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에 불려간 네 명의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은 그날밤 젊은 장교들에게 모두 순결을
잃었다.
조선 소녀들이 이렇게 잔혹한 시련을 당하고 있을
때 자연은 그녀들을 외면했다. 그녀들의 고통 따위는
모른다는 듯 칠흑 같은 어둠과 바람과 눈은 한데 엉겨
무섭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대륙의 밤은 길고도 길었다.
여옥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곁에서 사내의
코고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옆으로 한 바퀴 구른 다음 몸을 일으켰다.
일어서려다가 그녀는 도로 주저앉아 버렸다. 다리
사이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치마는 끈적거리는 것으로 흥건히 적셔
있었다. 그녀는 문 쪽으로 어기적어기적 기어갔다.
문을 열자 찬바람이 몰려들었다. 밖으로 나간
그녀는 금방 추위에 얼어붙어 버렸다. 마당 저쪽 대문
위에 등불이 하나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 밑에서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여옥은 방안으로 도로 들어왔다.
그녀는 웃목에 쭈그리고 앉아 흐느껴 울었다.
소리를 죽여가며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그치지가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향 친구들의 모습도 보였다. 산과 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냇물 소리도 들려왔다. 새소리, 송아지 울음 소리,
닭의 홰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녀는 무릎 위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크게
확대되어 왔다. 고향을 떠나올 때 길 위에 쓰러져
몸부림치던 것이 그녀가 본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녀는 거의 아버지를 보지 못한 채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와도 이젠 헤어져야
했던 것이다. 영영 어머니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여옥의 집안이 갑자기 몰락하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가 어디론가 행방을 감추면서부터였다.
여옥이 소학교에 입학하던 해 그녀의 아버지
윤홍철(尹洪喆)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원래가
선대 때부터 지체있는 부호의 집안이었는데 윤홍철이
호주가 되면서부터 집안이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일본서 대학까지 다녔지만 그는 술 잘하고 오입질
잘하는 유명한 한량(閑良)이었다. 그ㄸ문에 그 많은
재산은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줄어들었다. 무던히도
아내의 속을 썩인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여옥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죄책감 때문에 남편의 하는 일에 일체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여옥이 하나만을 낳은 후 웬일인지
그녀에게는 태기가 없었다. 윤홍철은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외동딸을 몹시
사랑했다. 여옥에게도 아버지가 자기를 몹시 귀여워해
준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윤홍철의 방탕벽은 갈수록 극심해져서
나중에는 주재소(駐在所)의 일본인 순사에게
손찌검까지 하게 되었다. 화가 난 그 순경이 칼을
빼들고 달려들자 그는 순경을 때려죽이고
도망쳐버렸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후 그는
고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곤혹을 치른 것은 남은 가족이었다.
홍철의 아내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경찰에 불려가서
남편의 행방에 대해 추궁을 받고 고문을 당해야 했다.
집안이 이렇게 되자 일가친척들도 일경(日警)의
감시가 두려워 여옥이네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고통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여옥의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집안을 꾸려나갔다. 소학교를 졸업한 여옥은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경성(京城)에 올라가 여학교에 진학했다.
기숙사 생활은 그런대로 재미가 있어 집안의 근심을
잊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경찰의 감시망은
학교에까지 뻗쳐 있었다. 방학이 되어 교향에
돌아가보면 여전히 어머니는 경찰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여옥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여옥은 아름다운데다 뛰어나게 머리가 영리했기
때문에 장래가 촉망되고 있었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시대의식이 없었던 만큼 그녀는 일제(日帝)의 교육을
별 저항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여옥이 3학년이 되던 해
늦은 봄 어느 일요일 오전이었다. 여옥이 교회에
나갔다가 기숙사로 돌아오는데 골목길 중간쯤에
마카오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중절모를 깊이 눌러쓴
신사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코밑 수염에
금테안경, 그리고 비싼 궐련을 피우고 있는 것이 얼른
보기에도 상당히 부유한 사람 같았다. 훌륭하신 분인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나치려는데 신사가 앞을
가로막으면서
"여옥아."
하고 불렀다. 낮으면서도 재빠른 말씨였기 때문에
그녀는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사와 눈이 마주친 순간 여옥은 그만
"아!"하고 탄성을 질렀다.
"여옥아, 나다! 아버지다!"
신사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가 도로 떨어뜨렸다.
여옥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그렇게 나를 쳐다보지 마라. 그대로 기숙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내 말을 들어라. 빨리 그렇게 해.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
여옥은 얼떨결에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다.
골목 저쪽에서 노인이 한 사람 나타나자 아버지는
말을 그쳤다. 그 노인이 사라질 때까지 아버지는
말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뒤에서 아버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집에 내려가 보아라. 어머니가 많이 아픈
모양이다."
여옥은 눈물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말소리가 더
빨라졌다.
"그리고...... 학교에 더 다닐 필요 없다.
일본놈한테 글을 배우다니, 당장 집어치워라. 그건
수치다. 일본은 곧 망한다. 울지 말고 굳세게 살아야
한다."
여옥이 뒤돌아보았을 때 아버지는 이미 돌아서 가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하고 부르려다가 그만두었다.
꼭 8년만에 보는 아버지였다. 옷은 잘 차려
입었지만 몹시 말라 보였고 전처럼 술이나 마시는
그런 아버지가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여옥을 놀라게 한 것은 아버지가 어머니의
소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궁금증을 안은 채
여옥은 그날로 고향으로 내려갔다.
어머니는 모진 고문을 받고 자리에 누워 있었다.
이번에는 그 전같이 뺨이나 몇 대 때린 그런 고문이
아니라 거의 반죽음을 만들어 놓은 혹독한 고문이었던
것 같았다. 전신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입은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눈은 부어서 거의 보이지가
않았다. 무릎뼈를 상해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옥의 어린 마음에도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여옥이 울음을 참으면서 아버지를 만났다고
이야기하자 어머니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히 가셔야 할 텐데......"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이렇게 중얼거리다 말았다.
어머니는 말하지 않았지만 여옥은 이웃
사람들로부터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 모든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 일제의 감시가 조금도 풀리지 않았던 것은
그때문이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동안에도 인편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 아버지가 8년만에 고향에 나타난 것이다.
군자금을 모으려고 국내에 잠입했던 아버지는 이
기회에 가족들을 중국으로 데려가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거물급 독립운동가가 잠입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경은 그가 윤홍철임을 알아내고 집을
덮쳤다. 사전에 이 기미를 눈치 챈 윤홍철은
구사일생으로 도망쳤다. 이렇게 해서 결국 여옥의
어머니만이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은 것이다.
일경은 여옥의 어머니에게 남편의 행방을 대라고
했지만 그녀는 끝내 모른다고 잡아떼었다. 그래서
고문은 더욱 가혹해지고, 마침내 거의 죽게 되어서야
그녀는 겨우 풀려 나올 수가 있었다.
어린 여옥은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살림을
꾸려나가야 했다. 남은 재산마저 이리저리 일제에
빼앗기고, 집안은 말할 수 없이 궁핍해져 있었다.
여옥은 생전에 해보지도 못한 궂은 일들을
해나갔다. 김을 매고, 방아를 찧고, 빨래를 하고,
나중에는 심지어 여자의 몸으로 나무까지 하러 다녀야
했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신세가 바뀌었지만 그녀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이 모든 어려움을 참아갔다. 지병이
되어 누워버린 어머니에 대한 효성도 지극했다. 한편
아버지의 소식은 없었다.
한 해가 갔다. 세월이 흐르자 여옥은 여느 시골
아낙네처럼 거칠어지고 여학교 시절의 꿈도 스러져
갔다.
그 동안에도 경찰의 탄압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은 환자 대신 이번에는 여옥이를 불러다가
아버지의 행방을 추궁하곤 했다. 그러나 여옥은
아버지가 간 곳을 정말 몰랐을 뿐만 아니라, 알았다
해도 도저히 바른 대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일경(日警)은 여옥의 나이 17세가 되자 전혀
색다른 방법으로 협박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행방을 대지 않으면 그녀를 정신대(挺身隊)에
내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선고였다.
불안한 나날이 흘렀다.
일제(日帝)는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이른바
정신대(挺身隊)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조선 여자들을
대거 끌어다가 침략의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물론
1940년 이전에도 조선 여자들이 전장에 나타나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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