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
서동근
''나가는 길에 이 음식물쓰레기 좀 버려줘요.''
''왜 이런 걸 시키고 그래 모양 빠지게?''
아내는 출근하려고 문을 나서는 나에게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내민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농촌과 도시가 잇닿아 있는 변두리 시골마을이다. 문을 열면 우암산 푸른 녹음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그것도 옛일이 되어 버렸다. 이젠 마을 앞은 도시 확장으로 아파트 신축현장이 점령 한 지 오래다. 마을 뒤편에선 봄철 농사가 시작되었다. 같은 공간에서 초록빛 농촌 풍경과 회색빛 도시 풍경이 공존한다.
나는 음식물쓰레기를 재활용한다. 낙엽과 섞어 한곳에 모아두었다가 발효되면 꽃나무 퇴비로 사용하곤 한다.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 친화적 재생 퇴비를 만들어 사용하니까 꽃에 해충도 덜 생기고 뿌리도 튼실하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셈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퇴비장이 어지럽게 파헤쳐졌다. 며칠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범인은 길고양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먹을 것을 찾으려고 이것저것 뒤집어 놓았을 것이다. 나는 고양이를 싫어한다. 아니 싫어 한 다기 보다 고양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훨씬 크다.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의 소설 <검은 고양이>라는 소설을 읽고 난 후부터다. 무참히 살해된 검은 고양이의 원혼이 나타나는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 되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섬뜩하다. 특히 검은 고양이의 색채가 주는 음산함과 함께 동그랗게 부릅뜬 눈동자의 강렬함은 언제라도 달려들어 나를 할퀼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가정에서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기르는 세대가 많다. 점차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시대다. 갑자기 집 주변에도 길고양이 개체수가 부쩍 늘었다. 예전엔 농촌지역 논과 밭에 곡식 알갱이들이 많아 쥐들이 들끓었다. 그러나 요즘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고양이들의 개체수가 증가하면서 자취를 감춘 듯하다.
내가 음식 쓰레기를 들고 나가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고양이들이 하나 둘씩 내 뒤를 따라온다. '요것들이 음식 쓰레기를 헤집어 놓았구나.' 나는 음식물쓰레기를 손에 쥐고 한동안 고양이들을 지켜보았다. 그들도 먼발치에 멈춰서 나를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서로 미동도 없이 한참 눈싸움을 했다. 먹이를 향한 그들의 생존 본능은 집요했다. 나 또한 비록 음식물 찌꺼기일망정 호락호락 그들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다. 그러나 결국 나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마냥 자존심을 내세워 눈치 싸움을 하기엔 시간은 이미 내 편이 아니다. 내가 사라진 후 그들은 또 쓰레기더미를 파헤칠 것이다.
며칠 뒤 갑자기 문밖이 소란스러웠다. 문을 열어보니 고양이 서너 마리가 시위하듯 서성거린다. 어쩌다 한두 번씩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나의 일상이 어느덧 녀석들의 머리에 저희들 먹이 준비하는 찬모쯤으로 입력되었나 보다. 허 참! 피식 쓴웃음이 났다. “그래 까짓 것. 내가 해주마.” 문밖을 나서며 기꺼이 음식물쓰레기봉투를 집어 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고양이들이 줄래줄래 따라나선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경계심이 느슨해졌다는 거다. 고개 돌려 뒤따르는 고양이들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야~옹' 한다. 기분이 참 묘하다.
우리 사회도 예전에 비해 개나 고양이 등 동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그들을 가족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급속한 핵가족화와 더불어 1인 가족 세대의 증가로 인해 이웃들과의 단절이 초래된 결과일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외면하려 한다. 그로 인해 발생되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해소하는 듯하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고양이가 내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 느꼈던 두려움의 기억으로 경계의 벽을 쳤었다. 내게 다가오고픈 연민의 눈길도 외면했었다. 이제 난 일방적으로 쌓았던 고양이와의 벽을 허물려한다. 시대가 흐르고 그에 따라 문화도 변한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생활 방식이나 의식도 변해간다. 혹여 살아오면서 무의식 속에 나의 교만이나 편협한 아집이 누군가에겐 벽이 되어 다가섬을 막진 않았는지? 내게 물어본다. 비로소 너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는구나.
“여보 오늘은 음식물쓰레기 버릴 거 없어요?”
이제 고양이들은 내가 옆에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먹이를 찾는다. 나 역시 컴컴한 벽속에서 광기어린 눈으로 응시하던 소설 속 검은 고양이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기에...
첫댓글 선생님은 이제 고양이와 친구가 되셨군요
저는 여전히 개도 안 좋아하고 고양이는 더군다나 싫은걸 넘어서 무서워하는데~~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유가 어쩜 저랑 똑같은지요. 저는 영화 검은 고양이를 보고 그때부터 끔찍하게 싫어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어쩔수없이 그들과 친해져야 한답니다. 아니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나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주 싫고 그 눈빛도 싫습니다.
더구나 그렇게 사람에게 의지해서 얻어먹고 사는 놈이 걸음걸이나 몸짓으로호랑이 흉내를 내는 것이 더 싫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고양이를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셨다니 부럽습니다.
합평 때 남은 말씀은 드리겠습니다.
저희 집 주변에도 고양이 몇마리 있는데, 여태껏 눈길도 안줬는데 ....
다음에 만나면 말이라도 걸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