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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樂民(장달수)
두 江․川이 합해지는 곳의 지명 어원(Ⅰ)
조강봉*
Ⅰ. 서 론
지명은 우리 선인들의 생활이 스며 있는 언어재이다. 지명을 살펴보면 그 어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일반인들은 쉽게 그 어원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변모된 것도 있다. 그러나 지명을 잘 살펴보면 그 어원을 밝힐 수 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지명을 연구하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지명이 언어라는 사실 때문에 주로 언어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어 왔지만, 한편으로는 지명이 주로 역사서에 많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역사학자에 의한 연구도 많았다. 그러나 지명은 어디까지나 언어재이므로 그 변화 또한 언어의 여러 규칙에 따를 것이므로 언어의 이론을 도외시한 연구는 어떤 면에서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므로 지명 연구는 가설을 설정하는 단계에서는 언어학의 이론을 존중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며 그 가설에 대한 논증에 있어서는 인접학문의 연구 성과에 힘입에 다양한 논거를 제시하여 논증하는 방법도 좋은 연구방법의 하나라 생각한다.
때문에 본 연구는 먼저 언어적인 고찰을 한 뒤에 해당 지명이 명명될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며 그 지명에 합당할 것으로 생각되는 유연성을 상정하고 이에 대한 인접학문의 성과에 힘입어 그 유연성을 뒷받침하는 논거를 제시하며 논의를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Ⅱ. 두 江․川이 합해지는 곳의 지명 어원
우리가 고대인들의 주거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하여 밝혀진 사실을 살펴보면 우리의 선인들은 대개 강변이나 냇가에 생활의 터전을 잡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선인들의 생활터전이 된 냇물에는 두 물줄기가 합류되는 곳도 있는데 그러한 지형은 지역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으므로 선인들은 두 냇물이 합류하는 곳이라는 뜻의 지명을 지어 불렀을 것인데 그런 곳의 지명을 지어 부를 때에는 아마도 ‘합강한다’는 의미의 고대어가 지명에 반영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 지명에 대하여 도수희(1995: 3-10)의 연구가 있는데 이는 매우 특별한 논문으로 지명의 어원을 해명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었으며 필자도 이 논문을 읽고 착상하여 본 연구를 착수하게 되었다.
삼국사지권 35에는 다음의 지명 예가 있다.
交河郡 本高句麗泉井口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권35>
위의 交河郡은 본래 高句麗의 泉井口縣인데 景德王이 交河로 改名하였다. 이곳은 현재 경기도 파주시 交河面 지역인데 이곳의 지리적 특징은 한강과 임진강이 교하면과 炭峴面 앞에서 합강하여 강화쪽으로 흘러 서해로 나가는 곳이다.
도수희(1995:3-10)는 위의 ‘交河․泉井口’의 지명에 대하여 삼국사기의 아래 1-4)의 자료를 제시하고 이를 아래와 같이 논증하였다.
1) 於乙買串 一云 泉井口 <권37>
2) 宜桑縣本辛爾縣一云朱烏村,泉州縣景德王改名新繁縣 <권34>
3) 井川郡 本高句麗泉井郡 景德王 改名 今湧州 <권35>
4) 交河郡 本高句麗泉井口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권35>
1)에서 “於乙 : 泉”이 대응하고, 2)에서 “泉 : 宜”이 대응하고, 3)에서 “井 : 泉”이 대응하고, 4)에서 ‘交 : 泉’이 대응함을 볼 수 있기 때문에 “於乙=泉=交=宜”와 같은 등식을 이룬다 하였으며, ‘宜’의 옛새김은 <광주천자문, 유합> 등에서 ‘맛당, 맛’으로 달려 있지만, 大東急本千字文만은 ‘열을’로 달려 있으므로 ‘열’이 ‘宜’의 옛새김이라 하였다. 또 交의 새김은 여러 문헌에서 ‘사괼교(交)’<字會下 7, 類合上 3, 천자문 16>로 나타나는데, 양주동(1947:142)은 ‘交’의 옛새김을 ‘어울’이라 하였지만, ‘交’와 동일한 새김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는 ‘嫁(얼일가), 嬌(얼울교), 娶(어를취), 媚(얼울미) 등이 모두 ‘얼다’를 기본형으로 한 변화형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宜’의 새김은 ‘얼’이라 하였다. 그리고 고문헌에 ‘交’의 새김이 ‘交配하다’, ‘交合하다’의 뜻으로 ‘어러, 어리’가 쓰인 예가 있고, ‘얼우, 얼우넷늘근婆羅門히’, ‘얼우니며져므니며’ 등에서 ‘얼우-’는 長子, 尊者의 뜻으로도 쓰이는 점, 또 ‘얼운(>어른)이 ’交合한 사람, 즉 ‘장가들거나 시집간 사람’의 뜻으로 쓰이는 점으로 보아 모두 ‘얼’(交)이라 하였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지명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合江
두 강물이 합하여 하나의 강물로 합쳐 흐르는 것을 合江이라 하고, 이런 곳의 지명으로 ‘合江’이라는 어사가 쓰이고 있다. 아래에 그러한 지명예를 한국지명총람 에서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1) 합강-리(合江里) [합강,합강정]【리】<강원-인제-인제>.
본래 인제군 동면의 지역으로서, 내린천과 소양강이 합하는 곳이 되므로 합강이라 하고, 또는 합강정의 이름을 따서 합강정이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합강리라 함.
2) 합강-리(合江里)[아림촌,아름촌,합강]【리】<경북-청송-진보>.
본래 진보군 하리면의 지역으로서, 여러 물이 합하므로 아림촌, 아름촌, 또는 합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율리동 일부를 병합하여 합강동(리)이라 해서 청송군 진보면에 편입
3) 합강-리(合江里)[합강,도리산]【리】<전남-곡성-옥과>.
본래 옥과군 수대곡면의 지역으로서 섬진강과 옥과천이 마을 앞에서 합하므로 합강이라 하며, 또는 앞 들가운데 동그란 작은 산이 있으므로 도리미산이라고 하였다.
4) 합강-정(合江亭)【산】<경북-상주-중동-우물>.
우무실 남쪽에 있는 산. 위천과 낙동강의 합류 지점이 됨.
5) 합-강(合江)【마을】<경북-안동-도산-온혜>.
고계정 남쪽에 있는 마을. 앞에서 두 내가 합함.
2. 合水
‘合江’과 비슷한 지명으로 두 물줄기가 합해지는 지역에 붙여진 지명으로 ‘合水’라는 지명도 있다. 아래에 그러한 지명 예를 한국지명총람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합수-나루[합수진, 합수머리]【나루】<충북-충주-칠금동>.
탄금대 서쪽 밑에 있는 나루터. 북쪽에서 흘러 오는 한강 본류와 서쪽에서 흘러 오는 달천이 합수하는 목이 됨.
2) 합수천(合水川)【내】<경기-연천-산천>.
중면마거리 북쪽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서 합수리를 지나 삼곶리에서 임진강(경기도 산천)으로 들어감.
3) 합수머리【들】<강원-춘천-현암동>.→ 아울치.
4) 합수머리[합수, 용두산합수]【내】<경북-안동-임하-신덕>.
용두산으로 흐름. 길안천과 반변천(경북 산천)이 합함.
3. ‘幷川’과 ‘竝川’
‘合江’과 ‘合水’ 이외에 두 냇물이 합하여 하나의 냇물이 되는 지명으로 ‘幷川’과 ‘竝川’이 있다. ‘幷川’과 ‘竝川’이란 뜻은 무엇일까? 우선 ‘幷川․竝川’에 쓰인 한자의 뜻을 찾아보면,
幷 : 아올병(유합, 신증유합, 광주판 천자문)
竝 : 병(칠장사본 유합), 곧올병(영장사본 유합)
올병(신증유합, 대부분의 천자문)
이라 하여 ‘幷’은 ‘아올’이라 하였고, ‘竝’은 ‘올’이라 하였다.
‘幷’의 뜻 ‘아올’은 ‘아올다’의 활용형으로 ‘아오-’로도 줄여 쓰이는 말로 ‘아올다>아울다>아우르다’로 변형되어 쓰이는 어휘이다. 현대어 ‘아울러’는 ‘아오로’가 그 옛말이고 ‘아올’(幷)은 ‘合’의 뜻 이외에 ‘兼’의 뜻으로도 쓰이는 말이다. 이에 대한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아오-(줄) : 兼爲亡兒야〔兼은 아올 씨라〕<월석 서:18>
아올다(움) : (옛) 아우르다. [참고] 아오-, 아오로, 어울다, 조치다
‘竝’의 뜻 ‘올’은 ‘다’에서 나온 말로 훈민정음 ‘例義’에 나오는 ‘竝書’라는 구절은 ‘쓰면’으로 언해되었으며, 이는 ‘+>>올’로 변형되었을 것이며, ‘나란히’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 말은 ‘가운데’와 ‘半’의 뜻도 있는데 ‘仲秋節’을 ‘가>가외>가위’라 하며, ‘한 말 반’을 ‘말가옷’, ‘한 되 반’을 ‘되가옷’이라 쓰고 있다. 그런데 ‘竝’의 뜻으로 ‘아우르다’에 대한 쓰임은 천자문, 유합, 훈몽자회 등에는 그 쓰임이 나타나지 않는다.
또 장삼식 편 대한한사전에서 ‘幷’과 ‘竝’의 음훈을 찾아보면,
幷 : 아우를 병. ex. 合倂
竝 : ① 나란히설 병. ex. 竝立. 나란히할 병. ex. 竝肩.
② 나란히 병. ex. 竝行.
③ 아우를 병. ex. 竝合(倂合)
이라 하여 ‘幷’과 ‘竝’은 다 함께 ‘아우르다’라는 뜻을 갖지만 ‘竝’은 주로 ‘나란히’의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그러면 ‘아우르다’는 어떤 의미의 어사일까? 이 어휘를 좀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1990) 에서 그 풀이를 옮겨적으면 다음과 같다.
ㄱ. 아우르다(움)(남)(르벗) : ① 몇몇을 모아 한 덩어리나 한 판을 이루다.② 윷놀이에서 두 바리 이상을 한데 합치다.(큰)어우르다――(제)(르벗)=성교하다. (큰)어우르다.
ㄴ. 아우러지다(움)(남)(르벗) : ① 몇몇이 한 덩어리나 한 판을 이루게 되다. (큰)어우러지다. (한)아울리다.
――(제)(르벗)=성교하다. (큰)어우르다.
ㄷ. 아울리다(움)(제) : ① 아울러지다. (큰)어울리다. ② 한데 섞이어 자연스럽게 보이다. (큰)어울리다.
ㄹ. 아울러(어) : 한데 합치어. 또는 그것과 함께.
위에서 ‘아우르다’는 ‘여럿을 한데 모아 합치다’라는 뜻이고, ‘어우르다’는 이보다 어감이 큰말이라 하였다. 또 ‘아우러지다’는 “몇몇이 한 덩어리나 한 판을 이루게 되다”의 뜻이며 ‘어우러지다’는 이보다 어감이 큰말이라 하였다. 그리고 ‘아울리다’는 동의어이며, ‘아울러’는 파생부사이다.
한편 훈민정음 ‘例義’에 ‘合用卽竝書’와 ‘凡字合而成音’이란 구절이 있는데 「훈민정음」 언해본에서 ‘合用卽竝書’는 ‘어울워디면 쓰라’로, ‘凡字合而成音’은 ‘믈읫 字ㅣ모로매 어우러 소리 이니’로 언해되었으니 ‘合’은 ‘어울다’로 번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옛 문헌에 ‘아올다’<유합, 천자문>와 ‘어울다’<훈민정음>는 모두 ‘合’의 뜻으로 쓰이고 있으며 이들은 오늘날 ‘아우르다’와 ‘어우르다’로 쓰이고 있다.
양주동(1965:797)은 ‘完․全’의 훈을 ‘오’이라 하였으며, 또한
‘오’이 ‘合’의 훈 ‘어울’, ‘竝’의 훈 ‘아울’ 내지 ‘娶․嫁’의 훈 ‘얼’, ‘氷․凝’ 등과 모두 同根異枝임은 旣註. ‘오, 아울’ 등의 원형은 ‘오, 아’로서 ‘ㅂ--ㅇ’형 音轉
이라 하여 ‘오’과 ‘어울’, ‘아울’은 한뿌리에서 나온 어사라 하였으며, ‘오’과 ‘아울’의 원형은 ‘오’, ‘아’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아올다’<유합,천자문>와 ‘어울다’<훈민정음>와 ‘얼’의 관계는 무엇일까 이는 더 논의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므로 후고를 기다리기로 하겠다.
아무튼 ‘幷川’과 ‘竝川’은 ‘두 냇물이 하나의 냇물로 합해지는 곳’을 지칭하는 지명임을 알 수 있는데, 아래에 그러한 지명 예를 한국지명총람에서 찾아 적으면 다음과 같다.
1) 並川 : 현 남 11리에 있다. 義興縣의 南川 및 부결현의 남천이 합쳐서 하나의 개울이 된 것이므로 붙은 이름이다. 현 서쪽을 지나 북쪽으로 가니 比安縣의 남천이 된다. <승람권 25. 경상도 군위군 산천조>
2) 병천(幷川)【내】<경기도-산천>. 양평군 단월면 명성리 통골산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흘러서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고, 강원도 홍천군 서면 중방리에 이르러 산대천을 합해 가지고, 북쪽으로 꺾여 흘러서 모곡리에 이르러 홍천강으로 들어감.
3) 並川 [천수천]【내】<충남-산천>. 천원군 북면 운룡리 목고개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북면 중심부를 뚫고 북면, 성남면, 병천면 경계에 이르러 목천천을 합하여 병천면 병천리 앞에서 갈전천을 합하여, 수신면 장산리에서 서쪽에서 흘러오는 승천천을 합하고, 충북 청원군 옥산면 장남리에 이르러 화청천을 합하여 천수천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서 같은 군 강외면 궁평리에서 미호천으로 들어감.
4) 並川里[구계, 아오내, 아내, 아내장터, 병천]【리】<충남-천원-병천>. 본래 목천군 근동면의 지역으로서 잣밭내와 치랏내(충남-천원)가 합하는 곳이며, 이곳에 장이 서므로 아오내, 줄이어 아내 또는 병천이라 하며, 또 목천 지방의 아홉 내가 한데 합한다는 뜻에서 구계라 하기도 하는데, 1914년 갈전면을 병천면으로 고침.
위의 1)-4)는 모두 두 물줄기가 합해지는 곳의 지명이다. 2)의 병천(幷川)은 명성천이 중방대천에 합해지고 산대천을 합하여 홍천에 들어가는 내를 말하는데 일명 중대방천이라 한다. 3)은 竝川川에 목천천과 갈전천 승천천, 화청천을 합하여 미호천에 합수될 때까지의 냇물의 이름이다. 4)의 병천면은 천원군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지금은 천안시에 속한다. 병천면 소재지는 병천리 지역에 있고 소재지에서 산방천과 병천천이 합해진다. 그러므로 이곳 지명을 竝川이라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4. 아우라지
그런데 ‘두 물줄기가 하나로 합해지는 곳’의 지명으로 合江과 合水, 竝川․幷川이 하는데 이를 고유어로는 ‘아우라지’라 한다.
‘幷川․竝川’의 지명에서 ‘幷․竝’은 위에서 ‘여럿을 한데 모아 합치다’라는 뜻이라 했는데 이는 ‘아올’(유합, 신증유합, 천자문)에서 ‘아울다>아우르다’에 접미사 ‘아지’가 붙어서 생긴 지명일 것이다. 이러한 지명 예를 한국지명총람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아우라지【마을】<경기-연천-전곡-신답>. 쇠춘 동남쪽에 있는 마을. 영평천과 한탄강의 물이 아울러짐.
2) 아우라지[합수]【내】<강원-철원-서-도창>.한탄강, 남대천이 합류하는 곳.
3) 아오라지[아호동]【마을】<강원-홍천-두촌-철정>. 북창 동쪽에 있는 마을. 내촌면 화상대리 쪽에서 흘러오는 냇물이 마을 앞 냇물과 합함.
4) 아우라치[병천]【마을】<강원-홍천-서-중방대> 중방터 남쪽에 있는 마을. 마을 앞에서 굴업리 물과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고북리에서 오는 물이 합수됨.
5) 아우라지【내】<강원-철원-동송-장흥>. 한탄강과 앞개울이 합류하는 곳.
1)은 영평천과 한탄강이 합수되는 곳에 있는 마을 이름이고, 2)의 도창리는 지금은 행정구역이 바뀌어 김화읍에 속하며 남대천이 한탄강에 합수되는 곳이다. 4)는 홍천군 서면 중대방리의 ‘아우랏치’ 마을에서 양평군 단월면의 산음천이 중방천에 합수되는 곳이고, 5)는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에서 대교천이 한탄강에 합류하는 곳이다. 이 모두는 두 냇물이 합수되는 곳에 붙여진 지명이다.
5. 아울치
위의 ‘아울치’도 ‘아올>아울’로 변형된 말로 ‘아울+지’로 분석되며, 접미사 ‘지’가 ‘치’로 격음화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1) 아울치[합수머리]【들】<강원-춘천-현암동>. 두 개울이 합치는 곳에 있는 들.
1)의 ‘아울치’는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춘천시 서면 현암동에 있는 들이름이다. 이곳 춘천시에는 남북으로 북한강이 흐르는데 이 강은 시의 서편에서 소양강과 합수되며 의암호를 이룬다. 이 의암호의 서쪽인 西面 현암리에 ‘아울치’가 있다. 따라서 ‘아울치’는 예전 의암호가 생기기 이전에 두 강이 합수되는 곳이었기에 명명된 지명으로 생각된다.
6. 아우내
1) 아우내중고등학교(학교) <충남-천안-병천-도원>
위의 ‘아우내’는 병천면, 병천리, 병천마을에 공통으로 쓰인 병천(竝川)의 고유어 지명이다. 즉 ‘아우내’는 ‘아올>아울’의 ‘아울+내’에서 ‘ㄹ’이 ‘ㄴ’ 앞에서 탈락하여 생긴 지명일 것이다.
7. 아오내, 아오실
1) 아오-내【마을】<충남-천원군-병천면-병천리>.
2) 아오-실[아오곡]【마을】<경기도-양평군-옥천면-아신리>.
곤일 남쪽에 있는 마을.
3) 빙고-골(氷庫-)[빙곡]【마을】<경기-양평군-옥천면-아신리>
아오실 남동쪽에 있는 마을. 빙고가 있었음.
위의 ‘아오내’는 ‘幷川’의 고유어 지명이다. ‘幷’은 훈이 ‘아올’<유합, 신증유합>이므로, ‘아오내’는 ‘아올+내’였는데 ‘ㄹ’이 ‘ㄴ’ 앞에서 탈락하여 ‘아오내’가 되었을 것이며, ‘아오실’도 ‘아올+실>아오실’로 역시 ‘ㅅ’ 앞에서 ‘ㄹ’이 탈락하여 생긴 지명일 것이다. 또한 2)의 ‘아오실’에는 3)과 같이 ‘氷庫’가 있다 하나 ‘氷’은 훈이 ‘어름’<훈몽>이므로 이 지명도 두 냇물이 합류하는 곳을 유연성으로 하는 고대어 ‘얼’이 지명에 고착된 결과라 생각한다.
8. 아옵골
1) 아옵-골【골】<강원-영월-수주-무릉>. 명마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골짜기가 아홉 개 된다 함.
위의 ‘아옵골’은 명마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하는데 이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이 주천강에 합류된다. 따라서 ‘아옵골’은 ‘아올골’을 ‘아홉’(九)으로 잘못 인식하여 ‘아옵골’로 불리게 된 지명으로 생각되며, 실제 이곳은 아홉개의 지류가 합수되는 곳은 아니다. 참고로 주천강의 상류는 서만이강이고 이 강은 이곳 설귀산과 무릉리를 감돌아 주천면 지역을 흐르므로 주천강이라 불리고 있으며, 서면에 들어가면서 서강이라 불리고 있다. 이 西江은 영월읍에서 東江과 합강되어 남한강이 된다.
9. 아내
1) 아내미【마을】<전남-해남-화원-장춘>. 이목 남쪽 마을.
2) 아-내【마을】충청남도-천원군-병천면-병천리→병천리.
3) 아냇벌[병천평]【들】<충남-천원-수신-장산>. 질꾸마루 북쪽에 있는 소. 현재 논이 됨.
4) 아내-산【산】강원도-춘천시-산천-→ 안마산.
1)-3)의 ‘아내’는 ‘아올+내>아오내’ 또는 ‘아올+내>아우내’로 먼저 ‘ㄹ’이 탈락한 후 다시 ‘오’나 ‘우’가 탈락하여 생긴 지명으로 생각된다. 2)와 3)의 ‘아내’가 ‘竝川’이라 불리는 것처럼 ‘아내’는 두 물줄기가 합하는 곳에 붙여진 지명이며 ‘아울+내>아우내>아내’로 줄여진 지명일 것이다. 1)의 ‘아내미’ 마을도 두 물줄기가 합해지는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에는 현재 개초저수지가 있지만 <5만분의 1지도>에는 저수지는 없고 여러 골짜기의 물이 합수되는 늪지대이다. 2)-3)의 지명 예도 마찬가지이다. 4)는 강원도 춘천시의 동남쪽인 퇴계동과 신동면 정족리(鼎足里) 경계에에 있는 鞍馬山으로 일명 ‘아내산, 아나산, 안화산’이며 춘천시내에서 유일하게 큰 산이다. 춘천시 서편에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되는 곳이니, 이 산명은 춘천의 이러한 지리적 특징을 반영한 ‘合’의 의미를 갖는 고대어 ‘얼’이 ‘알․올’ 등으로 변해 ‘알+내+산>아내산’ 그리고 ‘안마산’으로까지 부르게 되지 않았을까 한다.
10. 아으내
1) 아으네밋-골【골】<전남-해남군-해남읍-안동리> 노리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2) 아으내-골【마을】<강원-영월군-남면-팔괴리>. 오그라니 아래에 있는 마을.
위의 ‘아으내’도 ‘아올>아울’에서 ‘아울+내’가 ‘아우내’로 ‘ㄹ’이 탈락하고 다시 ‘아우내’가 ‘아으내’로 변음되어 생긴 지명으로 생각한다. 1)의 ‘아으내밋-골’은 해남읍 안동리에 있는 지명인데 안동마을은 조그만 냇물이 합수되는 곳이다. 때문에 이 마을 이름은 두 냇물이 합수되는 곳에 명명되는 ‘交․合’의 의미인 ‘얼’이라는 고대어가 반영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2)의 ’아으내골‘도 강원도 영월읍소재지 남쪽에서 동강과 서강이 합수되는 곳인데, 이 합수되는 지점의 남쪽에 ’오그라니‘ 마을이 있으니 이 ’오그라니‘라는 지명도 고대어 ‘올’이 반영된 지명으로 생각된다.
11. 아리, 아름
1) 합강-리(合江里) [아림촌, 아름촌, 합강]【리】<경상북도-청송군-진보면>. 본래 진보군 하리면의 지역으로서, 여러 물이 합하므로 아림촌, 아름촌, 또는 합강이라 하였는데, 1914년에 율리동 일부를 병합하여 청송군 진보면에 편입함.
위의 1)의 합강리는 두 강물이 합수하기 때문에 合江이라 명명되었을 것이며 異稱으로 ‘아림촌’, ‘아름촌’이라 불릴 것이다. 이렇게 合江과 대응하여 불리고 있는 ‘아림촌’, ‘아름촌’은 ‘合’의 훈 어울’, ‘並’의 훈 ‘아울’에서 ‘알’이 되고 이에 접미사 ‘이’와 ‘음’이 붙어 ‘아리․아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12. 宜寧
宜寧郡은 경남 진주와 함안의 북쪽에 위치하는 고장으로 본래 신라의 장함현(獐含縣)이었는데 경덕왕이 宜寧으로 고쳤으며, 공양왕(1390) 때 신번현(新蘩縣)을 병합하였다. 당시 장함현(獐含縣)의 치소는 칠곡면 내조리에, 신번현(新蘩縣)의 치소는 부림면 신반리에 있었다 한다. 통일신라 때 경덕왕이 獐岩縣을 宜寧縣으로 개명하였으며, 의령읍지에서는 治所를 豊德으로 옮겼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시기에 대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현재의 치소는 풍덕지역인데 그 후 1916년에 풍덕면은 의령면으로 개명되었다.
1) 宜寧縣 : 본래 신라의 장함현(獐含縣)이다.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함안군에 예속시켰다. 고려 현종이 진주에 이속시켰고 공민왕이 감무를 두었다. 본조에서는 그대로 두었다가 그 두에 현감으로 고쳤다. <승람 권 31. 경상도 의령 현 건치연혁조>
2) 의령-천(宜寧川)【내】<경남-의령-산천>. 칠곡면 산북리 서쪽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산남저수지를 이루고, 외조리를 지나 도산리에 이르러서, 내조리에서 오는 물을 합하여, 신포리와 가례 앞에 이르러, 갑을리에서 발원하여 흘러오는 물을 합하여, 의령읍을 지나, 정암리와 용덕면 정동리를 거쳐 남강으로 들어감.
3) 獐含․宜春․宜山 <승람 권31. 경상도 의령현 군명조>
현재 의령군 칠곡면 소재지는 도산리에 있다. 이곳에 있는 ‘中․高等學校’의 교명에 옛군명인 ‘宜春’이란 어휘가 쓰이고 있음을 볼 때 도산리는 의령현의 옛 치소가 있었다는 내조리와 이웃한 곳이며 또한 천황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칠곡면 산북리에서 흘러내리는 의령천이 합수되었다가 다시 도산리와 가례면의 경계에서 합수되는 곳이기 때문에 두 물줄기가 합류되는 곳을 일컫는 ‘얼’을 차자 표기한 ‘宜’라는 지명이 생겼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이곳에는 ‘立岩’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이는 ‘선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돌’은 옛날 고대인들이 수익지역을 표시하거나 자기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이방인으로 인한 질병의 전파를 막기 위한 출입통제의 역할로 세웠던 거석문화의 일종이다. 따라서 이곳에 선돌이 있었다는 것은 이 지역이 오래 전부터 어떤 고대인 집단의 거주지었음을 짐작케 하며 때문에 이곳이 장암현의 치소라는 설을 뒷받침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도수희(1995)는 ‘宜’를 ‘ər’(얼)로 읽었고 그 의미는 ‘交․泉’과 관련된다 하였다. 獐含縣은 신라 경덕왕 때 宜寧縣으로 바뀌었다. 그 치소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칠곡면 도산리․내조리 지역에서 의령읍 지역으로 옮겨졌다 한다. 그런데 郡名은 옮겨진 治所의 지역명에 따라 개명되지 아니하였다. 옮겨진 治所의 지역명인 豊德을 그대로 두고 郡名만 ‘宜寧’으로 바뀌어졌다. ‘獐岩’의 異稱인 ‘宜山’과 ‘宜春’ 등에서 볼 수 있는 ‘宜’자가 군명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으니, 獐‘과 ’宜‘는 어떻게든 서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宜’는 ‘얼’로 읽히고 ‘交․泉․井․宜․於乙’ 등도 ‘얼’로 읽힐 수 있으니 새로운 治所가 지리적으로 두 냇물이 합수(합류)되는 지점에 있으므로, 이전의 治所와 동일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宜寧’이라는 이름이 계속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宜寧郡’의 현재 소재지를 지금은 의령읍으로 부르고 있지만 1914년 이전에는 豊德面으로 불렀다. 현재의 宜寧郡 소재지는 지리적으로 宜寧川이 南江에 합류되는 지점이다. 이곳에는 鼎岩津․井岩津이 있는데 현 동남쪽 9리 지점이라 하였으며, 강물 복판에 솥(鼎:솥정)같은 바위가 있으므로 명명되었다 한다.
4) 鼎巖津 : 현 동남쪽 9리 지점에 있으며 진주 남강의 하류이다. 물 복판에 솥같은 바위가 있으므로 이름이 되었다. 동쪽으로 岐音江에 흘러든다. <승람 권 31. 경상 의령현 산천조>
5) 井岩津 : 동남으로 9리인 함안 경계인 대로에 있는데 강 가운데에 바위가 있으며 그 모습이 마치 솥 위에 겹겹이 쌓인 바위 같다. <대동지지. 경상도 의령현 진도조>
그런데 이 鼎巖津․井岩津은 우물곡부곡(亏勿谷部曲)과 혼동될 소지가 있다. 동일한 장소의 이름을 ‘鼎’과 ‘井’으로 다르게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령문화원장(허백영)에 의하면 현재 鼎巖津에는 솥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한다. 그리고 鼎巖津에서 북쪽으로 5리쯤인 용덕면 井洞里에는 큰 샘이 있는데 이곳은 옛날 亏勿谷部曲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亏勿谷部曲 : 在縣東十里. <승람 권 31. 경상도 의령현 고적조>
그런데 <5만분의 1 지도>를 보면 鼎岩리에는 마을이 표시되고 있지만 井洞里에는 마을이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고 있다. 때문에 井洞里에 亏勿谷部曲이 있었다는 주장에는 의문이 생긴다. 鄕․部曲은 통일신라나 그 이전에 형성된 제도로 郡․縣의 하부 지방행정조직으로 주로 농업과 또는 특정지목의 토지를 경작하는 역을 부담하는 존재, 그리고 그 지역의 특수한 토산품을 생산하며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군대의 역할을 담당했던 존재라는 역사적 사실을 감안해 본다면 옛부터 이곳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며, 부곡제는 조선시대에 와서 쇠퇴하였지만 마을만은 존재하였을 것이므로 반드시 지도상에 표시되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亏勿谷部曲이 있었던 곳은 井洞里보다 鼎岩里가 더 적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왜 하필 鼎巖津과 井岩津의 두 가지로 표기되었을까? 그것은 ‘솥’을 표기한 ‘鼎’자와 ‘우물’을 표기한 ‘井’자가 음이 서로 같은 데서 원인이 있을 것이다. 鼎巖津과 井岩津이라는 두 지명이 5)-6)에서 모두 솥을 유연성으로 하여 명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井岩津’의 유연성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즉 鼎巖津의 ‘솥처럼 생긴 바위’라는 유연성은 자연스럽지만, 井岩津은 5)에서 ‘솥위에 겹겹이 쌓인 바위’로 인하여 명명되었다 하였으니 우물(井)명이라는 점에서 그 유연성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러므로 鼎巖津이 원래의 지명이고, 井岩津은 이곳이 ‘亏勿谷部曲’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우물’을 뜻하는 한자인 ‘井’과 음이 같기 때문에 ‘鼎’을 ‘井’으로 바꾸어 표기하게 되어 생긴 지명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宜寧’이라는 지명이 ‘鼎巖’에서 나왔을까? 그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본래 ‘鼎巖津’이란 지명은 ‘솥바위’(鼎巖)가 있었기 때문에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亏勿谷部曲’도 있었을 것이다. ‘亏勿谷部曲’의 ‘亏勿’이 중세국어의 ‘’과 이어지는 어휘이므로 이런 영향으로 ‘鼎巖’이 ‘井岩’으로 바뀌게 되었을 것이며, 때문에 ‘井岩’이라는 지명도 생겼을 것이다. ‘井岩’은 ‘우물바위’라 풀이할 수 있는데 이는 지명의 전부요소 ‘우물’과 지명의 후부요소 ‘바위’의 합성어로는, ‘우물’이 ‘바위’를 한정하며 합성된 지명으로는 그 의미의 연결면에서 매우 어색한 지명어이다. 때문에 이 지명의 두 요소 중 하나는 무엇인가 다른 어사의 변개가 아닐까 한다.
한편 경상도 의령현 속현조에는 新繁縣이란 縣名이 있다. 新繁縣은 현 동북쪽 60리 지점에 있다. 이는 본래 신라 辛尒縣인데 일명 朱琴村․泉川縣이라고 했으며, 경덕왕이 의상(宜桑)이라 고치고, 고려 초에 新繁縣으로 고쳐 공양왕 때 宜寧에 내속시켰다. 新繁縣은 지금의 부림면 신반리에 있었다.
6) 新繁縣 : 현 동북쪽 60리 지점에 있다. 본래 신라 신이현(辛尒縣)인데 朱烏村이라 하기도 하고, 泉川縣이라 하기도 한다. 경덕왕이 宜桑이라 고쳐서 江陽郡 속현으로 만들었고 고려초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공양왕 때에 내속시켰다. <승람 권 31. 경상도 의령현 속현조>
도수희(1995:6)는 ‘辛尒․泉’의 대응으로 보아 ‘辛尒’를 ‘’으로 읽었다. 6)의 ‘辛尒:泉川:宜桑:新繁’의 대응은 ‘辛尒:泉:宜’의 대응임으로 ‘辛尒’을 ‘’으로 읽을 수 있지만, ‘宜’는 ‘’보다는 ‘얼’로 읽음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점에 대하여 도수희(1995)는 신라어 혹은 加羅語의 분포 지역에서는 중세국어에 해당하는 ‘’이라는 어휘가 쓰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百濟語 분포 지역에서는 ‘於乙買串’의 지명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얼’(於乙)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新繁縣의 지명변화를 표로 보이면 아래와 같다.
――신라―――――――――――→통일신라(경덕왕)→고려초
‘辛尒縣(一云 泉川縣, 一云朱琴村)―――→宜桑―――→新繁縣
() () (얼?․?) ()
위의 표를 보면 ‘辛尒’와 ‘泉’은 ‘’으로 읽었고 ‘新’도 ‘’과는 다르지만 ‘’로 읽히므로 ‘’과 가까운 소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위의 ‘宜桑’의 ‘宜’는 신라어 지역에 분포한 지명이므로 ‘’로 읽었을까? 또는 백제어 지역에서처럼 ‘얼’로 읽었을까?
필자의 소박한 생각으로는 ‘辛尒’와 ‘泉’은 ‘’으로 읽어야 하고 ‘於乙’, ‘交’, ‘宜’는 ‘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이는 더욱 考究해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13. 宜仁縣
‘의인현’(宜仁縣)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에 있었던 폐현으로 본래 신라의 知道保部曲이다. 고려 공민왕(1369) 때 의인현으로 승격하여 안동부에 붙였다가, 공양왕(1390) 때 예안현에 편입되고, 조선조에 와서 宜東과 宜西로 2개 면이 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도산면 의인리가 되었다. 때문에 이곳에는 의인(宜仁)이란 마을이 있고 ‘의인현터’라는 지명도 남아있다.
1) 宜仁廢縣 : 縣 동쪽 9리에 있다. 본래 安德縣 知道保部曲이었는데 고려 공민왕이 현으로 승격하여 지금 이름으로 고치어 안동에 붙였고 공양왕 때에 와서 禮安에 붙였다. <승람 권 25, 경상도 예안현 고적조>
2) 宜仁古縣城 : 고현의 남쪽에 있으며 흙으로 쌓은 遺址가 있다. <대동지지 권 8, 경상도 예안현 城池조>
‘宜仁’은 두 냇물이 합수되는 곳에 붙여진 지명임과 위에서 ‘宜’가 ‘얼’로 얽힌다 하였으니 ‘宜仁’의 ‘宜’는 ‘合’을 의미하는 고대어 ‘얼’을 차자한 어휘라 생각된다.
한편 ‘宜仁’은 예전에 安德縣 知道保部曲이었다. ‘知道保部曲’의 ‘知’는 훈이 ‘알’<천자문>이므로 여기에서는 ‘知:宜’의 대응을 볼 수 있다.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합강리’를 이칭으로 부를 때 ‘아림촌, 아름촌’이라 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交․合’의 의미를 갖는 어사로 ‘얼’ 이외에 ‘알’이 나타남을 볼 수 있는데 이곳 ‘宜仁’에는 ‘얼’과 ‘알’이 지명에 동시에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14. 宜松
1) 宜松山烽燧【산】<전북-군산시-소룡동>.→ 봉대산.
위의 宜松山烽燧는 현재 군산시 송풍동 장계산에 있었던 봉수이다. 이곳 송풍동 소룡동 주위에는 현재 군산저수지가 있는데 이 저수지는 일제시대에는 수도저수지라고 불렀다. 이곳에 저수지를 막기 이전에는 두 물줄기가 합수되는 곳이었는데 저수지를 막은 후 합수되는 지형을 얼른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예전부터 합수되는 곳이기 때문에 ‘合’을 의미하는 ‘얼’이라는 말이 ‘宜’자로 차자 표기되어 형성된 지명으로 생각된다.
15. 義州
1) 義州 : 본래 고려의 龍灣縣인데 和義라고도 불렀다. 처음에는 글안이 압록강 동쪽 기슭에 성을 두고 保州라고 일컬었고, 문종 때에 글안(契丹)이 또 弓口門을 설치하고 抱州(일명 把州)라고 일컬었다. 예종 12년에 遼의 刺史 常孝孫이 都統 耶律寧 등과 금(金)의 군사를 피하여 바다를 건너 도망해 와서 우리 寧德城에 文書를 보내어 來遠城 및 抱州를 가지고 우리에게 귀속하므로 우리 군사가 그 성에 들어가서 병기․돈․곡물을 수습하니 임금이 기뻐하여 義州防禦使로 고치고 南界의 人戶를 덜어다가 채워서 그제서야 다시 鴨綠江으로 경계를 하고 관방을 두었다.(이하생략) <승람 권 53. 평안도 의주목 건치연혁조>
2) 鴨綠江 : 주의 서북쪽에 있는데, 마자(馬訾), 靑河, 龍灣이라고도 한다. 서쪽으로 遼東都司와 거리가 560리며 그 근원은 만주 땅의 백두산에서 나오고, 수백리를 남으로 흘러서 함경도의 甲山․三水를 거쳐 본도의 閭延․茂昌․虞芮․慈城을 지나서 江界와 渭源의 지경에 이르러 禿魯江과 합치고 理山郡의 山羊會에 이르러 蒲洲江과 합치고 碧潼․昌城․小朔州를 거쳐서 주의 북쪽에 있는 於赤島의 동쪽에 이르러 3파로 나뉘어서, 하나는 남으로 흘러 맴돌아 구룡연이 되는데 이름이 압록강이다. 그 물빛이 오리의 머리같이 파라므로 이름지었고,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서 西江이 되고, 하나는 가운데로 흐르므로 小西江이라 하였다. 黔同島에 이르러 다시 하나로 합쳤다가 水靑梁에 이르러 또 두가닥으로 나뉘어서 하나는 狄江(압록강의 서북쪽에 있다)과 합치고, 하나는 남으로 흘러 威化島를 둘러 암림곶(暗林串)에 이르러서 서쪽으로 흘러 彌勒堂에 이르르고, 다시 적강과 합쳐서 大總江이 되어 서해로 들어간다. <승람 권 53. 평안도 의주목 산천조>
위의 1)의 ‘義州’는 고려 때 龍灣縣․和義라 불렀음을 알 수 있고, 처음에는 글안이 압록강 동쪽 기슭에 성을 두고 保州, 또는 抱州(일명 把州)라고 일컬었는데 고려 예종 12년(1117)에 義州防禦使로 고치고 鴨綠江으로 경계를 하여 관방을 두었다 하므로 ‘義州’라는 지명은 고려 예종 때에 명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和義’의 ‘義’는 義州라는 지명의 ‘義’와 글자가 동일하므로 이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그리고 2)를 보면 鴨綠江은 於赤島의 동쪽에 이르러 3파로 나뉘어서, 하나는 남으로 흘러 압록강이 되고, 서쪽으로는 西江이, 가운데로는 小西江이 흐른다 하였다. 또한 이들이 검동도(黔同島)에서 다시 합쳤다가 水靑梁에서 두 가닥으로 나뉘어서 하나는 狄江(압록강의 서북쪽에 있다)과 합치고 하나는 남으로 흘러 威化島를 둘러 암림곶(暗林串)에 이르러서 적강과 합쳐서 大總江이 되어 서해로 들어간다 하였다.
그런데 위에서 鴨綠江의 어원은 ‘그 물빛이 오리의 머리같이 파라므로 이름지었다’ 한다. 그러나 중국의 황하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금수강산에 압록강처럼 큰 강의 물빛 치고 파랗지 않은 강물이 있겠는가? 또 이렇게 파란 강물의 색깔이 지명의 유연성으로 작용되었을까? 이름은 다른 사물과 구별하기 위한 수단이며 지명 또한 어떤 지역을 다른 지역과 구별하기 위하여 명명했을 것이다. 때문에 고대인들이 지명을 명명할 때에는 그 지역과 관련된 무언가 유연성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 유연성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그것을 찾는 방법으로 필자는 명명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큰길도 없고 큰집이나 건물들도 별로 없었다. 그러므로 어떤 지역을 말로만 듣고 찾아가거나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지역을 모르는 외부인들이 어떤 지역을 찾아가거나 기억하기 위해서는 그곳을 쉽게 찾고 기억할 수 있도록 지형지물을 이용한 그 지역의 특징이 살려진 지명으로 명명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물줄기가 합수 되는 지역적 특징은 매우 좋은 명명의 유연성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곳 鴨綠江이 있는 義州는 於赤島의 동쪽에서 3파로 나뉘어져 於赤島를 감돌아 흐르다가 黔同島에서 다시 합류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곳의 이러한 지리적 특징이 지명에 반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두물줄기가 합류되는 지역에 붙여지는 고대어인 ‘얼’이 이 지명에 쓰였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鴨綠江’이란 지명에서는 ‘얼’이란 어사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11)에서 合江里를 ‘아림촌, 아름촌’으로 부르는 지명어를 보았다. 또한 13)에서도 ‘宜仁廢縣’을 ‘知道保部曲’이라 하였는데 ‘知’의 훈이 ‘알’이므로 ‘宜’의 훈 ‘얼’과 ‘知道保部曲’의 ‘알’이 서로 대응되고 있으니 지명에서 ‘얼’과 ‘알’이 서로 통용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곳 지명에서 ‘얼’은 ‘알’로 변이되고 이 ‘알’은 ‘鴨綠江’이란 ‘鴨’자를 빌어 표기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지명은 위에서 ‘그 물빛이 오리의 머리 같이 파라므로 이름 지었다’는 말처럼 파란 압록강 물과 어울러 ‘遙看漢水鴨頭綠’라는 저 유명한 李白의 시 ‘鴨頭綠’을 연상하여 ‘鴨綠’이라 명명하지 않았을까 한다.
‘얼’이라는 지명이 ‘알’로 변이 되는 곳에는 하나의 물줄기가 두 갈래로 나뉘어 지는 곳인데 이런 곳에는 냇물이 굽어흐르면서 냇물 속에 조그만 섬이 생긴 곳도 있다. 이는 냇물 속에 모래나 흙 등이 쌓여 산처럼 흙무덤이 생긴 곳인데, 이런 곳을 ‘나리메(뫼)’라고도 하며, 이런 예는 전남 함평군 나산면 나산리의 ‘羅山’이란 지명 유래에서 그런 유래가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을 나타내는 지역으로 於赤島를 감돌아 흐르는 鴨綠江과 義州가 있다. 於赤島라는 지명도 ‘於’가 ‘於乙’에서 ‘乙’이 생략된 어사가 아닐까하며, 이 ‘얼’이 ‘알’로 변이 되면서 ‘鴨綠江’의 푸른 물과 관련됨과 동시에 ‘알’이 ‘올’과도 통하게 됨으로 ‘오리’와 연관되어 저 유명한 이백의 시 ‘鴨頭綠’의 ‘鴨’자가 차자되어 형성된 지명이라 생각된다.
한편 李殷相(1935.6.5.조선일보)은 “나는 鴨綠江이 長江이란 뜻이라 한 丹齊의 說을 諾다 한다. 朝鮮古話에 길단 말을 「아리」라 하엿다는 것을 말하고 이 「아리」란 것을 吏讀도 적을때에 그 音을 取하야 阿利水, 郁里河, 烏列白, 句鹿河等으로 적힌 것과, 鴨子河, 鴨綠江으로 쓰인 것이 필경 동일한 「아리」임에 틀림업슬 것을 말함이 어느 정도까지 可한줄 안다.” 라 하였으니 ‘압록강’이 ‘알’과 관련된다는 주장은 수긍되는 점이라 생각한다.
또한 ‘義州’라는 지명은 양주동(1965:445)에서 ‘交․合’의 ‘얼’이 ‘完․全’의 訓 ‘오․올’, ‘凍’의 訓 ‘얼’, ‘凝’의 訓 ‘얼의’ 等과 모두 類義語”라 한 점으로 보아, 두 물줄기가 합류되는 곳을 의미하는 ‘얼’이 ‘올’로 넘나들며 쓰이다가 ‘올’은 훈이 ‘옳’(올의)<천자문>인 ‘義’자를 빌어 ‘義州’로 표기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곳 義州는 ‘鴨綠江’이라 불리는 곳으로 두 냇물이 합수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명으로 義州 이외에 新義州도 있다. ‘義州’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그런데 신의주는 威化島가 있는 곳으로,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회군한 곳이다. 이 威化島도 나리메에 해당되며, 때문에 이 ‘威化島’의 ‘威’는 고대어 ‘얼’을 차자하여 생긴 지명어로 생각된다. 또 위화도 옆 ‘暗林串’이라는 지명의 ‘暗林’도 이 ‘알’을 표기한 지명어라는 생각이 든다.
16. 義新
1) 義新 : 본래 義新鄕이다. 동남쪽으로 처음이 10리이고 끝이 35리이다. <대동지지 권 14, 전라도 진도 방면조>
2) 義新鄕 : 군의 동남쪽 15리에 있다. <승람 권 37. 전라도 진도군 방면조>
3) 의신면(義新面)【면】<전남-진도군-의신면>.
4) 의신천(義新川)[쌍계천]【내】<전남-진도군-의신면-돈지>
돈지 앞에 있는 내. → 우황천.
위의 진도군 義新面에는 義新川이 있다. 이 義新川은 창포리 가단 마을 쪽에서 흘러 나오는 물줄기와 운림산방이 있는 사천저수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의신중학교 아래쪽에서 합수되며 흐르다가 中里池의 물줄기와 九溪池의 냇물이 합수된 물과 다시 합수되며 이루는 냇물명이다.
‘義新’은 양주동(1965:445)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얼’이 完․全의 훈 ‘올’과 유의어라 하였으니, 두 냇물이 합수되는 곳을 의미하는 ‘얼’이 ‘올’로 변이되면서 ‘義’를 빌어 ‘올’을 표기한 지명이 아닐까 한다.
17. 義山[1]
1) 義山 [의산, 인의산]【리】<전남-무안-일로>. 본래 무안군 일로면의 지역으로서 인의산(전남-무안) 밑이 되므로 인의산 또는 의산이라 하였는데, 1910년에 목포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해엉 구역 폐합에 따라 덕치동, 산후정, 내동, 구월동, 죽산동, 무용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의산리라 해서 다시 무안군에 편입됨. <한국지명총람>
위의 ‘義山’도 무안군 일로면 의산리 의산(일명 仁義山) 마을과 이 마을 옆에 있는 ‘인의산’이란 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곳은 남북으로 영상강이 흐르며 서쪽은 무안군, 동쪽은 영암군과 경계를 삼고 있다. 이 강의 서쪽 지역인 무안군 쪽에는 일로읍 의산리가 있고 반대편인 동쪽인 영암군 지역에서는 여러 물줄기가 모여서 짧지만 굵은 물줄기가 되어 영산강으로 합수되는데 이 물줄기를 중심으로 영암군의 시종면, 서호면, 군서면, 도포면이 퍼져 있다.
이곳은 영산강 하류 지역이므로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늪지대였다. 때문에 마을은 늪에서 조금 떨어진 義山 마을과 仁義山이란 산아래에 형성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지금은 제방공사로 인하여 늪지대가 논이 되자 마을은 강가에서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 지형상의 특징이 영암쪽에서 흘러오는 물줄기가 영산강에 합수되는 지리적 특징이 있는 곳이므로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여 ‘義山’이란 지명이 명명되었을 것이다. 즉 ‘合’의 의미인 고대어 ‘얼’이 ‘올’과 넘나들며 ‘올’로 변이되자 ‘義’를 빌어 표기한 지명이라 생각한다.
義山[2]
2) 義山【마을】<경북-영주-장수-성곡>. 배태 남쪽 마을.
3) 義山書院) [의산정사] 【고적】<경북-영주-장수-성곡>. 의산 북쪽에 있는 서원. 광해군 2년(1610)에 창건하고, 현종 5년(1664)에 贈參判 李介立을 배향하고 묘호를 節老라 하였으며, 숙종 5년(1679) 에 金應祖를 배향하였음.
위의 ‘義山’은 ‘城谷’ 마을에서 흘러 내리는 냇물과 ‘너르기’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냇물이 ‘돌마당’ 마을에서 합수되는 지역이다. 이곳도 두 줄기의 냇물이 합수되는 곳이기 때문에 이 합수된다는 의미의 고대어 ‘얼’이라는 어사가 ‘올’로 통용되면서 義山이라 표기된 지명으로 생각한다.
18. 義尙
1) 義尙【마을】<경북-상주-화북-입석> → 의상동.
위의 義尙은 일명 義尙洞이라 하며, 이곳에서 화양천 물과 의상저수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합수되고 있다. 이곳에는 ‘의상골’이라는 마을도 있고, ‘回龍’이라는 마을도 있다. 이 義尙의 ‘義’도 물이 합한다는 뜻의 ‘얼․올’에서 ‘올’을 한자로 차자 표기한 지명이라 생각한다.
19. 義城(1)
1) 義城【산】낙동 북쪽에 있는 산. <경남 고성 구만 효락>
2) 洛洞[마을] 효락리의 으뜸 마을. <경남 고성 구만 효락>
3) 새땀[마을] 낙동 북쪽 마을. <경남 고성 구만 효락>
4) 義城浦【마을】<경북-예천-용궁-대은>. 회룡 남쪽에 있는 마을. 내성천이 감돌아 흘러 섬처럼 되어서 이조 때 귀양 땅으로 되었는데, 고종 때 의성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룩하였음.
1)의 義城의 구만리에는 구만천이라는 냇물이 남해로 흘러가는데 구만에는 5개의 지류가 합쳐지는 곳이다. 따라서 ‘義城’은 합수된다는 뜻의 ‘얼’이라는 어사가 義자로 차자 표기되어 형성된 지명으로 생각한다.
2)의 義城浦는 내성천이 의성 마을을 감돌아 흐르는 지리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이 마을도 내성천에 둘러쌓여 알처럼 둥글게 생긴 데서 義城이라 명명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알’을 ‘義’로 차자한 것은 義의 훈이 ‘올’<천자문>이므로 ‘올’로 발음된다. 이 ‘올’은 물줄기가 감돌아 흐르면서 합하여 원을 만들려 하는데서 ‘합수된다’, 또는 ‘알’처럼 둥근 모양이 되기 때문에 명명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양주동님이 향가 ‘烏乙反隱’이라는 구절을 ‘오븐’으로 읽으며 ‘오’을 ‘合’의 훈 ‘어울’, ‘並’의 훈 ‘아울’ 등과 관련 지어 동일어원에서 나온 말이라 한 것처럼 ‘올’을 ‘義’로 차자 표기한 지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마을 바로 북쪽에 回龍이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이름도 의성포 마을을 감돌아 흐르는 데에서 명명된 지명으로 생각된다. 이런 마을로는 安東의 下回 마을이 있는데, 이 下回 마을도 의성포 마을처럼 낙동강이 마을을 감돌아 흐르는데서 명명되었을 것이다.
20. 義谷
1) 義谷驛 : 부의 서쪽 57리에 있다. <승람 권 21. 경상도 경주부 역원조>
2) 義谷倉․仍甫倉 : 각각 그 역에 있다. <비고. 경상도 경주부 창고조>
3) 義谷驛【마을】<경북-경주시-산내면-의곡리> 의실에 있는 마을. 역이 있었음
4) 義谷里 [의곡, 의실]【리】<경상북도-경주시-산내면> 본래 경주(월성)군 산내면의 지역으로서 의실, 또는 의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의곡리라 함.
5) 義谷【마을】<경북-경주시-산내면-의곡리>. → 의곡리.
1)의 義谷은 지리상으로 동창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면서 義谷마을 앞에서 강촌천과 합수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때문에 義谷의 ‘義’도 두 냇물이 합수되는 곳을 의미하는 고대어 ‘얼’이 ‘올’로 변이되면서 음이 상사한 ‘義’자를 차자 표기하여 생긴 지명이라 생각한다.
21. 義實
1) 義實 [내어곡, 안느락골]【마을】<충남-논산-벌곡-어곡>.
느락골 안쪽에 있는 마을.
위의 어곡리에는 어곡천이 있고 이 어곡천이 벌곡천에 합수되는 곳을 ‘느락골’, ‘어곡’, ‘義實’, ‘오동’이라 불리고 있다. 이로 보아 ‘義’는 두 냇물이 합수되는 곳을 의미하는 ‘얼’이 ‘올’로 변이되면서 ‘올’을 ‘義’로 차자 표기하여 생긴 지명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올’은 ‘오동’이라는 지명을 파생시켰을 것이고 ‘얼’은 ‘於乙’과 상통하므로 ‘어곡리’라는 지명을 파생시켰을 것이다. ‘於谷里’의 ‘於’는 훈이 ‘늘’이므로 ‘늘+악+골>느락골’이라는 지명을 파생시켰을 것이다.
Ⅲ. 결 론
이제까지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곳의 지명을 살펴보았다. 이제 이를 요약하여 결론을 삼겠다.
두 강물이 합류하는 곳의 지명으로 合江이란 지명이 있고, 두 냇물이 합류하는 곳의 지명으로 合水와 幷川․竝川이 있다. 幷川․竝川에 해당하는 고유어 지명으로는 ‘아우라지․아울치․아우내․아오내․아옵골․아내․아으내․아리․아름’ 등이 나타나고 있다.
幷의 훈은 ‘아올’(유합, 신증유합, 천자문)로 나타나는데 훈민정음에 ‘合用竝書’의 ‘合’을 ‘어울’이라 언해했다. ‘어울’은 合의 의미를 갖는 어휘이며 현재 ‘아우르다’와 ‘어우르다’로 쓰이는데 이는 ‘몇몇을 모아 한 덩어리나 한 판을 이루다’는 뜻이다. 이 ‘아우르다’는 ‘아올다’에서 ‘아올다>아울다>아우르다’로 변형된 어휘일 것이다.
‘아우라지’는 ‘아올다>아울다>아우르다’에 접미사 ‘아지’가 결합되었을 것이며, ‘아울치’는 ‘아울+지>아울치’로 경음화되었을 것이고, ‘아우내’는 ‘아울+내>아우내’, ‘아올골’은 ‘아올+골’에서 형성된 지명일 것이다. ‘아옵골’은 ‘아홉’(九)을 유연성으로 형성된 지명이 아니라 ‘아올’에서 변형된 지명일 것이며 ‘아내’는 ‘아울+내>아우내>아내’로 변형된 지명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아리’, ‘아름’은 ‘아올․아울’에 접미사 ‘이․음’이 붙어 생긴 지명으로 생각한다.
도수희(1995:5-10)에 의하면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의 옛이름인 ‘於乙買串’의 ‘於乙’은 ‘交․合’의 의미를 갖는 ‘얼’로 읽었고, 삼국사기권 34에 ‘宜桑縣 本辛尒縣 一云朱烏村,泉州縣 景德王改名新繁縣’라는 기록에서 ‘宜=辛尒=泉’이 대응하는 것으로 보아, ‘宜는 ‘’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宜’의 훈이 ‘열을’<대동급본천자문>이므로 ‘열’로 읽음을 증명하였다.
이와 같이 ‘宜寧’, ‘宜仁’, ‘宜松’은 모두 두 강이나 냇물이 합류(합수)되는 곳의 지명으로 ‘交․合’을 의미하는 고대어 ‘얼’을 차자 표기한 지명으로 생각한다.
양주동(1965:445)은 ‘交․合’의 ‘얼’이 ‘完․全’의 訓 ‘오․올’과 類義語라 하였으니, ‘얼’이 ‘올’과 유의어로 서로 넘나들며 쓰이게 된것은 ‘義’의 훈이 ‘옳’(올의)<천자문>이므로 이것이 ‘올’과 음이 상사하므로 ‘義’자를 차자하여 ‘義州, 義新, 義山, 義尙, 義城, 義谷, 義實’ 등으로 표기하였을 것이니 이 지명들은 ‘두 물줄기가 합수되는 곳’의 지명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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