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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를 읽고...
도가니..도가니..도가니탕도 아니고 도가니란 말을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여기서 말하는 도가니는 뭘 뜻하는지 궁금하여 사전을 찾아보니 도가니란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고 있는 상태’를 비유하여 일컫는 말로 주로 열광의 도가니, 흥분의 도가니로 쓰여 진다.
이 책은 광란의 도가니를 줄여서 도가니라고 썼다고 한다.
도가니란 책을 구상하게 된 게 신문기사 한줄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사건이 뭘까? 인아학교. 인애학교사건, 광주 인애학원.. 기타 등등을 찾아가며 아무리 자료를 찾으려해도 도무지 이 책하고 연관된 사건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던 차에 작가의 후기에 있는 도움 준 사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포항의 김태선 선생님, 광주의 안관옥, 노지현, 우리 교수님, 농아학교등을 찾아 자료를 읽어가며 나는 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한참을 웃었다. 바보.. 정말 나는 바보다. 인화학교를 찾아 그토록 헤매다니...
2005년 6월 내부 직원에 의해 사회에 알려진 그 사건을 “에고. 저런 나쁜놈이 있나, 장애인인 어린애를 그것도 말도 못하는 애한테 그런 짓을 하다니″ 욕하며 그저 날마다 뉴스에서 전하는 오늘의 사건 사고 소식처럼 무심히 스쳐지나간 나에게 광주인화학교라는 이름조차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이게 정말 사실일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갑자기 20여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근무하던 시설에 한 10대 농아아이가 임신을 하였는데 10달이 다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아기는 낳자마자 입양을 보냈었다. 아가씨들인 보육사들은 임신이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날마다 조금씩 살이 찌는 줄 알고 겨울이라 두꺼운 옷에 가려진 그 아이의 배를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아이는 원에서 몇몇 아이들과 함께 동네 사과밭에 일을 도와주러 다녔는데 그 사과밭 주인과 그 아버지 아들까지 삼대가 그 아이를 성폭행하고 용돈 좀 쥐어주고 손에 사과나 과자 몇 개 쥐어 주었던 것이었다.
원장은 그 사실을 알고 그 아이를 감싸주기보다는 그 아이의 잘못인 듯 혼내고 아무 말 하지 말라며 보육사나 원내의 아이들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사과밭주인이 건넨 돈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히 지나갔다. 원내에서도 밤늦게 원장이 여자 농아아이들을 불러내고 캠프에서 데리고 자면서도 고아원이지만 아빠나 딸, 아들처럼 대하고 싶다는 원장의 말에 이상하게 생각을 하면서도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아무 일도 없겠지 란 생각을 하면서 직원들은 근무하는 동안 원장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것 없으니 그저 눈감고, 귀막고 조용히 있는 게 최선이고 우리가 시설이나 원장을 바꿀 수도 없으니 원이 싫으면 보육사들이 떠나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행동을 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지금 생각하니 어쩌면 그 아이들도 원장의 성노리개로 살지 않았을까? 아닐거라 아닐거라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파온다. 만일 그때..만일 무슨 일이 생겼다면..그 일에 앞장 설 용기가 있었을까? 누군가 그 일에 앞장선다면 괜한 일 하지 말라고 말렸을까? 아님 잘한 일이라고 같이 도와주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마음이 착찹해진다.
만일 강인호나 서유진을 만났다며 그 아이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용기있는 그들이 부럽고 존경스러워진다.
2005년 6월에 일어난 사건에 내부 직원의 고발이 없었다면 내내 말없이 조용했을 학교..
가해자가 퇴직자까지 합해 10여명이 넘었으나 인권위가 고발한 6명의 가해자중 4몀만 처벌을 받고 실형을 선고받은 교장과 생활지도 교사는 전과가 없고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며. 재단이사장과 아들인 교장은 사망을 하고, 행정실장은 출소 후 건강식품사업을 하고, 재단 이사장 사위가 이사장을 맡고 있고, 두 명은 여전히 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피해자인 한 학생은 부모가 없어 인화원측에서 동의를 해주지 않아 그대로 학교에 남아있는데 구청이 직권으로 옮길 수도 있지만 지친 대책위와 겉보기에 잘 돌아가는 인화학교에 무슨일이 있냐는 것이 관공서의 입장이라한다.
당시 인권위가 100명의 농인 학생들을 전수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10여명의 피해학생이 겪은 충격적인 증언들과 소설이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입에 담지 못할 내용 모두를 그대로 담지 못하고 실제 사건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는 한 직원의 말로 보아 학생들의 피해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말 못하는 장애 학생들을 인간취급하지 않은 그들을 처벌하고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책임을 회피,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외부의 압력과 가해자들을 비호하는 부패세력들과의 싸움, 사건의 단계마다 제대로 일이 처리되는 곳이 없는 현실에서 거꾸로 가는 인권없는 세상에 맞서 내 일이 아니라는 식의 무관심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힘을 모으면 결국 사회에도 변화가 일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장애아동뿐만이 아니라 최근의 나영이 사건처럼 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또 다시 같은 범죄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가해자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을 하였으면 한다. 인화학교 대책위원회에 응원을 보내며 광란의 도가니에서 희망의 도가니로 하루 빨리 정상화가 이루어져 정상적인 학교에서 공부하길 바라는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