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지름)1~14cm 90개의 플라스틱 공에 혼합재료 2008-2009
동그라미의 시학
글|로랑 헤기(Lorand Hegyi)·생떼띠엔느미술관장
한순자의 섬세하게 구성된 회화, 오브제 그리고 벽과 공간의 여러 설치작업은 연약하고 유연하여 마치 유기적이고 자생적인 식물처럼 보인다. 한순자는 이차원 또는 삼차원의 동그라미를 가지고 작업한다. 그 동그라미는 절대적으로 완벽하여 추상적 보편적이고 엄밀한 것으로 제시되기도 하고, 불규칙하고 불완전하여 일상적 실재적이며 즉흥적인 것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작품의 개별적인 요소는 항상 구체적이고 특수하며 다양한 변주 속에서 구현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동일한 원칙에 따라 착상된다. 이런 까닭에 한순자의 작품에는 생물학적 은유가 더 더욱 자주 적용된다.
따라서 한순자의 작품을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분리시키는 일은 다소 기만적이고 부적절한 처사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언제나 원칙상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아이디어와 착상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본 요소들이 마치 식물처럼 ‘자기 조직(self-contained)’된다는 사실은 모든 재료와 모든 가능한 차원과 다양한 공간적 상황을 통해 제시된다. 이것은 한순자의 작업 일반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창작 메커니즘과 형식 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왼쪽·〈무제〉(부분)
오른쪽·〈무제〉 알루미늄 커팅 1056장, 지름 159cm 종이콜라주 소마미술관 설치 장면
자연적 유기체로서의 동그라미
이차원과 삼차원을 넘나드는 한순자의 많은 작품과 설치작업을 따로따로 살펴본다면 어떤 조형적 모순을 감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형식적 어휘는 엄밀하게 강박적으로 제한된 외형을 지니지만 한순자 작품의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오브제들은 다종다양한 재료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순적인 감정이 발생하는 것은 식물적인 가벼움과 자연스러움을 뜻하며, 작품은 대립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오히려 유기적 근본적 생명적 조화의 인상으로 이어진다.
한순자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은 완전히 자율적이고, 우월하며, 자생적이고, 스스로 전개되고 보존되는 어떤 문화를 느끼게 된다. 그 문화는 기존의 다른 문화와 구별되는 하나의 대안적 성격을 지닌다. 그가 동그라미를 제외한 다른 어떠한 형태도 배제하는 형식적 제한은 결코 엄숙주의적인 태도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불순물의 제거, 한계 설정, 또는 완고하고 경직된 태도로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식물적인 특성을 분명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한순자는 이 식물성을 쉽고 자연스럽게 거의 순진무구하게 즐기듯이 바로, 여기, 지금 자신의 형태 속에서 고유한 창조물, 독특한 성과물, 다른 형태와 혼동될 수 없는 자신만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형태로 보여준다.
한순자는 ‘자기 보존’되는 생물학적 식물적 다양성의 맥락 속에서 의도적으로 하나의 미학적 논리에 따라 작업한다. 이처럼 물질에 대한 모든 실험, 공간에 대한 무수한 탐구, 다양한 재료와 기술을 펼치는 한순자의 작업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개념적 메커니즘의 잠재성을 변주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 작가가 사용하는 방법과 재료는 종종 놀라울 정도로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기본 체계를 손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한순자가 자신의 작품에 더욱 더 다양한 재료, 다양한 기술과 효과, 뜻밖의 상황을 구사하면 할수록 근본적인 개념적 메커니즘의 ‘일관성(cohenrence)’은 더욱 더 탄탄해진다.
한순자의 작품 구조는 무한정한 탄력을 지니고 있으며, 재료는 다양하고 유연하게 사용되어 작품의 근본적 구조는 한없이 변주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의 특징은 식물의 본성적 능력을 보여준다. 전시장 벽과 공간은 식물적 풍요로움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가장 다양한 사물, 이를테면 폐품에서부터 일용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인쇄물이나 공산품 등 무수한 일상 사물을 서로 결합시키며,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작품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펼쳐 보인다. 이러한 생물학적 식물적 다양성은 사용 가능한 재료와 사물이 있고, 기후가 적당해 상황이 허락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초목처럼 자연발생적으로 펼쳐진다.
한순자의 파리 아틀리에
가볍고 즐겁게, 솔직하고 자유롭게
한순자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는 아마도 바로 이러한 계획성의 부재, 유희적이고 가볍고 우월한 자발성, 편견없는 반위계적 관용, 솔직하고 즐거운 자유로움에 다름 아닐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언급해 두어야 할 점은 작품의 근본적인 구조적 메커니즘 때문에 작가는 자신의 일관성과 통합성을 결코 잃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메커니즘은 충분히 강력하고 섬세하고 일관적이어서 현상들의 가변성과 다양성을 뒷받침한다. 작가는 자신의 근본적인 작품 특징을 어느 하나도 위태롭게 만들지 않는다.
이러한 미학적 상황 속에서 한순자의 작품 본질에 관한 진정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한순자의 작업은 감성적 시학적 예술적 은유, 즉 유기적이고 자연적인 구조에 해당되는가? 여기서는 무한히 가변적이고 복합적인 요소들이 새롭고 미묘한 구성의 전개를 허용하는 하나의 체계 속에서 통합된다. 이러한 통합은 체계의 유연함, 관대함, 가변성, 이완성 덕분에 느긋하게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한순자의 작업은 현대에 감춰진 노스탤지어를 정확하고 신중하게 효과적인 팽창주의적 전략으로 실현하고 있는가?
다양한 재료가 지닌 자생주의적 향락, 즐겁고 발랄하며 분방한 자발성, 미묘한 뉘앙스의 시적 관능, 공간과 방법과 기술에 대한 느긋하고 자연스러우며 반위계적인 관계 등을 볼 때, 호전적이고 과장된 팽창주의적 전략은 분명히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호전적인 목적론적 전략’과 ‘미학적 자발성의 전복적 특징’ 사이의 대립 관계에 대해 질문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순자는 늘 새로운 재료와 적합한 공간적 상황을 추구한다. 그는 모든 발견된 오브제를 가지고 작업하며, 미리부터 뭔가를 선별하지 않고 미학적 기준을 들이대지 않으며 엄격한 계획이나 프로그램을 동원하지 않는다. 그의 태도는 선험적이지 않고 열려 있으며 위계에 반대하며 실용적이고 하찮고 평범하며 덧없고 유한한 사물들에 민감하다. 그는 작품 제작의 방법론적 원칙과 구체적 상황 사이의 가능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탐구는 자유롭고 열정적 개방적이고 겸손한 태도를 띤다. 그 제작 상황은 현실적이며 독특하고 무한히 가변적이며 복합적이다. 말하자면 한순자의 작업은 특정한 기본 요소들을 끊임없이 변하는 집합체 안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작가는 주어진 상황에서 물질적 조형적 요소들을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각각의 특수한 상황을 적절하게 결합하고, 다양한 요소와 개념적 방법론의 물질적 조형적 특수성을 드러낸다. 한순자는 다양한 접근 방법이 결합 혹은 융합되는 복합적인 과정으로 작품을 제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차별되지 않은 다양한 창작 과정의 공존을 시각조형적 방식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의 다양한 제작 과정은 현란하며 분방하고 개방적 관능적이고, 그 과정의 결합 방식은 가벼움과 장식적 취향을 유지한 채 전개된다. 그 방식은 방법론적인 일관성과무한한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생테티엔 미술관에서 작품 설치 중인 한순자
미학적 자발성의 전복
창작 에너지와 욕구, 자발성과 다양성을 골고루 갖춘 한순자는 얇은 종이나 나무 패널에 드로잉을 하고, 채색하거나 잘라낸 기본 형태로 회화를 제작하며, 여러 다양한 재료를 동원해 익숙하면서도 도발적인 느낌으로 가득 찬 오브제를 만들어 낸다. 그는 우리에게 만들고 모으는 모든 물리적 제작 과정을 충분히 보여준다.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는 선험적인 미학적 고려 없이 되는대로 모은 폐품 부스러기들과 일상 사물들을 하노버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 방 한 칸에 설치했다. 그는 진정한 조형적 가치를 창출했을 뿐만 아니라 연약함과 덧없음에 관한 반성의 시적 깊이를 통해 성찰적이고 신비로운 차원을 만들어 냈다. 슈비터스와 마찬가지로 한순자는 자신의 작업실이나 전시실에 동그라미 모양의 생장하는 식물 같은 설치작업을 펼쳐놓는다. 이러한 작업은 색상테이프 비닐봉지 바늘 등으로 강박에 이를 정도로 무한 반복 제작되는데, 그 형상은 달걀이나 둥지 또는 과일을 떠올린다. 메르츠(Merz)라는 수식어로 널리 알려져 있는 슈비터스의 작업에는 이전 미술의 고전 미학, 귀족주의, 형식주의에 반대하는 영웅적 반항심이 잠재해 있다. 슈비터스는 자연스럽고 분방하며 자발적 충동적 성격을 지닌 비예술과 하찮고 흔한 일상 현실을 작업에 도입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그는 우연히 모은 현실적 단편들의 시학―관습적이지 않은, 신선하고 참되며 감동적인―이 지닌 신비롭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인식시키고 지각시켜 주었다.
한순자의 작업은 절제되고 깔끔하며 즐겁고 관대하며 완전히 개방적이어서 아방가르드 같은 과장됨이 없다. 한순자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에게 전적으로 유연한 관점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그 전복적 자발성의 시적인 효과는 주어진 현실에 유연하게 개입하는 현대적인 모델을 환기시켜 준다.
왼쪽·2007년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장면. 〈Tension, balance〉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200cm 2006(왼쪽) 〈Sic Circles〉 캔버스에 아크릴릭 195×130cm 2006(오른쪽)
한순자 1952년 서울 출생. 1978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3년 파리로 건너가 1986년 프랑스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 졸업, 현재까지 파리에 거주하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1988년 파리 장-클로드 리차드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후, 2002년 밀라노 비스마라갤러리 2004년 서울 토탈미술관, 현대갤러리, 도쿄갤러리 2005년 부산 조현화랑, 2007년 생떼띠엔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2009년에는 서울 조현화랑과 상하이 번드18크리에이티브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 소마미술관의 〈작가재조명〉전(9. 17~12. 6)에서 대규모 전시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