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해 정(押海 丁)
◇ 9대 玉堂
옥당(玉堂)이란 홍문관의 별칭으로 정씨 가문은 "9대옥당"으로 유명한데,
옥당은 옛날 삼사(三司 :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의 벼슬 중에서도 문장과 도덕이 특출한 인물들만 들어갈 수 있었으니 곧, 옥당벼슬인 수찬(修撰), 교리(校理), 응교(應敎), 제학(提學)은 선비로서 가장 바람직하고 영예로운 자리였다.
그러기에 "9대옥당"은 자랑할 만한 일로서 정조도 "옥당은 정씨의 세전물(世傳物)"이라며 찬탄했다고 한다.
◇ 朝鮮朝 文科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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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9대에 걸쳐 합격의 영광을 누린 가문..?▶압해정씨 가문
압해정씨 가문은 세조 6년 1460년 정자급(丁子伋)이 평양별시에서 3등으로 문과에 등과한 이후,
숙종 20년 1694년 정도복(丁道復)이 별시에서 병과19등으로 등과할 때까지 무려 9대 234년에 걸쳐 대를 이어 문과에 합격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한편, 달성서씨 가문도 연속 7대에 걸친 합격자를 내서 압해정씨에 버금가는 기록을 남겼다.
押海丁氏 가문
1대 정자급(丁子伋) 세조6년(1460년), 평양별시 3등
2대 정수강(丁壽岡) 성종8년(1477년), 춘당대시 을과6등
3대 정옥형(丁玉亨) 중종8년(1513년), 식년시 병과12등
4대 정응두(丁應斗) 중종29년(1534년), 식년시 갑과2등
5대 정윤복(丁胤福) 선조1년(1567년), 식년시 을과4등
6대 정호선(丁好善) 선조34년(1601년), 식년시 을과1등
7대 정언벽(丁彦璧) 인조22년(1644년), 별시 병과7등
8대 정시윤(丁時潤) 숙종16년(1690년), 식년시 을과4등
9대 정도복(丁道復) 숙종20년(1694년), 별시 병과19등
◇ 우리 씨족은 왜 정(丁)자를 성으로 써왔는가?
동양역사에는 오랜 옛날 약 3000년 전 제(齊)태공의 아드님 급(伋)을 정(丁)땅에 식읍(食邑)을 봉하고 성을 내려주어 정(丁)이라 하여 그때부터 우리의 씨족의 성으로 써왔다고 한다. (食邑-임금이 일정한 땅을 봉하여 주고 그곳에서 나는 모든 소산으로 먹고살게 함)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 폭군(暴君) 주(紂:B.C 1110년)라는 임금을 정벌할 때부터이다.
그때 정후(丁候 - 丁씨 성을 가진 옛날 중국의 지방장관)가 무왕의 정벌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충신은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라는 철칙과 윤리를 지켰다.
즉, 아무리 나쁜 임금이라도 자기의 임금을 쳐 없앤다는 것은 찬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의 역사나 속담에는 "술의 불극 왈정"(述義 不克 曰丁 - 정씨들 앞에서는 의(義)를 논(論)하지 말라) 이라고 전하여지고 있다. 그 곧고 충성된 생각이 선사시대부터 흘러 내려온 우리의 혈통이라고 한다.
지금의 중국의 산동성에 있는 공자님의 출생지 곡부(曲阜) 부근에는 정씨들의 집성촌이 여섯 개의 툰(屯)이 있다. (툰 屯 - 우리나라 면(面)보다 좀 좁고 리(里)보다 넓은 땅)
중국에서는 우리 씨족을 제양당 정(丁)씨라고 한다. 제양당이란 우리의 본관에 해당하는 본적지다.
齊陽堂 - 중국의 산동성에 제남과 남양 두 곳)
지금의 산동성 제남과 곡부 부근에 정씨가 모여사는 마을
제남(齊南)부근 : 정앙둔(丁秧屯), 정가루(丁家樓), 정가홍순(丁家洪洵), 정가장(丁家場)
곡부(曲阜)부근 : 정리장(丁里長), 정관둔(丁官屯)
◇ 우리 성인 정(丁)자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남방 정자요' 하면 된다. 중국의 정(丁)땅 이름을 가진 곳이 중국 서울 남쪽이기 때문에 붙여졌고
즉, 남방 햇빛이 강렬하여서 천지만물, 삼라만상이 가장 왕성한 힘을 받는 곳이란 뜻이다.
방위로는 남방의 뜻 : 남(南)방정
글자의 뜻 : 성(盛)하다, 강(强)하다, 씩씩(健)하다
글자 읽기 : 남방 정, 장정 정, 성할 정, 씩씩할 정, 넷째천간 정
영문 표기 : JEONG으로 표기를 통일하였으면 한다.(押海丁氏靈昌大宗會)
◇ 시조 대양군 덕성(大陽君 德盛) 800~893
남양 대천리에서 서기800년 10월 13일 탄생. 학문을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깨달아 학문이 깊어질수록 옛 성현의 글을 열심히 읽어 한번 눈이 지나가면 잊어버리신 일이 없으셨고 기상과 인품이 뛰어나 모든 사람들의 우러러봄을 받고 자라셨다, 그리하여 당나라 헌종(憲宗) 원화(元和) 9년(814년) 대과(大科)에 등과(登科)하셨다.
그때 공의 나이는 15세였고 같은 해에 태자궁(太子宮 - 임금의 후계자가 될 왕자의 궁궐) 설서(說書 - 태자에게 경서나 도의를 가르치는 관직 장원 제자중 뽑음)을 지내시다가 평장사부(平章士府 - 정승들의 집무하는 곳 (우리나라 고려 때 문하부와 같은 곳.) 시랑(侍郞 - 각부의 차관)을 거쳐 집현전의 부사(副使 - 각부의 다음자리)가 되시고 해를 거듭함에 따라 대박사(大博士 - 중국에서는 우리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 제도를 두어 시전, 서전, 주역, 예기, 춘추를 강의하는 선생님)로 계실 때 회서(淮西)에서 오원제(吳元濟)가 난을 이르켜 국가가 심히 위태로운 때에 이소라는 장수와 더불어 이 난을 평정하였다.
그 공로로 대양군(大陽君)의 봉군(封君)과 동시에 식읍으로 700호를 받으시고 이어 승진 승진하여 무종(武宗)때에 대승상으로 임금의 은총과 세상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시다. 대승상으로 한 국가의 운명을 걸머진 채 충성을 다 바쳐 봉사하시던 중 군국사(軍國事)로 바른 생각을 임금님에게 직접 상소로 간하시다가 당선종(唐宣宗)의 노여움을 크게 사서 서기 853년 신라 문성왕(文聖王) 15년 신라땅에 20년을 기한으로 귀향을 오시게 되어 우리나라 서남쪽 바닷가인 압해도에 배를 매시니 그때 대양군의 연세가 54세였다.
그후 신라 헌안왕(신라 47대왕 836~861)이 몇번 서울로 오셔서 사시기를 청하였으나 대양군께서는 굳이 사양하시며
"본국에 죄를 지은 사람이 무슨 면목으로 그리 하오리까" 하시며 그대로 압해에 눌러 살으시다. 그후 20년이 지나 당나라 임금으로부터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라는 친서를 받았으나 늙은 나이를 이유로 사양하는 글을 임금께 올려 거절하시고 서기 893년 향년(享年) 94세로 세상을 뜨시다. 신안군 압해도 정승동에 모셔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우리의 정(丁)씨는 모두 이 분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손들이다.
新安郡 押海島
A. 大陽君墓 B .錦城君墓 C .義昌君墓 D. 追遠齊
◇ 집성촌
전북 고창군 대산면 해용리 전남 여천군 쌍봉면 웅천리 전남 무안군 무안읍 용월리
전남 무안군 일노면 산정리 전남 승주군 별량면 우산리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충남 서천군 마서면 남전리 충남 서천군 화양면 대하리 경남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
◇ 정(丁)씨의 본관은 원래 압해(押海)였다.
압해는 전라남도 무안군에 속해 있는 면 단위의 도서(島嶼)이다.
백제 때에는 아차산(阿次山) 군이었고, 통일신라 때는 산세가 바다를 압도한다는 뜻으로 압해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로 들어와서는 나주(羅州)의 속현(屬縣)이 되었다가 뒤에 한 때 영광군(靈光郡)에 예속되었고, 얼마 후에 다시 나주로 귀속되었다.
그 후 고려 말엽 이래로 왜구의 침략이 심해지자, 1409년 즉 조선 태종(太宗) 9년에 감사 윤향(尹向)이 도내 주읍(主邑)에 소속되어 있던 속현(屬縣)ㆍ향(鄕)ㆍ소(所)ㆍ 부곡(部曲)을 모두 폐지하여 소속 주읍으로 통폐합시켰다.
이 때 나주목 관내의 토착성씨들은 종전의 소지역적인 본관에서 나주라는 대 본관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압해정씨도 압해현이 나주로 폐합되면서부터 본관을 나주 또는 압해로 양용해 오다가,
영조(英祖) 시대에 와서는 압해가 폐읍이 되었다는 이유에서였던지 압해를 버리고 도리어 나주를 본관으로 삼아서 근자에까지 약 200여 년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압해를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인식이 새롭게 대두되어 압해정씨 (押海丁氏)로 통일하였다.
◇ 압해정씨 각 종친회 연락처
押海丁氏 大宗會 : 서울 종로구 낙원동 150-1 파고다빌딩304호 T. 02)3673-1554
押海丁氏 靈昌大宗會 : 영광군 영광읍 남천리 272 T. 061)353-1653
押海丁氏 光州,全南宗親會 : 광주 남구 월산1동 42-1 T. 062)381-3029
押海丁氏 靈光郡宗親會 : 영광군 영광읍 신하리 837-15 T. 061)353-0837
長山書院 관리사무소 : 영광군 군남면 도장리 T 061)351-1152
*押海丁氏대종회 http://www.aphaejeong.or.kr/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