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절도범은 새 차만 노립니다.

[장광일]

차 절도범은 새 차만 노립니다.

난 서울 나갈 때 차를 끌고 가지 않는다. 교통도 복잡하고 주차 할 곳이 마땅찮기 때문이다. 언젠가 대학로에 연극하는 제자들을 만나러가서 세 시간 남짓 주차했는데 5만여 원을 지불한 적이 있다. 이거 뭐 전기요금도 아닌데 누진요금이라는 개뿔 같은 소릴 듣고 황당, 기분 휘청 이었다.

하여튼 그런 저런 이유로, 대중교통이 편하고 돈 적게 들고 시간약속 용이해서 차는 지하차고에 놔두고 다닌다.

그러던 어느날 홍대 쪽에 볼일이 있어 차를 몰고 나갔다. (사실, 지금부터 나의 못 말리는 건망증은 차를 안타고 간걸로 되있다.) 일을 본 후 술 한잔하고, 자정이 넘었기에 언제나처럼 택시로 귀가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작업실에서 일을 하며 몇 날을 지냈다.

오피스텔에서 집까지 걸어 20분 정도이니 식사는 운동 삼아 걷고, 특별히 멀리 갈일 아니면 차 운행을 안 하기에 어떨 땐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그냥 지하 주차장에 파킹해 놓은 상태로 지낸다.

차는 홍대 쪽 어느 주택가에 붙혀놓고, 지하 차고에 있는 걸로 착각한 채 거의 일주일 후쯤, 정말 급한일이 터졌다. 작품 헌팅 때문에 학수고대 기다리던 연락이 와 그곳 지방 공무원과 약속을 하고 키를 챙겨 지하로 뛰어갔다.

어렵쇼? 차가 어디 갔지? 안보여... 내 차는 흔하지 않은 자주색이기 때문에 얼른 눈에 띠는데 넓은 주차장을 다 뒤져도 안 숨어 있었다. 아차 싶었다. 주차실 아저씨들에게 자주색 내차 못 봤냐고 물었더니 몇일 전 부터 안보였단다. 이런 제기랄 어떻게 된거야? 여긴 cc카메라도 없단다. 순간, 나의 작가적 예리한 판단은 누가 훔쳐 갔다는 결론으로 옮겨졌고 즉시 경찰에 신고부터했다. 자차보험을 들어 놨기에 큰 걱정은 안 들지만, 빨리 신고 하면 그만큼 빠르게 보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5분 거리에 경찰서가 있는데 3분만에 페트롤카가 대한민국 경찰 두명을 얹어 왔다. 유능한 경찰이 이것저것 묻는다. “아 여긴 감시 카메라가  없군요.” “차 절도범들은 새 차만 노립니다. 뺀지 얼마나 됐습니까?” “바꾼지 5개월 정도 됐는데요” 차종은? 번호는? 대략 잃어버린 날짜는? 주차 경비원들에게도 이것저것 묻더니. 그 자리에서 무전기로 전국수배를 내린다. 하~ 옛날 화성 연쇄 살인사건 때의 대한민국 경찰이 아니었다. 아주 신속했다.

그 자리에서 사건접수 전국수배... 맘에 들었다. 더불어 보험사에도 미리 연락을 취하란다. 그래야 제때 혜택 받는다고... 당연히 신고했다. 보상 받을 때 네비는 되나? 또 중요한 게 뭐가 들었더라?

어쨌든 나는 차를 홍대에 갖다놓고 까맣게 잊은 체 도난신고를 해 버린 것이다. 주인 잘 못 만난 내 차는 졸지에 절도 차가되어 전국 도로망 눈에 쌍라이트를 켜고 찾는 수배 차 신세가 되고만 것이다.

어느 놈인지 참으로 그 절도범 겁 없는 놈이다 길에 세워둔 차도 아니고 차고까지 기어 들어와 업어가다니... 면식범이 분명하다. cc카메라가 없다는 걸 알고 범행을 저지른 거다. 난, 일하면서 온갖 추리를 다 상상했다. 보험사에서도 찾아왔다. 사실대로 말했다 어떤 넘이 훔쳐갔다고. 혹시 차를 다른 곳에 두고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런 예가 많다면서... 난 펄쩍뛰며 그런 일 없다고 했다. 주차하는 곳은 항상 지하 차고이며 서울은 안 끌고 나가고 지방에 갈때만 운전하는데 그럼 내가 지방에 놔두고 왔겠냐... 지방에 간 적이 없다... 정말 한점 티없이 사실대로 얘기했다.

그렇게 자세히 설명했음에도 금테 안경 땜에 더 얍삽하게 보이는 보험맨은 자세히 생각해 보라고 하고 갔다. 젠장 이만큼 자세히 설명했는데 뭘 더 생각해? 하여튼 보험사 넘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틀리다니까...계약때는 쓸개도 빼 준다고 얼르고, 막상 지불 할 때는 이 핑계 저 핑계로 보험료를 깍아대고...

그러면서 경찰이 다녀가고, 보험사 전화오고, 지하 경비 아저씨들 미안해하고, 차 없는 불편함에 짜증까지 내면서 열흘정도 흐른 후 다시 홍대쪽에 갈 일이 생겼다.

여느때처럼 버스로 가서 목적지에 들어가려는데 뭔가 머리를 스쳤다. 보름 전 이곳에 올 때 혹시 차를 가져오지 않았나하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느낌. 그래도 난 약간 익숙한 듯한 골목을 더듬어 올라갔다. 그리고 얼굴에 소름이 돋았다. 기차처럼 늘어선 차 사이 먼지를 뒤집어 쓴채 구부정하게 엎드려 있는 저 놈의 자주색... 이런 빌어먹을...그건 내차였다. 키를 안 가져 왔으니 시동을 걸 순 없었지만, 어쩔까나 확실한 내 차였다.

곰곰 범죄의 재구성을 해보니, 건망증. 이넘의 못 말리는 건망증이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해 버린거다.

신속하고 유능한 대한민국 경찰에게, 얍삽하지 않은 보험맨에게, 지금도 미안스런 경비 아저씨들에게 이 대책 없이 황당한 건망증을 어렵게 어렵사리 설명하고 난 지금도,

이 건망증은 금붕어 똥처럼 끈질기게 붙어 다닌다. 병원에 약 타러가서 그냥 오는가 하면, 제자들과 호프집가서 거나하게 푸고나니 지갑이 행불, 오죽 잘 잃어버리면 안경 줄을 메달고 다니겠는가! 이러다 필시 마누라도 잃어버리지 싶다.

[달맞이꽃]

ㅡㅡ;;;아이고..쌤..;; 이건 거의 병 수준인데요;;;;;

[올드피아노]

그래도 자택은 잊지 않으시겠죠? ..ㅎㅎ 잘 읽었습니다

[향유인간]

저는 원래 건망쯩은 없는데....대신 한번 기억안나면 평생...^-^*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살테에욧!!까르르...

[엠디큐]

ㅎㅎㅎㅎ 역시 내공이 느껴지네요~한참을 웃으며 읽었습니다~ㅎㅎㅎㅎㅎㅎㅎ

[해바라기씨]

나 어떡해요...배아파요.....잘 읽었습니다....ㅎㅎㅎ하ㅏㅏㅏㅏㅏ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