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일요_김익영

[sunnysoup]

김익영

도예를 포함한 모든 예술의 본질은 전통과 창조라는 두 개념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창조를 하는 데 있다.

우리나라 현대미술에 있어서 도예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통사회에서 도예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서 훨씬 뒤떨어진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현대도예의 질적 수준은 다른 미술에 비해서 지극히 낮은 차원을 방황한다는 뜻도 된다.

그와 같은 도예의 저조한 원인을 찾는다면 우선 전통적인 생활양식이 무너지고

새로운 서구적인 생활양식으로 바뀌는 바람에 그의 수요를 충당하는 도자기도 바뀌어지고

또한 생활을 뒷받침하고 있던 미학도 교환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서는 한국도예의 전통의 중압이 너무나 무겁다는 것

즉 조상들이 이룩해 놓은 빛나는 업적에 눌리어서 기가 죽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전통에 따르자니 모방이 되기 때문에 무엇인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 채택된 것이 창작 도예라고 하는 국적불명의 도예들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한국의 현대도예는 방향을 모색하고 그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도예가 김익영은 그러한 무기력과 혼탁 속에서 한국 현대도예의 창조에 이바지하고 있는 능력있는 도예가의 한 사람이다.

도예가로서의 김익영은 기초작업부터 튼튼하게 다졌다.

서울공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뉴욕의 알프레드 대학원에서 도자를 연구하고 돌아와서는

국립박물관 미술과에서 몇 년간 실제 전통도예와의 대화를 하였던 것이다.

과학적인 바탕에다가 미학적인 실력을 덧붙이고 박물관에서 실물교육을 받은

도예가 김익영은 도예가로서의 바람직한 모든 과정을 밟은 셈이다.

따라서 그가 도예가로서의 작품을 발표하자 과연 문제를 일으키고,

그 문제는 한국현대도예의 핵심을 건드리는 기본적인 것이 되었던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국내외에서 개최된 그의 개인전에 대한 비평이 전반적으로 호평으로 끝나고

모든 비평의 방향이 외교적인 표현을 떠나서

현대도예의 본질과 한국현대 도예의 현주소를 알아보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도 수긍이 가는 일이다.
도예가 김익영의 작품세계를 이야기 할 적에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형태감과 조형미를 현대적인 생활개념과 그의 도예관을 잘 응용시킨 데 있다. 시

각적인 감흥과 다양한 기형의 변모는 단순한 처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무게있는 조형적 가치로 이끈다.
다음 색채의 순도는 주로 백색을 주조로 하면서 형성하는데 그 백색도 깊은 곳에서

발하는 빛을 머금고 있는 청백색의 세계이다.

해맑은 순도 높은 흰 유색은 겉으로부터 속까지 스며드는 맑은 감각의 승화를 경험시킨다.

방황하는 한국도예에 있어서 김익영같은 도예가를 가졌다는 것은 그 개인을 위해서보다도

전체 우리를 위해서 지극히 다행한 일이다.

김익영

도예가 김익영의 작품 세계는 조선 시대의 자기 공예라는 위대한 유산의 영향뿐 아니라,

아프리카 예술 및 루마니아의 조각가 콘스탄틴 브란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의 영향 역시 엿보인다.

조선 시대의 형식과 (아프리카의) 원시 미술과 (서구의) 모더니즘은,

재료의 본성과 제작 공정을 통합함으로써 도출된 단순성과 순수함을 그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갖는다.
여기 소개하는 김익영의 도자기 작품은 물레로 빚은 원통형의 점토 그릇을

자르고 붙이고 칼로 면을 깎아 내는 공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들을 잘라내 윤곽을 또렷이 하는 한편,

리드미컬한 손길의 질감을 잘 살려내었다.

 

 오각의 변주

 SUN

원의 시간을 담는 김익영의 그릇들

작성자   이건수

작성일   2002.07.10

소박하고 청아한 한국 고유의 정서를 담는 그릇들을 창조한 한국 현대도예의 1세대 작가. 전통과 현대가 지나침 없이 적절히 융화되어 우리 곁에 두고 싶은 도자기를 만들어 온 도예가 김익영. 이번 달 중순 중견화가들과 함께 도예와 그림과의 만남이 시도되는 도자기 그림전(가나아트센터) 준비로 바쁜 그를 늦여름 파주 우일요 작업실에서 만나보았다. 도자의 대중화를 위해 진실한 삶의 물레를 돌리고 있는 김익영의 육성을 들어 본다.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피천득의 <수필> 중에서 토전 김익영의 백자를 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읽었던 금아(琴兒) 선생의 글이 떠오른다. 어느덧 초조와 번잡 속에 빼앗겼던 마음의 여유를 되살리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溫雅優美)’한 수필의 색깔을 발견한다.

웅장한 소설 같지도 않고, 난해한 시 같지도 않고, 그저 담담한 형태와 빛깔로 우리의 마음과 동행하는 김익영의 도예는 한마디로 수필 같다. 우리의 삶과 유리됨 없이 우리의 삶 속에 놓여 있을 때 오히려 빛나는 예술, 그래서 우리들의 식탁과 주거 공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예술, 그것이 김익영이 지향하는 예술세계이다.

우리나라의 현대 도예의 시작은 대개 1960년 전후로 얘기된다. 그리고 그것은 김익영이 본격적인 도예작업을 시작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1950년대 중반 이후 현대도예의 폭풍으로 불리우는 추상표현주의 도예가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을 무렵 김익영은 세계 공예의 메카인 뉴욕 알프레드 요업대학원에 있었다. 그리고 ‘생활도예냐, 창작도예냐’ 하는 중대한 가름이 벌어졌던 그 순간 그 폭풍의 핵 속에서 그가 깨우친 도예의 길이란, 자유로운 서구식 표현 방법의 추구라기보다는 가장 근원적인 형상으로의 침잠, 더 구체적으로 말해 조선조의 유교적 이상주의로의 접근이었다.

“유학중인 1960년에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1887~1979)가 1주일간 도자기 심포지엄을 한적이 있는데 오프닝 강연에서 현대 도예가가 지향해야할 미의 세계는 조선 도자의 미적 세계라고 했을 때 나는 귀를 위심했습니다. ‘이 다이너스티(Yi-dynasty)’라니. 그 당시는 우리 책에도 고려청자만 나오던 시기였는데, 그때 받은 충격과 감동으로 영어로 된 우리 도자기 책을 구해 읽었고 우리 도자기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김익영은 화공과 과학도였는데 부친의 권유로 요업공학대학원에 진학했다가 그 당시 즐겨 본 일본 요업 학술지에 실린 도예작품들을 통해 도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도자기란 예술품이 흙·물·불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재료와 최첨단 물질과학이 결합한 산물임을 볼 때 일종의 원료학·재료학으로서 원료의 특성을 연구하는 요업공학을 전공한 그의 경험은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 할 수 있다. 게다가 귀국 후 국립박물관에서 3년간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그의 눈을 거쳐간 수많은 백자의 형태와 광채를 통해서 그는 한국미의 전형과 최고 수준의 미적 경지를 체험하게 된다.

평론가들은 한결같이 김익영이 요업의 과학적 본질을 깊이 이해한 후에 동서양 도자기를 섭렵함으로써 ‘가장 전통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도예언어를 획득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때문에 김익영의 작업에선, 지성의 눈으로 직시한 우리 이조미(李朝美) 속에 살고 있는 근대적인 감각(최순우), 자기(磁器) 개념을 도예의 개념으로 승격시키고, 생활 속에 필요한 공간 예술로서 그 존재를 확인시켜준 사회학자적 식견(이경성), 사기(沙器) 장인의 이상과 경지를 현대에 되살려보려는 의지(정양모) 등이 감지된다.

김익영은 1960년부터 40여년 동안 줄곧 조선백자의 전통에 바탕을 둔 우리 백자 창조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 동안 가마 온도의 차이와 산화·환원의 조합을 통해 몇몇 색들을 응용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역시 하얀 도자다. 그 빛깔 면에 있어서도 조선 초기의 회색빛, 중기의 유백색, 후기의 청색계열의 흰빛을 적재적소에 맞게 구사하면서 우리의 백색이 그냥 극단적인 백색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설백(雪白)·유백(乳白)·회백(灰白)의 미묘한 아름다움이 단순성·이지성·고귀성을 부여하며 빛난다.

“백자는 곤란한 재료입니다. 도자기 중 백자가 제일 어렵습니다. 기술적으로 최고 수준이 요구됩니다. 순도 높은 백자일수록 다루기 어렵습니다. 또한 백자 소지는 물레를 하고 변형해도 견딜 수 있는 소지이기도 한데, 나는 이 특성을 주목했습니다. 때문에 얼마만큼 이 소지가 변형을 자연스레 견뎌 낼 수 있는지가 나의 지속적인 관심사입니다.”
김익영의 초기 백자 작품들은 광주 효충동 조선 초기 제기(祭器)의 형태를 간략화하는 작업이었다. 그 후 불감이나 반합의 변형을 통해, 예리한 각선과 대담한 면처리로써 단순함과 엄격한 분위기를 내는 작품을 계속해왔고, 조선 후기 백자나 석간주호에서 보이는 면깎기를 통해 ‘깎은 감’ 같은 도자기를 만들어 왔다.

“국립박물관에서 3년간 공부를 통해서 흙에의, 자연에의 순응이라는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죠. 중국같이 완벽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인위적이지도 않은 그야말로 ‘스스로 태어난’, 태생적이고 자연적인 미의 세계, 흙과 순응하는 세계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조선조 도자기들은 가식이 없고 쓰임을 위해서, 물레에서 흙과 함께 저절로 나온 형태입니다. 거기에 민예미의 본질이 들어 있습니다.”

김익영의 도예가 지닌 우아한 아름다움은 그 빛깔도 빛깔이지만 그가 시도했던 원(구체)에서 각(사면체)으로의 전환에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을 통해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도예의 한계에서 벗어나 현대성과 세련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고운 선을 지닌 고려청자보다는 형태가 강하면서도 흙으로 표현해서 부드러운 맛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조선조 제기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제기는 원래 금속으로 된 것을 흙으로 적응시킨 것입니다. 경건한 인상을 주는 제기에서 독특한 형태미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현대적 작품에 비해 손색없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물레에서 만들어도 마지막으로는, 면을 가지는 사면체 형태로 발전시키는 것이 제 작업의 주된 테마가 되었습니다. 1965년 첫 개인전에 사면체 형태를 소개했습니다.”

김익영은 번조할 때 변형되기 쉬운 백자 벼루, 연적, 필통 등 각이 많은 문방구류 제작에 특히 능한데, 그 각면이 주는 준엄한 선의 아름다움은 기물(器物) 자체의 유용성을 초월하는 어떤 시대적 정신, 감수성 같은 미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그 선의 서늘함과 엄숙함 때문에 흙 본래의 맛을 상실한다는 지적도 있으나 오히려 그것이 흙의 특징을 극대화하고 증폭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특히 사각이 많은 문방구류는 변의 길이가 수축·팽창하는 과정에서 심한 변화를 일으켜 어려움이 많습니다. 더욱이 백자는 우리 문화가 최고로 무르익었을 때 완성된 것이기에 지금의 감성으로는 모사가 안 됩니다. 투박하게 면치기한 것일지라도 모사가 잘 안 됩니다.”

이렇듯 김익영의 선은 단지 면과 면이 만나 이루어진 서구식 해석의 선이 아니다. 그것은 우연과 필연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면들의 경계로 존재한다. 그 선은 현실(면)에 만족하지 않고 이상(선)을 추구한 동양인의 조형적 사유방식을 드러내는 특질인 것이다.

선으로 남는다는 것은 세속화·육화의 역행이다. 이상화·절대화된다는 것이다. 평면 위에서, 입체 위에서, 그 경계 위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공간과 형상을 잉태하는 절대적 미의 추구인 것이다. 이런 추구가 김익영의 선에는 들어 있다.

이렇듯 원에서 각으로 전환을 시도했던 김익영은 1978년부터 면이나 각에서 원으로 다시 전이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최근작에선 두가지 형태가 융합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쓸데없는 장식성을 없애고, 날카로운 선, 강한 면, 독특한 곡률이 조화를 이룬 그릇을 만든 것이다. 건강하고 정직한 형태를 기조로 하면서도 커다란 따뜻함이 그의 조형을 둘러싸고 있다.

물레 성형의 원 형태를 피하는 파격의 미

이처럼 김익영 백자의 고유한 형태와 빛깔 모두는 순수 자연주의·이상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그는 우선 형태적인 면에서 물레 성형의 원형태를 피하는 파격의 미를 추구한다. 그래서 항상 물레 성형 후 그가 마무리할 때면 오동통한 떡방망이나 늘씬한 조선부엌칼을 사용하여 두드리고 깎아낸다. 때문에 원형 그대로 남겨진 작품은 거의 드물고 망망이질 흔적이 남아있는, 마치 방짜 유기의 표면처럼 수많은 면으로 이루어진 원 형태이거나, 칼로 시원스레 깎은 과일처럼 면치기를 한 그릇, 마치 나무함지박 표면을 연상케 하듯 툭툭 끊어 마감한 질박하고 편안한 마티에르를 살린 기물이 대부분이다.

마치 금속이나 목재 표면을 대하는 듯하면서도, 그 재료와 서로 대화하듯 “어떤 멋부림없이” 흙의 속성에 맞춰 자연스레 질감을 변이시킨다. 그것도 다완이나 분청 같은 다소 거친 질감이 아니라 고도의 정제력을 요구하는 백자의 질료를 가지고서 말이다.

일본의 어느 비평가 말대로 그것은 “집에 가져 가서 쓰고 싶은 그릇들”이며, 잡고 있으면 내 몸과 따로 놀지 않고 그대로 손안에 감겨 버리는 , 좀더 과장해서 물아(物我)가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 잘생긴 아이의 살갗을 만지고 있는 느낌의 그릇들이다.

“면치기는 조선 기물의 특징입니다. 목기는 특히 재료와 공정을 드러내는 표면을 지니고 있는데 텍스처와 개념이 응용하기에 나쁘지 않았습니다. 변형을 위해 칼질을 하는데 그것은 필요없는 두께와 형태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원하는 형태의 정수를 얻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은 제거하는 겁니다. 쳐낸 뒤에는 자국을 부드럽게 느끼는 방향으로 가는데, 강한 가운데서도 부드러움을 조화시키려는 의도입니다.”

이때 우리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야나기 무네요시의 무작위 개념일 것이다. 야나기의 무작위는 소박함·자연스러움·무심함·자유로움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시대 지방에서 생산한 조잡한 질의 하품 도자기를 가리킨 표현으로서 우리 도자의 중심인 청자·백자의 차원 높은 절제미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바로 이 것이 김익영의 도예가 다른 도예작품들과 차별성을 갖는 지점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백자라는 매체의 고급한 이지주의에다 생명력 가득한 생활주의를 융화시킨, 그로 인해 건강한 민예적 성격의 소박미와 친근미를 상실하지 않는 특성을 나타낸다. 그래서 김익영의 도자기는 풍류를 아는 선비 스타일이다. 전통 분청사기가 무명옷을 입은 농부를 연상시킨다면, 김익영의 백자는 모시 두루마기를 걸친 사대부집 양반을 떠오르게 한다.

인간을 위한 신의 그릇

지난해 겨울 김익영은 회고전에 준하는 커다란 전시를 열었다. 그때 그는 크게 네 가지의 주제를 통해 자신의 작품 영역을 구분한 바 있다.

그는 일단 대접·화병·편병·항아리 등 우리 옛 그릇을 재해석하고 변형시킨 전통의 현대화 작업에 의미를 부여한다(그릇에의 경의). 그리고 조선조 제기를 응용하고 단순화한, 더 나아가 해체한 제기 시리즈(하늘에 드리는 제의), 뚜껑과 몸체가 하나가 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면서 ‘사이(間)’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합 시리즈(사이와 너머), 땅의 생명력과 근원적 형상을 세라믹으로 상징화한 오브제 시리즈(땅을 위한 신전)를 제시하면서 그가 도달한 형상의 군집을 보여 주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작업은 역시 전통 제기를 변형시킨, 위의 접시와 밑의 굽을 분리하고 더 나아가 기하학적·건축적·구성적 의도 아래 해체시킨 제기류이다. 마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건축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바닥 위에 ‘건립’되는 작은 그릇 속에 얼마나 무한한 공간이 열리고 담길 수 있는지를 재미있게 보여 준다. 그것은 몇 백년의 시공을 초월한 영원의 공간을 담는 집이요, 인간을 위한 신의 그릇이 된다. 따라서 그 위에 놓인 음식은 현세의 음식이 아니고 또다른 차원으로 승화된 천상의 양식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김익영의 그릇들을 총체적으로 정리해 본다면 그 주제들은 각각, 제기를 위주로 하는 하늘의 그릇(天), 흙의 혼이 거하는 땅의 그릇(地), 그리고 뚜껑과 몸체가 서 있는 인간의 형상을 표상하는 듯한, 그래서 문화적·역사적 과정을 통해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를 상징하는 듯한 합­그릇(人)으로 크게 나누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단순한 도자기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이고 자연적인 생성의 원리가 융화된 시대의 기념물이 되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속엔 우리 삶의 일상적이고 기초적인 체험을 부인하지 않는 실용주의적인 가치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미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는 단순미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그런 아름다움을 도자에도 적용시킨다면 편안하고 친근한 것이 아름다운 도자기입니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가까이에서 만져지고 쓰일 수 있는 그것이 도자의 참된 가치입니다.”

시대정신을 담는 진기(眞器)

요즘 김익영은 파주에 있는 프로덕션 공방 우일요(78년 설립)와 토전도자연구소(99년 설립)를 오가며, 예술과 일상, 순수미술과 공예와의 만남을 주선하기에 분주하다. 이번달 중순에 있을 전시에서는 10인의 유명화가들에게 그의 도자기를 캔버스 대용으로 빌려줄 예정이다. 일종의 도화(陶畵)전을 준비중인데 화가들의 개성에 맞는 기물들을 마련하느라 집들이 준비하는 안방마님처럼 분주하다. 그가 생활도자기를 만들어 온지도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문화상품의 유통망과 대량생산을 위한 시스템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공예의 대중화를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왜사기, 영국의 본차이나, 미국의 색도에 영토를 잃은 우리의 자존심을 되살리기엔 아직도 머나먼 길이 남아 있다.

“용(用)이라는 공예의 사회성이 중요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것을, 더 저렴하게 보급한다는 것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왔습니다. 작품의 상업화를 우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생활도구의 격을 높였다는 평도 듣곤 해서 보람을 느낍니다.”

김익영의 도자는 한마디로 말해 ‘현대적 가능성을 담고 있는 옛스런 그릇, 전통의 살로 빚어진 현대 공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시대의 정신을 담는 진기(眞器)로 남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그의 방식이 과거와 현재의 차이, 공예와 미술의 개념 몰이해, 도제 방식과 대학의 시스템 불화, 산업도자와 전승도자의 불신, 공리주의와 도덕주의의 대립이 심각한 우리 시대 공예의 상황 속에서 어떤 방향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그 가능성이 우리 전통에서 비롯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는 기물과 오브제가 서로 혼융되는 작품으로 발전하는 것이 현대도예가들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생활과 관계된 공예의 본질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도조는 조소과에서 하는 것이 옳습니다. 최근의 국제 도예전을 보면 오브제 공예가 현대 공예의 주류인것처럼 비쳐지고 있고, 많은 공방에서 물레를 쓰지 않는 오브제에 치중하고 있지만 도자에서 기물은 절대로 사라질 수 없습니다. 기물의 도자가 우선 확고히 서야 합니다. 속이 비어 그 어떤 세계라도 담을 수 있는 기물의 유익하고 고유한 속성을 작가로서 끝까지 지키며 작업할 겁니다.”

월간미술 2001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