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을 하고 전쟁터에 나가
고려군을 승리로 이끈 소녀이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고 대개가 설화 속에 전해져 온다.
설화에는 서민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많지만, 아주 사실에 무근하다
할 수 없고 설화의 기본인 서민정신이 이러한 소녀를 만들어 냈다는 것은
당시 여성들의 애국하는 모습의 또다른 표현으로 여겨진다. 고려가 조선에 비해
여성의 활동이 활발하였던 시기였던 만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여겨져
여기 소개 해본다.
설죽화의 본명은 알 수 없고 눈 속에 핀 푸른 대나무 꽃이라는 뜻에서
스스로를 그리 불렀다고 한다. 거란의 1차 침입 때 사망한 이관의 딸이라고 한다.
설죽화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외적을 무찌르기 위해 산에 들어가 무예를
익히며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거란의 3차 침입이 시작되고 설죽화는 남장을 하고
강감찬을 찾아간다. 그녀는 신분을 숨기고 강감찬 휘하에서
소년 선봉장의 직책을 맡는다.
설죽화는 산에서 익힌 무예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소년 선봉장의 이름을 드날렸다.
적군은 설죽화가 탄 백마만 나타나도 벌벌 떨 정도로 그녀를 두려워했다.
강감찬 군대의 눈부신 활약으로 적군들이 거의 섬멸되어 도주할 즈음 설죽화는
적을 쫓다가 가슴에 화살을 맞고 죽고 만다.
그녀의 사후 강감찬은 설죽화가 소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강감찬은 설죽화를 고려의 꽃이라 칭하고 임금에게 아뢰어 공신의
칭호를 내리게 하였다. 그리고 설죽화가 무예를 익혔던 자리에 사당을 지어
그녀를 위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