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휘중 교수
경희대학교병원 종양혈액내과
재생불량빈혈은 골수에 조혈모세포가 없어지는 병으로 조혈모세포로부터 분화되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혈구가 감소하게 된다. 병의 발생에는 면역기전이 관여한다고 생각되며, 골수검사로 진단한다. 재생불량빈혈의 치료는 혈구감소에 따른 증상과 합병증을 예방 치료하는 지지요법과 골수 기능 회복을 목표로 하여 혈구감소 자체를 근원적으로 치료하는 근본요법으로 나눌 수 있다. 지지요법은 적혈구, 혈소판, 백혈구 감소에 대한 치료로 나눌 수 있다. 근본요법은 조혈모세포이식, 면역억제치료, 그밖의 치료로 나눌 수 있다.
적혈구 감소, 즉 빈혈 증상은 수혈로 치료한다.
수혈은 빈혈 수치에 따라 하기보다는 환자의 증상과 상태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면역억제치료나 조혈모세포이식 때는 대개 10 g/dL 이상, 적어도 7 g/dL 이상을 유지함이 보통이나, 만성적 경과를 보면서 장기간 치료할 경우는 장기간 수혈의 합병증을 우려하여 환자의 증상에 따라 시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대개 젊은 사람들이 잘 견디는 편이나, 노인의 경우 혈관이 좁아진 증상(뇌일혈, 손발저림/아픔 또는 협심증)도 잘 나타나고 젊은 사람만큼 견디기 어렵다. 수혈을 많이 하면 쳘분이 축적되어 간, 심장, 피부, 췌장, 고환 등에 문제를 일으킨다. 과거 주사제밖에 없던 철분결합제제가 먹는 약으로 개발되어 사용 중이지만, 철분 축적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므로, 수혈을 무분별하게 해서는 안된다.
혈소판 감소에 대한 지지요법은 대개 혈소판수혈로 해결한다.
혈소판수혈도 혈액형을 맞추어 하기는 하지만, 혈소판에는 ABO혈액형 항원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 혈액형에 관계없이 수혈할 수 있으며, ABO 항체가 없는 AB형 혈액을 선호한다. 혈소판수가 심하게 감소하면 대개 피부, 점막 등에 출혈이 생긴다. 점막의 심한 출혈, 망막출혈, 두통 등은 심각한 출혈의 가능성을 의미하므로 혈소판 수혈을 하게 된다. 가장 우려하는 출혈은 뇌출혈이다. 뇌출혈 발생 후 혈소판 수혈을 하여도 이미 발생한 출혈의 후유증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미리 혈소판 수혈을 하여 이를 방지한다. 혈소판수가 20,000/uL 미만이면 손상 없이 저절로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므로 혈소판수 20,000/uL 이상이 유지되도록 수혈하고, 수술이나 천자술 등 시술을 할 때는 해당 시술에 필요한 만큼 혈소판을 수혈하여 수치를 올리는 것이 이상적이나, 그 수치 이하에서도 출혈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또한 혈소판 수혈은 많이 할수록 혈소판에 대한 항체 발생으로 혈소판 불응화(혈소판 수혈을 해도 혈소판수가 올라가지 않는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투여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혈소판 수혈에 대한 원칙은 병원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외국에서도 병원마다, 그때그때 처한 상황마다 달리 적용하곤 한다. 대개 면역억제치료나 조혈모세포이식을 하는 중에는 20,000/uL 이상을 유지하도록 하나, 장기간 지지요법만으로 치료중인 경우는 10,000/uL 이하라도 출혈경향이 있을 때만 시행하곤 한다. 혈소판 감소증이 있을 때는 자연출혈을 유발시키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혈압을 잘 조절하고, 심한 기침이나 변비로 복압을 올리는 일도 없게 하며, 화내는 일도 삼가하도록 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배에 힘주어 갑자기 일어나지 않게 한다. 아스피린이나 비스테로이드소염제 등 혈소판기능을 저하시키는 약제사용은 절대 금한다. 너무 뜨거운 것을 먹다가 데어서 입 속에 출혈성 물집이 생기게 하지 말아야 한다. 샤워 때도 피부에 손상이 생길 정도로 해서는 않된다. 이는 감염 방지에도 필요하다.
재생불량빈혈에서 백혈구감소는 대개 과립구 감소를 의미하며, 림프구 수는 정상인 경우가 많다.
과립구는 탐식작용으로 미생물 등을 제거하고 염증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과립구가 부족하다는 것은 군대가 없는 나라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과립구가 심하게 감소하면 세균이 침투해도 염증을 일으키지 않아 겉으로 보아서는 별로 붓지도 않고, 흉부X선에도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자체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세균과 진균(곰팡이) 감염이 주로 문제가 되며, 정상인에서는 문제되지 않던 균들도 병을 일으킬 수 있다. 과립구감소증 환자의 지지요법의 기본은 감염으로부터 예방하는 조치로 역격리를 시행하는 것이다. 역격리란 전염병 환자를 격리하여 환자의 병원균이 다른 사람에게 퍼지는 것을 막는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면역억제 환자를 격리하여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에 있는 병원균이 환자에게 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대개 환자를 깨끗이 소독한 일인실, 더 이상적으로는 무균실에 둔다.
실제 격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료진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환자를 만나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이다. 그밖에 마스크를 쓰고, 신을 갈아 신거나 덧신을 신고, 가운을 갈아입고, 머리에 캡을 쓰고, 환자는 피부 및 구강 위생에 특히 주의하여 소독액을 사용하고, 멸균되지 않은 음식물을 삼가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조치의 강도는 예상되는 과립구감소의 정도와 기간에 따라 달리한다. 과립구수 500/uL 이하면 격리를 시작함이 보통이나 그 전이라도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격리하는 것이 좋겠다.
격리에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되므로, 사실상 환자의 향후 치료 방침도 격리 수준을 결정하는데 고려하게 된다. 항생제를 예방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개 그 효과는 제한적이어서, 과도한 전신적 항생제 사용은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일단 열이 나는 등 감염의 징후가 있으면 가능한 빨리 가검물 채취 후 항생제를 주사로 투여해야 한다. 중증 과립구 감소 환자가 집에서 열이 나는 경우는 응급실을 통해서라도 입원하여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이 안전하다. 이때 사용하는 항생제는 병원마다 해당 환경을 고려하여 결정하게 된다. 과립구 감소의 지지요법으로서 과립구 수혈의 효과는 적혈구, 혈소판과 달리 제한적이다.
최근 과립구 공여자에게 약을 주어 과립구 수를 증가시킨 후 이를 페레시스로 얻으면 과거보다 많은 수의 과립구를 얻을 수 있어 이를 이용한 과립구 수혈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그 효과가 일률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현재로는 예방적 과립구 수혈의 효과는 인정되지 않고 있어, 항생제 치료에 듣지 않는 확진된 감염에만 시행하여야 하고, 시행할 때는 충분 량, 충분 기간 시행할 각오를 해야 한다.
재생불량빈혈의 근본요법은 최근 수년간 크게 변한 것은 없는 편이다.
혈소판수 20,000/uL 이하, 과립구수 500/uL 이하, 그물적혈구(망상적혈구) 1% 이하 중 2가지 이상을 만족하는 중증 재생불량빈혈은 수혈 등 지지요법만으로는 예후가 나빠서 적극적인 근본요법이 필요하다. 골수에 조혈모세포가 없어지는 것이 재생불량빈혈의 병인이므로, 조혈모세포이식은 가장 이상적인 치료로 생각되어 왔다. 최근의 HLA일치 혈연간 동종조혈모세포이식 성적은 80%에 가까운 완치율을 보고하고 있다. 그간의 많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조혈모세포이식의 합병증인 이식편대숙주병, 생착실패 등은 여전히 문제가 된다. 과거 동종골수이식 후 자신의 조혈모세포가 회복되는 사례와 여러 임상적 실험적 근거에서 재생불량빈혈의 원인이 면역기전에 의한 조혈기능 억제라는 것이 확인되어 면역억제 치료를 시행하였으며, 실제로 항림프구글로불린(ALG) 또는 항흉선세포글로불린(ATG)과 싸이클로스포린을 병용 투여하면 70% 가량에서 반응을 보여 동종조혈모세포이식과 성적이 비슷함을 보고하고 있다.
이때 치료제가 말 또는 토끼의 혈청이므로 혈청병이 발생하고 이를 치료 예방하기 위하여 스테로이드를 같이 쓰는 것이 보통이다. 조혈모세포이식은 이식 결과 완치를 가져와서 혈액소견이 정상이 되는 반면 이식편대숙주병 등 합병증을 감수해야 하며, 이들 합병증은 환자 나이 증가에 따라 증가한다. 면역억제 치료는 이러한 합병증의 위험은 감수할 필요가 없지만 치료 결과가 완치라기 보다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증 수준으로의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장기간 관찰하면 다른 클론 질환( 한개의 조혈모세포 이상으로부터 유래하는 질환), 즉 발작야간혈색소뇨증, 골수이형성증, 드물게 백혈병으로 이행할 수 있다는 점이 한계다.
기타 치료로는 남성호르몬제, 조혈촉진인자, 스테로이드 등이 이용되기도 한다.
경증인 재생불량빈혈은 남성호르몬유도체인 옥시메톨론(아나드롤) 등의 제제 투여로 골수 활성화에 도움이 되기도 하여 빈혈이 개선된다. 그러나 반응이 느리며 (3-6개월) 간기능 이상, 남성화 등의 부작용을 예상해야 한다. 간혹, 과립구감소증에 대하여 과립구 생성을 촉진시키는 조혈촉진인자(G-CSF 등)를 사용하면 과립구수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효과가 일시적이고 다른 혈구 증식은 감소시킬 수도 있어 전체적인 치료 계획을 고려하여 제한된 경우에만 사용한다. 빈혈에 대한 에리트로포이에틴 투여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때로 이러한 약제들을 병용하는 치료도 시행되나 일관된 효과를 입증하지는 못했다고 생각된다.
재생불량빈혈의 치료는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환자 질환의 정도와 기간, 수혈 정도, 나이와 일반 상태, 적절한 조혈모세포공여자가 있는 지, 이들이 혈연간인지, HLA가 어느 정도 맞는 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치료 방침을 결정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젊은 중증 환자에게 HLA일치 혈연 조혈모세포공여자가 있는 경우는 가능한 빨리 이식을 하게 되며, 나이가 많거나 적절한 공여자가 없는 경우는 우선 면역억제치료를 하게 된다. 면역억제치료에 대한 반응을 본 후에 조혈모세포이식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이때 기준이 되는 나이는 결정된 바가 없으며 병원마다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조혈모세포이식이나 면역억제치료를 하는 동안에는 지지요법 또한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조혈촉진인자 투여 등 용이한 치료를 우선하여 근본요법을 늦추거나, 수혈을 불필요하게 시행하여 조혈모세포이식 결과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좋지 않다. 따라서 진단 즉시 이러한 치료 경험과 최근 동향을 알고 있는 전문가와 상의하고, 병의 기전, 치료 결과 등을 심도있게 상의하여 상황에 맞는 치료 원칙을 결정한 후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