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초보의 농사일지- 두 번째 모임, 4월 6일 일요일
오늘이 농사공부 두 번째 모임이다. 일 잘하고 밥 잘 먹고 돌아오는 길에 '아침'님이
농사일지를 써보잔다. 그러더니 나보고 써보란다.
‘농사’만 하더라도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데 그걸 ‘일지’로 쓰라니. 조금 전 까페에 들어가니
다행히 함께 쓰는 ‘농사일지’란다. 글쎄 ‘일지’까지는 몰라도 처음 맛보는 소중한 경험이다
[우리 논밭 가는길, 큰 아이의 연출된 사진]
내 고향은 함경북도 경성이고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러니까 나는 오갈 데 없는 '아스팔트
킨트'가 맞다. 이처럼 자라온 환경이나 배경 탓인지 농촌에 대한 정서나 이해는 거의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 수준이다. 무조건 위대하고 거룩하고 자기희생과 봉사로 점철된
조상님으로 여기는 거다. 흔히 시골이나 촌하면 떠오르는 외갓집 할머니의 푸근한 품이나 인자한
손처럼 살을 맞대는 현실감이 없는 거다. 그러면서 늘상 아이들한테 안되고 미안했다. 아이들이
떠올릴만한 고향의 아슴하고 아련한 가슴 밑바닥 정서, 그게 어떤건지 나도 모르는 고향의
부재(不在)감.
[허공님의 안정된 자세, 저 뒷 집 주인같지 않은가]
처음 구들장에서 농사공부 야그가 나왔을 때만 해도 나하고는 상관없는 얘기로 들렸다. 그냥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 정도라고 할까. 그런데 막상 일할 논과 밭이
생기고 일할 궁리가 생겨나면서 어느 순간 참 괜찮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농사공부’라고 하지만 수확에 대한 불안감이나 스트레스없이 무책임할 수 있고, 농사라는
빡신 노동일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 고된 노동에 대한 지겨움이나 원망도 비껴갈 수 있으니
단순히 농사의 과정을 직접 우리 손으로 해보고 우리 눈으로 지켜보는 즐거운 놀이의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체험이라고 말하기에도 송구한)
[우리의 풍성한 밥상을 위해 허공님이 금방 잡아온 두릅나물, 그 알싸한 향내]
그래서 첫모임에 이어 오늘도 아이들을 이끌고 나선 것인데, 그렇다고 나들이용 ‘랄라룰루’
마음은 아니었다. 첫모임 때는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우비에 장갑에 갈아입을 옷까지
마련하여 사전에 아이들에게 힘든 하루가 될 것처럼 약간은 비장한 모습을 비추기도 한 것인데.
오늘도 몸상태가 별로였다. 요즘 허리가 안 좋은데다 그 전날부터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어젯밤은 거의 잠을 못잤다. 제 엄마가 집안일로 빠지는 바람에 아이들도 빠질 눈치만 보는 것
같고, (우리 집에는 생일주간이란 게 있다. 뭐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게 아니고 생일 주간만큼은
거의 다른 가족들에게 군림한다. 그러니 작은 놈이 이를 핑계로 안가겠다고 한 것인데 밤에
독서실에 가서 전화로 꼬드겼다. 아픈 아빠 혼자 농사일 보내놓고 니 마음이 편하겠냐고.
오전에만 일하고 온다 하니 후딱 갔다 오자고)
[논 위에 있는 우리 밭에서 열심히 억새를 베어다 모으는 미래님과 태양님]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나름대로는 내 속의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번 모임 때
비 때문에 ‘툇마루’님 집안 농원에 놀러갔을 때의 느낌, 그 이와 오빠들이 주고받는 대화와 모습
속에서 흙과 나무와 농사가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어우러질 때 어떤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그 단면을 보았다고 할까. 그 때는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냥 새로 짓는 농사는 좀 미루고
여기 와서 농사공부해도 되겠다고. 어쨌든 쉬는 날이라고 나가봐야 남들 따라 벚꽃이니 매실꽃
구경에 은근하게 피어나는 산수유 그늘에서 왁자지껄 먹고 떠드는 일 밖에 더 있겠는가.
[찬돌님의 모습, 가장 낫다는 ㅋㅋ, 연출된 사진은 아니고 잔뜩 의식한]
오늘도 늦게 오는 사람을 기다리느라 아이들과 먼저 ‘우리’ 논밭에 도착했다. (세상에, ‘우리’
논밭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니) 아이들은 차 안에서 계속 자고 혼자 올라와서 봄기운에 몸을
내맡긴 채 아무 생각없이 편안하다. 자연에 취했을 리는 없을터, 그냥 그렇게 폼잡고 있어본 거다.
나 혼자 이 아침에 봄들녘에 서있어 본 게 얼마만인가. 그런 적이 제대로 있기는 있었던가. 그러니
이렇게 폼잡는 일 어찌 소소한 일이겠는가.
뒤이어 사람들이 연장과 막걸리와 환한 표정을 갖고 올라왔다. 어울린다. 그 때까지 차에서
디비자고 올라온 아이들이 다행히 ‘낫’을 알아본다. 아이들의 영웅인 ‘불멸의 이순신’에서 우리
수군들이 효과적인 전투도구로 쓰는 걸 보았단다.
낫이건 낫질이건 삽질이건, 논이건 밭이건 억새밭이건 직접 내 발 딛은 땅에서 무슨 짓이든 처음
해보는 그 ‘첫’의 경험. 그렇게 아이들과 ‘첫’ 농사공부의 동기가 되었다.
[우리에 갇힌 맹수, 한글이의 비교적 얌전한 모습]
논에 웃자란 잡풀을 걷어내고 바로 위 묵은 밭에서 억새며 잡초를 베어서 한 곳에 모아두고,
(나중에 모심기할 때 논에 같이 덮을 꺼라 한다) 논물을 대기 위하여 논둑을 따라 고랑을 내어
둑을 높이고 다져주는 일이 오늘 일의 대강이다.
이제 농부로서 제법 이력이 엿뵈는 약산님의 지도 아래, 에너지 사업의 박사 사장님이기보다
농부로서 자세가 훨씬 더 잘나오는 허공님, 늘상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삶에 대한 갚음이랄까
다른 이들보다 한 삽이라도 더 많이 뜨면서 누구보다 열심힌 태양님, 이제 캠코더를 들고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이 생활처럼 자연스레 보이는 ‘아침’님, 조용하고 차분하게 뒤에서 일거리와
필요한 도구를 준비하며 넉넉한 자리를 만들 줄 아는 미래님과 우리 모임의 마스코트 한글이.
더하여 고맙게 제 아빠를 에스코트해준, 태양을 피하고 싶다며 얼굴만 동그마니 내놓은 채 지들끼리
즐거운 우리 아이들까지 저수지 둑방에서의 맛있는 밥과 오렌지 막걸리와 돌아오는 길
월평초등학교 꽃그늘 아래서 조촐한 아이스크림 파티까지 즐겁고 환한 어느 봄날이었다.
[월평초등학교 정자 아래서, 양산의 5대 문파가 다 모였으니 아니 6대문판가
왼쪽부터 미래님, 아침님, 허공님, 태양님, 찬돌님, 약산님]
더하여 일지라고 하니 다음 모임은 3주 뒤인 4월 27일 일요일,
그 날은 우리 논에 조그만 하우스를 만들어 모내기용 모를 키우는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준비는 툇마루님의 조언을 구하여 미래님이 한다고 하셨던가.
참, 그러고 보니 우리 밭에도 서리태 콩을 심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건 어찌 물건너
간건지 알아보고 다시 전해올리겠슴다
끝으로 기록용 화보를 염두에 둔 사진이 아니고 아이들 놀이삼아 찍은 그림이어서
내용이 빈약합니다. 지송.^^
첫댓글 일지가 늦어서 죄송, 지난 밤에는 기침으로 목을 갈아끼울 뻔 했습니다.^^
목을 빼고 기다리던 후기가 드뎌... 찬돌님.. 무슨 대문호의 에세이글 같습니다. 턱수염이 너무 멋진데요.. 외모로 봤을 땐 찬돌님이 농사일에 가장 어울린다는... 퍼벅...... 암튼... 못간 이로서는 너무 부러운 한폭의 그림입니다. 다음에는 꼭 가야쥐..
찬돌님의 글솜씨를 이곳에 새로 발견하게 되네요 ㅎㅎ 농사일기 전문가로 새 출발을 하셔야겠습니다. 올려준 일기가 너무 재밋어 다음 농사모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면 .... 땅을 더 싸야 되나??
찬돌님 초보자 맞수? 낫으로 저렇게 가지런히 풀을 모아잡는 것은 상당히 익숙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폼이걸랑요?
찬돌님도 그렇지만 태양의 옆자리님도 보통 솜씨가 아녔어요~^^ 백미는 텅빈허공님~!! 당장 귀농 하셔도 되겠더만~^^ 오래된미래님도 밀짚모자가 꽤나 잘 어울리던데, 저만 백수였네요
아참, 서리태는 저희 집에 많습니다. 담 농사 때 제가 들고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