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작년 12월 27일 광화문 현판을 한자로 달기로 의결했습니다. 회의자료를 보면 4개 합동분과위원회(사적분과 노중국 위원장 등 7명, 건축분과 박언곤 위원장 등 8명, 동산분과 김리나 위원장 등 7명, 근대분과 김정동 위원장 등 7명)를 열어 모두 29명(언론보도에는 28명)이 참석하여 한 사람만 반대하고 나머지는 모두 한자(임태영 글씨) 현판으로 다는 것을 의결했다 합니다. 보도기사에는 문화재위원 대부분이 “한글 현판은 문화재 복원 정신과 맞지 않는다.”라며 “광화문 현판은 경복궁 복원이라는 전체 틀에서 제작돼야 하므로 중건 당시 임태영 글씨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글단체들은 2005년부터 한글로 달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문화재청은 한자 현판을 달아 2010년 광복절에 공개했습니다. 그 뒤 석 달 만에 현판에 금이 가 현판을 다시 만들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에 한글로 할 것이냐 한자로 할 것이냐는 문제가 다시 불거졌습니다. 이에 문화재청은 토론회, 여론조사 등으로 의견을 모아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2012년 4월 17일 언론재단건물에서 열린 공청회는 뜨거웠습니다. 주제 발표할 때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상대 쪽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등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2차 토론회는 2012년 11월 7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렸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 조사에서는 58%가 한글로 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현판을 처음 달 때에는 복원 원칙 문제였는지 모르지만, 현판에 금이 가서 현판을 다시 달기로 한 때부터 복원원칙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한글 단체는 “광화문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닌 이 시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시대정신에 맞게 한글로 달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문화재청은 이런 이유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의견 모으기에 들어갔을 겁니다. 그렇다면 시대성을 판단할 있는 사람도 참여했어야 정상입니다.
의결에 참여한 4개 분과를 살펴보면, 사적분과는 사적지나 기념물을 다루면서 주로 고고학이나 건축역사를 다루는 사람이, 건축분과는 건조물을 다루면서 주로 한국건축사를 전공한 사람이, 동산분과는 고문서 등 고고 자료를 다루면서 주로 서지학이나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이, 근대분과는 근대 시설물을 다루면서 주로 역사와 건축설계를 전공한 사람이 위원입니다. 이들 4개 분과 합동회의에 참여한 위원에는 한글 단체가 요구한 ‘시대성’을 고려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토론회에서 뜨겁게 논리 싸움을 벌이고, 몸 싸움까지 번질 상황에 갈 정도로 관심이 높았습니다. 12월 27일 회의에 참여한 위원 중에 토론회에 거서 찬반 양쪽의 논리, 여론조사 결과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습니다.
보도에는 한자 현판을 27명이 찬성하고, 단 1명만 반대했다고 합니다. 토론회에서 그렇게 찬반이 팽팽했고, 여론조사는 한글 현판이 더 높은 데 이를 판단할 문화재위원회에서는 단 한 사람만 한글 현판이 좋다고 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지금 한자 현판은 희미한 사진에 나온 글자모양을 보고 쌍구모본방식(글씨를 그대로 베낄 때 그 획과 자형의 윤곽을 가는 선으로 그린 뒤 그 공간을 색칠하는 방식)으로 만들었고, 앞으로 이런 현판을 또다시 만들 것이라 합니다. 이렇게 만든 것은 모조품, 말하자면 짝퉁입니다. 모조품을 만들어 달아도 진정한 문화재가 될까요? 이렇게 베껴 만든 글자에서 힘이나 품격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자랑스러워야 할 광화문이어야 하는데 쳐다볼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들까요. 지금 우리가 만든 광화문이 몇 세기 뒤에는 지금을 대표할 문화재가 되게 만들어야 할 텐데요.
뜨거운 논쟁, 공청회, 여론조사 등 힘든 과정에 비해 문화재위원회 의결 “심의결과(1건): 한자(임태영 글씨)로 한다.”는 너무 가볍습니다. 나라의 중요 결정이 거의 이런 식으로 결정될까요? 한글이냐 한자냐를 두고 국민의 관심이 뜨거운 만큼 결정 과정도 진지했을까요? 진지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결정하면 좋겠습니다. 감사, 행정심판, 행정소송이 그 길을 열어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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