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사 발렌수엘라의 채찍에 나타나는 여성 몸의 이미지
박수경(고려대학교 석사과정)
I. 들어가며
루이사 발렌수엘라의 채찍 Cola de lagartija은 일차적으로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이 작품은 이사벨 페론 정권의 사회복지부 장관이었고, 아르헨티나를 마술로 지배하려고 했던 로페스 레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요인물인 주술사(Brujo)는 로페스 레가를 형상화하고 있으며 장군(Generalissimo)은 후안 페론을, 무에르따(la Muerta)는 에바 페론을, 인트루사(La Intrusa)는 이사벨 페론을 연상시킨다. 작중 인물에서 아르헨티나 역사상 실존 인물을 연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정도로 작품에는 많은 장치가 나타난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현대 정치사를 풍자하거나 권력자를 비판한다는 측면에서 채찍을 읽어내는 것은 다소 평면적인 독해가 될 수 있다.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하듯이 루이사 발렌수엘라는 헬렌 식수나 뤼스 이리가레이와 같은 프랑스 페미니즘 이론의 영향을 받아들임으로써 여성 섹슈얼리티와 글쓰기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채찍에 나타나는 여성 몸의 이미지를 구체화하고 그러한 이미지가 로페스 레가를 형상화하는데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II. 들어가서
채찍은 이미지들의 파편으로 얽혀있다. 1부에서 파편들은 두 가지 묶음으로 나뉜다. 주술사와 가르사가 지배하는 시공간과 도시의 공간이다. 2부에서는 작가로서 발렌수엘라가 등장함으로써 두 공간이 직접 연결된다. 3부에서 주술사는 출산, 또는 재탄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의식을 준비한다. 사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흐름은 주술사의 성장과 성장의 완성으로 자아생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내가 잉태한 모든 것은 나에 의해 출산될 것이고 나에 의해 키워질 것이다. 외부의 어떤 간섭도 받지 않을 것이고 외부의 어떤 도움도 받지 않을 것이다. 이 아이는 나만의 것이다. 내가 에스트레야이니까. 이 아이는 나의 영속성, 나의 본질이다(174).
주술사의 권력은 가르사와의 관계, 그가 자행하는 폭력, 피라미드의 건설 등을 통해 드러나지만 그 권력을 완성시키는 것, 그러한 표상을 통해 드러나는 권력이 아닌 그 자체로 절대적인 권력이 되는 것은 자아생식의 성공이다. 주술사는 세 번째 고환으로서 에스트레야(Estrella)를 내부에 가지고 있으며 에스트레야와의 결합, 즉 자아생식을 향해 나간다.
이처럼 주술사가 에스트레야와 자웅동체라는 점과 자아생식을 추구한다는 점이 이 작품의 결정적인 요소로 여겨지는데, 권력가이자 실존인물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한 주술사의 몸 안에 여성을 삽입시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반적으로 남성의 몸으로 대표되는 정치권력을 여성 신체로 형상화 하는 것은 일종의 전략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가장 간편한 해석은 권력을 절대화하기 위한, 또는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려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을 채워주는 보조물로서 여성성(에스트레야)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 방식은 여성의 몸과 여성성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국가를 몸에 비유하여 근대적인 정치적 몸(the body politic)을 구성함으로써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유아적 열망”(Conboy, 106)을 나타냈던 것처럼 주술사도 자기충족적인 존재가 되려는 열망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여자들? 왜 내가 여자가 필요하겠어? 내 안에 여자가 있는데. 나는 완전해. 나는 거울에서 나를 찾을 이유가 없어(32).
또는 생식과정에서 생물학적으로 배제되는 남성이 갖게 되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남자가 낳은 아이”(Grosz, 94)에 대한 갈구 정도로 읽힐 것이다.
그러나 채찍에 등장하는 자웅동체의 주술사는 서구철학 전통에 내재되어 있는 여성혐오나 기피증과 다른 맥락에 위치지울 수 있다. 먼저 주술사는 여성성을 남성성과 대립시킴으로서 궁극적으로 하나의 성으로 단일화시키는 관례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작품의 종반에 이르러 출산(재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은 여성의 신체 형상으로 변화하면서 동시에 남성의 껍질을 벗는 과정이다.
주술사의 몸 위에 순서대로 흙을 올려놓는다. 봉긋 솟아오른 아주 아름다운 유방을 빚어내면서-하나씩 순서대로-그의 몸 위에 흙을 바른다. 그리고 가르사는 진흙을 가지고 천천히 아래쪽으로 그의 형상을 빚는다. 눈에 띄는 풍만한 엉덩이와 가느다란 허리, 에스트레야를 돋보이게 하는 음부, 바짝 달아오른 허벅지, 뒤틀린 종아리. (. . .) 주술사가 춤을 추자 여자 형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조금씩 마른 점토 조각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의 체모와 남자의 꺼칠꺼칠한 부위가 조각에 붙어 떨어져나갔다(225-226).
그리고 주술사는 이제 성의 개념을 초월한 Le Bruj가 된다. 그리고 출산을 준비하는 에스트레야는 점점 부풀어간다. 에스트레야가 부풀어갈 수록 본래의 에스트레야와 주술사의 언어적 분리도 사라져간다. 더 나아가 아들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또 하나의 ‘나’이다.
Yo seguiremos creciendo, seré́ inconmensurable(246).
Puedo regodearme en toda mi capacidad de completud: completo soy, completa, completito. Padre madre e hijo soy,(. . .)”(256).
하나의 개체 안에 복수이자 단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몸뿐이다. 주술사가 더 이상 성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하더라도 그 몸은 여성 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여성 몸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또 다른 요소는 작품 초반부터 주술사와 오버랩 되는 구멍, 개미, 진흙, 늪, 피의 이미지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코디언은 개미들이 우글거리는 모습을 연상시켰다(13).
늪의 표면은 번쩍이는 검은 유리와 같다(36).
어렸을 때부터 나는 질퍽거리고 따뜻한 진흙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 발을 담그려고 한다면 무릎까지 빠질 것이다. 단단한 바닥이 없는 수렁이다(47).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흐름을 원한다. 협곡도 소용돌이도 없는 피의 강, 번쩍이고 장엄한 강, 강의 흐름을 막고 있는 어떤 평화의 둑이라도 휩쓸어버리기 위해 언제나 범람하는 강(215).
우글거리고 찐득거리고, 습한 점액은 남성들에게 오랜 혐오와 두려움을 안겨준 여성의 질의 이미지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비체(the abject)라는 용어로 눈물, 침, 오줌, 토사물, 질 분비물 등을 지칭하는데 이것은 오이디푸스 단계를 거친 깨끗하고 합법적인 몸이 거부하는 전복의 장소이다. 더구나 이러한 점액질은 “만지는 자의 주체성도 아니며 만져지는 자의 객체성도 아니다. 그것은 주체성과 객체성 사이의 거리유지가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비결정성이다. 점액질은 통제를 벗어나 있다. 즉 만지는 손이 만짐을 당할 때처럼 자발적으로 빠져나가는 그런 형태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통제를 벗어나 있다. 점액질은 한 손이 다른 손을 움켜지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히 만지는 것/만져지는 것 사이의 비결정성”(Grosz, 227)을 표현한다. 단단하고 경계가 분명한 남성의 몸과 달리 이러한 여성 몸의 이미지는 공포를 가져온다. 여성의 몸은 깨끗하지도 않으며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뒤쳐진 문명화되지 못한 몸이며 그래서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점액질 상태로 표상된다. 통제되지 않는 흐름에 대한 두려움이 여성의 몸 이미지이다. 주술사의 권력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남성화되어 있는 동시에 가르사와의 성관계를 통해 보다 확실히 성애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마력은 여성의 몸이 자아내는 공포에 의지한다.
즉 주술사에게서 드러나는 여성 몸의 이미지를 권력의 보조물이거나 그 권력에 대항하는 것으로 의미화하는 것은 단편적인 해석에 머무르게 된다. 채찍에서 나타나는 여성성은 남성성에 종속되어 있는 관습적 구도 안에서 읽힐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남성지배에 대한 투쟁이라는 초기 페미니즘의 구도를 반복하고 있지도 않다. 어느 경우든 여성성과 남성성은 이항대립관계에 놓이게 되지만 주술사를 통해 구현되는 섹슈얼리티에는 젠더가 괄호에 묶여 있다.
III.. 나가며
채찍에 대한 일반적인 비평은 아르헨티나 정치소설과 프랑스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로페스 베가를 어떤 글쓰기 방법을 통해 보여주느냐가 그러한 비평 사이에 적당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여성 몸과 관련된 이미지에 대해 제안하고자 하는 하나의 해석은 주술사의 섹슈얼리티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읽어내는 방식이다. 3개의 고환을 가진 주술사, 에스트레야라는 남성성 속의 여성, 개, 늑대, 딱따구리로 변하는 가르사, 늪지의 왕국, 보름달이 뜨는 날 피라미드에서의 축제, 부풀어오르는 에스트레야 등의 장면은 무소불위의 권력가 로페스 베가를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준다. 절대 권력자인 로페스 레가를 형상화한 주술사는 음울함과 공포, 주술사로서의 마력적인 분위기를 안겨주지만, 동시에 현대적 인물을 주술사로 설정한 것 자체가 정치소설로서 주제의 무거움을 덜어낸다. 즉 채찍은 주술사가 표상하는 인물을 비난해야한다는 윤리적 무게를 강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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