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견학
신재미
104주년 삼일절을 앞두고 서대문형무소를 방문 했다. 코로나 19로 멈추었던 '좋은글 쓰기 탐방'을 재게 하며 3.1절의 의도 되새기고 애국심도 고취 시키자는 뜻에 따라 방문을 한 것이다.
독립문을 촬영하고 알림판을 읽었다. ‘독립문은 우리 3천만 겨레의 독립정신을 영원히 상징하는 것’ 자유신문 1947년 11월 17일‘ 이라고 쓰여 있다.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가 모금을 주도하고 고종의 승인을 얻어 1897년 11월 20일 완공을 했다고 한다. 독립문의 독립은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홀로 설 수 있는 주권 국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독립문은 주권을 위협하는 열강들 사이에서 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세계에 알리려는 모든 국민들의 노력이 담긴 역사적 기념물이라 할 수 있다. “
독립문 견학 후 형무소로 갔다. 형무소는 3.1절 준비를 하는 사람들과 방문한 사람들로 시끌시끌했다. 거리에는 ‘서대문 그날의 함성’이라는 현수막이 펄럭였다. 유관순이 태극기를 흔드는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형무소 이곳저곳을 견학했다. 손톱을 뽑는 고문을 했던 고문실, 형틀에 고정시켜 가두었던 방, 그 방은 인형이 놓여 있어 그때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는 듯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많은 것을 보고 읽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진한 울림을 주는 것은 유관순 독립운동가가 남긴 어록이다.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유언』
마지막 코스인 사형장 앞을 지나다 쓰러진 나무를 보았다. 나무 앞에서는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써 있었으며 그 옆에 자라는 나무는 뿌리에서 새 순이 나와 뒤를 잇고 있었다. 검게 변한 생명 없는 나무에 어두운 시대가 스쳐갔다. 담장을 따라 길게 형성 된 공터에서는 발굴이 진행 중이었다. 발굴지역은 6옥사로 여러 명을 수감하는 구치감 옥사라고 했다. 터가 어느 정도 발굴이 진행 된 상황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시려왔다.
인간생명 존중은 어디에도 없는 형무소의 이곳저곳 형상은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104주년 3.1절이 다가온다. 선진들이 남기고 간 나라사랑의 애국정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감사하는 날이었으면 한다.
2023년 2월 22일 견학