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구를 존경하는 사람으로서의 기대감
<대장 김창수는 치하포 사건 이후 인천감옥소를 배경으로 청년 김구를 그려낸 영화이다>
(SBS뉴스)
저는 김구를 존경합니다. 물론, 역사를 전공하다보니 김구의 과를 많이 보게 돼서 예전만큼의 맹목적인 존경심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죠. 하지만 저는 여전히 김구를 존경합니다. 그래서 김구의 젊은 시절을 그린 ‘대장 김창수’라는 영화를 무척 기대했습니다. 거기에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 조진웅이 김구를 연기한다니! 들뜬 기분으로 영화관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에 더해 당시에 전공수업 과제로 해방 이후의 김구와 이승만의 정치행보를 비교하는 리포트를 쓰고 있던 터라 ‘김구’라는 인간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이 가득했습니다. 학문이 아닌 영화로 접하는 청년 김구, 김창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그리고 19세기를 살아가던 김창수의 그 모습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저에게 어떤 감명을 줄 수 있을까요?
#2. 목불인견(目不忍見)은 아니지만 뭔가가 부족했다
우선, 재밌게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아! 안보고 싶다”, “재미없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우선 백범일지에서 김창수가 인천감옥소에 있을 때 죄인들의 글을 대필해줬다는 내용을 영화 속에 잘 녹여낸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김창수가 조금은 변화하는 모습, 즉 ‘김창수에서 서서히 김구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은 저에게 선뜻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백범 김구, 그도 어렸을 때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장난꾸러기였다>
(위키백과)
다만, 아쉬웠던 점은 김창수의 내적갈등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김창수는 김구로 성장하고 있지만, 이미 군자(君子)가 된 듯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백범일지에 등장하는 인천감옥소 안의 김창수가 평범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내적갈등들은 잘 살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아내가 몸이라도 팔아서 사식(私食)을 넣어줬으면 좋겠다는 못된 상상을 했던 인간 김창수는 영화에서 모든 고통을 묵묵히 인내하고 못 된 간수들과 일제에 항거하는 투사로서의 모습으로만 그려졌습니다. “실제로 김창수는 아내가 몸을 팔기를 바랐던 못된 놈이야!”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한 영웅으로서의 김구를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느끼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김창수가 영화에서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던 때는 오로지 사형 전 어머니가 보낸 수의를 보고 우는 장면과 형 집행 직전에 떨며 우는 그 때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는 전체적으로 김창수의 성장을 그리고 있으나, 그 과정을 그림에 있어서 “아!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영웅이기 전에, 사람으로 위인들을 보고 싶다
저는 우리들이 언제나 가슴 속으로 ‘영웅’을 찾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온갖 히어로물들이 인기를 얻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갑갑한 세상, 온갖 부정이 행해지는 이 세상을 영웅이 나타나 깨끗이 청소해주길 바라는 그런 생각을 내심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우리들의 소망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그 예전의 ‘우투리’부터 오늘날의 ‘블랙 펜서’까지 우리는 문학 또는 영화 속 영웅들에게 환호하고 찬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또 다시 그 대안으로 지금 존재하지는 않지만 ‘존재했던’ 그들을 찾습니다. 바로 역사 속 위인들이죠. 그래서 혹자들은 “정도전과 같은 정치인이 한 번 나타나야 한다!” 또 다른 혹자들은 “정조 같은 대통령이 한 번 나타나야 한다!”라고 말하며 옛 위인과 비슷한 혹은 똑같은 현실의 리더들을 갈망합니다.
이런 시각이 잘 못된 것은 아니지만 자칫 지독한 ‘영웅사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영웅’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수 엘리트들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생각되는 것이죠. 이러한 사고는 즉 역사 속 수 많은 민중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절름발이 역사관’으로 우리를 이끌 수도 있습니다. 논리의 비약이라고 느껴지시나요? 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순신을 생각하면서도 이순신과 함께 했던 수군들은 쉽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김좌진을 생각하면서도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독립군들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는 모두 우리가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영웅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접해왔기 때문입니다.
<북로군정서군, 제일 앞에 앉아있는 김좌진 장군 뒤로 이름 모를 독립군들이 보인다>
(조선Pub)
역사의 운동은 민중의 힘으로만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감한 민중들 속에는 훌륭한 리더, 즉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훌륭한 영웅들 곁에는 용감한 ‘민중’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웅과 민중 모두가 ‘사람’입니다. 가끔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느껴지는 영웅들도 있지만 사실은 모두가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마음만 먹으면 영웅과 같이 살 수 가 있습니다.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말이죠.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약자를 돕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영웅이 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울까요. 저는 그 출발을 영웅을 ‘사람’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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