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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Han- 이한우
2005. 7 . 13 - 8. 1
Lee, Han-Woo
오랑쥬리 룩상부르 전시장(파리 국회 상원)
(파리 국회 상원)
프랑스 파리에서 韓國美術의 世界性을
公認받은 頂上의 元老
유럽인들을 놀라게 한 ‘아름다운 우리 江山'展
김남수 / 미술평론가
1. 글머리에 ...
지금세계의 미술시장은 자국 미술의 우월성을 고취하고 세계의 미술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심한 각축을 벌리고 있다. 한마디로 21세기의 문화예술전쟁이 각기 예술양식을 중심으로 하여 파리와 뉴욕, 동경 등에서 치열한 국제경쟁을 전개하고 있다. 문화예술이 그 나라 그 민족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전략산업임을 일찍이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이례적인 현상들이 지금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다. 우리와는 몇 백년 앞서가는 선진국의 예술들이 쉬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 을 하고 있는 사이 우리 한국미술은 표절과 모방과 위작시비 등 해마다 퇴행을 거듭하면서 문화예술의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등 빈사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천만다행이도 일부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홀로 서기 위해 치열한 자구적인 노력을 하는 화가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들이야 말로 말없는 진솔한 애국자이며, 타락하고 부패한 속물적인 정치인이나 부도덕한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비교할 때 참으로 그 감격과 감동 지울 길이 없다.
지금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부 원로 작가들 가운데는 현대미술에서 동양화 장르에 서세옥 화백이 올 병술년 미국 초대전(약 300점 추산)의 준비를 서두르고 있고, 본란에서 표지작가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 유화의 이한우 화백은 이미 대작 70여점을 가지고 초대전을 마쳤고, 현지에서 세계 각 국의 참관객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세계미술의 스타덤에 올라 선 이 놀라운 반응을 아트코리아가 소상하게 재조명 하기로 하였다.
이한우화백 招待展의 各國의 反應
한국 미술사상 프랑스 파리에 초대된 화가 가운데 규모와 성취도 등에서 가장 큰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실 예술의 중심 메카인 파리에 국내 작품들이 접근을 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공인된 국제 감정가를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한우화백의 경우 3년여에 걸친 주최 측의 작가의 예술성, 작품성 등 공인된 감정가 등 정보의 심층 분석을 통하여 이 행사를 주관하는 프랑스 상원의 문화위원회가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자국민도 아닌 외국적을 가진 화가에게 초대전을 결정한 것은 이한우화백의 예술성을 국제적으로 공인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오랑쥬리 미술관의 사용규모는 500평으로 오랑쥬리 미술관 사상 처음 있는 가장 규모가 큰 초대전이었다.
룩상부르 궁은 앙리 4세의 왕비인 마리 메디치와 절세의 영웅인 나폴레옹이 궁전으로 사용했으며, 프랑스 혁명이후 지금까지 상원으로 용도 변경되어 19세기 중반에 룩상부르 미술관이 설립되었고,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세계적인 거장 루벤스의 대작 시리즈와 ‘마리 메디치의 일생' 연작들을 보관했다가 마침내 국립 루브르박물관에 최종 소장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는 파리의 오아시스로 통칭되는 세계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룩상부르 공원, 현재는 상원으로 사용되는 룩상부르 궁(그랑 룩상부르 라 불림)과 보티첼리, 라파엘로, 고갱, 모딜리아니, 마티스 등 미술사적 거장들의 회고전을 유치하는 ‘룩상부르 미술관' 그리고 생존하는 세계 각국의 저명한 현대미술 작가들만을 초청 전시하는 ‘오랑쥬리 등 룩상부르 미술관' 등이 3대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의 거장 속의 반열에 낀 이한우 화백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민간차원의 외교활동에 큰 수훈을 세운 것이다. 문화의 선진국인 프랑스 등이 외국작가의 우수성을 발굴하여 자국의 일체 비용을 들여 초대전을 유치하고 있는 판국에 우리 스스로가 이를 외면하고 방임하는 것은 예술을 모르는 후진국의 수준을 그대로 폄하하고 있는 꼴이 된다. 이날 오프닝 개막전야제에 참석한 양국의 주요 인사로는 파리측에서 프랑스 상원의장 비서실, 문화위원회 요인들, 모리스 블랭 상원의원(한, 불 친선의원협회 회장), 프랑스와 벨렉(국립미술협회 회장-S,N, B, A),
에띠엔 (전 국립협회 회장), 파트리스 드라 뻬리에르(유니버스 드라 편집장, 평론가) 한국측에서는 주철기 주불대사, 모철민, 주프랑스 문화원장, 최동환 주프랑스공사, 진수남 관광공사 프랑스지사장, 위정복 지방자치단체 관리사무소 소장, 그 밖에 현지 언론기관, 문화계 인사, 교민 등 수 많은 축하객들로 붐볐다. 한국의 원로가 세계 예술의 고장, 프랑스 파리에서 이토록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것은 미증유의 전무한 사실이다. 이번 초대전의 축사에서 김원기 국회의장은 ‘이번 전시회가 한국미술의 높은 수준을 유럽에 선 보이는 소중한 기회이자, 한국미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술회한다.
다음은 주요 參觀客의 反應을 스케치 해 본다.
各界의 反應
(1) 크리스티앙 뽕슬레(상원의원) : “파리 시민들과 함께 한국의 산수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는 이한우 화백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2) 정동채(문화부장관) : “이번 이한우 화백의 전시를 계기로 내년 한-불 수교 120주년 문화행사를 포함해 한국과 프랑스 양국 간에 더욱 활발한 문화교류로 이어지는 토대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3) 파트리쓰 드라 뻬리에르 (미술지 편집장, 미술평론가) : “이한우와 같은 예술가의 그림에 대한 평을 쓴다는 것은 평론가에게는 언제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파리에서 그것도 특별한 장소에서 열리는 명망 있는 전시회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국의 다양한 풍경들을 보여주는 일종의 프레스코를 이루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특징적이고 인상적이었으며 많은 감격을 자아내게 했다.
실제로 자
신만의 기교에 의해서 한층 가치가 돋보이는 강렬한 독창성을 느끼게 한다. 영감에 이끌리듯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들은 옛 한국 예술가들에 의해 그려진 자연의 전통적인 표현을 연상하게 하는 풍경이지만 이 주제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현실감 있게 표현된 예술가의 한국적 뿌리나 만물 속에 숨쉬는 기(氣)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놀라운 표현주의적 현대성으로 캔버스에 표현했다.”
(4) 장 삐에르(화랑관장) : “이미 대중과의 밀접성을 과시한 성공적인 전시회인 만큼 크게 성공한 사례가 될 것이다.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
(5) 주철기(주불대사) : “정부 차원에서 좀 더 지원이 되지를 못해 아쉽다. 정부가 하지 못한 외교적 성과가 지대했다. 프랑스와는 지속적인 문화예술 교류에 의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6) 진수남(관광공사 파리지사장) : “우리가 파리에서 1년이 걸려도 해내지 못한 관광 진흥에 큰 몫을 해냈으니 표창이나 감사장이라도 올려야겠다.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모든 관객이 한국의 자연에 대해 관심이 커졌다. 이는 관광자원 홍보에 믿음을 주는 교두보가 되었다.”
(7) 유로저널(교민지,62쪽) :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란 제목 으로 고요한 아침의 평화가 기득한 한국의 산수풍경화 들을 선보였다. 초기에 아카데믹한 정물로 한국의 고향 풍경과 우리 유물들의 아름다움을 표현 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부터 굵은 선과 획으로 향토적 한국의 미를 형상화한 아름다운 금수강산 연작을 발표해왔다. 대형 화면에 민화적 요소를 첨가한 이 연작은 자색과 청색, 갈색과 노랑, 담홍색과 적갈색, 등의 특징적인 색을 주조로 이화백의 고향인 통영과 다도해 일대의 풍경을 대담하게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8) 한 위클리(교민지, 10쪽) : “이 화백은 젊은 시절 교사로 재직하다가 30대 중반 미술계에 입문했다. 여섯차례의 국전 수상경력을 비롯 지난 2000년에는정부의 보관 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10) UNIVERS DES ARTS(현지 미술지, 24쪽) : “이한우의 작업은 확실히 독창적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예술적인 비전이 최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표현과 근대사상을 결합하여 우리들에게 소개한다. 그의 팔렛트의 여러 가지 따뜻한 색의 배색들, 예술가의 요술과 같은 보색,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 그리고 건축가의 엄격한 설계와 같은 치밀한 구성력으로 독창적인 풍경화법을 보이는 한국 예술가를 만난 것이다.”
3. 전시성과 분석
이번 전시기간 중 거둔 성과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분석해 본다.
첫째, 다양한 계층의 관객들이 다녀갔다는 점에서 폭넓은 홍보가 주효하였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가치를 높게 평가받은 부분은, 한-불간의 정치, 경제, 문화계의 주요 인사들의 방문도 의미가 있지만 미술 분야의 비미술인들과 아마추어들이 이한우 화백과의 대화를 통하여 그의 미술세계에 공감하고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대외적으로는 지대한 인간관계의 소득이 있었다.의 여러 가지 따뜻한 색의 배색들, 예술가의 요술과 같은 보색,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 그리고 건축가의 엄격한 설계와 같은 치밀한 구성력으로 독창적인 풍경화법을 보이는 한국 예술가를 만난 것이다.”
둘째, 다양한 계층의 작품 소장가들을 확보하였다는 점이다. 먼저, 이는‘상원 문화위원회' 소속 전시담당관인 이브마렉씨의 집요한 관심에 이은 100호 작품구입과 이에 따른 이한우화백의 상원측의 배려에 대한 보답 차원 의 200호 작품기증이라는 상호 작용이 주효한 효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일반인들에 의한 작품구매는 ‘가족의 유대감'과 한국적 풍경과 프랑스 풍경과의 조화‘를 고려한 구매라는 점에서 일단 대중 어필을 하였다는 확신을 받았다는 점이며 구매자들은 한결같이 다음 전시 일정에 대하여 궁금해 하였고 재 구매까지도 언급하여 작가에게 강력한 자극과 동기를 유발시켜 주었다. 한마디로, 작가와 대중사이의 개별적이고 긴밀한 끈이 맺어진 셈이다.
4. 각지의 초청전시 제안 쇄도에 따른 전략적 추진계획
이번 전시회의 또 하나의 이슈는 파리의 유수한 화랑들은 물론이려니와 이탈리아 접경 말트 공화국의 국립미술관에서는 정부차원의 초청을 제안 하는 등 초청 전시 섭외가 줄을 이었다는 점인데, 이를 계기로, 이미 프랑스 초대전만 6회에 이르는 이 화백으로서는 전시를 위한 전시, 현지시장 접근을 외면한 기존의 보편적 전시 방법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그 구체적인 대안으로서, 차기 전시는 국제 가격을 인증 받는 교두보로 삼고자 한다.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다시 한번 이 화백은 대중성을 무난하게 점검 받았는데 프랑스 현지인들에게는 고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판매되었다는 점과 보조적으로 준비한 홍보물들이 적지 않은 물량이었음에도 불티나게 팔렸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적인 정신을 현대적인 그릇에 담아 표현한 것이 세계인의 ‘문화적 코드'와 일치하였다는 점 등이 작가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대중들이 원하는 바를 명백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최상의 지명도를 인증 받은 최고의 대중적인 전시장소를 선정해야만 한다. 이에, 지난 60년대부터 미국의 ‘팝아트'에 맞서 유럽의 ‘신사실주의' 사조를 이끈 세계 현대미술사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 바 있으며, 지난 88올림픽 때에는 ‘올림픽 공원조성 공식 커미셔너로 활약하여 한국미술계에도 정신적 대부 역할을 하였던 프랑스의 세계적인 평론가이자, 전시 기획자 삐에르 레스타니가 '프랑스 현대 구상미술의 요람‘이라고 칭찬하였던 <마이욜 박물관> 초대전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확률적인 가능성은 반반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한우 화백 자신이 이번 전시를 계기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점과 이를 계기로 이 화백 주변에 프랑스 문화부 산하 <앙드레 말로 국제 친선 협의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점을 들을 수 있다. 미술사적으로도, 마이욜의 불후의 명작 ‘지중해의 루브르 박물관 정원 전시를 당대의 앙드레말로 문화부 장관이 강력 추진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모델출신으로 박물관장을 역임하고 있는 디나 비에 르니가 본 협의회의 유력한 후보자라는 점을 십분 활용한다면 가능성에 훨씬 접근하게 된다.
여기에다, 인근 <로댕 박물관>과 더불어 절대적인 파리 미술계의 쌍두마차를 이끄는 <<마이욜 박물관>>은 주불대사관이 위치한 그르넬 거리에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외교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동반된다면, 이제는 한국작가의 초대전도 단순한 희망사항에 그치지 않고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
그 예로, 20세기 초 ‘몽빠르나스 화파'에 속하여 활약한 바 있는 일본이 낳은 천재화가 후지따의 작품이 마이욜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영구 전시되고 있다. 작품성이 뛰어나면 굳이 동서양 작가를 가리지 않고 콜렉션한 마이욜의 정신을 그대로 전승한 디나 비에르니 관장이 아직도 현장에서 박물관을 진두지휘하는 관계로 최선을 다하여 도씨에(기획에 필요한 작품 및 홍보자료)를 준비 한다면 굳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단지, 이한우 화백의 이미지를 얼마만큼 최대한도로 부각시켜서 쟁쟁한 실력의 국제적 대가들과 경쟁하여 초대전을 따내느냐 하는 점이 관건인 것이다. 이를 관철시키는데 무엇보다도 ‘시간'과 ‘경비'와의 싸움에서 정신적인 여유와 물질적인 후원자의 확보라는 양면 작전을 견지해야 하는 점도 결코 간과 할 수 없다.
개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작업이다. 하지만, 민관이 협력하는 가운데 이한우 화백의 노력과 기량이 배가 된다면 결코 불가능 하지만은 않다. 상원 전시회만 하더라도 기획부터 종료까지 무려 3년 반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나름대로 훌륭하게 결실을 맺었다고 작가는 물론 모든 관계자들이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5. 결론
문화는 그 나라 정신적, 물질적 유산의 수준을 결정해 주며 국민 의식을 대표한다. 그동안 열악한 환경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제대로 된 기회를 접하기 조차 어려웠다. 심지어는 인종차별의 설움조차 감수하여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도 문화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세계의 열강들과 견주어야할 시기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해야할 사항을 굳이 전통적 문화 대국인 프랑스와 비교해 보자면, 문화라는 개념에서 조차 <속지주의>를 채택하여, 그 나라 땅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인간이든 물적 자원이든 구분을 두지 않고, 그 나라 ‘재산'이라는 신념아래 보호하고 열매를 경작해 왔다는 점이 주목된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고호 ,피카소, 샤갈, 달리, 미로, 모딜리아니, 등등 이루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거장과 대가들이 프랑스에서 활동하였으면서도 결코 그들의 출신국가 고유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였다는 공통점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대다수 한국의 예술가들이 당면한 어려움 가운데 가장 커다란 문제는 문화의 뿌리가 깊은 데도 불구하고 현대미술 사조의 무분별하고 무비판적인 유입에 따른 국적 상실에 있다. 한 마디로 분명한 사실은, 미술사에도 엄연히 뿌리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그것은 서양 미술사보다는 동양미술사에 오히려 가깝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오늘날 현대미술계를 휩쓰는국적 불명의 흐름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가?
국제 현대미술시장을 전쟁터에 비유 한다면 우리 작가들은 도대체 어떤 무기를 갖고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 것인지...
이한우 화백은 이런 점에서 분명한 자신만의 무기를 지니고 전투에 임한다. 그는 언뜻 보면 서양의 갑옷을 걸친 듯하지만 결코 전통의 창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회의 방명록에 세계 각국의 관람객들이 남긴 기록 가운데, 특히 10세 소년의 “나는 분명히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라는 문장에서 바로 이 공감의 표현을 통하여 이한우 화백의 진정한 승리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한우 화백으로서는 넘어야할 장애물이 도처에 공존한다. 연령 문제와 한국미술의 양대 미술 산맥이라고 불리는 서울대, 홍대학맥이 없는 그로서는 자유롭지 못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은 한국 미술계의 자존심에 명분 없이 자학하는 무의미한 행위에 불과하며 오히려 해외무대에서는 무위한 우리들만의 탁상공론일 뿐이다. 실제로 현재 파리 미술계를 주름잡는 대표적인 대가들은 아카데미즘 등 창작욕을 방해하는 구태의연한 타성이라고 거부한다.
결론적으로, 룩상부르 공원 여기저기에 말없이 흩어져 오가는 방문객들로 하여금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 보게 해주는 세계 유수의 조각 작품들이 400여점 정도 있으며 또한 상원의장 공관과 의원 회관 곳곳에는 상원 전시를 전후하여 구입되고 기증된 현대 작가들의 회화가 걸려 있는데, 이한우 화백 작품 두 점도 이러한 대열에 합류한다는 사실에서 우리 예술의 무한한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오랑주리 美術館 展示, 觀覽客 反應 (芳名錄)
“마티스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이한우 화백의 유려한 색채가 담긴 작품들을 발견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Van LASBOURG(반 라스부르), 끄리쉬 시 제네랄 르,끌레르 대로 73번지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재능에 탄복 하였습니다. 브라보!”
-Jocelyne CASTERMAN(조슬린 카스떼르망), 블로뉴 시장 조레스 대로 238bis번지, 출판사 편집장
“압도적이고 매료 되었습니다.”
-Francoise BERGON(프랑스와즈 베르공), 파리 17구 와그람 거리 49번지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전시 하시는 우리 이웃 분 - 브라보, 얼마나 멋진 그림 인가요! 당신은 우리에게 한국에 대한 영감을 심어주신 분입니다”
-llleana Manos d'ORLEANS(일레아나 마노스 도를레앙), 파 리 15구 펠릭스포 거리 133번지
“얼마나 희한한 세상인지, 그 얼마나 풍부한 내용인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Claire PEYNET(글레르 삐이네), 파리 5구 기 드라 브로스가 15번지
“우연히 룩상부르 공원에 조각상들 사진 찍으러 왔다가 들린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알려지지 않은 경치들을 발견한 놀라움은 정말이지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M. BADICOY(엠 바디끄와), 플로랑땅 시 그랑드 뤼 18번지
“그림에서 강력한 힘과 낙관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고 게다가 화려한 색체의 아름다움은 어디에다 비유할 수 있을까.....”
-Mme. FALK(마담 포끄),파리6구 무슈 르 프랭쓰가 16번지
“하모니를 이루는 당신의 팔렛트에서 나온 이 그림들이 호주 원주민과 유사한 한 문화의 고유성을 느끼게 해주는 군요”
-Jean Francois BLANCHOT9장-프랑스와 블랑쇼), 몽 루즈시 까미유 뺄르푸 거리 1번지
“시인 동우회 모임에 나왔다가 들린 전시장에서 발견한 너무 훌륭한 시적 세계에 저도 모르게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멈춘 듯 하면서도 움직이는 풍경에서 생의 환희를 느낍니다. 당신의 작업은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 세상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으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줍니다. 끝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에게 항상 평화와 <열정적인 인내>가 함께 하기를 바라면서.....”
-Jem- Pierre ROSNY(장-삐에르 로니 대표 시인클럽 일동), 파리 7구 불로뉴 가 30번지
“훌륭한 전시입니다. 저는 당신의 작품들을 통해서 다양한 색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 하였습니다. 내년에도 뵙기 되기 바랍니다.
-Millour CHRISTOPHER(밀루 크리스토페르), 장 뚤레거리 11번지
“평화 온화,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서 발견하게 해주신 이한우 화백에게 감사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의 중요성과 인생에서의 모든 중요한 요소들이 함축된 표현에서 진정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Jocelyne MOUNOU9(조슬린 므누). 파리 13구 의사 샤를리쉘 거리 7번지
“그림들 사이로 산보하니 너무 좋아서 마치 안락하고 색채로 가득한 다른 세상으로 옮겨간 듯한 느낌입니다. 제 자신에게도 한국과 사랑에 빠질 것만 같다고 다짐했어요. 너무 아름답습니다.”
-Mireille CORDEILHAC(미레이유 꼬르델락), 파리 19구 므우이 가 64번지
“프랑스 동부지방에서 와 아시아의 붓 아래서 파리를 다시 보니 이 추억이 제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일 가운데 하나로 남게 되겠군요.”
-SERCOEUR(세르꿰르)의 어머니가, 오베넹 시 스트라스부르 거리 29번지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임에 틀림없군요! 이한우 화백의 그림에서 그 잔영이 보입니다.”
-Procaccioli LORENZO9프로까치올리 로렌조), 파리 6구 세르슈 미디 거리 21번지
“정말 분명하게 아름다운 것을 보았어요“
-STEVEN(스티븐), 10세 소년, 너이유 슈르 센느 시 1945년 5월 8일 거리 80번지
“감사 합니다. 이 전시에 이상한 예감에 이끌려 들어와 봤거든요. 당신의 시각을 통하여 한국을 보게 되니 너무 행복 합니다.
-Mary T. PREWITT(마리 떼 프레빗뜨), 파리 19구 꼬랭땅 까리유 거리 17번지
“몇 마디로 표현하면, 우리들을 호흡해 버린 풍경 속에 저희는 푹 빠져버렸어요. 그리고, 이 장소를 떠나기가 힘들 것 같군요... 단지 너무 황홀한 기분이에요.”
-R.& D. JORON(조롱 부부), 므동 시 드라 뚜르 거리 3번지
“파리의 중심부에서 이 한국 전시를 보게 되다니 왜 이리 놀라운지... 감사합니다.
-Roger KEY(로제 케),83~8년까지 한국에 체류하였던 관람객“생후 5일만에 첫 나들이에 나선 기욤은 다른 나라 분들과 우정을 나누게 되어 무척 행복합니다. 프랑스 공화국 최고의 명소 가운데
하나.... 그것도 웅장한 상원에서 이한우님의 재능이 담긴 아름다운 기호들과 만났으니 말이에요.”
-Guillaume DOHET(기욤 도예),2005년 7월 18일 파리 6구 위스망 거리 8번지
“쳐다보기만 해도 감미로워서 마치 꿈속으로 초대된 것만 같군요....화려한 색채를 통한 좋은 꿈의 세계를 보여주신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
-SISCO P.L(씨스꼬 빼 엘),파리 10구 뷔송 루이거리 22번지
“가까이서 보나 물러서서 보나 매우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오랫동안 쳐다보아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니 실증이 안 나네요.”
-CLEDIC Josette(끌레딕 조셋뜨),덴몽 시 게르 거리 4번지
“이 놀라운 회화의 세계에 이끌려 재차 들르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작가님의 설명을 들으니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철학에 눈뜨게 되었습니다. 특히, 더 놀라운 발견은 옛 한국의 선비의 기상을 계승한 코발트색 청송인데 아주 반해 버렸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풍경 그대로라면, 남부 프랑스에서 서식하는 소나무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겠군요. 너무 잘 감상하였고 즐겁게 왔다 갑니다.”
-Christine DESFORGES(크리스틴 데포르쥬),구르네 슈르 마른느 시 끄로드 레브레 거리 13번지
“온화하지만 한편으론 정열적인 힘을 느끼게도 하는...우주의 전부를 본 듯합니다! 또 다른 세상을 인식하고 그리로 들어가는 한 방법을 알려 주는군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Miche'le-Cornec UTUDJI(미쉘 우띠쥐), 몽트뤄이유 시 몰리에르 거리 37번지
“작품번호 26번과 몽 쎌 미쉘 그리고 파리 풍경이 마음에 꼭듭니다. 배경색은 석양의 분홍빛입니까? 아니면 바람의 색채입니까? (작품번호 39번) 감사합니다!”
-Florence BROUILLARD(플로랑쓰 브르이야르), 베르사이유 시 에따-쥐니 거리 39번지
“만일 <미>와<선>이 지속하여 존재한다면 나는 이를 믿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한우 작가와 지역적으로, 우주적으로 서로 다른 정신세계를 믿고 신뢰하는 그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자체가, 우리들에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충심으로 변화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절실하게 원컨대 그 자신과 가족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아울러 모든 생명체에게 위대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해준 그에게 감사드린다. 생명이 가득한 그의 작품에 드러난창조성은 나에게 미래의 무용 안무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깊은 사색을 하게 하였다.진정으로 최대의 찬사를 당신에게 보냅니다.
-Sonia DUMITRESCU(소니아 두미트레스쿠), 피날레를 장식한 파리 15구 소재 무용 예술학교장, 르꾸르브 거리 27번지
國際畵壇에서 脚光받는 韓國의 元老畵家
東洋的 思惟에 바탕한 韓國精神 發顯
김남수 / 미술평론가
미술문화의 국제화가 가속화되면서 한국미술은 국제 경쟁력에 합류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당면 과제를 안게 되었다 . 그 동안 우리는 극히 선택된 일부 원로작가들이 국제화단에서 공인을 받았고 세계의 예술양식과 공존을 하면서 교류전을 가져왔다 .
작가 이한우는 지난 95 년 한국일보 초대전으로 서울 백상기념관에서 프랑스 파리의 크로드 피사로와 2 인 초대전을 가진 바 있고 , 지난 2000 년 5 월에는 파리 유네스코회관 초대전 , 그리고 동년 12 월 중순부터 말일까지 파리 중심가 샹제리제 MB 갤러리에서 개인 초대전을 가져 파리와 세계인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 파리시 문화담당 부시장과 유네스코 대사 부인 , 주불 한국대사 , 현지 언론과 외신기자 등 약 300 여명의 축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전과 리셉션으로 대성황을 이룬 이 작품전은 민간차원의 국제외 교와 한국미술을 세계 속에 심는데 크게 기여를 했고 , 현지 언론은 일제히 대서특필하여 찬사와 갈채를 보냈다 . 본란은 이렇듯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한우의 작품세계를 집중 탐구해보기로 한다. 자학과 인고 끝에 탄생하는 예술작품은 그 작가의 정신세계요 , 마음일 수도 있고 자화상일 수도 있다 . 작가를 평가하는 가치 기준이 인기도나 유명세 혹은 지명도만을 척도로 하여 가리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실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왕왕 있다 .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작가 이한우는 극한 상황에서 투병을 하면서 붓끝으로 자신의 가슴을 후벼파듯 묵묵히 자기만의 예술혼을 불살라 왔다 . 고집스러우리 만치 외곬수 성격 때문에 가끔 본의 아닌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는 그는 자신의 예술세계에서만은 조형철학과 사상이 극명한 우리화단의 원로다 . 메마르고 각박한 세태에서 꿈과 빛기마저
잃어버린 속이 찌든 예술품이 난무하는 오늘의 미술환경 속에서 한폭의 윤기가 흐르고 희망을 심어주는 예술품이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 이한우의 작품세계를 보고 꿈과 환상과 향수가 샘솟는 예술이라고 어느 평론가가 한 말은 결코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공감하게 된다 .
초기 그의 회화는 자연을 관조하는 실경 위주의 정직한 묘사를 했으며 , 이른 바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한 풍경이나 정물화 등이 주조를 이루었다 . 어린 시절 자신을 낳고 길러준 남쪽항구 다도해가 소재의 주종을 이루었던 것도 향수와 애향심 때문이었으며 도자기나 토기류 , 꽃과 과일 등을 극사실 기법으로 화폭에 담았던 것도 조상의 얼과 숨결이 스민 한국정신의 감성 때문이었다 . 그의 작품세계는 중기에 접어들면서 리얼한 기법을 추구하던 소재주의에서 탈피하려는 자각이 싹트기 시작했고 , 그 회화가 표현의 한계에 부딪혔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 감필과 생략을 통한 이미지화로 선회를 했던 때가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인데 이때에 그의 예술양식은 구상회화와 함께 추상표현주의 작업을 동시에 시추 ( 試錐 ) 하기도 했다 .
이러한 일련의 조형실험을 거친 그의 예술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 역시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화의 ( 畵意 ) 나 정신주의는 한국의 산하나 풍경등 신표현주의적 구상회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 그의 예술의 독자적인 화풍의 제 1 기를 고향을 소재로 한 통영만 시대를 들 수 있다 . 꿈과 낭만이 농축된 몽롱하고 환상적인 그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 장황하고 불필요한 설명을 떨쳐버린 도식적인 화면분할 등 한국의 나포리를 연상케 하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이 화면들은 작가 이한우가 창출해 낸 새로운 조형언어요 ,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세계였다 . 가시적인 현상세계를 설정해 놓고 심상으로 떠오른 상상의 세계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
특히 색채에서 보라와 군청 , 연두빛과 갈윤의 빛깔 등 모노톤한 색조에 원근이나 음영을 배제한 평면구성 등은 꿈과 환상의 세계의 그것이었고 , 사라져 가는 자연경관을 예술작품으로 남기려는 조형욕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
사실주의에서 반추상으로 , 완전추상으로 잠시 선회한 이한우의 예술이 다시 구상으로 회귀한 것은 신념과 확신에 찬 일대 격변의 제 2 기를 지적할 수 있다 . 여기에는 그 작품에서 이미지나 영감으로 오는 통영만의 솔방울 내음이나 짜릿한 바닷바람 , 해안선 따라 완만하게 굴곡진 모래톱이나 화사하고 현란한 원색의 빛깔 등이 사라지고 우리민족의 근간사상을 이루는 ‘산그림'이 등장한다 . 성황당 산신께 기우제를 드리고 주술적인 기복신앙을 산에 의존했던 겨례의 염원을 성취하기 위해 그는 서양화의 풍경화를 원용하여 동양의 산수화로 환치시키는 실험을 거듭하다가 끝내는 작품으로 완성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
서양의 풍경화는 논리적이고 구축적이며 피사체의 단순묘사만을 중히 여긴다면 동양의 산수화는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직관에 의한 감동을 내면의 세계에서 수렴하여 재창조해 내는 것이 특징이요 , 여기에는 한국인의 혼과 산의 혈맥이 소통되고 있어 자연과 인간의 친화력을 효과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는 마력이 농축되어 있다 .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준법과 산자락 , 능선과 봉우리가 황토빛깔이나 산의 색깔 등 모노톤한 단색조로 수놓아지고 있는 것도 한국인의 정서와 향수가 담긴 소박하고 담백한 캐릭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특히 작가의 ‘산그림'에서 매우 흥미있는 철학적 사유가 발견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산수화는 사람 인 ( 人 ) 자에서 출발했고 , 산의 형태가 사람 인 ( 人 ) 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 이는 곧 인본주의 사상의 기초가 된 것이라고 작가는 주장하고 있다 . 비록 그가 주장하고 있는 상형 ( 象形 ) 이론이 가설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동양의 회화사상은 사의성 ( 寫意性 ) 에 바탕한 심상 ( 心象 ) 예술이기 때문에 양화적인 매재를 수단으로 하여 한국성을 천착하고 있는 점은 한국의 화화사에 엄청난 변화이며 민족의 자주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많은 공감과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이한우 예술의 제 3 기는 파리 MB 갤러리의 초대전에 발표한 작품을 지적할 수 있다 . 제 2 기와 제 3 기가 공히 ‘산그림'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2 기는 굵고 두터운 선묘와 필선이 활달하고 박진감 넘치는가 하면 3 기는 무수한 선묘가 디테일하게 화면을 구성하고 있으며 아기자기한 물상의 소재들이 등장하고 있어 회화성이 매우 강렬하게 어필하고 있다는 점이다 . 이번 파리전에서 참관객들의 감탄사가 연발했고 일부 문화예술계 지도급 인사들이 양화가 표출해 낸 한국 ‘산그림'의 대작을 콜렉팅 하는 해프닝도 있었고 한국 미술을 홍보하는 큰 뜻을 지니고 있다 . 일부 관객들이 “그림과 같은 ‘산그림'의 나라 한국에 가고 싶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도 매우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그후 파리시 유명작가 초대전 , 벨기에와 독일에서의 초대전 , 다시 유네스코의 초대전을 받은 것도 작가 개인은 물론이요 국가적으로 국위를 선양하는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
그가 즐겨 다루어 왔던 정물화들도 작가의 실험정신에 의한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 예를 들면 표현코저 하는 실상과 배면의 마티엘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표현기법 , 옛날 떡살문양이나 귀알문양 , 격자문양의 배면작업을 해놓고 그 위에 토기나 모과류 등의 물상을 그려 넣는 이원구성방법 , 정물의 실재는 극세필 , 극채색 , 극사실의 표현의 방법론을 구사하고 , 그 배면의 톤은 우리의 옛 것을 이미지화함으로써 구상과 추상이 한 화면에서 공존하는 이원 구성법 , 다시 말해 옛과 현대가 만나는 회화양식을 그는 일찍이 터득하고 자기만의 조형언어로 연출하고 있었다 . 농경사회 때부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한국의 땅 , 한국의 농토 , 황토빛깔의 질감을 소재로 하여 한국성 예술로 승화시킨 서양화가 이한우는 분명 기지와 선험적인 창작력을 지닌 한국의 화가가 아닌가 싶다 .
마지막으로 오랑쥬리 미술관에 초대된 작품을 중심으로 심층 분석을 해보기로 한다 .
그의 예술은 한국의 산하를 그만의 독자적인 문법이나 언어로 완성하고 있다 . 현란한 산자만홍 ( 山紫萬紅 ) 의 원색의 코리아 판타지 , 치밀하고 정교한 비로드의 텍스춰를 연상케 하는 공필화법의 화면 , 세라믹의 색분을 깔아놓은 듯한 초가와 논두렁 , 밭이랑과 , 송림 , 원경의 굽이치는 산의 준령들 , 이 모든 이미지들은 얼핏 보면 평면과 수직의 중간지대에 있으면서 슐리즘에 비교되는 신표현주의를 완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그는 서양의 매재와 기법과 방법론을 차용하여 동양인의 혼과 정신을 불어넣는 사유의 예술을 성취하고 있는 것이다 . 만일 작가가 소재나 정신주의에서 한국의 산하나 정신주의를 추구하지 않았다면 ( 개성있고 독창적인 창작의 세계가 아니었다면 ) 오늘의 영광은 미지의 세계에 머무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 다시 말해 세계의 관객이 공감하는 한국성의 완성에 성공한 극적인 희열과 감동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
화가 이한우는 1929 년 한려수도 경남 통영에서 출생했다 . 한때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전업작가로 선회한 그는 옛날 국전에서 연 6 회 특선을 기록했고 , 국전 추천·초대작가 되었다 . 대한민국 미술대전을 비롯한 각급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지낸 그는 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
평생을 수행을 하는 구도자처럼 올곧게 살아 온 그는 70 년대가 넘으면서부터 본격적인 자기완성을 위한 예술행위가 발현되고 있으며 , 국제화단에서 인정을 받는 화가로 공인이 되고 있다 . 수많은 화가 중에 일생을 실험과 창작으로 일관해 온 그는 ‘하늘은 자조자를 돕는다'는 표상과 귀감이 작가 이한우의 예술세계에서 실현되고 있다
한민족의 서정을 나타내는 조형미학의 세계
오광수 / 미술평론가
약 40 년에 이르는 이한우의 화력을 되돌아보면 몇 차례의 변화가 발견된다 . 그것을 편의적으로 묶어보면 , 65 년에서 75 년에 이르는 약 10 년간이 1 기 , 76 년에서 80 년대 초에 이르는 약 5 년간이 2 기 , 그리고 80 년대 초에서 최근까지가 3 기가 된다 .
1 기에 해당되는 65 년에서 75 년경은 그가 국전을 중심으로 주로 아카데믹한 화풍을 유지했던 시점이 된다 . 또한 이 시기는 작가로서의 이한우의 형성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 국전에서 잇따른 특선과 입선을 거듭하면서 추천작가로서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 이 무렵 그의 작품은 주로 토기와 목기 등 고풍한 기물과 과일 , 채소 , 책 등과 같은 일상적 사물이 어우러진 정물이나 화병에 가득 꽃이 담겨있는 정물 등을 주로 다루면서 대상의 정치한 묘사에 치중되었다 . 신라토기와 마른 해바라기가 놓여있는 정물과 때로 정물의 배경을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추상화한 작품들이 포함되었다 . 이들 작품들이 한결같이 건삽한 분위기와 약간 의외로운 기미를 보이는 것은 회고적 취향과 전혀 이질한 사물끼리의 만남이 주는 위화감에 기인한다 . 신라 토기와 조선시대 목기가 중심이 되면서 그 주변에 늘려있는 현대적 소재들은 과거와 현대를 공존시키면서 시각적 긴장감을 유도해 주기에 충분하다 . 대상을 파고드는 시각은 더 없이 치열하다 . 그것은 대상이 지니는 물질감을 극명히 들어나게 한다 . 한 동안 국전에선 이 같은 전시대의 기물을 모티브로한 작품들이 심심치 않게 출품되었었다 . 대체로 이들 작품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옛것에 대한 아련한 감정을 일깨우는 회고적 취향이 지배적이었다 . 정물적 소재로서 과거의 유물은 그 나름의 정취를 지니면서 소재적 선택 자체가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지향한 것이었다 . 그러한 소재자체에 대한 탐닉이 제작의 동기를 대변해 주었다는 것이다 . 이한우의 초기작품에서도 이 같은 인상을 다분히 받는다 .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이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 차별성을 지닌다면 회고취가 일시적 기호로 끝난 것이 아니라 향상성으로 이어져 왔음에도 찾을 수 있다 . 그의 최근 작품에 농후하게 드러나는 회고취가 이미 초기에서부터 지속되어 왔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
2 기에 해당되는 70 년대 후반은 대상을 정치하게 접근하는 방법과는 반대로 대상을 몽환적인 채널로 바라보려는 새로운 조형방법을 구사해 보였던 시대로 파악된다 . 치밀한 묘사대신 자연을 커다란 매스로서 처리하는 한편 , 화사하면서도 깊은 색채를 구사하는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 소재도 전기의 태반이 정물인 점에서 비해 2 기의 대부분은 자연풍경이 차지하고 있다 .
풍경은 해안풍경과 농촌풍경으로 대별된다 . 어느 것이나 산이 있고 산자락에 밭이 있고 마을이 점경되는 그지없이 평화로운 풍경들이다 . 그러나 , 현실의 풍경이라기보다는 꿈꾸는 풍경 , 꿈에서 만나는 몽환적 풍경이라고 해야 어울릴 듯하다 . 산과 나무와 들녘이 한결같이 뭉글뭉글하게 피어오르는 구름을 닮았다 . 뼈가 없는 연체동물같이 유연하게 휘어지는 곡면은 끝없이 이어지면서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 현실을 모티브로 한 풍경이면서도 이미 현실이 아닌 꿈속의 풍경 또는 피안의 풍경이 된다 . 이는 작가가 현실을 꿈이라는 채널을 통해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연유하는 결과에 다름 아니다 . 현실을 현실로 접근하지 않고 꿈이란 색안경을 통해 바라본다는 것은 현실을 꿈으로 치환하려는 작가의 독특한 의식의 결정물이다 . 대부분의 초현실적 방법이 기괴하고 음산스러운 반면 , 이한우의 화면은 밝고 명랑하다 . 리드미컬한 선조의 형상화와 화사한 색조는 화면 전체에 꿈꾸는 듯한 몽환의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
이렇듯 밝고 낙천적인 꿈의 풍경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 유독 해안풍경이 많고 섬과 선박이 등장하는 풍경이 많은 것은 아마도 그가 통영 출신이기 때문에 연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그의 꿈꾸는 듯한 풍경을 보고 있으면 실제로 풍광이 아름다운 남해안 통영 앞바다와 하늘의 색깔을 그대로 옮겨온 느낌을 받는다 . 예술가와 그가 태어나 자란 자연환경은 대단히 치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 특히 자연적 조건이 풍요로운 환경일수록 자연은 인간과 깊은 친화관계를 형성한다 . 인간은 자연의 혜택에 감사하고 자연은 노래를 부른다 .
보링거의 논지가 아니더라도 남쪽지역 출신의 작가들 작품이 유독 밝고 화사함은 남쪽지방의 풍요로운 자연이 준 혜택이다 . 남쪽지방 가운데서도 청정해역으로 꼽히는 통영은 그 자연적 조건이 어느 지역보다도 빼어난 편이다 . 이 지방에서 많은 예술가가 배출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호수와 같은 바다 , 굴곡이 많은 해안 , 무수히 나타나는 작은 섬들이 만드는 변화는 이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깊이 각인되어 풍부한 예술적 영감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
3 기인 80 년대 초에서 최근까지의 작품은 2 기의 그것과는 또 다른 변화를 보인다 . 소재는 여전히 해안과 농촌의 풍경이다 . 그러나 2 기의 풍경들이 몽환적인 풍경이었다면 3 기인 80 년대 이후는 굵은 흑선에 의해 대상의 윤곽이 선명하게 잡히고 있다 . 윤곽선이 없고 색채에 의해 대상이 구분되었던 2 기의 것에 비하면 3 기는 선에 의해 모든 대상이 구획되고 있다 . 막연히 꿈꾸는 정경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형상이 따른 묘법의 풍경이다 . 굵고 검은 선획은 마치 혈맥이나 주름살 같은 뚜렷하고 힘찬 모습을 보인다 . 이 골기 ( 骨器 ) 가 강인한 풍경은 마치 칼날로 대상을 묘파하는 목판의 그것을 연상시키듯 선명하면서도 날카롭다 .
80 년대의 작품들은 풍경을 이루는 요체로서의 선획과 대상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 주었다 . 대상과 이를 형상화 해가는 방법으로서의 선획이 별개로 인식된 정도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지적된다 . 90 년대에 이르러서야 이 같은 팽팽한 관계가 서로를 보완하는 화해의 장으로 진행되고 있다 .
선에 의해 대상을 파악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동양화적 발상이다 . 서양화가 색채의 겹침에 의해 선이 유도되는 것과는 달리 동양화는 선으로 시작하고 선으로 마무리 짓는다 . 특히 산수를 그릴 때 준법 ( 遵法 ) 은 대상을 주름살로 파악하는 방법이다 . 동양화를 선의 예술로 칭함은 여기에 기인한다 . 선은 단순한 윤곽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형상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 주름살은 윤곽은 물론이려니와 입체감을 구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 명암에 의해 사물의 입체감을 구현하는 서양화와는 달리 선의 강약에 의해 명암이 암시된다 . 이처럼 준법은 단순한 터치나 선묘라고 하기 곤란한 , 사물의 실체를 파악하는 요체라 할 수 있다 .
이한우의 선에 의한 사물의 윤곽 묘출은 그러나 동양화의 준법에 바로 비견 할 수 없다 . 그에게 선은 준법이 지니는 사물의 실체 파악의 요체이긴 하지만 동시에 경계로서의 윤곽선이기 때문이다 . 대상은 선으로 구획된다 . 대상은 어떤 풍경적 내용을 지니든 아라베스크한 선조의 조직으로 먼저 떠오른다 . 촘촘하게 엮어지는 선조의 구성은 자연이 지니는 혈맥과 같이 박동치는 느낌을 준다 . 혈맥을 타고 흐르는 혈액처럼 화면엔 잔잔하나 활기찬 선조의 유동으로 인해 실재하는 생명감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 초기의 굵고 힘찬 선이 90 년대로 오면서 섬세한 가는 선으로 바뀌고 있다 .
90 년대 후반에 오면서 그는 스케일이 큰 화면 속에 장대하게 펼쳐지는 풍경을 담아가고 있다 . 이전의 화면에서 보이던 단면적인 풍경이 아니라 병풍처럼 펼쳐지는 풍경이다 . 화면 속엔 초점이 없다 . 이는 한 지점으로 눈길을 모으는 방식의 구도가 아니다 .
풍경은 시점을 이동해 가면서 보게 되어 있다 . 시점의 균일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 시점의 균일화 현상은 원근에도 작용하여 색채에 의한 멀고 가까움이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 사물의 크기에 따라 원근이 인지될 뿐이다 . 화면은 대게 아래쪽에서 위로 오르면서 근경에서 원경으로 이어진다 . 아래쪽은 근경인 셈이고 위쪽은 원경인 셈이다 . 한눈에 들어오는 정경이란 약간 높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시점에서 가능하다 . 아래에서 위로 치켜본다든가 위에서 내려다본다든가 하는 가파른 시점은 변화가 많은 만큼 긴장감이 강한 반면 , 수평시로 바라보는 시점은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준다 . 이한우의 화면도 그지없이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다 .
무엇보다도 그의 화면이 우리들의 시각에 오랜 여운을 남기는 것은 화면속의 정경이 고향의 풍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 먼 객지를 떠돌아 고향에 돌아오는 사람이 고개마루턱에서 고향의 마을과 들녘을 한눈으로 바라보는 정경을 상상해보라 . 꿈에 그리던 고향이 발아래 펼쳐질 때의 그 반가움이란 어디에 비길 것인가 . 저기쯤 동구의 느티나무가 보이고 그 너머로 누구네 집이 , 그리고 그 앞으로 황금들녘이 펼쳐지면서 어느덧 눈길은 산자락의 자기 옛집에 닿게 될 것이다 .
들녘엔 마을 사람들이 나와 밭일을 하고 있는 것이 , 가까운 마을의 집마당엔 몇몇 마을 사람과 닭들이 한가롭게 어우러져 있는 정경이 들어온다 . 소리치면 곧 들릴 것 같은 거리이다 . 생각같으면 한숨에 달려가겠지만 귀향객은 지긋하게 이 광경을 더 음미해 보고 싶은 것이다 .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구석구석을 따라가면서 옛일을 떠올릴 것이다 . 얼마나 그리던 고향인가 . 이한우의 대폭의 화면은 이렇듯 우리들의 옛 고향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 이제는 사라져가는 풍경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를 더욱 애틋하게 한다 . 빠른 변화가 진행되는 우리 주변의 상황은 끝내는 우리가 태어나 자란 고향의 산천까지를 하루 아침에 파괴해 버린다 .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산천도 급속히 바뀌고 있는 세상이다 . 이한우의 화면이 우리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이렇듯 없어져가는 우리의 고향을 붙들어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 우리가 그리던 고향은 사라져가고 있다 . 그러나 , 이한우의 화면속엔 우리가 그리던 고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그 옛날 모습대로 남아 있다 .
또 하나 그의 작품이 우리들에게 주는 감동은 서양의 매재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시각적 문법을 지니는 데 있다 . 그의 작품은 분류상 서양화라고 하지만 단지 매재만 서양의 것이지 그 속에 담긴 정서나 방식은 그야말로 토착적인 한국의 정서요 방법이다 . 서양화의 토착화라는 방법이 여러 측면에서 논구되고 있지만 최근에 와서는 이한우의 작업이야말로 뛰어난 토착화의 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
- 파리 오랑주리미술관 초대전
화집 평문에서 -
이한우 같은 예술가의 평을 쓴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
강렬한 독창성 , 영감에 이끌리는 주제들 . . .
파트리스 들라 뻬리에르 / 미술평론가
이한우와 같은 예술가의 그림에 대한 평을 쓴다는 것은 미술비평가에게는 언제나 커다란 기쁨이 아닐 수 없다 . 더욱이 파리에서 그것도 , 특별한 장소에서 열리는 명망이 있는 전시회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
내가 이한우 화백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이미 수 년전 , 파리의 한 갤러리에서 화백의 작품 전시회가 열릴 때였다 . 나는 대번에 이 한국 예술가의 작업의 완성도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생명 그 자체의 본능적인 작업이란 느낌을 받았다 . 첫 만남이 있은 얼마 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품격 있는 화백의 전시회 때 다시 그를 만나게 되었다 . 화백의 대형 작품들은 서로 끝을 맞대고 진열되어 , 한국의 다양한 풍경들을 보여주는 일종의 프레스코를 이루고 있었다 . 전시회는 전체적으로 특징적이고 인상적이었으며 , 많은 감격을 자아내게 했다 .
오늘 이한우 화백은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 그는 룩상부르그 공원 , 목가적 환경의 오랑주리 (Orangerie) 에서 전시회를 연다 . 이번 전시회는 미술을 사랑하는 아마추어들에게 , 강한 화법으로 자신의 세계 속에 그림과 같은 현실을 녹여 들게 하고 있는 한 예술가의 재능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실제로 이 한우의 작품은 첫 눈에서부터 자신만의 기교에 의해서 한층 가치가 돋보이는 강렬한 독창성을 느끼게 한다 . 영감에 이끌리듯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들은 옛 예술가들에 의해 그려진 자연의 전통적인 표현을 연상하게 하는 풍경이지만 , 이 주제들은 ,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현실감 있게 표현된 예술가의 한국적 뿌리나 만물속에 숨쉬는 기 ( 혼 ) 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 놀라운 표현주의적 현대성으로 캔버스 위에 표현된다 .
그림을 구성하는 각 요소는 흥미로운 다른 영역들을 한계 지어주는 검은 선으로 둘러싸인다 . 이러한 점에서 이 한우의 작품은 스테인드글래스 기술을 연상시키고 연결시킬 수 있다 .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 이한우의 작품을 전문가에게 시켜 스테인드 글래스로 옮기게 해본다면 아주 대단히 흥미로운 작업 될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 화백이 캔버스 위에서 능란하게 연출해내는 빛의 유희를 유리의 투과효과로 한층 더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 여러 따뜻한 느낌의 톤을 가진 색조로 작업하면서 , 이한우는 보색 효과를 살리고 밝은 색상과 톤과 어두운 톤을 대조시키며 , 건축적 엄격함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 이 모든 이유로 인하여 , 이한우의 화폭을 단순한 장식적 이미지로만 보는 것은 그의 그림이 실제로 깊은 내면에 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옆으로 비껴 지나가는 결과가 될 것이다 . 이미지와 미학적 차원의 첫 인상을 뛰어 넘어 , 그의 일관성 있는 시적인 추이를 인지하기 위해서 화가의 오묘한 상상의 세계 속을 감히 뚫고 들어가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 된다 .
이번 행사는 프랑스 관객들에게는 , 국제적 차원에서 구상 예술 작가들의 대열에 확실하게 합류한 한국의 현대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COVER ARTIST
이 한 우
Lee, Han Woo
‘아름다운 우리江山’展
2009. 3. 25 ~ 3. 31
장소 : 세종문화회관 전시실
주최 : (사)세계미술연맹
파리에서 韓國美術의 世界性을 公認받은 頂上의 元老
유럽인들을 놀라게 한 ‘아름다운 우리 江山’展
김남수 / 미술평론가
세계의 미술시장은 자국 미술의 우월성을 고취하면서 미술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심한 각축을 벌리고 있다. 21세기 문화예술전쟁이 나라마다 예술양식을 중심으로 하여 파리와 뉴욕, 동경 등지에서 치열한 국제경쟁을 전개하고 있다. 문화예술이 그 나라 그 민족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전략산업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다. 우리와는 몇 백년 앞서가는 선진국의 예술들이 쉬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사이 우리 한국미술은 표절과 모방과 위작시비 등 해마다 퇴행을 거듭하면서 문화예술의 후진국 으로 전락하는 등 빈사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미술의 현주소요, 자화상이다.
본란 3월호 표지작가로 선정된 이한우 화백은 지난 2005년 7월13일~동년 8월 1일까지 프랑스 상원 문화예술위원회가 초청하여 프랑스 미술사상 외국적을 가진 생존작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상원의 룩상부르 공원에 위치한 오랑쥬리 미술관에서 역사적인 작품전을 가졌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소재로 한 대작(500호, 300호, 200호, 100호, 50호) 등 70여점을 초대전에 출품한 작가는 현지에서 세계 각국 참관객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작가는 명실공히 세계미술의 스타덤에 올랐다.
李漢雨화백 招待展의 各國의 反應
한국 미술사상 프랑스 파리에서 초대된 화가 가운데 규모와 성취도 등에서 가장 큰 전시회는 이한우 화백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실 예술의 중심 메카인 파리에 한국 작가의 작품이 접근하기 힘든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공인된 국제 감정가를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 현안문제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이한우화백의 경우 2003년 2월과 3월 초대와 관련한 상원 의장의 우정 어린 통보를 박았으며 실제는 3년여에 걸친 작가의 예술성, 작품성 등 공인되는 심층 분석을 통하여 이 행사를 주관하는 프랑스 상원의 문화위원회가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자국민도 아닌 외국적을 가진 화가에게 초대전을 결정한 것은 이한우화백의 예술성을 국제적으로 공인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오랑쥬리 미술관의 사용규모는 500평으로 오랑쥬리 미술관 사상 처음 있는 가장 규모가 큰 초대전이었다.
룩상부르궁은 앙리 4세의 왕비인 마리 메디치와 세기적 영웅인 나폴레옹이 궁전으로 사용했으며, 프랑스 혁명이후 지금까지 상원으 로 용도 변경되어 19세기 중반에 룩상부르 미술관이 설립되었고,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세계적인 거장 루벤스의 대작 시리즈와 ‘마리 메디치의 일생’ 연작들을 보관했다가 마침내 국립 루브르박물관에 최종 소장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는 파리의 오아시스로 통칭되는 세계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룩상부르 공원, 현재는 상원으로 사용되는 룩상부르궁(그랑 룩상부르 라 불림)과 보티첼리, 라파엘로, 고갱, 모딜리아니, 마티스 등 미 술사적 거장들의 회고전을 유치하는 ‘룩상부르 미술관’ 그리고 생존하는 세계 각국의 저명한 현대미술 작가들만을 초청 전시하는 ‘오랑쥬리 등 룩상부르 미술관’ 등이 3대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의 거장 속의 반열에 낀 이한우 화백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민간차원의 외교활동에 큰 수훈을 세운 것이다. 문화의 선진국인 프랑스 등이 외국작가의 우수성을 발굴하여 자국의 일체 비용을 들여 초대전을 유치하고 있는 판국에 우리 스스로가 이를 외면하고 방임하는 것은 예술을 모르는 후진국의 수준을 그대로 폄하하고 있는 꼴이 된다. 이한우 화백을 초청한 오프닝 개막전야제에 참석한 양국의 주요 인사로는 파리측에서 프랑스 상원의장 비서실, 문화위원회 요인들, 모리스 블랭 상원의원(한, 불 친선의원협회 회장), 프랑스와 벨렉(국립미술협회 회장-S,N, B, A), 에띠엔 (전 국립협회 회장), 파트리스 드라 뻬리에르(유니버스 드라 편집장, 평론가) 한국측에서는 주철기 주불대사, 모철민 주프랑스 문화원장, 최동환 주프랑스공사, 진수남 관광공사 프랑스지사장, 위정복 지방자치단체 관리사무소 소장, 그 밖에 현지 언론기관, 문화계 인사, 교민 등 수 많은 축하객들로 붐볐다.
한국의 원로가 세계 예술의 고장, 프랑스 파리에서 이토록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것은 미증유의 전무한 사실이다. 이번 초대전의 축사에서 당시 김원기 국회의장은 ‘이번 전시회가 한국미술의 높은 수준을 유럽에 선 보이는 소중한 기회이자, 한국미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술회한바 있다.
다음은 주요 參觀客의 反應을 스케치 해 본다.
(1) 크리스티앙 뽕슬레(상원의원) : “파리 시민들과 함께 한국의 산수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는 이한우 화백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2) 당시 정동채(문화부장관) : “이번 이한우 화백의 전시를 계기로 내년 한-불 수교 120주년 문화행사를 포함해 한국과 프랑스 양국 간에 더욱 활발한 문화교류로 이어지는 토대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3) 파트리쓰 드라 뻬리에르 (미술지 편집장, 미술평론가) : “이한우와 같은 예술가의 그림에 대한 평을 쓴다는 것은 평론가에게는 언제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파리에서 그것도 특별한 장소에서 열리는 명망 있는 전시회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국의 다양한 풍경들을 보여주는 일종의 프레스코를 이루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특징적이고 인상적이었으며 많은 감격을 자아내게 했다. 실제로 자신만의 기교에 의해서 한층 가치가 돋보이는 강렬한 독창성을 느끼게 한다. 영감에 이끌리듯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들은 옛 한국 예술가들에 의해 그려진 자연의 전통적인 표현을 연상하게 하는 풍경이지만 이 주제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현실감 있게 표현된 예술가의 한국적 뿌리나 만물 속에 숨쉬는 기(氣)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놀라운 표현주의적 현대성을 캔버스에 표현했다.”
(4) 장 삐에르(화랑관장) : “이미 대중과의 밀접성을 과시한 성공적인 전시회인 만큼 크게 성공한 사례가 될 것이다.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
(5) 당시 주철기 주불대사 : “정부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해 아쉽다. 정부가 하지 못한 외교적 성과가 지대했다. 프랑스와는 지속적인 문화예술 교류에 의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6) 진수남(당시 관광공사 파리지사장) : “우리가 파리에서 1년이 걸려도 해내지 못한 관광 진흥에 큰 몫을 해냈으니 표창이나 감사장이라도 올려야겠다.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모든 관객이 한국의 자연에 대해 관심이 커졌다. 이는 관광자원 홍보에 믿음을 주는 지평이 되었다.”
(7) 유로저널(교민지-62쪽) :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란 제목 으로 고요한 아침의 평화가 기득한 한국의 산수풍경화들을 선보였다. 초기에 아카데믹한 정물로 한국의 고향 풍경과 우리 유물들의 아름다움을 표현 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부터 굵은 선과 획으로 향토적 한국의 미를 형상화한 아름다운 금수강산 연작을 발표해왔다. 대형 화면에 민화적 요소를 첨가한 이 연작은 자색과 청색, 갈색과 노랑, 담홍색과 적갈색, 등의 특징적인 색을 주조로 이화백의 고향인 통영과 다도해 일대의 풍경을 대담하게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8) 한 위클리(교민지-10쪽) : “이 화백은 여섯차례의 국전 수상경력을 비롯 지난 2000년에는정부의 보관 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9) UNIVERS DES ARTS(현지 미술지-24쪽) “이한우의 작업은 확실히 독창적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예술적인 비전이 최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표현과 근대사상을 결합하여 우리들에게 소개한다. 그의 팔렛트의 여러 가지 따뜻한 색의 배색들, 예술가의 요술과 같은 보색,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 그리고 건축가의 엄격한 설계와 같은 치밀한 구성력으로 독창적인 풍경화법을 보이는 한국 정상의 예술가를 만난 것이다.”
특히 파리에서의 이번 상원 오랑쥬리 초대전은 다양한 계층의 작품 소장가들을 확보하였다는 점이 큰 성과요, ‘상원 문화위원회’ 소속 전시담당관인 이브마렉씨의 집요한 관심에 이은 100호 작품구입과 이에 따른 이한우화백의 상원측의 배려에 대한 보답 차원 의 200호 작품기증은 오랑쥬리 미술관에 한국 원로의 작품을 소장하는 주효한 효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일반인들에 의한 작품구매는 ‘가족의 유대감’과 한국적 풍경과 프랑스 풍경과의 조화‘를 고려한 구매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확신을 가졌다. 작품을 소장한 구매자들은 한결같이 다음 전시 일정에도 큰 괸심을 가지고 있다.
룩상부르 공원 여기저기에 말없이 흩어져 오가는 방문객들로 하여금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 보게 해주는 세계 유수의 조각작품 수백점이 소장 전시되고 있으며 상원의장 공관과 의원회관 곳곳에는 상원의 상설전시를 위해 구입되거나 기증된 현대 작가들의 회화가 걸려 있는데, 이한우 화백의 작품 두 점도 이러한 대열에 합류하였다는 사실에 한국예술의 무한한 긍지를 느낄 수 있다.
미술문화의 국제화가 가속화되면서 한국미술은 국제 경쟁력에 합류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당면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 동안 우리는 극히 선택된 일부 원로작가들이 국제화단에서 공인을 받았고 세계의 예술양식과 공존을 하면서 교류전을 가져왔다.
작가 이한우는 지난 95년 한국일보 초대전으로 서울 백상기념관에서 프랑스 파리의 크로드 피사로와 2인 초대전을 가진 바 있고 지난 2000 년 5월에 중심가 샹제리제 위치한 MB 갤러리(창설 1백50년)에서 개인 초대전을 가져 파리와 세계인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특히 상원 문화위원회가 작가를 선정하는 모티브는 이러한 전시회의 현장을 답사한 후 내린 결정인 것이다. 당시 파리시 문화담당 부시장과 유네스코 대사 부인, 주불 한국대사, 현지 언론과 외신기자 등 약 300 여명의 축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전과 리셉션으로 대성황을 이룬 이 작품전은 민간차원의 국제외교와 한국미술을 세계 속에 심는데 크게 기여를 한 것이다. 현지 언론은 일제히 대서특필하여 찬사와 갈채를 보냈다 .
李漢雨화백의 作品世界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화의 ( 畵意 ) 나 정신주의는 한국의 산하나 풍경등 신표현주의적 구상회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예술의 독자적인 화풍의 제1기는 고향을 소재로 한 통영만 시대를 들 수 있다. 꿈과 낭만이 농축된 몽롱하고 환상적인 그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장황하고 불필요한 설명을 떨쳐버린 도식적인 화면분할 등 한국의 나포리를 연상케 하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이 화면들은 작가 이한우가 창출해 낸 새로운 조형언어요,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세계였다. 가시적인 현상세계를 설정해 놓고 심상으로 떠오른 상상의 세계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
특히 색채에서 보라와 군청, 연두빛과 갈윤의 빛깔 등 모노톤한 색조에 원근이나 음영을 배제한 평면구성 등은 꿈과 환상의 세계 그것이었고, 사라져 가는 자연경관을 예술작품으로 남기려는 조형욕구 때문이었다.
사실주의에서 반추상으로, 완전추상으로 잠시 선회한 작가의 예술이 다시 구상으로 회귀한 것은 신념과 확신에 찬 일대 격변의 제2기를 지적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 작품에서 이미지나 영감으로 오는 통영만의 솔방울 내음이나 짜릿한 바닷바람, 해안선 따라 완만하게 굴곡진 모래톱이나 화사하고 현란한 원색의 빛깔 등이 사라지고 우리민족의 근간사상을 이루는 ‘산그림(山影)’이 등장한다. 성황당 산신께 기우제를 드리고 주술적인 기복신앙을 산에 의존했던 겨례의 염원을 성취하기 위해 그는 서양화의 풍경화를 원용하여 동양의 산수화로 환치시키는 실험을 거듭하다가 끝내는 작품으로 완성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서양의 풍경화는 논리적이고 구축적이며 피사체의 단순묘사만을 중히 여긴다면 동양의 산수화는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직관에 의한 감동을 내면의 세계에서 수렴하여 재창조해 내는 것이 특징이요, 여기에는 한국인의 혼과 산의 혈맥이 소통되고 있어 자연과 인간의 친화력을 효과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는 마력이 농축되어 있다.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준법과 산자락, 능선과 봉우리가 황토빛깔이나 산의 색깔 등 모노톤한 단색조로 수놓아지고 있는 것도 한국인의 정서와 향수가 담긴 소박하고 담백한 캐릭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특히 작가의 ‘산그림’에서 매우 흥미있는 철학적 사유가 발견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산수화는 사람 인 ( 人 ) 자에서 출발했고 , 산의 형태가 사람 인 ( 人 ) 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는 곧 인본주의 사상의 기초가 된 것이라고 작가는 주장하고 있다 . 비록 그가 주장하고 있는 상형 ( 象形 ) 이론이 가설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동양의 회화사상은 사의성 ( 寫意性 )에 바탕한 심상(心象)예술이기 때문에 양화적인 매재를 수단으로 하여 한국성을 천착하고 있는 점은 한국의 화화사에 엄청난 변화이며 민족의 자주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많은 공감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한우 예술의 제3기는 파리 MB 갤러리의 초대전에 발표한 작품을 지적할 수 있다. 제2기와 제3기가 공히 ‘산그림’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2기는 굵고 두터운 선묘와 필선이 활달하고 박진감 넘치는가 하면 3기는 무수한 선묘가 디테일하게 화면을 구성하고 있으며 아기자기한 물상의 소재들이 등장하고 있어 회화성이 매우 강렬하게 어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무수한 가는 핏줄, 오장육부의 이미지(형상) 등 회화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그림을 소장한 콜렉터들이 “그림과 같은 ‘산그림’의 나라 한국에 가고 싶다”는 헤프닝이나 찬사와 갈채도 쏟아졌다.
그가 즐겨 다루어 왔던 정물화들도 작가의 실험정신에 의한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예를 들면 표현코저 하는 실상과 배면의 마티엘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표현기법, 옛날 떡살문양이나 귀알문양, 격자문양의 배면작업을 해놓고 그 위에 토기나 모과류 등의 물상을 그려 넣는 이원구성방법, 정물의 실재는 극세필, 극채색, 극사실의 표현의 방법론을 구사하고, 그 배면의 톤은 우리의 옛 것을 이미지화함으로써 구상과 추상이 한 화면에서 공존하는 이원 구성법, 다시 말해 옛과 현대가 만나는 회화양식을 그는 일찍이 터득하고 자기만의 조형언어로 연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랑쥬리 미술관에 초대된 작품을 중심으로 심층 분석을 해보기로 한다.
그의 예술은 한국의 산하를 그만의 독자적인 문법이나 언어로 완성하고 있다. 현란한 산자만홍(山紫萬紅)의 원색의 코리아 판타지, 치밀하고 정교한 비로드의 텍스춰를 연상케 하는 공필화법의 화면,세라믹의 색분을 깔아놓은 듯한 초가와 논두렁, 밭이랑과, 송림,원경의 굽이치는 산의 준령들, 이 모든 이미지들은 얼핏 보면 평면과 수직의 중간지대에 있으면서 슐리즘에 비교되는 신표현주의를 완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근에는 자개류(貝類)의 생체를 매재로 사용하는 등 기법과 방법론에서 동양인의 혼과 정신을 불어넣는 사유의 예술을 연출하고 있다. 그의 예술이 한국의 대표성을 지닌 예술로서 세계 속에 우뚝 설 것으로 기대를 해 본다.
다음은 이한우 화백과의 인터뷰내용을 본란에 게재한다.
對談 : 본지 김남수 주간 / 미술평론가
金: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그동안 적조했습니다. 건강하신지요.
李: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동안 많은 성원에 힘입어 열심히 작품제작에 진력하고 있습니다.
金: 프랑스 파리 상원 문화위원회가 추천하여 ‘오랑쥬리’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지셨고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 국가로부터 동양 미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훈장을 받으셨지요.
李:2006년 프랑스 국가로부터 문예기사 훈장을 받았습니다. 프랑스
상원 문화위원회가 추천하여 프랑스 국가가 수여한 훈장이며 동양 예술인으로서 생존작가로서는 본인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金:프랑스정부의 초대 문화성장관이요, 프랑스 예술의 산 증인으로 높은 추앙을 받았던 앙들레 말로의 상을 타셨다는데....
李:그동안 파리시의 MB갤러리, 유네스코회관 갤러리, 파리 9구 청 문화세터 초대전, 미로미술관, 서울에서의 한국일보 초대 피사로-이한우 2인초대전 등 본인의 작품활동 등 공로가 높이 평가되어‘앙드레말로국제문화재단 이상장’ 상을 수상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의 종주국이어서 그런지 외국적을 가진 예술인들에게 까지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것을 보면 후진국인 우리의 미술환경개선에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자성의 기회로 삼고자합니다.
金:선생님의 작품은 동양사상이 농축된 사유와 정신주의가 발현 되는 예술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데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요.
李:서구미술은 실용주의, 물량주의 등 논리적인 구성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기준이 동양의 것과는 많이 다르지 않나 생각행요. 동양의 것은 인본주의, 자연신비주의 등 사유의 철학이 투영된 예술이 아닌가 싶어요. 조선조말 오원 장승업을 주제로한 영화 ‘취화선’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서양의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인상주의 화풍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본인의 작품세계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본인의 작품은 나의 분 신이요, 자화상입니다. 내가 그린 선은 나의 산을 관통하는 혈맥이요, 나의 신체의 모든 부위가 구조적으로 이 혈맥과 관통하면서 예술을 완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도양적 사유의 정신주의가 작품 속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유럽의 관객이 나의 그림에 애정과 호기심을 갖는 것은 그림 속에 동양의 사상과 철학이 배여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金: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많은 공감이 갑니다. 선생님은 서구적인 매재나 재료를 쓰면서도 동양정신을 화폭에 담고 있으며 이 방법론과 정신주의 때문에 세계양식과 접목되고 공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젠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는 천안시 근교에 선생님의 미술관이 준공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만...
李:부끄럽습니다. 여생을 이 고장에서 작업을 할까 생각합니다. 약 100여평의 전시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여건이 허용 되는대로 조금 더 확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고장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미술인들의 문화공간이나 전시장소로 제공을 하고 싶습니다.
金:다가오는 3월 하순경 서울에서 작품전을 갖는다는 소식이 있는데....
李:사단법인 세계미술연맹(이사장 徐堯漢)이 주최를 하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작품전을 가질 예정입니다. 주최측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작품 발표전에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金:장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李:고맙습니다.
고문 이한우
귀하는 우리나라 국민 문화향상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바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가음 훈장을 수여함
보관 문화훈장
2000년 10월 20일
대톹령 김 대 중
이한우 Lee, Han-Woo
• 1929 통영 生
• 1976 국전 제 27 회 문화공보부장관상수상
• 1978 국전추천작가 및 초대작가 ( 문화공보부 )
• 1986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어제와 오늘전 ( 국립현대미술관 )
• 1987 한국방송공사 기념초대전
• 1990 90 년 한국현대미술전 ( 서울시립미술관 )
• 1991 LA 한국타운교민회 기념초대전 ( 미국 LA 타운 )
• 1993 대만역사박물관 초대전 ( 대만 )
• 1994 서울국제현대미술제 ( 국립현대미술관 )
• 1995 한국일보사초청 크로드피사로와 2 인전 ( 한국일보사 )
• 1995 통영시 문화상 수상 ( 통영시 )
• 1997 한국현대회화전초대 ( 시립미술관 )
• 1997 루마니아 정부 초대전 ( 루마니아국립미술관 )
• 1997 인도정부 한국현대미술초대전 ( 인도국립미술관 )
• 1999 한국미술 99 인 인간 , 자연 , 사물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 1999 서울시 미술대전 초대전 ( 서울시립미술관 )
• 2000 문화 보관훈장 대통령 수훈
• 2000 세종문화회관 초대개인전 ( 세종미술관 )
• 2000 파리 유네스코 미로미술관 초대 ( 유네스코미술관 )
• 2000 프랑스 파리 MB 화랑 개인 초대전 ( 파리 MB 화랑 )
• 2002 프랑스 아트코 싸롱전 초대 ( 파리 )
• 2003 프랑스 파리 CMCOINARD 화랑 개인 초대전
(PARIS CMCOINARD)
• 2003 대한민국 국회의장 초대전 ( 국회 )
• 2003 중국 국제아트페어 초대전 ( 북경 )
• 2003 조선화랑 개인 초대전 ( 조선화랑 )
• 2005 프랑스 상원의원초청 오랑주리미술관 초대전
( 프랑스 파리 상원의장 )
• 2005 프랑스 상원공관 200 호 상설 연구보존 ( 프랑스 상원 )
<남불의 고성(미술관)> 70 x 90cm 캔버스에 유채 2001
이한우의 심리학적 서정시
이용우 /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
예술가가 일생동안 한 우물을 파기란 쉽지 않다. 예술의 환경, 또는 창작형식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고, 변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전략으로 간주되는 미학적 가치의 이동현상이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술의 환경변화는 과거 예술가들이 지녀온 가치나 존중할만한 아름다운 덕목을 어느날 갑자기 정지시키는 전환점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한우 화백은 지난 50년간 자연주의적 사실회화 하나를 통하여 예술적 생애를 걸고, 오늘날과 같은 예술적 환경에서는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한다. 그의 사실회화는 풍경과 인물 등 과거 아카데미즘에 가까운 소재주의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는 것을 의도적으로 경계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예술이 전통적으로 지녀온 지고한 환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창작의 태도를 내부적인 것으로 간주하려는 모습이 그것이다. <십장생> 112 x 162cm 캔버스에 유채 2003 | <프랑스 몽셀미셀(수도원)> 112 x 162cm 캔버스에 유채 2001 이한우 화백의 이러한 독자적 작업방식은 그 나름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생산해 내는데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말하자면 모두가 첨단적 창작방식이나 새로운 것들을 향한 전쟁터로 이동하는데, 왜 자신만과거형식이라고 볼 수 있는 아카데미즘을 고집해야 하고, 또한 그 표현의 형식을 빌어서만이 미학적 설득력을 획득할 수 있는가를 변호하는데 이유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이한우 화백의 작품세계를 통칭하여 설명하자면 신비주의적 자연과, 시적 풍경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신비주의란 초월적이라거나 몽상주의가 아니라 그의 표현방식을 일컫는 것이며, 그 내용은 오히려 매우 시적이고 서정적인 작가의 개인적 추억과 환경이 배어있다고 볼 수 있다.이한우의 작품세계는 대략 3단계의 발전과정을 통하여 전개되었다. 1960년대 중반에서 약 10년간 전개된 아카데미즘을 기조로 한 충실한 묘사의 시대가 그 첫 번째이며, 제2기는 7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
초까지의 몽환적이고 심리학적 자연환상을 묘사하는 회화, 그리고 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이른바 변형된 서정시로서의 자연주의가 그것이다. 내가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이한우 화백의 그림들은 대부분 후기시대의 작업이다. 그의 후기시대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시골의 농촌풍경이나 바닷가, 그리고 산과 나무, 새 등 제한된 소재를 통하여 형성되는 다소 작위적이고 의도된 시적 분위기의 연출이다. 그의 그림들은 다분히 상투적이고 환상적인 일루전의 세계에 다다르게 한다. 이러한 그림들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상시키는 복합적인 선의 연결과 표현을 전제로 한 아카데미즘의 또 다른 변형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이미 아카데미즘이라는 과거의 정체된 것들을 매우 오랫동안 경험해 왔으며 최근의 시도는 이러한 경험적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연출된 선과 색채, 그리고 매우 조밀한 구성을 통하여 독자를 유입시킨다. 이한우 화백의 이러한 시도는 70대 중반의 나이로는 매우 힘겨운 시도들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작업들은 ‘아름다운 우리강산’이라는 시리즈가 암시하는 것처럼 매우 진지한 애정을 통하여 우리의 것들을 보듬고 매만지는 사랑에서 출발한다. 이 화백의 시적 풍경회화는 오늘날의 다변회된 회화언어나 스펙터를 중심의 이미지 폭력에 대답하는 또 다른 제안으로서 관객에게 다가갈 것이다. 특히 50년 화력을 통하여 유연하게 내뿜는 스케일은 회화형식에 대한 전형적인 틀을 깨고 과감한 붓놀림과 다소 과장된 표현들을 통하여 자유롭고 완숙한 경지를 보여주는데 지나침이 없다. 그의 ‘아름다운 우리강상’ 시리즈는 작가의 기옥 속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는 고향 충무를 연상시키는 각종 소재들이 넘치도록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 <아름다운 우리강산> 120 x 162cm 캔버스에 유채 2003 <아름다운 우리강산> 120 x 162cm 캔버스에 유채 1998 |
<십장생> 112 x 162cm 캔버스에 유채 2003
한국문화유산의 현대적 전령사
이한우
파트리스 들라 페리에스 / 프랑스 미술평론가
<아름다운 우리강산> 112 x 162cm 캔버스에 유채 2003
전통과 현대란 무엇인가? 하나의 대답이 파리 아브뉘 마티뇽(파리8구)의 MB화랑에서 전시된 그의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1928년 한국 경상남도에서 태어난 이한우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많은 연구와 모색과 준비의 산물인, 전통 공예와 수많은 스케치와 데생에 표현된, 장래가 촉망되는 대단히 발전된 예술감각을 보여주었다. 상업교사로서 직업생활을 시작한 그는 군복무를 마친 후 전통예술 상점을 운영하면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고 또 때로는 한국의 대가들 곁에서 공부도 했다. 이같은 결심의 결과로 그는 1970년 한국의 가장 권위있는 국전에서 특선했고 또 그것이 그에게 더욱 넓은 예술시장의 문을 열어 주었다. | 그의 그림의변화는 3대 시기를 걸쳤다. 70년대 초 그는 아카데믹한 스타일로 아주 섬세하게 전통적 오브제로 구성된 정물(도자기)을 그렸다. 이어 그의 작품은 아주 대담한 색깔로 그려진 몽환적인 풍경화를 거쳐 90년대에 들어 현재의 완숙기에 이르렀다. 이제 풍경화는 그의 작품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그의 풍경은 그 구성이 지난 여러 세기의 동양적 표현에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유명한 선구자들의 우의적이며 정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우리시대에 더욱 일치하는, 현실의 원칙을 우리 눈앞에 확인해주는 표현주의적 현대를 취급하고 있다. 그의 그림의 각 구성 요소는 색깔에 표현의 온갖 무게와 힘을 실어주는 검은 선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한우에게 있어 그것은 우리 현 |
<고향> 120 x 162cm 캔버스에 유채 1995 | 대생활의 고난을 도시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의 그림을 관찰해보면 지극히 심오한 정신적, 인간적 및 실제적 자연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 스승이었는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자연은 길과 들과 밭고랑을 보여주는 그처럼 치밀한 풍경으로, 그가 살던 마을의 다정한 분위기뿐만 아니라 물가에 펼쳐진 상쾌함, 삐죽삐죽 솟아있는 산들이 그에게 불어넣는 도피감 또는 안개에 잠겨있는 원경들의 맑은 평온으로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한우는 그의 개인의 시각을 통해 한국의 문화유산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의 작품에 담긴 철학은 ‘실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표현이 지닌 주장과 결론으로 심오한 가치들을 공감케 하고 또 그 아름다움이 한국 예술을 빛내고 있다. |
<아름다운 우리강산> 116.5 x 91cm 캔버스에 유채 1999
파리에서의 이한우 화백
로제 부이요 / 프랑스 미술평론가
2002년이 끝나갈 무렵, 파리의 한 유명 갤러리에서는 그림 애호가들에게 이한우라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한국 화가의 작품을 선보였다. 아브뉘 마띠뇽이라는, 파리에서도 수준 높은 그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갤러리들이 모여있는 거리에 위치한 엠비 갤러리는 이 화백의 작품을 50여점 정도 선보였다. 개막제 때는 많은 방문객들이 연이어 세 시간 동안 줄어들지 않았고, 프랑스와 한국의 여러 인사들, 특히 많은 기자들과 예술 비평가들이 참석한, 내가 올해 본 가장 성공적인 전시개막제 중 하나였다. 애호가들 가운데 몇 사람은 아마도 이 화백이 지난 5월 유네스코에서 열린 ‘한국 빛깔의 신비’ 전시에 출품했던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지만 대부분의 방문객들에게는 진정 새로운 발견의 기회가 되었다. 나에게는 단지 많은 양의 그림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 예술계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특별히 중요한 전시회였다. 간단한 단어를 통해 위대한 문학이 탄생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한우 화백의그림은 대담한 단순성으로 이루어진다. 생략과 엄격한 구성과 정적인 농도로 만들어지는 빨레트, 무지개빛과 은빛이 도는 영롱한 구름들이 또한 그렇다. 실제로 몇 가지 정물화를 제외하고는, 이번 전시에는 주로 한국풍경의 다양한 변형을 시도한 여러 가지 크기의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이곳 저곳에서 내가 본 적이 있는 한국의 경치들이 다가왔다. 제주도나 한국 남부 전라도지방의 시골 초가집들이 보이고, 목포나 통영 근방의 바위섬들이 솟아있고, 남동지방의 계단식 논밭이 아름다운 | <아름다운 우리강산> 120 x 162cm 캔버스에 윷 2003 리듬처럼 층을 이루며, 설악산과 광주를 지키는 성스런 산들의 굵직한 맥들이 뻗어있다. 이런 경치들에서 나는 곧 추억과 꿈의 투영을 읽을 수 있었다. 평화롭고 신선하면서도 열성적으로 다가오는 이 추억과 꿈의 영상은 나로 하여금 두아니에 루쏘(Douanier Rousseau)의 작품들을 생각하게 했는데, 물론 조형적인 차원의 비교를 떠나서 받은 느낌이다. 실로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관객은 경쾌하고 좋은 마술의 힘 같은 것에 이끌려 조금 비현실적인 분위기 속에 떠다니는 느낌을 받는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와는 멀리, 시골의 잔잔한 일상사를 표현한 부분에 있어서 내게 연못의 오리나 까치의 상징적인 모습과 김치항아리를 생각나게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품들은 그 각각의 시적인 내용들과 서정적인 향수를 담고 있다. 아주 강한 호소력과 함께. 이한우 화백의 작품은 경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예를 들어, 18세기의 아름다운 민속화에 사용되었던 장식적인 전개도 보여준다. 혹은 구상화에 그린 한국 여성의 모습에서 섬세한 감각성을 표현하고 있다. 내게 다시 한국에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훌륭한 이한우 화백의 아뜨리에를 반드시 방문해보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한우 화백의 이 첫 번째 파리 전시회를 무척 좋아했고, 아직도 그의 그림에 대해 쓰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다. 사실 고향에 대한 화백의 감성에는 뭔가 가슴 뭉클한 것이 있다. 그 어떤 한국 화가의 그림도 내게 한국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사실을 이렇게 확실하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 |
*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미술교육) 졸업 * 단국대학교 산업경영대학원 문화예술 최고경영자 과정 수학* 국전 특선 6회(국립현대미술관) * 국전 제27회 문화공보부장관상 수상(국립현대미술관) * 국전 추천작가 및 초대작가전(국립현대미술관) * 서울미술제 심사위원 * 남북미술 합동전(중국 북경) * 통영시 문화상 수상 *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분과위원장 역임 * 한국현대회화 초대전(서울시립미술관) * 프랑스 유네스코 미로미술관 초청(프랑스 유네스코) * 보관문화훈장 수상(대통령상)* 서울미술대전 초대전(서울시립미술관)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초대 개인전(세종미술관) * 프랑스 MB화랑 초대 개인전(프랑스) * 대한민국 국회전시회(대한민국 국회) * 프랑스 상원 ‘오랑주리 드 룩상부르미술관’ 전시예정(프랑스 상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