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 박정희보다 더 많이 생각나는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하여..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 개시일을 2월 25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03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대통령의 임기는 전임 대통령 임기만료일의 다음날 0시부터 개시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 어젯밤 자정부터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박근혜다. 2013년 2월 25일 0시를 기해,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과 역할을 인수받은 것이다. 취임식은 오전 11시에 여의도 국회에서 시작되지만, 이미 박 대통령은 자정부터 군 통수권을 비롯한 모든 통치권을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세계 속에서 미국의 얼굴이 오바마이듯이, 지금 현재 우리 나라의 얼굴은 박근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날 아침, 자연스럽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 두 사람도 한때 대한민국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전두환도 살아있고 이명박도 살아있는 바로 이 순간, 그들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전두환과 이명박에게 핍박받았던 두 사람의 얼굴을, 전두환이 여전히 황제 경호를 받고 이명박이 온전히 금의환향하는 2013년 2월에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과연 이 두 사람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날이 실제로 올지 상상이나 했을까? 만약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들에게 이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악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라서?

[사진자료: 연합뉴스]
어쨌든 오늘은 김대중과 노무현이 무척 많이 생각난다. 이미 몇십 년 전에 그 서슬 퍼렇던 독재자 박정희와 맞붙었던 김대중이 떠오르고(박정희의 삶 자체가 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치명적 오류라고 할 수 있는 '친일'과 '독재'를 그대로 대변하고, 1998년에야 대통령이 된 김대중은 이런 박정희와 벌써 1971년에 대통령직을 놓고 격돌했다), 전두환 청문회에서 명패를 집어던지며 진정으로 울분을 토하던 노무현도 떠오른다(노무현은 자타공인 '청문회 스타'였고, 이런 그의 모습이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그런 김대중과 노무현은 둘 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명을 달리했다. 전두환(1931년생)과 이명박(1941년생)은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박근혜(1952년생)는 현재 대통령이지만, 김대중(1924년생)과 노무현(1946년생)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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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편으론 이런 얘기도 생각나는데, 독립운동가의 후손들 사이에는 이와 같은 말이 있다고 한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 매국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린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나중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민주화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독재를 하면 3대가 떵떵거린다' 전두환의 자식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는가? 그들은 사실상 재벌이고, 자식들 각자가 다 대한민국의 어느 한 산업을 아주 떡 주무르듯 하고 있다. 그럼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의 자식들은? 굳이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아도 현재 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대부분 잘 알 것이다. 참고삼아 말하자면, 독립운동가 후손 가운데는 직업이 없는 사람이 무려 60%를 넘고, 고정 수입이 있는 봉급생활자는 10%를 조금 웃돌 뿐이며, 중병을 앓는 사람이 두 집에 한 집꼴이고, 중졸 이하 학력이 55%를 넘는다고 한다. 절대 다른 나라 얘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대한민국이 실제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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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말한 것처럼, 우리 나라 역사의 치명적 오류 두 가지는 '친일'과 '독재'다. 우리는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 매국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린다. 그렇다면 독재는? 오늘은 (과거에 대한 반성을 거의 한 적 없는)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날이며, 김대중과 노무현이 참석하지 못하는 취임식에 전두환은 참석한다.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지금처럼 독재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몇십 년 뒤에 분명히 이런 말이 나올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독재를 하면 3대가 떵떵거린다. 슬프게도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럴 것이 아주 농후해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나라가 당장 망하거나, 금방 큰 재앙에 직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출산율은 가장 낮고 자살률은 가장 높은 국가에서, 친일이나 독재와 같은 명백한 오류조차 바로잡지 못한다면, 확실히 그런 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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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한 번 생각해 보자. 박근혜 정권 시기에 친일과 독재를 조금이라도 청산할 수 있을까? 사실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쩌면 노무현과 김대중을 단순히 추억하는 것보다, 박근혜 정권이 이제 출범하는데 과연 이 두 가지 문제가 어떻게 다뤄질까 하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물론 김대중과 노무현도 제대로 못했다. 혹자는 그 10년 동안 잘 못했기 때문에 2013년의 우리가 요 모양 요 꼴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박근혜는 과연 어떨까? 박 대통령의 과거사 인식 수준을 굳이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5년 동안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5.16이 일어나자 대다수의 국민은 올 것이 왔다면서 그것을 암묵적으로 지지하였다"라고까지 말하는 <경기도 현대사>(2013년 2월 21일 발간) 같은 책들이 나오는 것만 봐도 말이다.
[김문수 경기지사 +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 공동대표 + 조선일보 주필이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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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대, <경기도 현대사>처럼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 교육 말고도 더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개인적으로 꽤 가능성이 높은 것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전두환은 자신의 사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는 여건을 박근혜 정권이 만들어주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1년 8월, 대한민국의 국가보훈처가 전두환 재임시절 청와대 경호실장을 맡은 바 있으며 5공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징역이 확정돼 복역한 전력이 있는 故 안현태를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한 걸 기억하는가? 안씨의 국립묘지 안장은 법적으로도 당연히 문제가 많았고, 국민 감정으로 보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안현태의 묘는 끝내 장태완(신군부가 일으킨 12.12 군사반란에 맞섰던 전 수도경비사령관)의 묘 바로 앞에 자리잡았으며, 2012년 1월 17일에는 故 장태완 장군의 부인이 투신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2012년 1월 18일은 독재자 전두환의 81회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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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뒤, 안씨가 장태완 장군의 묘 바로 앞에 안장된 것처럼 전두환이 국립현충원 김대중의 묘 바로 옆에 안장될 수도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반성도 하지 않는 악독한 독재자가 죽어서까지 국립묘지에 묻힐지도 모르는 나라인 것이다. 그리고 만약 전두환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면, 다른 인물들은 과연 가만히 있을까? 일단 노태우를 비롯한 여러 신군부 인사들이 국립묘지에 묻히려 들 테고, 그 외 예전에 독재에 부역했던 온갖 인간들이 다 기어나올 것이다. 이 따위 국립현충원이 도대체 뭐가 명예로울까? 역사 교과서에서는 국민들이 쿠데타를 지지했다고 말하고, 국립묘지에는 독재 잔당이 묻히는 사회.. 대표적인 친일파의 후손들은 3대 이상 떵떵거리며 현재까지 상류층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3대 이상 절망적으로 살아가는 사회.. 이게 바로 2013년 우리 나라의 현주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를 받게 됐다. 몇 시간 뒤, 박근혜는 다음과 같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게 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도 2003년 2월 25일 취임하면서 이 선서를 했고, 이명박도 역시 마찬가지다. 딱 10년 전 노무현이 했던 취임선서를 박근혜 대통령도 똑같이 하는 것이다. 노무현의 대통령 취임선서를 보는 김대중과 박근혜의 선서를 바라보는 이명박의 마음은 어떻게 다를까? 이명박과 김대중의 마음을 그대로 펼쳐놓으면, 바로 거기에 노무현과 박근혜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단서가 있지 않을런지.. 물론 지금 그것들을 알 수는 없지만, 이거 하나는 거의 확실하지 않을까 싶다. 박근혜를 보는 이명박의 마음보다는 노무현을 바라보는 김대중의 마음이 훨씬 더 긍정적인 믿음으로 채워져 있었을 것이라는 점. 박근혜 시대,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