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방하착(放下著)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착(著)은 그냥 붙은 글자로 아무런 뜻도 없다. 명령형인 "방하(放下)"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뜻으로 볼 때에는 일종의 사이렌트다. "방하(放下)"란 "버려라!"다.
석존(釋尊)께서는 29세 때 사회적 지위도 처자도 다 버리고 난행고행으로 들어가셨다. 그러나 35세 때에는 이 난행고행도 버리신다. 그것은 고와 낙, 망설임과 깨달음과의 대립관념 위에선 고행의 상대적 지식을 버리신 것이다. 자기와 남과의 유별(類別)을 초월한 수행이 보리수 밑의 좌선이었다.
"앎에 치우치면 모가 나고, 정에 치우치면 떠내려가고, 고집을 부리면 막힌다"고 말한 사람이 있지만 이 상대적인 태도를 방하(放下)하지 않으면, 마음의 자유는 얻을 수 없다.
옛날 중국의 엄존자(嚴尊者)라는 수행자가 조주화상(趙州和尙(778~897)에게 "일물부장래(一物不將來)한 때는 여하히 모든 것을 버리고 빈털터리일 때에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물었다. 조주화상의 대답은 "방하착(放下著)"이었다.
엄존자는 물고 늘어지며 버리라고 하시지만 빈털터리로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데 버릴 것이 없지 않느냐고 "일물부장래(一物不將來)인데 무엇을 방하할 수 있느냐" 하고 반론(反論)했다.
그러자 조주화상은 "그렇다면 담취(擔取)하여 가라"고 방하(放下)하는 마음을 뚜렷이 했다. "담취하여 가라"란 반어(反語)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지고 가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그 의식까지도 버리라"는 방하의 방하다.
선자(禪者)는 이것을 쉬운 말로 "짐을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우리들은 언제나 그 무엇인가를 짊어지고 있다.
명함의 직함은 어깨의 짐의 일람표다. 그 사람이 때로는 그것을 방하해 버린 것으로 생각하고 "저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쓸모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겸손함을 발휘한다. 즉 "일물부장래(一物不將來)"를 표방하는 것인데 꼬리가 보인다.
선자는 이것을 "비하만(卑下慢)!"이라고 때려 눕힌다. 비하라는 이름의 "고만(高慢)"을 걸머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주화상에게 "담취하여 가라"고 호령을 듣게 된 까닭도 이것이다.
직함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유무에 구애되지 말고, 어디서든지 주(主)가 되는 것이 "방하착"이다.
인생은 나그네다. 나그네에게 짐은 으레 따르는 법이다. 우리들의 일생동안 계속해서 만드는 몸과 입과 마음의 짐은 좋건 나쁘건, 인생의 종착역까지 자기가 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도 나누어 저다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_(())_
출처 : 柳淞月 選解 <선명구이백선(禪名句二百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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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집착에서 벗어나는 수행이 오늘도 쳇바퀴 돌더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 쳇바퀴가 진리를 향한 쳇바퀴임에 감사한 마음으로 돌고 돌고 또 돌아봅니다.
이 무거운 짐은 언젠가는 내려질 날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에고 무거버라...ㅎㅎㅎ
고맙습니다_()_
방하착.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