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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안경
이 승 애
어머니와 나들이를 갔다 오는 길은 편안하고 행복했다. 어머니도 모처럼 바깥바람을 쐬니 좋으신가 보다. 오시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시는 모습이 마치 소녀처럼 해맑으시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티격태격 감정싸움에 마음 상하신 모습은 간 곳이 없다. 싸움의 원인은 선글라스에 있었다. 차에서 내려 선글라스를 쓰자 어머니는 다짜고짜 안경을 벗으라고 화를 내셨다. 나는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려고 쓴 건데 어머니는 건달이 된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건방져 보인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엇인지 숨기려는 사람 같아 보여 흉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고리타분한 생각을 바꾸려고 선글라스의 용도에 대해 거듭 설명해 드렸지만, 어머니께선 끝내 용납하지 않으셨다. 나는 끝까지 말을 듣지 않고 선글라스를 쓰고야 말았다. 그렇게 하고 나서 내 얼굴에 걸쳐 있는 그 시건방진 선글라스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어머니도 포기하셨는지 다시 말이 없이 나들이의 즐거움에 빠지셨다.
하늘은 때로 심통을 부리기도 하는가 보다. 편안한 모녀의 나들이가 샘이 났는지 아름답게 노을 지던 서쪽 하늘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들었다. 구름이 빠르게 몰려들더니 금세 으르렁거리며 마른번개를 쳐댔다. 사방이 어두컴컴해지고 노을빛으로 온갖 아름답게 빛나던 나뭇잎에 심상찮은 바람이 일었다. 차창에 굵은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는가 싶더니 곧이어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성정이 급한 빗줄기가 차에 부딪힐 때마다 우두두 수천만 개 콩 튀기는 소리를 냈다. 도로 곳곳이 팬 곳엔 물이 고여 차가 달릴 때마다 무섭도록 물갈래를 쳤다. 윈도브러시를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어 불안감이 휘몰아쳤다. 심장은 겁에 질려 쿵쿵 고동을 치고, 차는 종잡을 수 없이 자꾸만 기우뚱댔다. 어둠은 걷잡을 수 없이 내려와 빠르게 블랙홀이 되어 세상을 빨아들였다. 나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에 있는 힘을 다해 핸들을 잡고 연신 브레이크를 밟아댔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도 더 이상의 전진은 어려웠다. 결국 차를 세우고 말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도로에 갇혀버린 신세는 한없이 처량하였다. 가까스로 용기를 내 창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삽시간에 빗방울이 차창 안으로 들이쳤다. 차들이 도로 한복판에 멈춰 선 내 차를 피해 가느라 경적을 울리며 물보라를 치는 모습이 보였다. 창피하고 미안한 마음에 갓길로 차를 옮기려 해보았지만, 겁에 질린 나는 머리 따로 몸 따로 허둥대느라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몹쓸 걸림돌이 된 차 안에서 속수무책으로 버틴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오직 할 수 있는 일은 밖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창문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걱정되어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손에는 묵주가 들려있었다. 조용히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고 계셨다. 두려움에 떨며 안달복달하던 내 행동이 부끄러웠다.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창문을 여닫은 탓에 차 안은 비가 들이쳐 흠뻑 젖어 비린내가 났다. 내 약한 의지와 얕은 신앙심과 같은 비릿한 냄새가 나를 흔들어댔다.
극에 달했던 두려움이 한풀 사위어 조금 안정되자 뻣뻣하게 굳었던 몸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이제 이 위기를 모면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도무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오가던 차들도 뜸해져 구조요청은 더욱 어려워진 듯하였다. 그렇다고 도로에 고립된 채 밤을 새울 수는 없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곳에서 벗어나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며 가까스로 시동을 걸었다.
애절한 마음과는 달리 앞을 볼 수 없으니 전진할 수가 없었다. 다시 시동을 끄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 순간 내 얼굴에 천연덕스럽게 걸쳐 있던 안경이 툭 하고 떨어졌다. ‘맙소사’ 낮에 썼던 선글라스였다. 선글라스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벗어버리자 그간 분간할 수 없었던 도로의 윤곽과 차선이 보이고, 도로 주변 모습도 훤하게 드러났다. 바짝 졸아 붙었던 세포들이 느슨해지며 안도감이 돌았다. 나는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씩씩한 사람이 되어 두려움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그리곤 당당하게 운전대를 잡고 자신만만하게 빗속을 달렸다.
선글라스는 햇빛이 강한 데서만 본래의 역할을 한다. 혹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적절한 때를 벗어난 사용은 진실을 왜곡하거나 편견을 갖게 한다. 비 오는 밤의 선글라스 착용,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행동이란 말인가. 자칫 잘못했으면 사고까지 갔을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흔히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마라.’라고 한다. 이 말은 사람을 대할 때 선입견과 개인적 감정에 치우쳐 상대를 보지 말라는 것이다. 언젠가 친구의 소개로 같은 교회의 신자 한 분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삐쩍 마른데다 날카로운 인상을 풍겨 까다롭고 모난 성미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분을 대했다. 그녀가 아무리 친절을 베풀어도 적당한 선을 그어놓고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언제나 달려가 도와주곤 하였다. 첫인상만 보고 내 방식대로 갖가지 색깔의 안경을 만들어내고 그 안경에 자신의 판단을 맡기는 죄를 지었다. 어찌 그녀에게만 그랬겠는가. 외모를 보고 내 마음대로 예단하는가 하면 한 단면만 보고 그 사람의 전체인 양 판단하는 못된 습성이야말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격이 아닐는지.
미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MIT미디어랩이 공동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안경을 개발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타인과 소통이 어려운 자폐증 환자를 위해 개발했다는 이 안경은 카메라가 탑재되어 있어 웃음이나 눈썹, 입술 움직임 등 대화하는 상대방의 스물네 가지 표정을 잡아낼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 이 안경을 끼고 나를 바라본다면 어떠할까? 안경 뒤에 숨어 내 방식대로 휘둘러대는 어리석음이 그대로 노출되어 위선자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겠는가.
폭우가 쏟아지던 날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선글라스는 나에겐 고마운 스승이다. 비록 위기에 처하게 하였지만, 그동안 돌아보지 않던 자신을 바라보게 했으니 귀한 역할을 한 소중한 물건이 아니겠는가.
난 오늘 내게 소중한 것을 일깨워준 선글라스를 만지며 새로운 결심을 한다. 외모만 보고 판단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험담하고, 비판하며 저지른 잘못을 뉘우친다. 내가 커질수록 색 짙은 안경이 진실을 왜곡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이유 없이 나에게 홀대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안경을, 때 낀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맑고 투명한 안경을 쓰리라. 그러기 위해선 내 마음의 교만과 편견, 아집과 자만심의 때를 먼저 벗어버려야겠다. 지혜롭고 현명한 마음의 안경을 갖기 위해 열심히 내 안을 닦아보리라.
그릇을 고르며
이 승 애
미국에서 지인이 오시는 날이다. 멀리서 오는 손님에게 무엇을 대접할까 고민하다 샤브샤브와 월남쌈을 대접하기로 하였다. 서둘러 시장을 보고 청소를 한 후 음식에 맞는 그릇을 고르기 위해 수납장에 넣어 두었던 그릇들을 꺼냈다. 그래도 좀 귀티가 난다 싶어 아껴 두었던 그릇들인데 막상 꺼내놓고 보니 예상과는 달리 제각각 형태도 다르고 짝도 맞지 않아 품위를 지키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시간이 촉박하여 어디 가서 빌려 올 수도 없고, 사올 수도 없는 형편이라 구석구석 뒤지며 다른 그릇을 찾기 시작하였다. 이십 여분 씨름한 끝에 원하던 그릇을 찾아내었지만, 한쪽 귀퉁이가 깨져 품위 있는 상차림을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깨진 접시가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내 마음의 그릇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오십 여년 황급히 달려온 인생 마차엔 금이 가고 깨진 그릇이 말없이 수납장을 지키듯 내 안에도 여기저기 금이 가고 깨진 삶의 그릇이 나뒹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손상이 컸던 사건은 내 나이 열여덟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지와 오십도 채우지 못하고 아버지를 따른 언니의 죽음이다. 그 때문에 내 인생 그릇은 볼품없이 금이 가고 깨져 무엇 하나 제대로 담아낼 수가 없었다. 조각난 그릇을 새것으로 바꾸듯 깨져버린 삶의 그릇을 바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숱한 시간을 아파하다 조용히 한편에 밀어놓기로 하였다. 그럭저럭 살다 보니 세월에 따라 그릇의 형태도 달라지고 새로운 그릇들이 만들어졌다.
스물아홉에 세속을 떠나 수녀원에 들어갔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드릴 그릇 하나를 빚기 시작하였다. 무엇을 담아도 어울릴 그릇을 빚으리라 다짐하며 열심히 정진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일그러지고 깨지고 금이 갔다. 점점 약해져 가는 의지를 가까스로 잡고 금이 가고 깨진 마음의 그릇을 바로 잡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헛수고에 그치고 말았다. 이미 균형을 잃어버린 일상의 물레질은 헛돌기만 하였다. 그럴수록 나의 조급증은 더욱 커졌고 그 조급함은 심신을 허약하게 하였다. 결국 미완성의 그릇은 아무것도 담지 못하고 수녀원을 나오고 말았다.
빚다 만 그릇이 깨져 그 조각들이 나를 찔러댔다. 찔러대는 조각을 하나하나 모아 새로운 그릇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새것으로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새로운 발상의 시도였다. 지금은 그렇게 빚은 그릇이 삶의 디딤돌 역할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온전한 그릇으로 산다고는 할 수 없다. 하루에도 여러 번 그릇의 형태를 바꾸는 유약한 존재다. 굴곡진 삶을 사는 존재니 금이 가고 깨지고 모난 모서리에 때가 껴 볼썽사나운 모습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느 땐 마음 한구석에 어수선하게 널브러진 작은 종지 다발이 산만하게 놓여있기도 한다. 이기심으로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괜한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역정을 내느라 사랑 한 사발 담아내지 못한 흔적이다. 못된 성미로 울근불근하다 찌그러뜨린 양푼도 있고 허영과 욕심으로 채워진 얇은 그릇이 깨어질 듯 위태롭기도 하다. 형편없는 자신의 그릇에 절망하여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조용히 자신을 뒤돌아보곤 한다.
얌전한 규수처럼 눈을 내리깔고 있는 자태 고운 그릇이 보인다. 아, 나에게도 있었다. 금이 가고 깨진 그릇만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성자처럼 남의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였고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눌 줄도 알았다. 그 옆 맑고 투명한 유리그릇처럼 울퉁불퉁한 성깔을 연마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비록 위선과 거짓으로 만들어진 불투명한 그릇이 볼품없이 찌그러져 나뒹군다 해도 내게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릇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분 좋게 한다.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깨진 그릇이나마 호일로 감싸고 무를 얇게 썰어 장미 모양으로 꾸며 갖가지 채소를 담아내니 그럴듯하다. 멸치와 표고,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만들고 청양고추와 풋고추를 다져 액젓과 곁들여 놓고 고기도 정갈하게 담는다. 드디어 기다리던 손님이 오셨다. 한국에서 먹는 샤브샤브와 월남쌈이 맛있다고 잘도 잡수신다.
맛있게 먹는 그의 모습을 보며 작은 소망하나 얹어본다. 각박한 세상을 사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맑고 깨끗한 물 한 사발 대접할 수 있는 자비의 여인이 되고 싶다. 삶에 허기진 이가 있다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영양밥 한 그릇 담아주는 밥그릇이 되어도 좋겠다. 이왕이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된장국도 담았다가 시원한 뭇국도 담았다가 달콤새콤한 비빔밥 한 그릇 담아내는 다용도 대형 그릇이면 좋겠다. 더 나아가 나와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마음껏 필요한 것을 담을 수 있는 빈 그릇이 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시기와 질투, 배신과 기만에도 깨어지지 않는 투박하고 견고한 질그릇이 될 수 있다면 더욱더 좋으련만. 아직 손보지 못하고 넣어둔 마음의 그릇을 꺼내 깨어진 부분을 고치고 보수하여 정갈한 그릇으로 만들어야겠다. 거기에 따뜻한 사랑을 담고, 친절과 온유를 담아 이웃에게 나눠주리라.
사람은 모두 다른 그릇을 갖고 살아간다. 그릇에 담기는 삶의 양상도 제각각 다르기 마련이다. 서로 다른 그릇의 본질을 이해하고 서로 소중하게 다룬다면 각자의 마음엔 아름다운 마음씨와 사랑이 담겨 고운 빛을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그릇을 먼저 탓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서로가 부딪쳐 금이 가고 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각양각색 다양한 모습으로 태어난 우리, 그 고유성으로 제각각의 역할을 하며 오색찬란한 생명을 담아내고 있다. 각기 다른 그릇이 모여 하나의 밥상을 이룰 때 세상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 되고 벗이 되고 이웃이 된다.
첫댓글 등단 작품이 아주 훌륭하네요. 사유와 비유도 뛰어나고 문장구성려과 주제에 대한 의미화 형상화도 남다르게 철학적인것이 부럽습니다. 1인 1책 강사 하실 자질이 충분하네요. 나도 많이 가르쳐줘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고 아주 후덕한 평까지 해주시니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습니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내 마음의 안경이 큰 감동을 주네요
우리의 타성에 젖어 저지를 수 있는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비오는 밤에 선글라스가 저를 보게 해주었지요.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완전 반전이었네요...썬글라스라니...ㅋㅋ 이거 웃으면 안되는데...헤퍼서..ㅎㅎ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