 강화성당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성공회 강화성당
성당은 한국식 중층 건물로 전체 모양은 배모양을 하고 있으며, 실내에는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안내문에 의하면 전형적인 바실리카양식이라고 합니다. 영국 성공회가 포교 단계에서 교리나 예배 의식, 상징물 등에서 한국의 전통을 이해하고 전통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우리는 이 건물 한 채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을 것같습니다. 정면 4칸, 측면 15칸으로 우리의 전통 건축물은 정면이 넓은 것에 비하면 예배를 보는 공간이다 보니 측면이 더 넓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은 방주의 형태로 지어졌기 때문에 배모양이라고 합니다.
성공회 강화성당 본채의 옆모습
성공회 강화성당의 정문인 솟을대문은 잠겨 있습니다. 측면에 난 협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장면입니다. 서양식 건축 기술과 우리 전통 건축 기술이 융합되어 이렇게 아름답고 보기 좋은 건축물이 탄생한 것같습니다.
성공회 강화성당의 동종
서양종은 한국종보다 작으며, 종을 칠 때도 서양종은 종 안쪽에 쇠뭉치를 두어 줄을 연결하여 줄을 흔들어서 종을 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 성공회 강화성당의 종은 한국식 종을 닮아 있었습니다. 종의 겉면에 새겨진 성공회 상징만 없다면 우리의 전통 사찰 범종각에 매달린 종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우리의 종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종이 매달린 곳도 우리나라 사찰의 범종각과 같은 형태의 건물인 내삼문 안에 종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성공회 강화성당 협문을 들어서면 작은 비석이 하나 서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려다가 비문에 새겨진 한글을 보고 사진에 담아보았습니다. 지금은 쓰지 않는 옛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대영국 알마 슈녀 기념비'라는 글인 것같았습니다. 1936년에 이곳을 찾은 알마 수녀의 기념비른 뜻인지 아니면 1936년에 이곳에서 죽은 알마수녀의 기념비인지는 모르나 비석 뒷면에는 1936년 10월 이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성공회 강화성당 사제관
성당 뒷편에 있는 사제관 역시 한국식 건물 그대로 입니다. 협문에 있는 성공회 상징물만 없다면 우리네 전통 사대부가와 별 다른 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협문이 잠겨 있는 관계로 사제관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출처: 보고 또 보고 답사부장 반두환
강화 성당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에 만들어진 성당이다.
영국 성공회가 우리나라에 상륙하면서 지은 성당이다.
당시 건축 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다.
궁궐을 건축한 도편수가 교회 건물을 공사했다는 것도 특이한데,
우리나라식의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건축양식에 따라 만들어진 성공회 강화성당
사적 제424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소재

성공회 강화성당의 사제관, 사제관 역시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양식에
따라 만들었다.

종도 사찰의 전통 범종처럼 만들어졌다.
성당의 종이 이런 모양인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다.

성당의 바깥에는 이러한 비석도 서 있다.
'대영국 알마 수녀 기념비'라고 적혀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성당의 전체적인 건축 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였다고 한다.

바실리카 양식에 따라 만든 성당의 내부, 외부 모양은 전통 양식에 따랐으나
내부의 모양은 성당의 일반적인 건축 양식에 따랐다.
남의 나라에 왔으되,
그 나라의 전통을 인정하고 따라가려는 노력...
왠지 이쁘게 보이는 문화재 이다.
출처: blog/eduzzang

1906년경 강화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