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돈오(頓悟) ①
【本文】
"어떤 법을 닦아야 곧 해탈(解脫)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돈오(頓悟)의 한 문[一門]만이 곧 해탈을 얻을 수 있느니라."
問 欲修何法하야사 卽得解脫고 문 욕수하법 즉득해탈 答 唯有頓悟一門하야 卽得解脫이니라. 답 유유돈오일문 즉득해탈
【講說】
불법(佛法)의 근본목표가 바로 생사해탈(生死解脫)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해탈에 이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서 범부중생(凡夫衆生)에게는 혼란을 야기 시키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8만 4천 법문으로 시설되어 있어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 이 문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저 문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근본적으로 어떤 법을 닦아야만 곧바로 쉽게 해탈을 얻을 수 있으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뜻에서 이 물음을 끌어온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진정한 해탈을 얻으려면 돈오(頓悟)라는 한 문(一門)에 의지해서 진여자성(眞如自性)을 바로 깨쳐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해탈(解脫)이란 일체 번뇌망상을 다 여윈 가운데서 구경각을 성취해야만 얻을수 있는 것이지 구경각을 성취하기 전에는 실질적인 해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인 해탈을 얻는다는 것은 돈오(頓悟) 즉 증오(證悟)가 되어야지 해오(解悟)가 되어서는 해탈을 얻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십지보살(十地菩薩)이 설법을 구름일듯하고 비 오듯이 잘하더라도 근본무명을 완전히 끊은 해탈이 아니니 구경각을 성취해야만 진정한 해탈이 되는 것입니다.
또 돈오(頓悟)하면 해탈(解脫)한다고 했으므로 돈오의 내용과 해탈의 내용은 똑같아서 돈오(頓悟)가 증오(證悟)이며 바로 구경각(究竟覺)인 것입니다.
【本文】
"어떤 것을 돈오(頓悟)라고 합니까?" "돈(頓)이란 단박에 망념(妄念)을 없앰이요, 오(悟)란 얻은 바 없음[無所得]을 깨치는 것이니라."
問 云何爲頓悟오 문 운하위돈오
答 頓者는 頓除妄念이오 悟者는 悟無所得이니라 답 돈자 돈제망념 오자 오무소득
【講說】
이것은 돈오의 근본내용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망념(妄念)을 없앤다는 것은 제8 아뢰야식의 미세망념까지 포함해서 모든 망념을 다 없앤다는 뜻입니다. 보통 우리가 생멸(生滅)적인 무심(無心)을 말해서 망념을 없앤다고 하는데 이것은 전체적으로 망념을 다 없앤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돈(頓)이라고 하는가 하면 '돈(頓)'이란 시간적으로 일찰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망념을 없애는 데 있어서 점차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단계적으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바른 법(法)을 알아서 시간적으로 일찰나간에 근본무명을 완전히 끊고 구경각을 성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적으로 여유를 두지 않고 눈 깜짝할 사이에 전체 망념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돈(頓)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얻은바 없다(無所得)'고 하는 것은 교가(敎家)에 있어서는 십지(十地)ㆍ등각(等覺)보살이라도 아직까지 공부의 자취가 남아 있어서 어느 경에서도 십지ㆍ등각보살을 무소득(無所得)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참으로 구경각을 이룬 것을 무소득이라고 하였습니다.
제8 아뢰야 근본무명을 끊고 십지ㆍ등각을 넘어서 구경각을 성취한 것이 돈오(頓悟)이니, 삽삼조사(卅三祖師)로부터 시작하여 천하 선종의 정맥은 구경각을 돈오라고 했지 그 중간의 해오(解悟)를 돈오라고 한 분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이 간단한 문귀에서 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_(())_
출처 : 성철 스님의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강설에서
【註】
삽삼조사(卅三祖師) : 卅은 서른 삽. 선종(禪宗)의 33조사(祖師). 인도의 28조와 중국의 2조 혜가(慧可). 3조 승찬(僧燦). 4조 도신(道信). 5조 홍인(弘忍). 그리고 6조 혜능(慧能)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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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_(())_
여기서 돈오의 경지에 가기 직전의 분들은 수행이 어느 정도된 분들이신가요?
단지 화두만 들었다고해서 돈오를 증득하는 건 이닐테니깐요.
화두를 들더라도 거기에 대한 공부를 했을테고 그 공부는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돈오는 견성해서 성불한다는 의미이나 이를 주장하는 분들이 확철대오해서 대각을 이루었느냐 하는 것은
제가 논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돈오라는 말이 생긴 것은 육조대사께서 시작한 것으로 압니다.
육조이후 확철대오했다는 분이 수백이 넘습니다. 그 확철대오하신 분을 부처님이라고 칭하는 분은 한 분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깨달았다고 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깨달은 내용과 다름이 없다 하면서도 이 분들이
스스로 부처를 자처한 적은 없다는 사실이고 후세의 모든 분들이 부처라 숭앙하는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부처님과 구분하여 조사라 할 뿐이지요.
공부를 한다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서 합니다. 알았다면 더 닦을 것이 없겠지요.
이것은 마치 어두운 방을 밝히려고 애써 방법을 찾다가 스위치를 찾아 스위치를 넣으면 오랫동안
어두운 방도 단박에 밝아지듯이 돈오도 그렇다고 합니다. 돈오가 있기까지는 무한한 노력이 있었겠지요.
노력없이 단박에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밝아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돈오입도요문론의 시작이니 열심히 공부해 갑시다. 감사합니다. _()_ _(())_
@백우 저는 컴컴한 방에 불을 밝혀서 단번에 방이 밝아진 돈오의 단계는
보살지의 1지에 해당하는 환희지 단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현량으로 깨달아야지만 환희지의 단계이지 비량으로 깨달았으면
자량도 가행도 단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량도 단계만 해도 엄청난 수행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건 단지 저의 견해일 뿐입니다.
고맙습니다_()_
@보현 제가 본의 아니게 대변인 같이 되었는데 죄송합니다. ^^
컴컴한 방에 불을 밝혀서 단박에 밝아졌다는 것은 돈오를 비유적으로 표현했을 뿐,
그 단계를 환희지라고 표현하시는 것은 여기서는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여기서의 돈오는 성철 스님께서 "제8 아뢰야 근본무명을 끊고 십지ㆍ등각을 넘어서
구경각을 성취한 것이다." 라고 설명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여기서 현량이나 비량, 자량위, 그런 단계를 뛰어넘은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계위에서 보살 50계위, 등각, 묘각 등 52계위를 설명을 읽으면
3아승지 겁을 닦아도 모자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여기서의 돈오는 그런 어마어마 한 것을 초월해 단박에 구경각에 이르는 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돈오사상을 공부해 보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_()__(())_
@백우 백우님!
잘 알겠습니다.
백우님과 저의 돈오에 대해서 많이 다른 견해로
이 공부에 접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한가지만!
저는 여기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강의에서도 간화선에서의 "단박에 깨닫는다"라는
단어가 적절한 표현인가 싶은게 의문이 들다 못해 어떤 때는
(꼭 사기치는 그런 말로도 고개가 걍우뚱...표현이 넘 심했나요...저의 솔직한 의문점 입니다.)
돈오에 대해서 제가 알고 있었던 돈오와 어떻게 다른지
그 의문점이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돈오에 대해서 공부를 해봅시다.
고맙습니다_()_
@보현 조계 정통이 돈오에 있는데 이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돈오돈수라 생각했습니다.
샛별과 마주한 찰나 그동안 수행하신 모든 것을 종지부를 찍고 일체종지를 깨달으신 무상정등각을 이루셨고
더 닦음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가의 주장은 이를 근거로 이루어진 것이라 보시면 이해가 제일 쉽지 않나 생각합니다.
삼아승지겁을 닦았다 해도 대각은 한 순간, 그 후로 더 닦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수많은 선사들의 開悟는 부처님의 대각과는... 제가 헤아릴 문제가 아니니 공부해 봅시다.
감사합니다. _()_ _(())_
삽삼조사(卅三祖師) : '卅'은 서른 삽.
처음에는 이 글자의 音과 訓을 몰라서 당황했죠.
'이십(二十)'이라는 말도 길다고 이것을 한 글자로 줄여 '입(廿)'이라 하지요. 스물 입.
아무튼 옛부터 글자 수를 줄이려고 애쓴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_()_ _(())_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앞오로 빠짐없이 함께 공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