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권을 사기 위해 돼지저금통에 한푼 두푼 모았던 추억을 기억하시나요?
이제는 아련해진 추억, 낭만과 아련한 추억이 함께 깃든 전주헌책방골목으로 안내합니다.
독서라는 취미와 거리가 멀었던 어릴 적. 그런 저에게 '책의 즐거움'을 알려준 소중한 기회가 있었습니다. 때는 중학교를 다닐 무렵. 교과서를 잃어버려 서점에 가 새 책을 구입해야겠단 생각을 가지고 있던 때. 친구로 부터 솔깃한 정보를 얻게 됩니다. 그때 처음 접하게 된 전주의 헌책방들. 가격도 저렴하고 또 잘만 고르면 정리가 아주 잘 된 책을 얻을 수 있다길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아직은 전주 길도 잘 모를 때. 어렵게 물어물어 지금의 '동문네거리길' 전주의 헌책방 골목에 도착했습니다. 전주의 대표서점 '홍지서림'도 있고 골목 좌우에는 많은 헌책방들이 있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한 헌책방에 들러 어렵지 않게 제가 원하는 책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몸의 움직임도 그리고 눈동자도 멈추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책은 읽기 싫었어도 꼬박꼬박 도서관에 들러 자리를 잡고 앉아 읽던 만화 삼국지. 그 삼국지 책이 눈 앞에 펼쳐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리고 그 옆에는 다른 삼국지 책들... 한권으로 읽는 삼국지. 그리고 여러 시리즈 삼국지들. 책을 꺼내 보니 얼마 되지 않던 용돈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던 금액. 그날 저는 한권으로 된 삼국지를 들고 나왔습니다. 때는 조금 묻어있지만 중학생에게도 부담없는 가격과 무엇보다도 책의 재미!
그날 책 냄새 풀풀 나는 그 책 한권으로 저는 책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월의 흔적만큼 변화한 전주헌책방골목
시간은 흘러 2011년 가을. 지금의 동문 네거리는 세월의 흔적만큼 거리도 많이 변했습니다. 전주에는 많은 대형서점들이 들어섰고, 또 전주의 헌책방들은 쓸쓸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독서의 계절. 다시금 책의 즐거움을 얻고자 책, 역사 그리고 추억이 있는 그곳을 찾았습니다.
지금의 동문네거리길. 우리에게는 홍지서림 골목으로 더 알려진 길 입니다. 주말이면 사람으로 북적북적 했던 골목은 지금은 약간의 허전함을 느끼게 하네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많은 헌책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터 하나 둘씩 문을 닫고, 그곳은 다른 가게가 문을 열고, 지금 이곳에 헌책방은 4곳 정도가 전부입니다.
일요일에도 문을 열고 있는 헌책방들. 몇 곳 남아있지 않지만 아직도 책을 필요로 하는 손님들을 위해 문을 활짝 열고 있는 그곳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수 많은 책들과 책 냄새가 이곳이 헌책방이란 곳을 알려줍니다. 지금의 대형 서점들을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지런히 정리된 책들과 눈에 잘 띄게 만들어둔 베스트셀러 공간이 있지만, 헌책방은 헌책방만의 독특한 정리방법. 그리고 같은 책이라도 책 한 권 한 권이 다른 사연과 추억을 남고 있는 차이가 헌책방만의 매력을 풀풀 풍기게 합니다.
헌책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 세가지!
그 첫 번째는 바로 눈치 볼 것 없이 보고 싶은 책을 마음 것 봐도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서점에서도 새 책을 마음껏 볼 수는 있지만 책이 포장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고, 또 새 책이라 더럽혀질까 조마조마하며 책장을 넘겨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헌책방에서 그런 걱정이 필요 없습니다.
한번쯤은 모두 사람의 손때를 타고 온 책들. 그 책들이 내 손길을 한 번 더 탄다 한들 오히려 그 책의 역사에 한 줄을 더 긋는 일이 아닐까요? 더욱이 헌책방 사장님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크게 반겨주십니다. 책을 사고팔고는 나중문제! 우선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찾는 다면 더 이상 손님, 주인이 아닌 친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바로 저렴한 가격! 헌 책방에서는 보물찾기를 하듯 눈을 잘 비비고 찾아보면 새책과 다름 없는 책을 발견하곤 합니다. 한마디로 횡재한 날이죠. 하지만 책이 너무 새것이라 가격이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새 책 같아도 가격은 그 반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책들은? 당연히 반 가격보다 더욱 저렴하겠죠! 반에 반도 안 되는 가격들! 지갑사정 어려운 학생들에게 더욱 큰 묘미가 될 것 같습니다.
다음 세 번째. 없는 게 없는 보물창고! 헌책방은 말 그대로 보물창고 입니다. 유심히 잘 찾아보면 새 책을 찾을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신기한 책들을 찾을 수도 있죠. 서점에 가면 깨끗하고 새로 나온 책들을 볼 수 있지만, 헌책방은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절판이 된 책도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제목이지만 왠지 낯선 표지. 바로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입니다.
지금은 생소한 가로줄로 적힌 토지. 이 책 자체가 바로 책의 역사, 우리의 역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헌책방은 많은 보물, 우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아! 저를 책의 재미로 이끌었던 삼국지도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비록 그 때 구입한 책과 다른 책이지만 한권의 책을 읽고 그 책을 떠 올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 참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헌책방의 작은 공간은 책도 있고, 사람도 있고, 추억과 역사도 있는 곳이었습니다.
30년간 헌책방 운영한 '달인'을 만나다
올해로 30년 째 헌책방을 지키고 계시는 기용석 사장님을 만나뵈었습니다.
사장님의 첫 이야기는 아쉬움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과거에는 많은 헌책방이 있었고 또 찾는 사람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해 섭섭하다고 하셨습니다. "전에는 헌책방이 많았지~ 사람도 많았어! 그런데 지금은 봐. 나까지 해서 넷 밖에 없어~ 요즘은 힘들어"
특히 학생들의 발길이 끊어졌다고 하십니다. "전에는 학생들이 많았어. 교과서도 많이 사러오고 문제집도 사러오고, 그런데 지금은 교육과정도 바뀌고 해서 책도 바뀌고, 또 헌책은 잘 안 써. 그래서 애들이 안와"
그래서인지 간혹 오시는 손님들을 더욱 반기십니다. 지금의 손님들은 주로 소설을 많이 찾는다고 하십니다. 헌책방에 들러 책을 사거나 팔지는 않고 구경만하고 가는 손님들이 많지만 그런 손님들도 사장님은 소중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헌책방은 책을 사고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사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라고 하시네요.
전주의 헌책방들의 경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 시대. 비싼 게 좋고, 빠른 게 좋고, 새것이 좋기도 하지만 가끔 소중한 걸 흘려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가는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추억할 수 있고,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고, 함께 나눌 추억이 남아있는 곳. 높고 푸른 가을 하늘 날. 연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그리고 가족과 함께 헌책방 나들이 어떨까요? / 조중현 전라북도 블로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