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나눔세상의 대들보예요 | |
서천집짓기 ‘대학생 목수들’ 건축학 전공자들 매년 2천~3천명 참가 ‘뚝딱뚝딱 소금땀’ 회사·개인도 힘 보태…농촌소외 허물고 희망은 쌓아요 | |
권복기 기자 | |
22일 충남 서천군 문산면 신농1리 보건소 앞. 70평 규모의 마을 도서관을 짓는 ‘2008 서천집짓기’ 현장이다. 도시의 공립 도서관에 비할 수는 없지만 700여 세대 1500여 명이 사는 문산면으로서는 적지 않은 규모의 도서관이다. ‘서천집짓기’는 문화도시연구소 주대관 대표가 2002년부터 해마다 7월에 열고 있는 건축 프로젝트. 대학생이 주축이 된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소외지역에 필요한 건축물을 거의 공짜로 지어주는 행사다. 주 대표는 “청년 학생들이 집짓기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실제 건축 현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40여 일꾼들은 대부분 대학생들이다. 아르바이트, 어학연수, 배낭여행 등 자신만을 위한 활동을 미루고 방학의 절반을 이웃을 위한 나눔 건축에 참여했다. 건축학 전공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학교는 다양하다. 서울시립대, 경기대, 명지대, 중앙대, 경희대, 경상대, 동아대, 영남대, 경북대, 동아대, 연세대, 홍익대 등 12개 대학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주 대표는 “연인원으로 따지면 2천~3천명의 학생들이 일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루 참가 인원이 100명 가까이 될 때도 있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지붕 작업을 하던 박영규(25·명지대 건축2)씨는 “과 농구동아리 선배의 권유로 참여하게 됐다”며 “예전에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할 때보다 얻는 게 훨씬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젊음의 열정을 소외된 이웃을 위해 나눌 수 있고 현장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그런지 여름이면 빠지지 않고 집짓기 행사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다. 학생총괄팀장을 맡은 신상현(26)씨와 정희태(26)씨가 그런 이들이다. 서울시립대 건축학과에 다니는 두 사람은 철암 지역의 판잣집을 헐고 홀몸노인이 살 집을 짓는 ‘철암작업’ 때부터 ‘개근’했다. 두 사람은 심지어 군 복무 동안에도 휴가를 모아서 보름씩 건축 현장에서 일을 하곤 했다. 신씨는 “부모님은 저보고 좋은 일도 너무 심하게 하는 게 아니냐고 핀잔을 주시기도 하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이웃을 위해 땀 흘리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2005년 강원도 용대리의 집짓기 때 학생총괄팀장을 맡았던 한원준(27)씨는 후배들이 팀장을 맡은 뒤에도 해마다 여름이면 집짓기 행사장을 찾아 연장을 든다. “꿈을 꾸는 이들과 함께 모여 일하는 게 너무 행복해서다”. 대학생들의 젊음이 가장 큰 동력이지만 건축 현장에는 조용히 힘을 보태는 기성세대들도 많다. 건축비 2억원은 문화도시연구소, 서천군, 한국목조건축협회에서 각각 5천만원씩을 내놓았고, 캐나다우드, 세아설비, 대경전기 등 여러 회사들과 뜻있는 개인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대체에너지에서는 3천만원이 드는 지열난방설비를 기증하기로 했다. 한 해에 1천만원 이상 후원하는 개인도 있다. 문화도시연구소 이사인 강승희 가와건축 대표가 주 대표와 함께 현장을 지휘하고 있고, 이국식(㈜시스홈), 김갑봉(㈜스튜가), 황태익(캐나다우드)씨 등 관련 업계 전문가들이 자원봉사 대학생들에게 건축 관련 교육을 맡고 있다. 그런 기성세대를 보면서 학생들은 자신들이 뛰어들 세상이 각박하지만은 않음을 배운다. 또 경쟁에 내몰려 친구조차 드문 세태에 거슬러 함께 소금땀을 흘리며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집짓기 현장의 대학생들은 누가 졸업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번개’를 하면 순식간에 20~30명이 모일 정도로 가까운 친구들이 됐다. 주대관 대표는 “집짓기를 경험한 아이들은 건축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며 “이 아이들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주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 욕심 부추길라 집짓기도 ‘진화’했죠 문화도시연구소 주대관 대표 ‘2008 서천집짓기’는 문화도시연구소 주대관(52) 대표가 총괄 진행을 맡고 있다. 주 대표는 “건축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건축가다. 주 대표는 사람이 사라져 가는 농촌에 관심이 많다. 그는 농촌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도시에 종속되지 않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그는 건축이 그런 목적을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그는 문화도시연구소의 한 해 예산 가운데 5천만원을 집짓기 프로젝트의 종잣돈으로 늘 떼어 놓는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농촌 마을 자체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가 올해 도서관을 짓는 이유다. 그가 집짓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96년 출장길에 태백시를 지나다 광부들이 떠난 판잣집이 개집으로 바뀐 것을 보고서였다. 소장 건축가들과 팀을 짜서 판잣집을 헐고 가난한 홀몸 노인들이 살 수 있는 주택을 짓는 ‘철암작업’을 시작했다. 일꾼은 대학생들의 자원봉사로 확보했다. 그렇게 3년 동안 11채를 지었다. 보람 있었지만 실망도 컸다. “정말로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또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웃 주민들로 공사가 지체되기도 했다. 탄광촌을 허물기를 원하는 태백시 당국에 그는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가 용역을 따내려고 일을 시작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났다. 미련 없이 태백을 떠났다. 하지만 집짓기는 계속했다. 2004년 인제군 서화리, 2005년 인제군 용대리, 2006년 양구군 팔랑리, 2007년 양구군 정림리 등에서 집을 지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프로젝트도 진화했다. 사람들의 욕심을 부추기지 않으려고 새로 짓거나 개조하는 집의 소유권을 마을에 넘겨 운영하도록 했다. 건축 형태도 개인 주택에서 귀농자를 위한 인큐베이터 하우스와 산촌유학 시설 등을 거쳐 올해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저도 많이 배웁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주민들을 만나면서 배웁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주 대표는 집짓기를 마칠 때마다 늘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이 하는 작업이 쇠락해가는 농촌마을에 새로운 희망을 심기에는 너무 단편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100가구 규모의 마을을 제대로 바꿔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홀몸 어르신을 위한 주거공간, 귀농자 인큐베이터, 예술인 거주 문화교육 공간, 산촌유학 시설, 도서관 등 그가 7년 동안 진행해 온 집짓기의 노하우를 쏟아부어 아이들이 자란 뒤에도 살고 싶어하는 농촌마을을 만드는 꿈 말이다. 권복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